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남주 시인이 쫒기면서 살던 때, 아들 토일이가 다섯 살 때 피해서 숨어들었던 강화의 집, 부인 박광숙씨가 홀로 20년의 세월을 이곳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이십 년 전 어쩌다가 이곳에서 살려고 마음 먹었는데 시대가 바뀔 때마다 가슴 조이며 살아왔다고한다. 지난 세월을 추억하는 부인 박광숙씨 - 마음 편히 살았던 시기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이었다고....지금은 또 가슴이 조마조마한단다. 강화에 살고 보니 북한과 가깝고 참 공교롭게도 동네 이름도 불은리....불온한 시인(국가에서 그렇게 이름 붙인,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의 동네 이름치곤 꽤나 아이러니하다고 느끼게 한다.
광주전남 작가회의 전 회장 김경윤 시인은 해남의 김남주 생가를 기점으로 김남주 문학제 추진으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해남을 김남주의 땅, 김남주의 문학적 투쟁정신의 기치를 세워왔는데, 박광숙씨와는 그런 면에서 지속적으로 만나왔다고 한다. 올해엔 김남주 20주기를 맞이하여 해남에 김남주 문학관을 세운다고 한다. 김남주의 문학정신을 가장 올곧게 세워온 후배 시인 김경윤...(오른 쪽 붉은 색 티셔츠 차림) 그 옆에 상념에 잠긴 조동례 시인.
시인 이승철씨가 본인이 국가적으로 위협적인 70년대에 위험을 무릎쓰고 펴냈다는 김남주 시인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를 책꽂이에서 찾아온다. 다들 한 마디씩 그 때의 위급했고 절박했던 역사의 현장들을 추억했다. 이야기, 한숨 섞인 회고담이 끝나자 "시 낭송은 경동이가 해라"라고 청한다. 송경동 시집 속의 시 한편을 낭송하다가 울먹이다가 기어이 눈물을 쏟는다.....좌중에서도, 나도 울컥이며 감동 속으로 젖어들었다. 김남주 시인의 시적 호소력에 흔들리지 않은 이 누구련가. 특히 송경동 시인의 그 결연한 목소리....아무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을 없어라!
광주전남 작가회의 회원 30여명에게 손수 담근 효소차와 효소술을 선물하고, 함께 점심을 먹은 후 아쉬운 석별....그러나 우리의 강화대회는 박광숙 여사를 만나 훨씬 뜻깊은 시간이었지요.
첫댓글 밑에서 두번째 그림속 무릎 꿇고 있는 여자분이 꼭 제 모습 같습니다. 살 좀 빠진 50대의 내 모습.
백정희 소설가~~미자씨의 살 빠진 모습이 눈에 선하게시리.... 김남주 20주기가 계산해 보니 내년이네요...김경윤 시인이 가을 김남주 문학제 초청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