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응모작
방풍나물
김옥화
4월도 중순으로 접어든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어젯밤부터 가랑비가 내린다. 그동안 꽃눈을 틔우지 못했던 나무도, 채마밭의 방풍도 오랜만에 내린 단비로 봄빛이 완연하다.
방풍은 해안가 모래밭에서도 끄떡없이 잘 자라는 흔하디흔한 다년생 식물이다. 우연히 야생화 도감을 뒤적이다가 방풍을 발견하게 되었다. 풍을 예방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했다. 풍뿐 아니라 치매 예방과 예민해진 신경을 완화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하니 마음이 끌렸다. 요즘 들어 부쩍 신경이 예민해 있는 남편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보약이 또 있을까 싶었다.
채마밭에 방풍 두 포기를 심었다. 동송 오일장 날, 난전에서 사다 심은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더니 쌉싸래한 맛이 저절로 인상을 쓰게 했다. 남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방풍은 거름을 하지 않아도 무럭무럭 잘 자랐다. 매일 순을 따도 새로운 움이 돋고, 줄기마다 가지를 쳤다. 뿌리가 뻗어 나무처럼 커졌다. 손바닥만 한 모종이 이렇게 크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일이다. 두 포기라도 우리 부부가 미처 다 먹지 못할 만큼 풍족하였다.
남편은 몇 년 전 와사풍을 앓았다. 특별히 크게 아픈 적이 없어 건강검진을 받지 않아도 별 걱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끔 머리가 아프다 해도 신경이 예민해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 병이 오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어느 날 몸이 이상하다면서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한쪽 팔과 다리에 힘이 빠져 잘 걷지를 못했다. 급한 마음에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는 전화기 버튼을 보지 않고도 척척 눌렀는데, 손이 떨리니 자꾸만 엉뚱한 번호가 눌러졌다. 어머니는 가까운 한의원에 가라고 하셨다. 한의사는 진맥을 마치고 그리 심각하지 않다며 꾸준히 침 맞고 한약 먹으면 괜찮아 지니 염려 말라고 했다. 그나마 빨리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한 달여 간 침을 맞고 한약을 먹었다.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은커녕 약도 안 먹던 사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십 대의 침을 맞으러 다녔다.
친정아버지는 중풍으로 삼십 여년 앓다가 돌아가셨다. 그 병이 얼마나 가족을 힘들게 하는지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친정아버지가 편찮으시고부터는 가족이 모여도 소리 내어 웃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전화벨소리가 울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피를 맑게 해주는 나물 반찬을 주로 하셨다. 생각해보니 그중에 방풍 나물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손수 오리를 길러 매일 오리 알을 드시게 하셨다. 남편이 같은 병을 앓게 되자 친정어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닮지 말아야 할 당신 팔자를 닮았다며 속상해했다. 남편은 다행히 회복이 되어 직장에 다시 나가고 있지만 언제 재발될지 몰라 늘 마음을 졸이며 살고 있다.
어머니가 그러셨듯이 요즘 나는 주로 중풍 예방에 좋은 음식재료로 반찬을 만든다. 방풍나물도 그중 한 가지이다. 남편은 워낙 단 맛은 좋아하고 쌉싸래한 맛은 싫어한다. 새로 돋아난 순을 따와 흐르는 물에 씻어 살짝 데친 낸 후 국 간장에 파, 마늘등 갖은 양념을 섞어 조물조물 무쳐 상에 올린다. 방풍을 양념한 된장에 무치면 구수한 된장 맛이 방풍 특유의 쓴맛을 희석해준다. 담아두었던 매실청을 넣은 초고추장에 겉절이로 버무려 참기름 살짝 떨어뜨리면 고소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또 상추나 쑥갓처럼 쌈을 싸 먹기도 하며 끼니마다 다른 요리법을 적용한다. 그런 내 정성을 보아서인지 아니면 색다른 양념 맛 때문인지 남편은 싫은 내색 없이 맛있게 먹는다. 늘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조차 멀리하던 남편은 한번 놀라고 나서부터 운동은 물론 식습관도 바꾸었다. 입에 맞지 않아도 몸에 좋은 음식을 먼저 챙긴다. 보리밥집이나 죽집에 가는 사람들 이해가 안 된다 하던 그였다. 어릴 때 많이 먹어 잡곡밥과 죽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었는데 방풍나물을 넣고 끓인 죽은 잘 먹었다. 덕분에 자기 입에만 맞는 음식을 찾곤 하던 편식도 사라졌다. 방풍나물이 한 몫 한 것 같다.
밥상머리에 앉아 방풍나물의 효능을 검색하다 찾은 허균 이야기를 곁들인다.
“홍길동전 쓴 허균이 강릉에 살 때 처음 돋아난 새싹으로 끓인 방풍죽을 먹었는데 입안 가득한 향이 3일 동안 가시지 않았대요. 허균도 좋다고 한 나물이니까 입에 맞지 않아도 보약이다 생각하고 드세요.”
남편이 피식 웃는다.
“우리 연이 결혼하면 손주 생길 텐데 당신이 건강해야 손주 재롱도 보고 웃을 일이 생기지.”
남편의 젓가락이 부지런히 방풍나물로 향한다.
어린 방풍 잎으로 부침을 하면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저녁에는 방풍잎 전을 부쳐야겠다. 소쿠리 하나 들고 채마밭으로 간다. 비를 흠뻑 맞아 넓적해진 방풍 잎이 성실한 남편의 손바닥을 닮았다. 바람에 살래살래 잎을 흔들며 어서 오라 손짓 하는 것 같다.
첫댓글 음식점에서 반찬으로 방풍나물이나 장아찌가 나오면 모두 귀한 것이라고 접시가 금방 비곤 하지요.
초회와 완료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짐작케 합니다.
수필도 옥화샘의 농사일처럼 잘 일구어 튼실한 결실로 위로가 될 줄 믿습니다.
예전에는 귀했는데 이즈음에 방풍나물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하얀 방풍 꽃도 예쁘답니다. 감사합니다.
문장이 깔끔해서 읽을 맛이 납니다 ^^
언젠가 만나면 차 한잔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요 동기님 ㅎㅎ 차 한 잔하자구요.
발걸음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