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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 (원작이야기 )
"나는 숲에서 꽃을 따다가 납치되었어. 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너무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가 길을 잃어버렸거든."
뺨이 붉은 뚱뚱한 소년이 말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어. 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숲 속에서 우연히 이고 할머니를 만났는데, 일자리를 찾아주겠다면서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가늘고 긴 눈에 슬픈 빛을 띤 소년이 말했다.
"나는 일하던 가게의 아주머니의 유혹에 넘어가서 함께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남편에게 들키는 바람에 쫓겨났어."
겉보기에도 생기가 없어 보이는 훤칠한 키의 소년이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그리고 갈 곳이 없어 숲 속을 걷고 있다가 이 집을 발견했고, 그 이후에는 너희들과 마찬가지야."
"모두 사연이 있구나. 우리처럼."
헨젤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소년들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처럼 한결같이 혈색이 좋아 보였고 보기 좋게 살이 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마귀할멈이 영양가 많은 음식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모두 이렇게 건강해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젠가 마귀할멈에게 잡아먹힌다는 사실을 소년들은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피엘을 데려갔는데 돌아오지 않아. 그 이후로 피엘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래. 빅토르도 데려갔어. 마귀할멈이 잡아먹었을 거야. 정말 무서운 일이야."
"내가 이곳으로 온 뒤에 아마 열 명 이상이 사라졌을 거야."
"우리도 언젠가 피엘이나 빅토르처럼 잡아먹힐 게 뻔해.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지."
"무서워, 오빠."
그레텔이 그렇게 말하며 헨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걱정 마. 오빠가 있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헨젤도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한결같이 통통하게 살이 찐 이 소년들이 마귀할멈은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일까?
헨젤과 그레텔은 두 살 터울의 남매였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사이가 좋아서 들에서 양을 돌볼 때에도, 숲에서 나뭇가지를 주울 때에도, 마을 변두리의 가게까지 가서 빵이나 고기를 사올 때에도, 커다란 나무통을 이용해서 치즈를 만들 때에도 늘 함께 움직였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다. 그러나 친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계모가 들어오면서부터 사정은 바뀌었다. 고집이 강하고 억센 계모는 두 아이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그레텔이 게모에게 얻어맞아 눈물을 흘리면 헨젤이 즉시 달려들어 말렸다. 그럴 경우 계모는 신경질적으로 헨젤을 두들겨팼지만, 아무리 심한 매를 맞더라도 헨젤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여동생이 고통받는 것보다는 자기가 고통받는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매를 맞은 날 저녁에 헨젤이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창고에 갇혀 있으면, 모두 잠든 후에 그레텔이 몰래 창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빠, 미안해. 나 때문에..."
"걱정 마. 난 괜찮아."
"이거... 내가 저녁 식사 때에 남겨두었던 빵이야. 먹어."
그레텔이 검은색의 작은 빵조각을 내밀었다. 작은 빵과 내용물이 거의 없는 묽은 수프가 그날 저녁의 식사였다. 그레텔도 배가 고팠을텐데 오빠를 위해 배고픔을 참고 음식을 남겼다는 생각을 하니 헨젤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됐어. 나는 배고프지 않아."
헨젤은 허세를 부려보았다.
귀여운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여동생을 지켜부어야 한다. 헨젤은 새삼 마음속으로 그렇게 맹세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정은 나빠졌다. 어느 해인가, 마을에 심한 기근이 발생했다.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 때문에 농작물이 타죽었고, 겨울에는 혹한 때문에 농작물이 얼어죽었다. 수확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을에는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소나 양의 시체가 여기저기에 나뒹굴었고, 굶주린 독수리들이 들판을 버리고 마을로 모여들었다.
헨젤과 그레텔의 집에도 더 이상 시장에 내다 팔 만한 물건이 없었다. 식사 때마다 흔히 볼 수 있었던 고기나 치즈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맛도 없는 검은 빵이 유일한 음식이었고, 나머지는 내용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수프뿐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 나무 줄기나 잎까지 닥치는 대로 먹었다. 그런 것들을 먹으면 여지없이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을 정도였지만, 배고픔은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
"이제 빵을 살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지?"
어느 날 밤,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계모에게 말했다. 방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침대에서 짚으로 만든 이불을 덮고 함께 누워있던 그레텔과 헨젤이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제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어요."
계모가 대답했다.
"내일 아침 일찍, 아이들을 숲으로 데려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숲에 남겨두고 우리만 돌아오는 거예요. 아이들은 길을 모르니까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거예요."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는 기근이 자주 발생했는데, 그때마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입을 줄인다는 이유로 기아나 영아 살해가 자주 자행되었다.
"말도 안 돼."
아버지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이들을 숲에 버리다니. 금방 무서운 짐승이 냄새를 맡고 달려먹을 것이 뻔한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지만 우리 부부라도 살아남으려면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잖아요."
계모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투로 말했다.
"당신, 내가 시집 올 때 뭐라고 말했어요? 절대로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아이들도 착하니까 말을 잘 들을 거라고, 그러니까 네 식수가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듣기는커녕 둘이서 힘을 합쳐 반항만 하고 있어요. 그런 아이들을 위해 내가 굶어죽어야 하다니, 나는 절대로 그렇게 못해요."
"어떻게 그런 말을..."
"그러니까 선택해요. 나예요, 아니면 아이들이에요? 당신은 나를 사랑해서 결혼한 거 아닌가요? 솔직히 나는 젊기 때문에 아이가 딸려있지 않은 남자에게 얼마든지 시집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워낙 당신히 끈질기게 쫓아다녀서 그 열성을 보고 당신에게 시집 오게 된 거라구요."
아버지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결국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정말로 네 식구 모두 굶어죽게 될 것이 뻔했다.
"어쩔 수 없군.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라구요.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구요."
배가 고파 잠들지 못하고 있던 헨젤고 그레텔은 그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었다.
"오빠,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숲 속에 버려지면 무서운 짐승에게 잡아먹힐 게 뻔한데."
그렇게 속삭이며 그레텔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쉿, 그레텔. 조용히 해."
헨젤이 입에 손가락을 대며 속삭이듯 말했다.
"울지 마. 걱정하지 말고 자. 좋은 방법이 있을거야."
그렇게 여동생을 안심시켰지만 헨젤은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헨젤이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래, 그렇게 하는거야!'
이윽고 헨젤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계모는 아이들을 흔드렁 깨웠다.
"빨리 일어나. 숲에 가서 장작을 해와야지."
계모는 아이들에게 작은 빵조각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점심때가 되기 전에 먹으면 안 돼. 우리 집에는 먹을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네 사람은 숲으로 향했다. 조금 뒤처져서 따라가던 헨젤은 몇 번씩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마치 손으로 자기 집을 가리키는 것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왜 그러니, 헨젤.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니?"
아버지가 물었다.
"하얀 고양이를 보고 있어요. 저 녀석, 우리 집 지붕에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 있어요."
헨젤이 대답했다.
"멍청아! 저건 고양이가 아니라 굴뚝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거야."
계모가 핀잔을 주었다. 사실 헨젤은 뒤를 돌아볼 때마다 주머니 안에서 잘게 부순 빵 부스러기를 땅에 뿌리고 있었다.
숲 속에 이르자 아버지가 남매에게 말했다.
"나뭇가지를 주워와라. 춥지 않도록 불을 피워줄 테니까."
헨젤과 그레텔이 나뭇가지를 한아름씩 가져오자 아버지는 그것을 쌓아놓고 불을 붙였다. 이윽고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너희는 피곤할 테니까 이곳에서 쉬고 있어. 우리는 나무를 하러 가야 돼. 일이 끝나면 데리러 올게."
헨젤과 그레텔은 계모가 시키는 대로 불 옆에 주저앉았다. 헨젤은 여동생을 끌어안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며 그레텔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점심때가 되자 배가 고팠다. 하지만 헨젤의 빵은 모두 땅에 뿌렸졌기 때문에 그레텔의 빵을 나누어 먹어야 했다.
어딘가에서 도끼로 나무를 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근처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소리는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서로 부딪치는 소리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에는 주위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레텔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오빠, 어떻게 해. 우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어."
하지만 헨젤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마, 그레텔. 날이 밝으면 내가 뿌려놓은 빵 부스러기가 보일 거야. 그것만 따라가면 우리는 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헨젤은 그렇게 어린 여동생을 달랬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동쪽 하늘이 하얗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레텔, 해가 떠오르고 있어. 자, 가자."
헨젤은 밝은 표정으로 여동생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헨젤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없어! 내가 뿌려놓은 빵 부스러기가 없어!"
헨젤이 뿌려놓은 빵 부스러기는 숲 속에 사는 새들이 모두 쪼아먹어버렸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헨젤이 간신히 마음을 추스리고 일어섰다.
"걱정 마. 틀림없이 길을 찾을 수 있을거야. 어쨌든 가자."
훌쩍이는 그레텔의 어깨를 안고 헨젤은 이를 악물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집으로 가는 길은 찾을 수가 없었다. 숲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숲 속엔 점점 깊은 안개가 피어올라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짖어대는 짐승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때문에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헨젤은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훌쩍이는 여동생의 어깨를 끌어안고 걸음을 옮겼다.
어제 점심때 빵 한 조각 먹은 이후로 산딸기 서너개 따먹은 게 고작이었기 때문에 몹시 배가 고팠다. 발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지친 두 사람은 커다란 나뭇가지에 기대고 앉아 그대로 잠이 들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집을 나온지 어느덧 사흘째. 그날도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채찍질하면서 걸음을 옮겼지만 숲은 더울 깊어질 뿐이었다. 정신력이 강한 헨젤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죽게 되는 것일까. 이제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업어. 산딸기도 없고 개암나무 열매도 보이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찾을 수 없고. 이대로 죽는 수밖에 없어.'
완전히 지쳐버린 헨젤은 그레텔을 가슴에 끌어안고 그렇게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새하얀 작은 새 한 마리가 앞에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기 시작했다. 새가 워낙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그 노랫소리에 취해버렸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새는 날개를 펴치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두 사람이 정신없이 그 뒤를 따라가보니 작은 집이 나타났다.
그 집은 케이크로 만들어져 있었다. 지붕은 군침이 도는 초콜릿, 창문은 새햐안 생크림, 바깥벽은 갈색으로 구워진 비스킷, 집 주위의 담은 캐러멜, 그리고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 있는 꽃밭은 딸기와 버찌 , 설탕에 절인 과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빠, 이것 봐. 초콜릿이야."
"이건 캐러멜이야. 달콤한 바닐라 냄새가 나."
"어머, 이건 아몬드가 들어 있는 케이크야. 우와, 맛있겠다!"
"타르트(카스텔라로 둥글게 만 빵)도 있어. 안에는 딸기가 가득 들어 있어."
그레텔은 정신어 없었다. 손에는 초콜릿을, 두 뺨엔 생크림을 새하얗게 묻힌 채 이것저럿 닥치는 대로 먹어대고 있었다. 헨젤도 벽을 이루고 있는 갈색 비스킷을 데어내어 정신없이 먹어댔다.
그러자 그때 잡자기 문이 열리더니 주름투성이의 노파가 나무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면서 나왔다. 헨젤과 그레텔은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떨어트렸다. 노파는 두 사람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이런, 귀여운 아이들이구나.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되었니?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자."
노파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쇠고기를 넣은 파이, 소갈비찜, 양고기와 마늘소스, 통닭, 가리비조개와 사프랑소스, 새우꼬치구이 등 헨젤과 그레텔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화려한 음식들이 새하얀 도자기 접시에 담겨 있었다.
"우와, 맛있겠다!"
그레텔이 환성을 질렀다. 가난한 자기 집에서는 구경조차 해본적이 없는 음식들뿐이었다. 철이 든 헨젤은 자기 집의 가난이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어린 그레텔은 그저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이건 무슨 요리예요, 할머니?"
그레텔은 포크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음식을 먹어대면서, 새로운 음식이 나올 때마다 노파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노파는 상냥한 목소리로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부이야베스라는 요리란다. 쏨뱅이나 볼락 등 여러 가지 신선한 생선을 푹 삶아서 사프랑으로 맛을 내어 만드는 요리야."
"그건 새끼 양고기를 마늘소스로 맛을 낸 거야. 노르망디산 최고급 양고기를 사용했지. 고기가 너무 구워지면 맛이 떨어지므로 한가운데가 붉은 색이 감돌도록 만드는 것이 비결이야."
"아, 그건 통닭구이다. 브레스 지방의 최고급 닭고기를 사용했지. 옥수수와 유제품만을 먹여 키운 닭이란다. 기름기가 빠져서 육질이 부드럽지."
노파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해주었다. 그럴때마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할머니는 요리를 정말 잘하시네요."
이것은 그레텔의 솔직한 느낌이었다.
"할머니는 틀림없이 부자일 거예요."
이것은 헨젤의 추측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노파는 두 사람을 옆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작은 침대 두 개가 놓여있었다. 그 위에는 새하얀 시트가 덮여 있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작은 꽃무니 베개와 이불이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푹 쉬렴. 숲 속을 헤맸으니 꽤 피곤할거야."
노파의 부드러운 말에 완전히 마음을 놓은 헨제로가 그레텔은 즉시 침대로 올라갔다.
"믿을 수 없어. 마치 천국같아."
베개에서 풍기는 희미한 라벤다 향에 취하면서 헨젤이 중얼거렸다.
"숲 속에 이렇게 멋진 집이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 친절한 할머니가 있다니... 오빠, 우린 정말 운이 좋아."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이윽고 행복하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완전히 뒤바뀐 현실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두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곳은 어젯밤의 편안한 침실이 아니라 튼튼한 창살과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이었다. 그 안에는 두 사람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들 네뎃 명이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그렇게 친절했던 노파는 사람이 변한 것처럼 무서운 얼굴로 두 사람을 대했다.
"각오해라. 이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너희는 이 감옥에서 도망칠 수 없어."
"젠장, 우리를 속였구나!"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헨젤과 그레텔은 입을 모아 소리쳤지만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너희들도 우리처럼 납치된 거니?"
"너희는 어디에서 왔니? 나는 몬포콘에서 왔는데."
"나는 사티용에서 왔어."
감옥 안에 있던 소년들이 두 사람 주위로 모여들었다.
"숲 속에 맛있는 과자로 만들어진 집이 있기에 그만..."
"그래, 우리도 그랬어."
"모두 거기에 속은거야."
소년들이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 마귀할멈의 수법이야."
"마귀할멈?"
"그래. 그 할머니는 마녀야. 우리 같은 소년들을 납치해서 이곳에 가두어놓고 잘 먹여서 살이 찌면 잡아먹는대."
"잡아먹는다고?"
헨젤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래. 빵을 굽는 것처럼 솥 안에 넣어서 굽기도 하고, 냄비 안에 넣어서 스튜를 만들기도 해서 먹는대."
"그만 해. 폴. 마치 실제로 본 것 같잖아."
"야, 그건 당연하잖아. 늘 부엌 쪽에서 맛있는 빵을 굽는 냄새, 스튜를 만드는 냄새가 나잖아. 그건 틀림없이 우리들 중 누군가를 이용해서 만드는 음식이라구."
폴이라고 불린 소년은 그렇게 말하고 불만스런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하지, 오빠. 우리 이제 어떻게 해."
그레텔이 다시 훌쩍거리시 시작했다. 헨젤도 자기의 운명을 저주했다. 이제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편안한 침대에서 잠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왜 이렇게 운이 없는 것일까?
"문 열어! 이곳에서 내보내줘! 우리는 비쩍 말라서 뼈와 가죽만 남았다구. 맛도 없어! 우리를 잡아먹을 바에야 개나 고양이를 잡아먹는 게 훨씬 나아!"
"그래요! 우리는 사흘이나 굶었다구요! 지금까지 먹은 것이라고는 멀건 스프와 작은 빵조각뿐이었어요. 그런 우리가 무슨 맛이 있겠어요!"
헨젤과 그레텔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벽에 부딪힌 메아리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다음날부터 그레텔은 감옥에서 나가 마귀할멈의 일을 돕게 되었다.
"자, 이 밀가루를 반죽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게 뭐야. 더 다부지게 달려들어서 힘있게 반죽해야지."
그레텔은 부엌으로 끌려가 온갖 꾸중을 들으면서 온몸이 밀가루투성이가 되도록 반죽을 했다. 맛있는 빵을 구워 감옥 안의 소년들에게 먹이기 위해서였다.
다음에는 반죽한 밀가루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긴 막대기로 펴는 일을 했다. 그리고 다시 뭉둥그려서 반죽을 하고 또 펴는 과정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마치 요리교실에서 강습을 받는 것 같은, 공짜로 신부수업을 받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일이 너무 고되었다.
"할머니, 제가 먹을 거는요?"
얌전하면서도 유들유들한 면이 있는 그레텔이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레텔은 엄한 꾸중을 들을 뿐이었다.
"뭐가 어째! 너는 부엌에 남은 음식을 먹으면 되잖아. 그것도 감지덕지해야지. 개나 고양이라면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고 덤벼들걸."
자기가 개나 고양이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레텔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 마음껏 먹어라. 마음껏 멋고 포동포동하게 살이 쪄야 돼."
노파는 그렇게 말하면서 접시에 가득 담긴 음식들을 감옥 안의 소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지루하게 지내는 소년들은 식욕에만 매달렸다.
"우와, 맛있다. 할머니, 더 줘요."
"저도요. 저도 더 주세요."
그런 성가신 요구에도 노파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지하게 응했다.
그러나 소년들의 그런 기쁨은 처음 한동안뿐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음식도 지겨워졌다.
"할머니, 가끔은 운동도 시켜줘야지요. 몸이 근질거려서 못 견디겠어요."
"미용이나 건강에는 적당한 운동이 필요해요. 편안히 누워 지내면서 먹기만 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구요. 그리고 군살만 붙어서 보기 흉하다구요."
소년들은 그렇게 요구했지만 노파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헨젤도 점차 음식에 흥미를 잃어 식사를 남기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텔은 노파가 부엌에서 돋보기를 걸치고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오래 전에 쓰여진 가정용 요리책이었다. 노파는 감옥안의 아이들을 위해새로운 요리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불쌍한 것은 그레텔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그것은 감옥 안의 소년들 몫일 뿐 그녀는 먹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냄비 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스프를 핥아먹거나 쓰레기통의 야채와 고기 등을 주워먹어야 했다. 그야말로 개나 고양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가끔씩 자기가 만든 음식의 맛을 볼 때면 나름대로 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흐음, 이건 정말 맛있는데. 나도 실력이 꽤 늘었어."
"이건 허브를 좀더 넣어야겠어. 로즈마리가 좋을까? 아니면 민트? 고기 냄새를 없애려면 로즈마리가 좋을지도 몰라."
그레텔은 이렇게 마치 요리사가 된 듯한 기분을 즐기기도 했다.
한동안 그렇게 불안하면서도 평온한 나날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험상궂게 생긴 커다란 몸집의 남자가 요란한 발소리를 내면서 나타났다. 마녀의 단짝인 듯했다.
"이 녀석들, 각오는 되었겠지."
그는 큰 소리를 외치며 감옥 안을 들여다보았다. 소년들이 구석에 모여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떨고 있었다.
"흐음, 이 녀석이 좋겠어. 살이 포동포동하게 쪘는데."
그는 뚱뚱하게 살찐 소년을 가리켰다. 그 소년의 얼굴이 즉시 새파랗게 변했다.
"싫어! 도와줘! 나는 가고 싶지 않아!"
소년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소년은 남자에게 붙잡혀 강제로 끌려나갔다.
"도와줘! 나 좀 도와줘!"
귓속을 파고드는 소년의 비명소리가 헨젤의 마음을 갈라놓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만약 함부로 대항한다면 자기가 죽게 될지도 몰랐다.
남자에게 끌려나간 소년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노파는 소년들을 잡아먹지 않았다. 노파는 어느 영주에게서 소년들을 조달하라는 비밀 명령을 받고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1432년부터 1440년에 걸쳐 낭트 근교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양치기 소년을 들판에서 납치되었고, 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놀이를 하다가, 숲에서 놀다가 납치되는 아이도 있었다.
그 납치 사건의 배후 조종자는 영주 질 드 레 남작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마귀할멈이라고 불렀던 노파는 펠리느 마르탕이라는 여자로서, 질의 하수인이었다. 동화 속의 마녀로 등장하는 그녀는 회색 옷에 검은 후드를 걸치고, 살이 찐 붉은 얼굴을 베일로 감추고 다녔다.
노파가 아이들을 유괴하는 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이 과자로 만든 집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과자를 좋아했다. 그리고 중세에는 일부 귀족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난한 서민들뿐이었기 때문에 과자 같은 간식을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과자로 만든 집으로 그런 아이들을 유혹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노파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거나 양을 치는 아이들을 발견하면 다가가서 말을 걸고 과자를 나누어주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숲 속으로 유혹했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과자까지, 당연히 아이들은 아무 의심없이 노파를 따라왔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을 과자로 만든 집으로 유혹한 노파는 일단 그들을 안심시켜서 잠이 들게 한 다음에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먹여 영주가 좋아하는 건강한 아이로 만들었다.
15세기 프랑스 서부... 낭트와 포와체를 연결하는 거리에 난공불락의 티포주 성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지방의 막대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대귀족 질 드 레 남작의 성이었다.
성에 도착한 소년은 일단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여자의 부드러운 손길에 의해 오랫동안 묵은 때가 벗겨지고 온 몸에 향유가 발라졌다. 그리고 마사지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몰라보게 아름다워진 소년은 긴 복도를 따라 성의 거실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많은 또래들이 알몸으로 뒹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 불안했던 소년도 마음을 놓고 그 또래들 틈에 섞여 나름대로 놀이에 열중할 수 있었다.
귀여운 배를 드러내고 긴 의자에 누워 있는 소년, 두 팔로 다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소년, 작은 손을 휘저으며 물통 안에서 장난을 치는 소년, 마등에 세워져 있는 조각을 만지고 있는 소년, 귀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소년, 소로의 몸을 끌어안고 레슬링을 하는 소년, 개와 장난을 치는 소년, 바닥에 주저앉아 시원한 과일을 먹고 있는 소년...
그것은 마치 천사들의 놀이터 같은 풍경이었다. 하늘의 천사들이 잠깐동안 지상으로 내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듯한, 이 세상의 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소년들의 모습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그러나 그 낙원이 곧 지옥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질은 일그러진 미소를 띠고 소년들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무엇인그 슬픈 그림자가 깃들여 있었다. 어쩌면 이 낙원을 지옥으로 바꾸어야 할 자신의 숙명을 슬퍼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낙원을 파괴해야만 오히려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자신의 욕망에서 느껴지는 슬픔...
문득 질의 시선이 한 소년에게 머물렀다. 즉시 신호가 보내지고, 부하 한 명이 그 소년을 불러 질의 방으로 데려갔다. 소년은 한창 신이 나서 놀고 있는데 불려나오게 된 것이 불만이었지만 얌전히 따라나섰다.
그리고 또 지옥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선택된 소년은 등 뒤로 손이 묶인 채 두 명의 건장한 남자들에게 이끌려 삼중으로 둘러쳐져 있는 성벽을 돌아서 화려한 대리석 조각과 카펫이 깔려 있는 지하실로 끌려갔다. 소년은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에 저항을 해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몸을 묶고 있는 밧줄이 살갗을 더욱 파고들 뿐이었다.
지하실에서 소년을 맞이한 사람은 우아한 모습으로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있는 훤칠한 키의 중년 남성, 즉 질 드 레 남작이었다. 파란 눈에 금발 머리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지만, 소름이 돋은 피부와 눈 아래 그늘이 그의 타락한 생활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질이 소년을 괴롭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때로는 유괴한 소년을 깨끗하게 목욕시킨 다음, 얼굴에는 여자처럼 하얀 분을, 뺨에는 장미색 연지를, 입술에는 붉은 루즈를 바르게 했다.
화장이 끝나면 시종들이 고래 뼈로 만든 코르셋, 얇은 실크 브래지어와 팬티, 몇 겹으로 부풀린 스커트 등을 가져와 소년에게 입혀주고 실크 스타킹과 신발을 신겨주었다.
"오, 아름다워."
질이 중얼거렸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자, 한번 걸어보아라."
소년은 여장을 한 채 방 안을 걸어다녔다. 질이 그만 하라고 명령할 때까지 그런 동작은 몇 번씩 되풀이되었다.
"아름답다. 정말로 아름다워."
질은 그렇게 말하면서 소년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는 듯 안아서 침대로 데려갔다. 잠시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불안에 떨고 있는 소년의 몸에서 하나하나 옷이 벗겨졌다.
이윽고 소년의 하얀 알몸을 드러내면 질은 목덜미에서 시작하여, 가슴, 하복부, 비밀의 숲, 길게 뻗은 두 다리로 입을 옮겨갔다. 소년은 참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바로 그때 부드럽게 애무하던 질이 갑자기 동물처럼 돌변하여 소년의 얼굴과 몸을 꼬집고 물어뜯기 시작했다. 소년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뿐이었다. 틸이 소년의 몸을 한 팔로 끌어안고서 감추어 두었던 칼을 꺼내어 소년의 목을 찔렀다.
질의 얼굴과 나이트가운이 소년의 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쓰러진 소년의 몸 위에 걸터앉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년의 일그러진 표정을 핏발 선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고문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질은 소년의 시체를 침대 위에 던져놓고 자기도 알몸이 되어 시체 위로 올라가더니 음탕한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웃음소리가 성 안에 울려퍼졌다.
이윽고 행위가 끝나자 도끼로 시체의 팔과 다리를 토막내고 상처에 손을 넣어 내장을 꺼내는 등 발작적인 행동이 이어졌다. 결국 소년은 질의 잔학한 행동에 의해 고깃덩어리처럼 변해버렸다.
또 언젠가는 몇 명의 소년들이 질에게 불려가 함께 '늑대와 양 놀이'를 하자는 명령을 받았다.
"내가 늑대이고 너희들은 양이다. 자, 도망쳐. 빨리 도망쳐라. 네게 붙잡히면 잡아먹힌다."
그 말을 들은 소년들은 이것도 게임이라고 생각하고서 즐거운 표정으로 거실 이곳 저곳을 도망다녔다. 순진한 소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게임에 열중하였고, 거실로는 부족한지 이번에는 마당으로 나가 하얀 조각상과 분수, 각양각색의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는 화단 사이를 재미있다는 듯 뛰어다녔다.
질은 웃음을 터트리며 그 뒤를 쫓았다.
"킁킁, 어디야? 맛있는 양이 어디에 있지?"
"와아, 늑대다! 붙잡히면 먹이가 된다, 도망쳐! 빨리 도망쳐!"
그것은 얼핏 보기에 즐겁고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질의 손에는 커다란 활과 화살이 쥐어져 있었다. 한 소년을 유심히 바라보던 질이 이윽고 목표로 삼은 소년을 향해 활 시휘를 당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화실이 소년의 어깨에 꽂히자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질은 여전히 즐거운 웃음을 터트리면서 소년에게 달려갔다.
그는 소년의 상반신을 끌어안고 어깨에 박힌 화살을 단숨에 뽑아내더니, 소년의 비명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빨아먹었다. 질의 입에서 새빨간 피로 물들었다. 그야말로 잔혹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영주님 기분은 어때?"
"최고입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은 본 적이 없대요. 일부러 망아지를 준비해서 그 위에 아이들을 태우고 정원을 한 바퀴 돌 정도로 매우 만족스런 모습입니다."
"후후후, 불쌍한 녀석들. 그런 대접을 받는 게 처음일텐데... 이제 곧 영주님의 무서운 욕망의 제물이 된다는 것도 모르고..."
"솔직히 말해서 요즘에는 성에 가는 것이 겁이 납니다. 그 동안 워낙 많은 시체를 매장해서 이제는 시체를 묻을 장소도 없다니까요. 성 안에는 음침한 죽음의 냄새가 감돌아서 기분이 이상해질 정도입니다. 게다가 가끔씩 아이들의 날카로운 비명오리가 바람결에 들려오는 것 같아서..."
"하하하, 자네 같은 악당도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나?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생활을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 고마운 일이지요."
그레텔은 우연히 노파와 험상궂은 남자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 말을 들은 그레텔은 하루종일 몸이 떨려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노파 앞에서는 간신히 두려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감옥으로 식사를 가져갔을 때, 낮에 들었던 이야기를 소년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레텔의 말을 듣자마자 소년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대로 있으면 우리도 죽을 게 뻔해."
헨젤은 다른 소년들과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생각했다.
"이곳에서 도망칠 방법이 없을까?"
"그건 불가능해. 마귀할멈만 있으면 또 몰라도 그 험상궂은 남자의 힘은 당할 수 없어."
"우리 같은 아이들이 아무리 많이 달려들어도 간단히 붙잡혀버릴거야."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마귀할멈을 함정에 빠트려서 감옥 안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그리고 모두 힘을 합쳐서 두들겨패는 거야."
"어떤 방법으로? 마귀할멈은 조심성이 많아서 절대 혼자서는 감옥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거야."
"이 감옥의 창살을 떼어내는 건 어때?"
"말은 쉽지.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야.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없잖아."
"독살시키는 건 어떻겠어? 비소에 청산가리를 이용하는거야. 흔적이 남지 않으니까 완전범죄가 될걸."
"그런 독약을 어디서 구해?"
"흐음, 그럼 단번에 해치우는 방법이 없을까?"
"목에 밧줄을 걸어서 매다는 건 어때?"
"화형을 시키는 게 어떻겠어? 마녀는 화형으로 죽이잖아. 그 마귀할멈의 몸이 불타는 모습을 보면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냐. 마귀할멈은 우리처럼 맛있는 걸 듬뿍 먹인 다음에 잡아먹는 게 어때?"
"에이, 그건 아냐. 그 주름투성이가 무슨 맛이 있겠어?"
이런 식으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도 나누어야 마음이 편했다. 헨젤을 비롯한 소년들이 상상하는 것은 그 노파를 죽이는 장면뿐이었다. 칼, 단검, 불, 밧줄, 독약 등 여러가지 살인 도구가 소년들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모두 들어봐. 좋은 소식이야."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식사를 가져온 그레텔이 감옥 안의 소년들에게 속삭였다.
"내일은 하루종일 그 험상궂은 남자가 외출해. 음식 재료를 구하러 시내로 나가는데 저녁에나 돌아온다는 거야. 내일이 기회야."
"그래? 그거 잘됐는데. 내일 도망치지 못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거야."
"좋았어. 그럼 해보는 거다."
소년들은 얼굴을 맞대고 진지한 표정으로 눈짓을 교환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한 소년이 갑자기 소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 죽는다. 나 좀 살려줘요!"
그렇기 소리치면서 정신없이 바닥을 굴렀다.
"할머니, 큰일났어요!"
아이들 중 한 명이 부리나케 소리쳤다. 전부터 목소리가 큰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소년이었다.
"앙리가 아픈 것 같아요. 오늘 새벽부터 아프다면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어요."
"배가 아픈 것 같아요.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시끄러워. 대체 어디가 아프다는 거야?"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귀할멈이 감옥으로 다가왔다.
'그래, 계획대로야. 제발 걸려들어라.'
소년들 사이에 즉시 이런 공기가 감돌았다.
"큰일났어요. 앙리가 오늘 새벽부터 배가 아프다더니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일어나지도 못해요."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어제 먹은 스프가 상했나봐요."
"무슨 헛소리야. 너희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최고급 스프였는데."
노파는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으며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와 배를 움켜쥔 채 바닥을 뒹굴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바로 그때 소년들이 일제히 덤벼들어 노파를 둘러쌌다. 그리고 순식간에 노파의 두 손을 등 뒤로 묶어버렸다.
"무, 무슨 짓이냐! 이 녀석들, 이런 짓을 하고도 너희가 무사할 것 같으냐. 그 무서운 남자가 너희들을 당장..."
"헤헤, 무슨 헛소리. 그 사람이 집에 없다는 정보는 이미 들었다구. 이 멍청한 할망구, 제대로 걸려들었구만."
"꼴 좋다. 우리를 짐승처럼 다루었지? 이번에는 네가 잡아먹힐 차례야."
그렇게 말한 후 가장 힘이 좋은 소년이 있는 힘을 다해 노파의 배를 주먹으로 쳤다. 노파는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자, 빨리 도망치자."
"잠깐, 할망구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곧 들킬거야."
한 소년이 말했다.
"맞아. 그럼 부엌으로 옮기자. 너는 다리를 잡아. 나는 머리 쪽을 잡을테니까."
조르주라는 아이의 말에 소년들은 정신을 잃은 노파를 부엌으로 옮겨 기둥에 묶어놓았다.
"이제 안심이야. 자, 빨리 도망치자. 빨리!"
감옥에서 도망친 헨젤 일행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교구 안에 있는 관리에게 사정을 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리는 상대도 해주지 않고 소년들을 쫓아냈다. 그래도 헨젤 일행은 끈질기게 몇 번씩이나 문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위병에게 쫓겨났지만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이에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니까요."
"부탁이에요. 우리 말 좀 들어보세요. 아저씨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정보예요."
"시끄러워! 이 녀석들, 빨리 꺼지지 못해!"
위병은 그렇게 소리치며 칼을 휘둘렀다. 소년들은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쳤다. 그때 신분이 높아 보이는 고관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어딘가에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듯했다. 병사 두 명이 서둘러 달려가, 한 명은 말의 재갈을 잡고 또 한 명의 병사는 말에서 내리는 고관을 도왔다. 위병들은 긴장한 모습으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대체 무슨 소동이냐?"
고관이 말에서 내리면서 병사들에게 물었다.
"네, 실은 이 아이들이 아까부터 시끄럽게 소란을 피워서..."
소년들은 이때가 기회라는 듯 고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탁이에요. 우리 말 좀 들어보세요."
"우리는 하마터면 고문을 당하고 죽을 뻔했어요. 동료들 몇 명은 이미 목숨을 잃었어요. 아니, 어쩌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라요. 어쨌든 빨리 가보지 않으면 안 돼요."
"무슨 일인지 처음부터 자세히 이야기해봐라."
그렇게 말하고서 고관은 아이들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서대로 천천히 이야기해봐라."
사실 고관은 이미 이상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밤마다 성에서 무서운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도 있었고, 기묘한 고문을 한 흔적이 있는 대량의 시체를 매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마을 승려의 증언도 있었다.
"한 명씩 줄어들 때마다 불안해서..."
"그곳 영주가 아이들을 잡아먹는대요. 마녀가 아이들을 유괴해서 영주에게 조달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고관의 눈이 빛났다.
"흐음, 그렇다면 그 마녀는 어떻게 생겼느냐?"
"그게... 뚱뚱한 몸집에다 얼굴에 사마귀가 있고 검은 후드를 입고 있어요. 키는 이 정도..."
반상이라는 소년이 대답했다.
"성은 우리가 갇혀있는 장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것 같아요. 험상궂은 남자가 그곳까지 말을 타고 가면 그날 안으로 돌아왔으니까요."
"그래, 일리 있는 말이구나."
고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알았다. 너희들 말은 잘 들었다. 즉시 조사해보마. 너희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선 식사부터 해라. 그 후에 집으로 보내주마."
즉시 조사가 시작되었다. 우선 아이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성 근처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하는 한편, 이른바 '비방문서'가 작성되었다. 비방문서란, 신분이 높은 사람을 둘러싼 이상한 소문이 나돌때 교회나 당국이 그 뒷받침이 될 만한 증거나 증언을 모아 작성하는 문서로, 이것만 있으면 정식 고소가 없더라도 재판에 넘길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질이 체포되었다. 그날 병사들은 티포주 성의 모든 출구를 막았다. 그리고 횃불을 손에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로 내려가자 이상한 냄새가 병사들을 맞이했다. 바닥에는 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피가 묻어있는 펜치와 채찍과 소몽둥이 등의 고문 도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방에서 복도로 나오자 앞에 또 하나의 작은 방이 있었다.
그 방에는 채 마르지 않은 피가 커다락 얼룩으로 번져 있었고, 역시 피가 묻어 있는 끌과 인두 등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는 지저분한 담요로 뭉뚱그려진 무엇인가가 놓여 있었다. 담요를 펼치자 그 안에서 피투성이의 시체가 나왔다. 안구가 파헤쳐지고 입이 귀까지 찢어졌으며 팔다리는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간신히 소년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그 시체에는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질 드레 남작은 노파와 험상궂은 남자와 함께 낭트의 라 툴 누브 성에 감금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사교와 이단심문관 대리 등의 앞에서 검찰관에 의한 기소가 이루어졌다. 49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기소장에는 질이 14년 동안에 걸쳐 약 140명의 소년들을 유괴하여 잔혹한 고문 끝에 살해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질이 이런 혐의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고문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의 고문은 크게 나누어 예비 고문과 최종 고문 두 종류가 있었다. 예비 고문은 범죄 사실을 부정하는 피고를 자백시키기 위한 것이고, 최종 고문은 피고가 유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이름이나 사건 장소, 날짜 등을 자백하는 것으로 '통상'과 '특별'로 나뉘어 있었다. 어느 쪽을 성택하느냐는 피고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졌다.
극히 일반적인 고문은 '물고문'이었다. 피고의 입에 깔때기를 물리고 계속해서 물을 먹이는 것으로, 아무리 강한 자라 해도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잔혹한 것이었다. 그 밖에도 채찍이나 목마를 이용한 고문도 있었고, 피고를 쇠의자에 묶어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를 향해 의자를 조금씩 옮기는 고문, 피고에게 가죽장화를 신기고 그 장화 안에 펄펄 꿇는 물을 붓는 고문도 있었다. 뜨거운 물은 피부를 무르게 만들고 그 안의 살은 물론 뼈까지 녹여버렸다.
고문이라는 말을 듣자 질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는 즉시 무릎을 꿇고 고문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며, 다음날까지 판사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자기가 저지른 죄를 정리하겠다고 맹세했다.
며칠 후, 법정에는 악명 높은 범죄자의 재판을 구경하기 위해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방청객은 실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나갈 틈이 없었다.
질은 완전히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인 채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배석판사와 주임판사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소름끼치는 고백이 시작되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고 몸을 떨면서 자기가 저지른 죄를 하나하나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으로 순진한 소년들의 목을 조르고 가슴을 가르고 피투성이의 몸에서 내장을 꺼냈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울부짖으며 그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렸는지, 그 아이들을 희롱하면서 등 뒤에서 목을 베었을 때 아이들의 공포는 어떠했는지,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그와 그의 부하들은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든 것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재판을 관람하던 남자들은 공포 때문에 신음소리를 내뱉았고 여자들은 정신을 잃었다. 수많은 쥐를 다룬 재판관들, 참회의 고백에 귀를 기울이는 데에 익숙한 사제들까지도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십자가를 그릴 정도였다.
소백을 끝낸 질은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진 듯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사람들을 향해 자기가 저지른 잔혹한 행위에 대해 용서해 달라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자기의 영혼이 구제받을 수 있도록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다.
사교는 바닥에 엎드려 있는 질을 일으켜세우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하나님의 분노가 가라앉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당신의 눈물이 더러운 육체를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도록 참회하십시오."
질이 범한 여러 가지 잔혹한 범죄와 비교하면 그에게 내려지니 판결은 너무나 평범한 것이었다.
"교수형과 화형에 처한다."
드디어 처형 당일, 대광장에는 화형대가 세워지고 나뭇가지와 장작이 쌓였다. 군중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화형대 밑으로 모여들었다. 무구운 세금과 가난에 고통을 받으며 이렇다 할 오락도 없이 생활했던 당시의 서민들에게 처형 구경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헨젤과 그레텔 일행도 사람들 틈에 섞여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화형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때 속옷차림에 등 뒤로 손이 묶인 질이 등장했다. 모여 있던 군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야? 아이들을 잡아먹인 식인 영주라는 녀석이?"
"겉보기에는 그렇게 무서운 녀석 같지는 않은데... 사람을 잡아먹는다니 도대체 어떻게 먹는다는 거야? 스튜를 만들어 먹나? 아니면 바비큐?"
"산 채로 머리와 팔다리를 잘라내고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것이겠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방법은 대부분 그런 식이잖아."
모두들 제멋대로 상상하며 한마디씩 던지고 있었지만, 헨젤 일행은 복잡한 기분이었다. 하마터면 자기들도 그 식인 영주에게 잡아먹힐 뻔하지 않았는가.
헨젤 일행은 화형대 위에 있는 질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새삼 분노가 끓어올랐다.
"시릴을 살려내라!"
"장을 살려내라! 장의 어머니는 너무 충격이 커서 병들어 누워 있다!"
"줄리앙은 집안의 가장이었다! 그 아이가 죽은 뒤에 그 집 식구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길거리로 나앉았다!"
헨젤 일행이 화영대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지만 그 목소리는 주위위 소음에 묻혀버렸다.
흥분한 군줄들 앞에서 드디어 질의 목에 밧줄이 걸렸다. 질은 시키는 대로 교수대 위로 올라가 증오에 찬 눈길로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군중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발판이 치워지면서 그의 몸이 허공에 매달렸다. 장작에 불이 붙자 옷이 타는 냄새가 물씬 풍기더니, 이어서 질의 몸이 크게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경련이 멈추자 불이 꺼지고 질의 시체가 바닥으로 내려졌다.
그러는 동안 마귀할멈과 험상궅은 남자는 손발이 받줄에 묵인 채 무장한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광장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질처럼 신분이 높지 않은 그들에겐 더욱 잔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병사들이 두 사람을 처형대 앞으로 끌고 갔다. 사형 집행인이 시뻘겋게 달군 지랫대를 들고 다가오자 마귀할멈이 기묘한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마귀할멈의 몸은 지랫대에 의해 손가락이 하나하나 뽑혀나갔다. 그리고 화형대로 끌려나가 그대로 불 속에 던져졌다. 기세를 잃었던 불길이 검은 옷에 옮겨붙더니 또다시 활활 타오르며 마귀할멈의 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인육 타는 냄새와 검은 연기가 광장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모여 있던 사람들의 인상이 찡그러졌다.
험상궂은 남자도 같은 운명을 밟았다.
그런데 처형이 끝나자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경하고 있던 군중들이 일제히 처형대로 몰려드는 것이었다. 헨젤 일행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옆에 서 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
"모르고 있었니? 죄인의 옷조각이나 몸에 지니고 있는 물건을 가지고 돌아가면 좋은 일이 생기는 거야. 죄인의 피를 받으면 더 좋지. 그걸 마시거나 몸에 바르면 횡재를 한단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처형이 있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처형당한 죄인의 손톱이나 이, 살점, 처형에 사용된 밧줄 등이 어떤 종류의 질명이나 불행을 막아주고, 산고에 시달리는 여자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며, 도박을 할 경우에는 큰 행운을 안겨준다고 믿었다. 처형당한 죄인의 피를 마시거나 상처에 바르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사형 집행인이 죄인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하얀 천에 적셔서 몰려드는 군중들에게 파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죄인의 지방이나 뼈를 이용해 크림이나 연고를 만들어 비싼 값에 파는 집행인도 있었다.
"그렇구나..."
헨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가자!"
한 소년이 소리치자마자 그들도 처형대로 달려갔다. 그들은 질과 노파, 험상궂은 남자의 타다 남은 옷조각을 찢어내기도 하고, 목에 걸렸던 밧줄 쪼가리를 줍기도 하고, 타다 남은 머리카락을 뜯어내기도 하고, 타다남은 살점을 칼로 도려내기도 했다.
마치 사람을 잡아먹는 현장 같은 소름끼치는 광경이었지만, 헨젤 일행은 전혀 개의치 않고 세 사람의 옷조각 등을 뜯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말로 행운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에게 떠벌릴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헨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와 계모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죄 많은 계모를 용서해주렴. 우리 집에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었단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는 살아야 하겠기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희들을 버렸단다."
계모가 말했다 두 사람 다 매우 야위어 있었다. 계모는 헨젤과 그레텔을 숲 속에 버린 후, 나무 뿌리와 풀을 먹으며 간신히 목숨을 유지해왔다고 눈물을 흘리며 설명해주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계모에게 쌓인 감정이 많았지만, 그보다는 먼저 불쌍하다는 마음이 앞서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 후 헨젤과 그레텔은 무서운 식인 영주에게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단번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거의 매일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왔다. 그때마다 헨젤은 지칠 줄 모르고 무용담을 되풀이했다.
"그때 저는 그레텔이 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마귀할멈에게 덤벼들어 목을 졸랐어요. 그랬더니 모두 달려들어서 마귀할멈을 쓰러트렸어요."
"마귀할멈도 제게는 곰짝하지 못했어요. 식사는 늘 특별한 음식을 주었지요.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즉시 그 음식을 만들어주었고, 포그라를 먹고 싶다고 하면 그 즉시 포그라를 만들어 주었어요."
"포, 포그라라는 게 뭐냐?"
"모르세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통통하게 살찐 오리로 만드는 음식이에요. 하지만 그 오리는 평범한 오리와는 달라요. 그건..."
헨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오빠, 이제 그만 해."
"오빠, 그건 좀 지나친 것 같다."
그레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헨젤의 소매를 잡아끌었지만 헨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허풍을 섞어가며 이야기에 열중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마을 사람들은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헨제르이 이야기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밭에서 수확한 야채나 곡식, 와인등을 가져왔기 대문에 집에는 늘 먹을 것이 풍족했다.
한편, 계모가 두 사람을 정겹게 대해준 것은 처음 며칠뿐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모는 또다시 두 사람에게는 먹다 남은 음식을 주고 누더기를 입힌 채 일만 시켰다.
그레텔이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고 말하자 헨젤이 싱긋 웃으며 조금만 참으라고 다독거렸다.
그리고 며칠 후... 갑자기 몇 명의 병사들이 들이닥쳐 밧줄로 계모를 묶었다. 자기 자식을 식인 영주에게 팔아넘긴 죄라고 했다.
"무슨 말이에요! 나는 그런 적 없어요!"
계모는 필사적으로 울면서 매달렸지만 병사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상해, 오빠. 왜 계모가 붙잡혀가는 거야? 계모가 우리를 팔아넘긴 건 아니잖아?"
그레텔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헨젤은 미소만 지어보였다.
"글쎄, 모르지. 요즘에는 워낙 밀고 사건이 유행이니까. 계모도 적이 많아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것이 아닐까?
헨젤은 태연했다.
이렇게 해서 세 가족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뜻밖에도 독신 생활에 쉽게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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