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 근대현대문학의 작가와 작품 세계
들어가면서
백제의 도읍 공주는 ‘구구십리’이다. 금강 중류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근방 90리 안팎에 아홉 개의 도시와 연결된 교통의 중심지라는 뜻이다. 천안, 청주, 부여, 익산, 논산, 대전, 홍성, 청양, 조치원들이 그 연결망이다.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공주고보, 영명학교 등을 건립하고 해방 이후 공주대, 공주교대, 영상정보대 등의 대학을 비롯하여 수십 개의 중고등학교를 보유한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인 우금티가 있으니 당연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토로 공간이 많았던 근대문학의 뿌리도 갖추었을 터이다.
필자가 맡은 분야는 공주의 소설가와 시인의 명단 및 작품 분석이며 그 시대적 배경은 근현대사에서 2021년 현재까지를 포괄한 시인과 소설가가 될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시인의 숫자는 넘치는데 소설가의 인원수가 부족해서 원고 작성의 불편함이 있었다. 또한 출향 작가와 작고문인을 분류하는 작업에도 한계가 있어서 모두 일괄적 순서로 거론하게 됨을 밝힌다.
처음 시작은 1920년 후반에 간행된 『백웅』을 중심으로 한 소설가 윤귀영과 시인 정용산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그리고 1988년 이후 간행된 <공주문인협회의>의 기관지 『공주문학』을 중심으로 한 작가들과 진보 문학인『작가마루』에 수록된 공주지역의 작가들이 중심이 되겠다. 그리고 공주와 지연·학연이 연결된 출향작가들도 포함될 것이다.
2절 공주의 소설가
이 글에서 다룰 소설가는 총 11명으로 비교적 적은 숫자이다. 그나마 조동길, 강병철, 김홍정, 손영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출향작가이다. 소개하는 명단은 유금호, 최상규, 김상렬, 심규식, 이은식, 오대석, 강병철, 김홍정, 손영미 순인데 연령대를 감안했음을 밝힌다. 시인의 짧은 연보와 작품집 그리고 특정 작품 한편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유금호는 전남 고흥 출생으로 공주대 국어교육과와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포대 교수를 역임했다. 1964년 소설 「하늘을 색칠하라」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장편 『아아, 바람이 분다』,『내 사랑 풍장』, 『만적 1,2』, 단편집 『새를 위하여』, 『하늘을 색칠하라』,『허공중에서』, 『배꽃 이파리 하나』『한 마리 나의 작은 꿩』등을 출간했으며 「수요문학회」동인이다. <한국 소설문학상> <펜 문학상>을 수상했다.
마라의 눈길이 허정의 시선을 따라 강 언덕 쪽을 향하다가 나무 밑동을 움켜쥐고 있는 매영의 모습에 멈추었다. 그 곁에 소예가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서 있었다.
“사내와 계집의 인연이란 질기고 질긴 것이다. 피해갈 수도 벗어나갈 수도 없는 게 사내와 계집의 인연……훗날에라도 인연이 되면…….”
“혹시 사내아이로 태어나거든……마라, 너와 소예가 아이의 스승이 되어 주거라.”
허정이 고개를 들어 언덕 위쪽 인마 속을 천천히 움직여 사라져가는 백마를 찾아 머물렀다.
-『만적』에서
역사 속에서 실패한 쿠데타로 굳어버린 만적의 자유에 대한 꿈과 처절한 의지가 보인다. 피투성이 사내의 시신 앞에서 손가락 끝에 불을 붙이는 여자 금소예의 원시적 사랑도 보인다. 그의 소설 문장에는 현란한 장인의식이 보인다. 산문의식이 고갈된 작금의 인터넷 시국에 특히 유금호의 『만적』이 우물처럼 뿌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한껏 꽃 피운 문장과 함께 시대를 초월한 애절함에 젖을 것이다.
최상규는 연세대를 졸업했으며 공주교대 교수를 역임했다. 『문학 예술』로 등단했으며 <현대문학신인상> <대한민국문학상> <박영준문학상> <조연현문학상> <대전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겨울잠행』,『나방과 거품』,『포인트』,『새벽기행』, 번역서『현대소설의 이론』,『단편소설의 이론』,『소설의 수사학』,『시학』등이 있다.
다시 얼마가 지난 뒤 기호가 아내의 부축을 받아 억지로 문밖에 나가 서서 폐허가 된 논밭을 둘러보며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을 때, 천둥산을 올라간 사람들은 용마루가 바로 머리 위에 올려다 보이는 골짜기에 멈춰 서 있었다. 거기 그들의 발아럐, 아무렇게나 파헤쳐놓은 용마루의 돌과 흙이 간밤의 비로 사태가 되어 쏟아져 내려쌓인 무더기 속에서 병주 노인의 반백의 뒤통수와 기수의 속이 빈 바짓가랑이가 삐어져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곤(乾坤)」에서-
그의 소설 『새벽기행』은 바로 내 안의 투쟁이요, 분신의 출현이다. 어차피 삶은 항상 결핍과 회한의 연속이며 주체가 불가능한 꿈이다. 이때 분신의 출현은 그 불가능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시간으로부터 일탈의 계기가 된다. 이 주체 탐색의 종결점은 허상으로부터의 복귀가 된다. 이와 같이 그는 끊임없는 실험정신으로 소설 문장을 만들어간다.
김상렬은 1947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7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소설 『소리의 덫』이 당선되었다. 주로 역사와 현실의식이 짙은 사실주의 바탕에 개인의 감성적 성찰을 접목시키는 경향으로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독서신문>과 <한국문학>, <민족문화추진회> 등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공주 마곡사 근처에서 시(詩)에 몰두하고 있다. 작품집으로는『붉은 달』,『달아난 말』,『카르마』,『그리운 쪽빛』, 『온 겨레가 읽는 백범일지』,『사랑과 혁명』,『따뜻한 사람』등 다수가 있다. <채만식문학상>과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회의하며 내 얼굴 위로 자연스럽게 겨쳐 떠오르는 또 다른 얼굴 하나, 애봉이었다. 그녀의 눈물 흐르는 소리, 고통의 신음이 귓가에 쟁쟁하였다. 아, 너는 지금 황량한 세상 어디를 별처럼 홀로 헤매고 있느냐? 살았는가, 죽었는가, 만약 너마저 저주받은 저 세상의 별로 사라졌다면, 나는 과연 아픔으로 어떻게 제대로 숨 쉬며 버텨갈 수 있을 것이냐!
어디 한번 속 시원히 대답 좀 해봐.
나는 차창에 어리는 애봉이를 향해 속으로 울부짖었다.
-「지상의 별」에서
그는 70년대에 출발한 작가로서 우리 소설이 노출하고 있는 취약점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과제로 삼았다. 당대 소설이 지닌 소재주의와 민중의 맹목적 우상화, 표면적 사회 현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 흑백 논리적 차원의 도식적 비판과 같은 단세포적 조망을 비판한 작가이다. 그의 소설 「객사」역시 새로운 대립과 모순의 양상을 찾아낸 작품이다. 주로 역사와 현실의식이 짙은 사실주의 바탕에 개인의 감성적 성찰을 접목시키는 경향으로 창작활동에 임한 작가이다. 공주 지역사회에서 그의 소설을 조망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심규식은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문예사조』와『청구문화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창작집『그곳에 이르는 길』,『돌아와요 부산항에』,『사로잡힌 영혼』,『우리 시대의 영감님』『내 말다듬이의 말 더듬기(공저)』그리고 대하소설 『망이 망소이』와 수상록『낭만의 에뜨랑제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가 있다.
저놈이 명학소 장사 망이다.
짱똘이를 절구통으로 후려친 놈이다.
군졸과 관노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완연했다. 그 틈을 타 망이가 훌쩍 몸을 솟구쳐 말에 올라앉으며 고함을 쳤다.
“이놈들 비키지 못할까?”
망이는 말을 몰아 앞을 가로막고 있는 관노와 군졸들을 돌파하고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는 질풍처럼 한길을 달리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다 봤다. 더 이상 그를 뒤쫓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망이 망소이 1권』에서
『망이 망소이』는 고려 명종 5년(1175년) 천민들의 차별과 억압에 대항하여 ‘명학소의 난’을 일으킨 형제들의 사연이다. 소설은 고려 중엽 봉건 계급사회의 부조리와 차별을 체험하면서 횃불을 들고 투쟁하는 대장정의 스토리이다. 소설의 후반부 공주 점령을 위한 싸움 장면은 1000년 전 공주를 실감나게 복원하면서 이상향 건설을 위한 신념과 맞물려 소설적 가치를 배가시킨다.
작가는 오랜 세월 고뇌하며 ‘차별과 억압이 없는 대동 세상’이라는 이상적 세계를 정리해냈다. 이는 역사 속의 망이 망소이가 간직했던 간절한 소망인 동시에 작가의 인간 세상에 대한 사상과 태도이다. 특히 계층과 지역에 걸맞은 적절한 언어구사와 당대 풍속의 재현은 경탄을 자아낸다.
조동길은 논산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중고교와 대학을 졸업 후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공주대 교수를 역임했다. 고교 시절 <토요문학회> 회원이었다가 공주사대에 진학해 <수요문학회> 제 5집에 처음 소설을 발표했다. 모교인 공주사대 교수가 되어 소설을 가르치면서 긴 세월 소설연구와 창작을 병행했다. <충남문학발전 작품 대상> <충남도문학상> <황조근조훈장>을 수상했다. <충남 문협> 사무국장, <공주 문협>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교수작가회의> 회원이다. 소설집 『어둠을 깨다』『쥐뿔』『달걀로 바위치기』발간, 전공서적으로『한국 현대 장편 소설 연구』『현대문학의 이해』『우리 소설 속의 여성들』을 발간하고 산문집『낯선 길에 부는 바람』이 있다.
“아직도 진경씨에게 나쁜 감정 있어?”
“천만에 혹 있었다고 해도 이 마당엔 다 잊고 버려야지.”
“고마워. 그이는 경호 씨에게 늘 채무자처럼 주눅 들어 있었어. 사실은 그이 잘못이 아니라 모두 내 탓인데 말이야.”
“이제 그런 걸 따져 뭣해? 다 지난 일인걸.”
“맞아. 경호 씨 그 말 듣고 이제 그이도 편안히 잘들 수 있을 거야.”
그 사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강 위엔 유명한 공주의 그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암곰이 강 건너로 떠나가는 남자를 애절하게 부르짖으며 그 새끼들과 함께 빠져죽었다는 고마나루 근처를 휘휘 감돌면서 승천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밤새 잠자던 소나무의 잎들도 막 깨어나 부스스 눈을 떴다.
「고마별곡」
조동길에게 있어 한국 사회는 근심과 사유의 배경이다. 군부 독재 시대는 차치하고라도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정치 풍토, 물질만능주의와 인간성의 상실 등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가 여전히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부조리의 시국에 작가 혼자 심도 있는 문제의식으로 접근하는 그의 글이 빛난다. 조동길 소설의 미덕은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일상적 폭력 요소들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을 통해 현대사회를 비판하면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를 드러내는데 있다.
이은식은 정안에서 태어나 공주사대부고를 졸업했다.『삶의 문학』동인으로 1987년 소설집 『땅거미』를 발행했다. 당대의 가장 진보적인 소설로 6.25전쟁의 어두운 과거사의 조명과 통일을 갈망하는 내용이다.
갑자기 때문 밖이 시끌해졌고, 상여를 메고 나섰던 상두꾼들이 하나 둘씩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리 급혀두 단추구멍이나 바루 꾀구 나올 노릇이지, 그랴. 갸운허냐?”
서까래를 집어넣던 사내가 딴전을 피우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그 아무리 궁짜들었어두 성님허구 구멍동서 맺을 생각 읎으닝께 엠헌 걱정 말유.”
난데없는 사내의 너스레에 처름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청년은 뒤늦게 말뜻을 알아차리고 사내의 말을 도막치며 술통 마개를 열었다. 주전자가 넘치도록 술을 따라 가득 붓자마자 바쁘게 술잔들이 오갔다.
-「빈들의 소리 1」에서
그는 민중소설의 선구자였다. 80년대 초반 『삶의 문학』등 무크지 운동을 주도하였고 반포면 공암리 농민들을 취재하면서 최초의 농민 공동창작시 「옹매듭두 풀구유」를 끌어내었다. 그는 이데올로그와 농민 노동자 교육현장의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썼다. 그의 소설집 『땅거미』는 80년대의 엄혹한 시국 상황을 극복하면서 6.25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바 있다.
오대석은 유구 출신으로 공주사대를 졸업했고 서울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퇴임했다.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삼류작가의 비좁은 서재』,『서울함의 봄』,『교장 선생님과 아이들의 반란』,『마스코트』,『존재의 그늘』등이 있다.
그렇다면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에 새로운 사정이 생겼단 말인가! 난 바보 같이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교문을 나왔다. 기껏 불쾌함을 표시한다는 것이 최대한 퉁명스런 표정으로 출입문을 꽝하고 메다붙인 정도였다.
오늘 면접결과를 심 장학사에게 알려주기로 한 게 생각나서 근처의 다방으로 들어갔다. 변두리 다방답게 적당히 실내장식이 천박하였고, 종업원의 옷차림이며 마담인 듯 보이는 여자의 한복 매무새도 어설펐다. 겨울인데도 눅눅한 습기가 콧속을 자극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중국무술영화가 한껏 볼륨을 높인 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속물』에서-
소설에 있어서 사실주의나 자연주의기법은 현실에서 허구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허구를 현실에 녹여냄으로써 완성된다. 동시에 주인공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서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욕망 그 자체를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생존 형태로 끌어내려서 바로 민초들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욕망의 보편화와 절망, 어쩌면 그것은 오대석이 만들어내는 소설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며 필연으로 사건들을 옭아매는 가장 강력한 매개물인 것이다.
안학수는 어릴 적 척추에 장애를 입었던 동화작가이다. 금세공을 배워 세공사로 일하다가 1993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동시집 『박하사탕 한 봉지』, 『낙지네 개흙 잔치』, 『부슬비 내리던 장날』, 소설로『하늘까지 75센티미터』가 있다.
어린 시절 첫 기억이 엄마가 자신을 업고 차가운 물속으로 걸어가 죽으려 하는 것이었다면 얼마만큼 힘이 든 세파였을까? 수나는 어린 시절 뒷집 형이 먹을 감자를 먹었다는 이유로 걷어차인 뒤 심하게 앓게 되었고 그 뒤 곱추가 되었다. 곱추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리에 힘이 생기지 않아 걷지를 못하고 누워있게만 되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엄마는 수나를 낫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시골에서 대천으로 이사를 온 뒤 부모님은 힘겹게 일을 하셨고, 수나는 늘 혼자 갑갑하게 집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수나의 장애로 인하여 집주인 부부 외에도 동네 아이들에게 수나는 놀림거리가 되었다.
『하늘에서 75센티』에서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주인공은 사고로 다친 척추로 세상을 원망하며 숨어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몸이 가져다 준 불행의 크기가 그렇게 큰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소중한 가족들의 품에서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새롭게 적응하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일단 많이 슬퍼한다. 그리고 작가의 이슬처럼 맑은 영혼을 만나게 됨을 기뻐한다. 고통 받는 만큼 성숙해 진다는 말처럼 상처받은 만큼 성숙해 지는 주인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김홍정은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계간지『문학사랑』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충남작가회의>와 <유역문학회>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중이다. 소설집으로『창천이야기』,『그 겨울의 외출』,『호서극장』, 장편 소설 『의자왕 살해사건』등과 역사문화 기행서인 『이제는 금강이다』가 있다. 대하소설 『금강(전 10권)』은 혼탁했던 조선사회인 16-17세기를 그린 내용이다.
수련은 배에 앉아 쏟아지는 햇살을 마주보고 앉는다. 배는 서해로 향한다. 흐드러지게 핀 강둑의 갈대꽃들이 흰 눈송이처럼 반짝인다. 붉은 노을이 출렁이는 금강을 멀리서부터 물들이며 다가온다. 이제 해는 저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 불꽃이 튄다. 세상은 온통 불속으로 빠져든다. 금강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불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뱃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두 손을 모으고 절한다.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는 불덩이 속에서 양지수가 있고, 창 대장군이 있다. 그리고 한산사에 모신 그 숱한 대장군들이 하나하나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금강은 그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다.
『금강 10권』에서
대하소설 『금강』은 홍산을 배경으로 한 이몽학의 정의로운 싸움을 담고 있다. 작가는 그 현장을 드러내기 위해 『조선실록』등의 역사 기록들을 더듬으며 현장에 배어있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널리 수집하였다. 그가 보여준 세계는 기록에 갇힌 그것이 아니라 기록을 바탕으로 기록을 뛰어넘는 민중의 강물 같은 삶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벽초의 『임꺽정』이 청석골의 임꺽정을 중심으로 한 사내들의 이야기라 한다면, 『금강』은 장사치 판의 상인들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려는 여성들의 내밀한 서사다. ‘연향 ·부용 · 미금 · 수련 · 영은’ 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민중의 힘이 그러하다. 난국을 헤쳐가는 여성들의 모상과 지혜가 여기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조재훈 시인은 그를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 같은 작가라고 표현했다.
손영미는 『월간 신인』으로 등단하고 <웅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백제궁녀 연부겸』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에 당선되었다. 작품집으로 『아직도 미혹』이 있다.
밤, 잠자리에 누우니 창문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빛을 타고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우가 오려나, 소연은 홀린 듯 마을로 향하는 길목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건 탱글탱글 여문 밤송이가 툭툭 떨어져 내리는 소리였다.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산밤나무, 소연은 쪼그리고 앉아 밤송이를 뒤적여보았다. 밤은 스스로의 부피와 욕망을 이기지 못해 쩍쩍 갈라지며 세상 밖으로 나오려 애쓰고 있었다. 소연은 벌어진 밤송이를 이리저리 굴려보며 문득,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울가 숲에서는 늦반딧불이가 하나, 둘, 여린 빛을 뿜으며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소안 가는 길」
그의 작품은 서정적인 문체로 마음을 울리며 등장인물 모두가 따뜻하고 애틋하다. 독자들은 탐독과정에서 문득 배경과 인물이 일체감을 느끼기도 한다. 글의 구성을 마치려고 서두르지 않으면서 설득시키는 마력이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책장을 덮고도 오래도록 작품의 풍경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강병철은 공주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대전·충남작가회의>와 <충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소설집으로『비늘눈』,『엄마의 장롱』,『초뻬이는 죽었다』,『나팔꽃』발간, 성장소설『닭니』,『꽃 피는 부지깽이』,『토메이토와 포테이토』를 발간하였다. 시집 『유년일기』,『하이에나는 썩은 고기를 찾는다』,『꽃이 눈물이다』,『호모중딩사피엔스』,『사랑해요 바보몽땅』그리고 산문집『선생님 울지 마세요』,『쓰뭉 선생의 좌충우돌기』,『선생님이 먼저 때렸는데요』,『작가의 객석』,『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적표』등을 발간하였다.
나는 갯바람 쐬러 휑 나와버렸다. 억새풀들이 달빛을 부여안고 우우 흔들리고 있었다. 웬일일까? 민수도 천수만 염판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네가 시인이 되면 내가 이다바하는 ᄍᆞ짱면 집에 놀러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 말없이 허리끈만 만지작거리며 갯바람을 쐬는 중이었다. 초록빛 바다가 꽁꽁 얼고 있었다.
울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슬픔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조역돌이 되고 싶었다. 개나리 울타리 밑으로 민들레 새순들이 뽀드득뽀드득 굳은 땅을 헤집고 있었다. 내일부터 우리는 6학년이 될 것이다.
-『닭니』에서-
성장 소설 『닭니』의 마지막 장면이다. 사실은 위의 작가가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이므로 평론을 생략하고 도종환 시인의 발문으로 대신한다.
강병철의 『닭니』는 눈물겨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어서 초록바다가 된 이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풀빵을 팔고 아이스케키를 팔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연화의 모진 인생살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정겨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넘치고, 배를 곯아도 흙 묻은 손으로 잡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옵니다.// 이 책은 드러내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흙 향기 묻어 있는 알토란 같은 이야기를 써 놓고도 자랑하거나 떠벌이지 않고 장승처럼 서서 벙긋이 웃는 작가 강병철의 질박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 그러나 서정적인 문체에 감겨 더욱 애잔하고 풍요로운 이 이야기를 단숨에 읽고 난 뒤 아직까진 나는 ‘슬픔에 더 단단해지는 조약돌이 되고 싶어’ 하던 강철이의 첫사랑 연화가 그 뒤에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시인 도종환)
마무리하며
이상으로 11명의 작가들을 소개하였다. 전체적으로 공주에 거주하는 작가와 출향 작가로 나뉜다. 공주에서 학교를 졸업한 경우도 있고 공주에서 교편을 잡은 작가들도 있으며 작고문인도 있다. 지역 사회의 작가들을 조명하는 진한 토로의 장이 필요함을 절박하게 느낀다. 이번에는 짧은 지면상 여기서 그치고 세부적으로 소개하는 작업은 다음 공간으로 기약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