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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일
새로운 달이 밝았다. 살아가는 기쁨이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은 무정하게 흐른다. 겨우내 10시는 되어야 일어나던 딸이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가는 오늘은 7시30분에 식사를 한다. 앞으로 열흘만 더 다니면 아들과 딸은 각각 졸업을 하게 되고 이후 구정명절까지 2월이 빠르게 지날 것이다. 요즘은 새벽에 일어나면 속이 불편하고 거북스러운 증상이 느껴져 중년을 지나면서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지 신경이 많이 쓰인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죽게 되는데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느 지점에서는 병이 생기고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나도 여정을 준비하자면 가족들에게 불편이나 어려움을 주어서는 안 되겠고 고향 선산 부근에 유골함을 안치하는 납골묘를 만들면 좋겠다. 살다보면 아들이나 딸이 멀리 있어 찾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나 어머니의 혼이 머무는 곳이라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한다. 다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온 과정을 한 줄의 묘비명으로 새기어 두고자 하는데 내용은 훗날 만들어 둘 것이다. 오후에 이대부고 심화학습을 나간다는 아들은 늦게까지 잠을 자고 아내는 영어를 배우러 동사무소에 올라갔다. 마라톤을 하려고 홍제천에 나가서 오랜만에 월드컵공원 아래까지 왕복 10킬로의 거리를 1시간 이상 달리고 돌아왔다. 산만한 정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열심히 달렸더니 땀이 줄줄 흐르고 이후 체육관에 들어가 기구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에게 2월은 명절과 졸업이 있고 더구나 오후에 이대부고 수업을 나가는 상황에서 복싱체육관은 어찌 할 건지 물으니 시간이 없어 더 못하겠다고 한다. 입관비도 내고 글러브도 사 두었으니 새벽이나 늦은 밤을 이용하여 몇 개월 더 배우기를 바랬는데 아들이 어렵다니 할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 집념이 부족하다는 아들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추위 속에 다녔던 복싱체육관 1월의 시간은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학원에 나가서 광고를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 경상도 고향에서 가져왔다는 젓갈을 아파트 경비실에 두고 간다는 영식이 문자가 왔다.
2일 쌀쌀한 날씨라서 산에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는데 친구와 약속을 하여 어쩔 수 없이 회기역에 나갔다. 11시에 중앙선을 출발하여 목적지 운길산역에 내렸더니 12시가 거의 되었고 일찍 산행을 시작한 사람은 벌써 하산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내린 눈으로 길이 얼어붙어 산행을 하는 동안 힘이 들었고 해발 620미터 정상에는 1시간 20분을 걸어 도달했다. 서너평 되는 정상은 볼 것은 없어도 북서쪽으로 틔여 경기도 일원이 한 눈에 보이는 시원함과 장쾌함이 있다. 내려오면서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에 들렀더니 산사는 동면하는 거대한 짐승처럼 웅크린 채 남한강과 북한강을 마주하고 있고 평소의 강물과 달리 얼음과 하얀 눈으로 치장을 하고 있는 두물머리의 풍경은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장관이었다. 수종사 주변의 산세는 봄부터 겨울까지 어느 산에 비하여 뒤지지 않을 만큼 빼어나지만 산행하는 길은 정리가 안 되어 북한산같은 국립공원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수종사에서 운길산역으로 이동하여 허름한 포장마차에 들어가 미나리 전에 막걸리를 마셨더니 피로와 추위가 가시는 듯했다. 친구와 헤어져 국철을 타고 이촌까지 왔다가 다시 4호선으로 총신대에 도착하여 방배동에 들어서니 영식이가 기다리고 있어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3일 졸업을 앞두고 아들이 다니던 중학교로 등교를 한다. 고등학교를 배정받아 예비반 수업까지 하는 마당에 책도 없이 등교시키고 오후까지 붙잡아 둔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상식이나 상황에 맞아야 하는데 수업도 하지 않으면서 학교의 원칙이라고 등교만 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비합리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친구를 만나러 자유로를 달리다가 한강을 건너 말로만 듣던 김포에 들어서니 아파트를 짓는 현장이 우후죽순 많았다. 약속한 장소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고 장사가 안 되어 운영하던 식당을 처분한 뒤에 현재는 보험설계사로 일을 한다며 쉽지가 않다고 연신 한숨을 쉰다. 배워서 능력도 있고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만큼 인간성이 좋은 친구라도 그것과 별개로 사업이나 자영업을 해서 돈을 버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강화도 방면으로 차를 몰고 이동하여 김포대학과 해병대 청룡회관이 있는 근처에서 우거지 국으로 점심을 먹었고 오후에 수업이 있어 서둘러 서울로 나왔다. 내부순환도로를 달려서 학원으로 들어가니 선생들이 벌써 나와 있어 수업과 수강생에 관하여 토의를 하고 수업이 없는 나는 교무실을 나왔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하니 집에 있던 아들이 거실 앞까지 나와서 손까지 내밀어 나를 반긴다.
4일 아들을 태우고 인창중에 갔다가 오후에 이대부고 수업으로 체험학습 신청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신청서를 제출하면 학교에서 바로 나올 수 있지만 학생들 일부는 부모나 선생을 속이고 게임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아들을 태우고 바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식사를 재촉하니 계속 통화만 하고 있어 짜증이 났는데 방에 있는 사이 결국 가스랜지 위의 음식을 모두 태워버렸다. 또 한바탕 난리법석인 아침이 되어 밥은 커녕 기분이 엉망인 상태로 안방에 누웠다가 외출을 하여 고향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영식이가 부탁한 금전문제를 처리해 주려고 필리핀 사업을 주도하는 이정렬에게 전화를 하니 불통이다. 이정렬은 자금이 없고 영식이만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로 금전을 투자하는 불안한 과정인데 문제는 지금까지 투자한 자금 때문에 영식이가 사업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니 아침에 음식을 태운 아내가 외출을 하여 혼자 식사를 하고 TV를 보며서 거실에서 보냈다. 내일은 외국에서 온 형수와 조카를 7년 만에 만나게 되는데 반가움보다 착찹한 마음이 앞섰고 오늘은 잠도 오지 않았다.
5일 잠을 자는 아내를 대신하여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영하 9도의 추운 날 학교에 가는 딸을 배웅하고 이른 시간을 이용하여 체육관에 나가려는데 학원에서 새벽에 들어온 아들은 쿨쿨 잠을 자고 있다. 운동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형수와 조카를 만나러 반포로 출발하여 세화고등학교 정문에서 형수를 7년 만에 만났다. 형이 떠나고 어린 조카들과 타국까지 나가 고생한 것을 생각하니 연민도 있었지만 한편 어머니와 단절하고 장례식 때도 참석하지 않은 형수에 대한 원망도 없지 않았다. 어쩌다가 우리 집이 이렇게 산산조각 났는지 회한에 잠기어 있는 사이에 꾸벅 인사를 하며 마른 체격의 치오가 다가왔고 고개도 들기 전에 안아주었다. 아파트 근처 한식회관으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었고 말레이시아에서의 생활과 떠나간 어머니와 형에 대하여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21일에 출국한다고 하여 아들 졸업식 때 만나 식사도 하고 치오가 필요하다는 축구화와 가방도 사 주기로 약속했다. 반포를 출발하여 집으로 왔다가 아내를 내려주고 다시 학원에 나가 수업을 하고 늦게 들어온 금요일 밤이다.
6일 주말 아침이다. 수업도 준비해야 하고 처리할 사항도 많은데 고등학교 친구와 산에 가는 약속이 잡혀 있으니 어수선하다. 학교에 가지 않아 늦게까지 잠을 자는 아들과 딸을 두고 식사를 마친 10시에 겨울 산행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에 있는 높지 않은 산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을 했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1시간 이상을 걸어서 올랐다. 서울시내와 한강이 겨울 풍경화처럼 보이는 정상은 문화재 탐사를 한다고 훼손이 심하였고 건너편에서는 막걸리를 판매하는 흥에 겨운 사람도 있다. 산 아래로 내려와 삼겹살로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6시가 지나서 벌써 어두워졌다. 집에는 7시가 지나서 들어왔는데 아내는 외출을 했고 아들과 딸은 학원에 가서 혼자 적적하게 저녁을 보냈다. 늦은 시간 용산에 있다는 영식이 전화가 왔지만 피곤하여 외출을 하지 않았고 거실에 누워서 보내는 중에 아내와 딸이 들어왔다.
7일 새벽에 거실로 나와 오늘 수업할 교재와 문제를 점검하고 어제 남은 찌개를 끓여 혼자 일찍 식사를 마쳤다. 8시30분에 집을 나서 교회로 출발했고 예배시간에 들어서니 엊그제 산상기도회에 가서 문자를 보낸 우현이가 성가대에서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오늘 설교는 내 인생의 사공은 예수님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결론은 교회를 잘 다니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 내부순환도로를 거쳐 학원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광화문을 경유하여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모의고사 문제풀이를 시작했다. 2시30분까지 2시간을 마치고 나니 아내가 수업을 하러 올라왔고 그 사이 집에 내려왔더니 한 달 후 중학생이 되는 딸이 정신을 놓고 TV에 빠져 있다.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4시에 B반 수업을 하러 다시 논술교실에 올라와 정리를 하니 12월부터 3개월을 계획하고 시작한 수업이 이제 3회만 남겨두고 있다. 누구라도 3월 고등학교 수업에 문제가 없도록 교과서 1학기 부분까지 정성껏 최선을 다해서 가르칠 것이다. 수업을 마친 6시30분에 아내가 수업을 또 하러 와서 집으로 내려가 저녁을 보냈고 학원에 간 아들은 새벽 3시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8일 새벽에 아내의 콧소리에 잠을 깨어 거실에 나왔고 TV에서는 오후부터 서울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한다. 엊그제 입학을 한 것 같은 딸이 벌써 6년이 지나 목요일에 졸업을 하게 되는데 학교에 다니는 동안 관심을 주지 못해 미안함이 생겼다. 이른 시간에 학교에 가는 딸에게 이제 3일 남았으니 마무리를 잘 하고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당부했다. 아침에 식사를 하는데 여전히 무뚝뚝한 아내는 말이 없고 새벽 3시에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에 취해 있다. 식사를 마치고 안방에 누워 있다가 홍제천으로 나가서 월드컵경기장을 돌아 다시 출발점에 1시간이 지나 도착했는데 오늘은 기온이 올라 좋았다. 10킬로를 오랜만에 달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체육관에 들어가 기구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는 중에 딸이 돌아왔다. 늦게 일어난 아들이 갑자기 육군사관학교에 대하여 질문을 하여 경찰대학까지 포함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훤칠하고 운동신경도 있는 아들이라 사관학교나 경찰대학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 공부를 열심히 하여 기대에 부응해 줄 수 있을까. 오후에 이대부고 수업을 나가는 아들에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보이라고 가르쳤다. 비가 내리는 월요일 오후에 학원에 나가 바쁘게 보내다가 수업을 시작했는데 학생들의 지각이 많았고 밤에는 영식이가 방배동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한다고 동참을 요구했지만 내일 아들의 졸업이라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9일 오늘은 아들 중학교 졸업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검정색 양복을 사러 동대문을 돌아다녔고 졸업생 대표로 상을 받던 기억이 남아 있다. 3년이 지난 지금 수재秀才가 범재凡才가 된 안타까움이 있지만 아들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했는지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며 반성을 했다. 먼저 학교에 간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졸업식에 사복을 입고 가야 할 것을 교복을 입고 갔다는 것이다. 청개구리처럼 엉뚱한 곳에서 교복을 입는 모범생이 되다니 문제는 매사 집중력이 없고 사소한 것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졸업에 참석한다고 나와 동행을 하는 아내는 요즘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대화도 거의 없었는데 오늘도 축하를 하려는 마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빠의 졸업식에 참석한다고 조퇴를 하고 온 딸과 아내를 학교에 먼저 내려주고 건너편 강북삼성병원에 가서 형수와 조카를 태우고 졸업식장으로 들어왔다. 아들에게 축하를 하고 담임을 만나 인사를 하려고 교실로 가다가 상장을 받지도 않고 성적도 안 좋아 자존심이 상하여 다시 차로 돌아왔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온 아들과 가족 모두를 태우고 남영동 미성회관에 가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왔다가 불광동 킴스클럽에 아들과 치오를 데리고 나갔다. 조만간 출구한다는 조카에게 필요한 축구화와 가방을 사 주었는데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고 더구나 체격까지 왜소하여 걱정이 많이 되었다. 함께 다닌 아들에게는 졸업을 축하하고 이제는 새로운 마음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준비하여 꼭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라고 여러 번 일렀다.
10일 아들이 수학학원에서 새벽 3시30분에 오는 바람에 자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밖에는 어제에 이어 비가 내리고 일찍 일어나 신문을 보다가 6시에 잠깐 깊은 잠이 들었다. 식사를 하고 논술교실로 올라가 일요일의 수업을 오늘 미리 하는데 늦게 잠을 잔 아들도 아침까지 거르고 올라왔다. 아빠의 수업이라 기대를 버릴 수 없었을 것이지만 부족한 잠으로 인하여 11시30분까지 힘든 수업을 마친 아들이다. 체육관에 가려고 차를 움직이는 중에 아들이 재빠르게 차에 올라와 함께 집으로 왔고 떡라면을 만들어 오늘 마지막으로 학교에 다녀온 딸까지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도착하여 5시부터 늦게까지 수업을 하고 마쳤는데 3일 전부터 내리는 비는 오늘까지도 계속이다. 낼 모레가 명절이라 강사료를 미리 전달해 주면서 금액이 많지 않아 미안했지만 영어선생은 그래도 약속을 잘 지켰다며 고마워한다. 선생한테 학원 마무리를 부탁하고 남영동으로 나가서 친구와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10시가 지난 늦은 밤에 일어섰다. 무악재까지 시내버스를 타면 될 것을 남영동 4호선을 이용했고 충무로에서 무악재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다 역방향으로 타는 바람에 압구정까지 갔다. 술을 마신 탓도 있지만 몇 정거장을 가면서도 반대 방향인 것조차 몰랐으니 정신을 잃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었다.
11일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침에 눈이 많이 내린다. 식사를 하고 졸업식으로 학교에 가는 딸을 먼저 보낸 뒤에 11시가 되어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안산초 졸업장으로 향했다. 아들이 졸업할 때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눈이 펑펑 내리고 학교에 도착하니 퇴계원에 사는 처제와 조카들이 졸업을 축하한다고 미리 와 있다. 언제나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는 것이고 또한 대부분 동명여중에 진학하게 되어 딸에게 서운함이나 아쉬움은 크지 않을 듯하다. 12시 지나 졸업식을 마치고 눈이 쌓인 운동장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에 모두 연세대 동문회관 근처에 있는 티원 중국집으로 이동했다. 오늘 졸업하는 학교가 많아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도 20여분을 기다리다 안쪽 널찍한 자리에 앉았다. 처제는 아들과 딸에게 졸업하는 선물로 10만원의 용돈을 각각 주었고 나한테는 목도리를 한 양복이 잘 어울린다며 함께 사진을 찍는 모델의 역할을 해 주었다. 오른쪽에 앉은 아들은 의젓하여 오히려 내가 우쭐하기도 했고 점심을 먹은 직후 이대부고 오후반 수업이라고 먼저 일어섰다. 식당 밖에 나와 눈이 펄펄 날리는 횡단보도를 건너서 학교로 걸어가는 아들을 보며 열심히 공부하여 뜻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원했다. 눈발이 더 굵어진 오후에 집으로 왔다가 곧장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마치고 후배와 식사를 하고 들어오니 오늘 졸업을 한 딸이 거실에서 자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 열심히 학교에 다닌 딸에게 마음으로 졸업을 거듭 축하했고 중학생이 되어 더 열심히 공부하는 예쁜 딸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들을 태우고 외출을 하려고 차에 시동을 걸어 대로변을 나섰는데 따라가겠다는 딸이 어느새 1층으로 내려와 아파트 반대방향 계단으로 나왔다. 우리가 집에서 먼저 내려간 직후에 딸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했고 지하에서 차가 출발하는 것을 계산하고 1층에서 정문을 통하여 대로변으로 곧장 나왔으니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딸의 판단이 당시에 놀랍기도 했었다. 대성통곡을 하면서 뒹굴다시피 계단을 내려오는 딸을 지하철 입구 대로변에서 차에 태웠는데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나를 이렇게 따랐으면 좋겠다. 머지않아 의젓한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어 열심히 공부할 아들과 딸에게 미리 화이팅을 외치고 언제나 어디서라도 소리내어 나는 응원할 것이다. 아들과 딸의 삶은 곧 내가 살아가는 과정이고 아들과 딸의 행복과 불행은 나의 인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들의 중학교 시간을 바라본 어설픈 아버지의 시선이었는데 과거를 바탕으로 더 나은 내일을 준비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의 관심이나 사랑은 다르지 않지만 그나마 나와 차이가 있다면 지난 시간을 간직할 수 있도록 눈을 떼지 않고 기록을 했다는 것뿐이다.
아버지의 시선.- 연재 마침
(3년의 기록) 2007년 3월~2010년 2월
200자 원고지 3000장, <A4 약80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