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쉽고 이별은 너무 어려워(영주)
2023.07.14
1년 7개월 전, 아이를 낳고 아직 돌도 안 된 아이를 돌보던 나는 작은 가게를 계약했다. 서점을 차려 보고 싶다며 목표 매출은 얼마로 해야 하는지, 얼마를 벌어야 내가 수익이 나는지 기본적인 계산조차 하지 않은 채 덜컥 가게를 계약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난 반쯤 미쳐있었던 것 같다. 혼자 부동산에 방문해 가게를 계약했고, 가게 이름을 지어 간판을 달고, 책을 사 와서 책들을 가득 채우고, 그리고 서점을 연다고 공지했다. 독립서점을 차려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딱 1년 운영했다. 1년 동안 작은 서점의 주인이 되어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페어에 참가해 책을 판매해 보기도 했고, 스마트스토어를 열어 온라인 세상에 발을 담가 보기도 했으며, 인스타그램에 매일같이 글을 업로드하며 나름의 마케팅이라는 것도 했다. 얼마 벌지도 못하면서 그냥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로 딱 1년을 채웠고 제대로 된 이별 공지 없이 가게의 문을 닫았다. 단골손님에게는 예의가 없을 폐업공지 하나 띡 오려놓고 나는 가게의 문을 닫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출근이 힘들어서.
난 맺고 끊는 걸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게에 들러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답을 잘해주었고, 그렇게 호구가 되었다. 싫다는 말도 잘하지 못하고 그저 네네만 하는 호구. 날 힘들게 하는 몇몇 손님들이 있었는데 더 문제는 그들이 뭘 잘못한 건 없다는 거다.
그냥 내가 버거워졌다. 네네 하는 것에.
어느 날부터 잠을 자다 발작처럼 몇 번씩 잠을 깨기 시작했다. 잠드는 게 겁이 나고 내일 출근이 무서워지기 시작한 나는 이대로 내가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에 모든 걸 멈추었다. 그리고, 내 실패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그럴싸한 회사에 취업했다. 무슨 이유든 대야만 사람들에게 내 실패를 잘 포장해서 말할 수 있으니. 경기가 안 좋아져서 더 망하기 전 가게 문을 닫았다는 허울 좋은 말로 괜찮은 척하며.
그렇게 괜찮은 척 한지가 반년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직장생활이 재밌는 척하며 살고 있는 나는 며칠 전 유튜브를 보다 예전 쇼미더머니 영상 중 베이식의 ‘만남은 쉽고, 이별은 너무 어려워’를 무대를 보게 되었다. 힙합가수로 승승장구할 것 같던 그는 개인적인 일로 직장인이 되었지만, 속에 묵혀뒀던 무대에 대한 갈망이 꿈틀대기 시작해 쇼미더머니4에 나왔다. 그렇게 우승을 했고 다시 잘 나갈 것 같았지만 이후 나온 앨범들이 저조한 반응을 얻었고 TV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어떻게든 랩을 계속하고 싶어 유튜브채널을 운영하며 가수의 끈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던 그는 쇼미더머니9에 나온 스윙스를 보고 자극을 받아 본인도 방송에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본선무대에 진출해 부른 노래. ‘만남은 쉽고, 이별은 너무 어려워.’
한참을 다시 들었다.
출근하는 길에 듣고, 퇴근하면서도 듣고, 집에 와서도 듣고, 설거지를 하며, 청소를 하며 그냥 하루 온종일을 들었다.
나에게 작은 서점은 베이식에게 랩과 같은 존재였다. 작은 가게를 해보고 싶은 건 내 꿈이었다. 한국에서 가게를 오픈하기는 생각보다 참 쉬운 일이다. 그래서 나름 쉽게 가게를 오픈해 꿈을 이루었지만 내가 몰랐던 건 유지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 우리나라에서의 자영업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비슷한 가게들이 생겨나고 유행이 되고 그 유행은 빠르게 돈다. 유지하고 버티는 힘이 부족했던 나는 쉽게 차린만큼 쉽게 나가떨어졌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꿈을 이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서점을 즐기지 못했고 스트레스만 받다가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폐업을 결정하고, 다시 취직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 실패를 받아들이는 거에 익숙지가 않아서일까? 그런데 우연히 만난 이 노래를 계속해서 듣다 보니 그간 외면했던 내 실패를 마주하고 싶어졌다.
‘It’s Ok 괜찮아 난 맛이라도 봤잖아’ 이 가사 한 줄 때문에.
이 가사 한 줄은 지나간 내 실패를 그럴싸해 보이게 만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금방 접은 사람이 아니라 맛이라도 본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링 위에 올라선 나는 그동안 내가 한방에 K.O가 된 줄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올라가지 않는 손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노래 덕분에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볼 수 있었다. 실패를 마주하고 앞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실패한 나는 멋진 모습이었다. 한방에 나가떨어진 게 아니라 요리조리 잘 피했고 잘 맞으며 나름대로 이겨보려고 이것저것 하며 고군분투 한 사람. 그리고 관중석에는 경기에서 패배한 나를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게 너무 잘하고 있다며 다음에는 꼭 이겨라고 응원해 주는 나름의 팬이 있었는데 그동안 쳐다볼 용기가 없어 알지도 못했다.
지금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지만 언젠가 이 노래의 주인공처럼 다시 이 꿈을 향해 달려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또 다른 꿈이 새롭게 피워나 날 또 링 위로 올려 새로운 상대를 만날 수도 있겠지.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도 이제는 내 실패를 외면하지 않을 거다.
나도 이제 실패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생긴 거 같아
마침표를 찍을 용기가 끝나도 괜찮아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다음 페이지에 끝나도 좋아
그러나 거기에 너가 있다면’
by. 영주 https://brunch.co.kr/@upstairs/54
(이 글은 영주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첫댓글 날마다 조금씩 행복해질 것 같다, 글쓴이.
다행이다, 나름 출구를 찾았으니.
'나' 마주할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