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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굶주림·질병 등으로 무려 150여만 명 사망
영화 ‘레닌그라드:900일간의 전쟁’ 중 한 장면. |
영화‘레닌그라드:900일간의전쟁’ 포스터. |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소련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세 개의 집단군으로 나눠 중부집단군은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 남부집단군은 키에프 지역, 북부집단군은 레닌그라드 점령에 나섰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독소전쟁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이 중 북부집단군의 점령 목표였던 레닌그라드는 수도 모스크바 북서쪽 715㎞ 떨어진 소련 제2의 도시였다. 제정 러시아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불리던 수도였으며, 이후 볼셰비키의 지도자 레닌의 이름을 따서 개칭된 소련의 상징적이며 중요한 도시이기도 했다.
영화 ‘레닌그라드 : 900일간의 전쟁’(Leningrad, 2009)은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려는 독일군과 방어하려는 소련군 사이의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미국 출신의 여기자 ‘케이트’(미라 소르비노 분)는 전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스크바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지 못한 채 레닌그라드에 홀로 남겨졌고, 그녀의 시선을 통해 레닌그라드의 참상이 비친다. 자그마치 900일 동안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독일군의 침공이 시작되자, 소련군은 레닌그라드를 지키기 위해 도시를 요새화하고 방어준비를 했다. 이에 국경선을 넘어 종횡무진으로 진격해온 독일군 역시 간단하게 레닌그라드를 함락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독일군은 레닌그라드 시내에 포격과 폭격을 가하면서, 동시에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맹장 주코프를 방어군 사령관으로 임명해 끝까지 사수할 것을 지시했고, 주코프의 지휘 아래 민·군·관이 하나로 똘똘 뭉쳐 레닌그라드를 지켜냈다.
레닌그라드를 신속하게 함락하지 못하자 독일군은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이곳을 공략했던 독일군 병력의 상당수를 이제는 모스크바 공격으로 전용시킬 수밖에 없었다. 또한 소련의 주코프 역시 모스크바 방어를 위해 레닌그라드를 떠나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독일군은 다수의 병력을 희생해가며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기보다는 포위망을 풀지 않은 채 고사시키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히틀러는 도시 속의 군인들과 시민을 모두 굶겨 죽여, 그들의 저항의지를 말살시키고 레닌그라드를 세계지도에서 없애려고 했던 것이다. 레닌그라드 전투가 레닌그라드 포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도시 포위전 가운데, 1941~1942년 겨울 동안 레닌그라드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삶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외부로부터 보급이 끊긴 상태에서 독일군의 폭격에 의해 식량저장고가 파괴되면서 식량난에 허덕이게 됐다. 수도·석탄·전기 등도 끊겼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숱하게 죽어 갔다. 심지어 흙에는 당분이 들었다고 해 흙으로 차를 끓여 마시고, 인육을 먹는 식인행위까지 발생했다. 주인공인 케이트 역시 이곳에서 영양실조로 죽게 됐다. 영화 속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이곳의 시민들에게 레닌그라드는 죽느냐 사느냐의 지옥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인들은 강인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전쟁을 수행했다. 도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시민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극장과 오케스트라도 운영됐다. 다행히 그해 겨울 얼어붙은 라도가 호수를 통해 외부와의 연결 통로인 ‘생명의 길’이 개통됐고, 이를 통해 미약하지만 도시에 물자가 공급되고 시민들의 소개도 이뤄지게 됐다. 결국 최초 전투부터 무려 900여 일이 지난 1944년 1월, 소련군의 총공세로 레닌그라드를 봉쇄하고 있던 독일군은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됐다.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민관군이 일치단결해 도시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기간에 무려 150여만 명이 추위·굶주림·질병·전투 등으로 사망했다. 레닌그라드 포위가 실시되는 동안에도 소련 곳곳에서는 소련군과 독일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지속되고 있었으며, 레닌그라드에서의 항전은 소련 국민과 군에게 큰 용기를 줬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소련군은 전세를 역전시켰으며 독일군은 패퇴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항복하지 않고 버텼던 레닌그라드는 ‘영웅도시’의 칭호를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레닌그라드 포위전의 승리를 기념하고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심호섭 대위·육군사관학교 교수>
첫댓글 < ‘김정’ 쌤의 路邊情談 > ‘쌍뜨 빼쩨르부르그’와 ‘광주(光州)’ 글을 보고
몇 년 전 보았던 감동적이었던 영화의 기억을 되살려 찾아보았다.
다시한번 보고싶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