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1889년 6월
2.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1889년 6월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사이프러스는 여전히 나를 사로잡고 있으며, 내가 보는 방식처럼 아직 아무도 사이프러스를 캔버스에 옮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때문에 해바라기를 그린 것처럼 사이프러스로 뭔가를 하고 싶다"고 적었다. 반 고흐는 1888년 2월 프로방스에 도착한 이후부터 사이프러스와 사이프러스가 표현 측면에서 가진 잠재력에 대해 생각해왔다. 그 결실은 생 레미에 온 뒤에 그린 작품에서 나왔다. 반 고흐는 "내가 보는 대로... 사이프러스로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는 자신의 회복탄력성의 핵심 측면인 ‘직업적 성공을 위한 투쟁’에 대해 고백했다.
스타인은 "그는 항상 예술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매우 신경썼다"고 말했다. "그는 야망이 매우 컸고 항상 자신의 유산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사이프러스가 다양한 차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모티브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로방스를 상징하는 모티프가 그를 다른 예술과 차별화시켜 줄 수 있다고 본 거죠.” 그렇게 이 나무는 작품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1889년 6월)에서 일종의 시그니처이자 반 고흐가 사랑한 지역의 상징으로 등장하며, 그의 작품을 지배했다.
매튜 윌슨
기자,BBC Culture
2023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