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라는 말로 책임을 덮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가는 길동무2026.10.05 14:39조회수 630
교회 안에서 재정 사고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일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악을 즉시 막지 않으셨다는 것과 그 악을 하나님께서 뜻하셨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더욱이 인간의 잘못으로 발생한 재정 사고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말로 설명하면서 조사와 책임과 배상을 약화시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을 하나님의 이름 뒤에 숨기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예언의 신은 이런 문제를 그렇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1. 엘렌 화잇은 잘못된 재정 처리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1899년 남부 선교지역을 위해 모금된 돈이 본래 목적지에 전달되지 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엘렌 화잇은 이 일을 매우 엄중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는 기부자들에게 자신들이 드린 돈이 지정된 남부 선교지역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하나님의 사업을 관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백성의 신뢰를 파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불성실한 청지기직(Unfaithful stewardship)” 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정된 목적을 위해 받은 돈은 즉시 그 목적지로 보내졌어야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신뢰할 수 없는 종들(untrustworthy servants)로 여기신다는 매우 강한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 서신 98, 1899; Manuscript Releases, vol. 21, 143-144.
주목해야 합니다. 엘렌 화잇은 이런 사건을 두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읍시다.” 라고 문제를 희석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했고, 그것을 ‘불성실한 청지기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첫 번째 원칙입니다. 섭리는 책임을 없애지 않습니다.
2. 잘못된 재정 사용은 실제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엘렌 화잇이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1899년 같은 남부 선교지역 재정 문제를 다루면서 매우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남부 선교지역에서 빼앗긴 돈은 반드시 배상되어야 한다(There must be a restitution of the money of which the Southern Field was robbed).”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의가 지배해야 한다(Righteousness must rule in God's service).” - 원고, 154, 1899.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원칙입니다. 잘못된 재정 사용이 있었다면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한 한 원상회복해야 합니다. 예언의 신에서 회개는 감정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행동입니다.
1901년에는 더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배상하게 하라(Let them rather make restitution.)”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장부를 깨끗하게 하라(Make a clean record.)” 는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둔 채 앞으로만 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으로 진정한 회개의 증거를 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 서신, 6, 1901.
예언의 신의 원칙은 분명합니다. 잘못된 재정 처리가 있었다면 회개에는 가능한 범위에서 배상과 회복이 따라야 합니다.
3. 더 무거운 말씀은 ‘알고도 침묵한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더욱 두려운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엘렌 화잇은 남부 선교지역 재정 문제를 직접 실행한 사람들만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잘못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정죄하고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raise their voice in condemnation”, 즉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은 사람들은 직접 그 일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그 잘못에 참여한 사람으로 간주된다고 경고했습니다. — 원고, 154, 1899.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재정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의 책임은 단지 “나는 그 돈을 사용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알고도 침묵했다면 어떻습니까? 문제를 알면서도 조직의 체면 때문에 덮었다면 어떻습니까? 문제를 제기할 위치에 있으면서도 인간관계 때문에 침묵했다면 어떻습니까? 예언의 신의 원칙에 따르면 침묵 역시 도덕적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업에서 잘못된 것을 보았을 때 진실의 편에 섰는가?”
4. 하나님의 재정은 ‘대낮의 빛’ 아래 있어야 합니다
엘렌 화잇은 교회 재정 운영에 대하여 또 하나의 놀라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십일조를 “거룩한 자금(a sacred fund)”, 이라고 부르면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사업 운영의 모든 것을 대낮의 빛 가운데 공개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These men should not be afraid to open to the light of day everything in the management of the work).” — Manuscript Releases, vol. 13, 198.
얼마나 명확한 원칙입니까? 대낮의 빛. 이것이 하나님의 재정을 관리하는 기준입니다. 장부를 열어도 두렵지 않아야 합니다. 결재 과정을 공개해도 두렵지 않아야 합니다. 누가 결정했는지 밝혀도 두렵지 않아야 합니다. 어디에 얼마를 사용했는지 공개해도 두렵지 않아야 합니다.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 조사해도 두렵지 않아야 합니다. 왜 그 결정을 했는지 질문받아도 두렵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비밀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투명성에 의하여 신뢰받아야 합니다.
5. 잘못된 재정 운용은 실제로 성도들의 신뢰를 파괴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면 교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언의 신은 정반대의 사실을 지적합니다.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잘못을 밝히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재정 운영입니다.
엘렌 화잇은 지정된 헌금이 목적지에 전달되지 않은 사건에 대하여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사업을 관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백성의 신뢰를 파괴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더욱 충격적으로 말합니다. “백성들은 사업을 관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The people have lost confidence in those who have the management of the work).” 그 이유를 그는 “잘못된 원칙에 따라 일했기(working upon wrong principles)”,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 Christian Leadership, 20; 원고. 37, 1901.
그러므로 “신뢰를 지키기 위해 문제를 덮자”는 생각은 거꾸로 된 것입니다. 신뢰는 진실을 감춤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바로잡음으로 회복됩니다.
6.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말을 사용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고 모든 죄를 즉시 막지 않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적으로 ‘허용’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잘못 사용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도록 하나님께서 강제로 막지 않으셨다고 해서 유다의 탐욕이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범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물리적으로 막지 않으셨다고 해서 다윗의 범죄가 하나님의 섭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정 사고를 즉시 막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인간의 잘못을 가볍게 만드는 근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책임을 면제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잘못보다 크셔서 그것을 통해서도 우리를 깨우치고 교회를 정결하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요셉의 고백이 그것을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 성경은 형들의 행동을 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다.” 악은 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실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악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주장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7. 참된 회개에는 실제적인 변화가 따라야 합니다
엘렌 화잇은 회개와 배상의 관계에 대해서도 매우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개혁을 이루지 않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No repentance is genuine that does not work reformation).” 그리고 부당한 거래나 기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잘못을 고백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The Faith I Live By, 132.
따라서 재정 사고에 대한 성경적이고 예언의 신적인 해결은 단순한 유감 표명이 아닙니다. 사실 확인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 규명이 있어야 합니다.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배상이 있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인사상의 책임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용서는 책임의 폐지가 아닙니다. 은혜는 사실 조사의 중단이 아닙니다. 사랑은 잘못을 잘못이 아니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회개할 기회를 주고, 하나님의 사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저는 누구를 정죄하자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교회 밖으로 몰아내자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자는 것입니다. 사람을 공격하지 맙시다. 그러나 원칙에서는 물러서지 맙시다. 개인의 회개를 받아 줍시다. 그러나 조직의 책임까지 없었던 것으로 만들지는 맙시다. 용서합시다. 그러나 배상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배상하게 합시다. 교회를 사랑합시다. 그러나 교회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진실을 감추지는 맙시다. 지도자를 존중합시다. 그러나 지도자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원칙보다 사람을 높이지는 맙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정리’가 아니라 ‘정결’입니다
우리는 사건을 빨리 정리하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은 평온해지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은 피곤하기 때문에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사건의 정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정결입니다.
장부가 맞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돈이 돌아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사과 한마디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제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것은 거룩하다.” 라는 두려움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이 일을 두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으니 받아들이자.” 라고 말하지 맙시다. 대신 이렇게 말합시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에 철저하게 밝히겠습니다.” “하나님의 돈이기 때문에 반드시 바로잡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드린 헌금이기 때문에 책임 있게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관이기 때문에 세상보다 더 높은 투명성을 요구하겠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배상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고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엘렌 화잇은 잘못 사용된 재정에 대하여 불성실한 청지기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배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잘못을 알고도 목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업의 모든 재정 운영을 “대낮의 빛 가운데”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길도 분명합니다.
섭리라는 말로 책임을 덮지 맙시다. 용서라는 말로 배상을 생략하지 맙시다. 교회를 보호한다는 말로 진실을 희생하지 맙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인간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지 맙시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희생이 맡겨졌습니다. 교회에 대한 신뢰가 맡겨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그 이름 앞에서 모든 것을 빛 가운데 놓고 바로잡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