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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영 시인의 시 세계
가슴에 밟히는 그 사랑
<시인. 문학평론가> 박철영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그 반성의 범위는 시인 스스로 어느 부분까지 특정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개인의 창작물이 지면을 통해 발설된 이후부터는 공공성을 띤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장이 당 시대를 넘어서는 생명력을 염두에 둔다면 쉽게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될 신중함을 요한다. 거기에다 극히 개인적인 일상을 넘어 1980년 5월 광주라는 아픈 기억을 매번 ‘자유와 민주’라는 의식으로 횡단해야 한다면 심리적인 부담은 상당할 것이다. 시인은 정치적이지 않으면서 정치적인 인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런 문학을 놓고 매번 자괴감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도래할 미래를 위해 반성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성으로 이룬 삶의 시가 자장 안에서 맴돌기를 지속한다 해도 우린 그 자체만으로도 의연하게 당위라는 시대적 세계관을 수긍해야 한다. 시를 주체로 삼아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사람들의 기득권을 양보와 변화로 이끌어낸다면 시가 갖는 공기公器로써 기여는 훌륭한 것이다. 아무리 시의 존재성이 미약하다 해도 폐기되거나 처분해야 할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적인 것들의 과정이 글쓰기에 한정할 수 없듯이 인식에 대한 행동이 병행될 때 시의 존재 근거는 확실하게 유예될 수 있다. 시가 개인적인 삶에 그치지 않고 시대적인 천착으로 수수된 양심의 증거물이라면 시인의 살아온 이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양심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나종영 시인은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광주 태생으로 광주와 필연적인 연고를 갖고 있다. 또한 1981년 창작과 비평사 13인 신작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집으로 『끝끝내 너는』(창작과비평사),『나는 상처를 사랑했네』(실천문학사) 등이 있다. 오랜 문학적 삶을 살아온 세월에 비해 과작寡作에 머문 점은 문학계의 안타까움이자 손실임을 안다. 그렇기에 나종영 시인의 시적 세계를 일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기 발표된 시 몇 편을 모아 보았다. 시인은 일상에서 시적인 것에 대한 출발은 항상 사물 내부에 대한 응시에서였다. 결국 시란 대상의 완고함을 내면에 비춰 새롭게 발견해가는 실존에 대한 자아 인식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시 쓰기라는 것 자체가 고행의 여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방긋방긋 터지는 꽃봉오리가 고통 없이 피는 것은 아니다.
이 비 그치면 으름꽃 벙긋 터지겠다
연두가 붉은 꽃들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신생의 봄날
물오른 오리나무 물속에 물구나무 서있다
연인아, 너 오지 않는 동안에
세량지 물가에 수수꽃다리 피고
수수꽃다리 진다.
-<세량지> 부분 『사람의 깊이, 22호』
비 내리는 날 전남 화순의 <세량지>와 봄 산이 한데 어우러졌다.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길가 연못 풍경에서 시적 화자를 불러낸다.‘신생의 봄날’은 어느 것 하나 그냥 놓아주지 않았다. 산안개 자욱한 풍경도 그렇고 빌미 삼아 꽃봉오리 무장하게 터뜨리는 산벚도 그렇지만, 만물이 생동하는 기운은 시인의 심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한순간도 자연은 변화를 멈추지 않고 기어이 시인의 마음까지 뒤흔들었다. 잊고 지냈어도 낯설지 않은 꽃의 기억들을 더듬어내 시적 화자에서 서정적 주체를 드러낸다. 저 산에 핀 산벚꽃처럼 시인의 눈으로부터 시작된 신생의 봄날은 또 한 번 사랑의 기회로 다가온다. 이내 “보라색 손톱만한 으름꽃”이 터지기 전 고조된 긴장은 가슴까지 차올랐다. 대답 없는 “연인아, 너 오지 않는 동안에/세량지 물가에 수수꽃다리 피고/수수꽃다리” 진다지만, 대답 없는 연인을 원망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는다. 그토록 못 잊어하던 ‘연인’은 시인의 가슴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긴다. 그 꽃 지고 나면 또 다른 신생 같은 봄날을 기약해야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례한 시적 사고의 유연성은 전위로 거듭 변주된다. 연못 속에서 물구나무선 오리나무의 생애가 고통스럽다고 원망하지 않듯 자연의 이치 속에서 피고 지는 꽃처럼 인생살이란 것도 순간순간 교차하는 꽃의 생애와 다를 바가 없다. 시적 화자가 바라본 사물의 대상은 일상에서 반복된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허구적 존재이거나 시인과 분리되지 않는 동일체라고 볼 수 있다.
자식들이 다 파먹은
송피松皮 같은 응달의 세월 앞에
작은 입술피리도 삼가하시라
천개의 빗줄기가
거미줄을 통과하는 동안
-<거미의 세월> 부분 『사람의 깊이, 22호』
현상은 언제나 내적 연관을 통해 과거로부터 출발한다. 그 과거가 없는 현재와 미래는 어떤 경우에도 인과관계에서 존재할 수 없다. “천개의 바람이 뚫고 간 자리에/영롱한 이슬방울이 방울방울 맺혔다/외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백년을 살아온 한 생애가/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다. 거미줄을 바라보며 기어이 시인은 시적 사유를 인간사로 환치한다. 위태로운 외가닥 거미줄에 의지한 채 살아온 거미처럼 부모의 삶이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천 개의 바람을 맞은 것처럼 숭숭 뚫린 가슴으로 살아온 노모를 생각하며 노시인은 한 세대를 노모 덕에 무임 승차해왔음을 알게 된다. 그런 노모를 보면서 요즘 들어 부쩍 생애를 되돌아보는 횟수가 많아진 것은 세월의 마모를 막지 못한 증거다. 노모께 드리는 문안 인사가 간절하고 잦아진 것은 인간적인 심성으로 도리를 다할 뿐이다.
노모를 생각하는 지극함을 잘 드러내는 <아침 밥물은 넘치고> 『사람의 깊이, 22호』에 게재된 시 전문을 올려본다. “쌀을 안치고 밥 익는 냄새가 솔솔 나는 데/이불을 둘러 쓴 노모가/일어나시지 않는다//어머니 쌀 씻는 소리에 눈을 뜨던/어린 날의 둥글고 먼 기억,/저만치 물동이를 이고 고샅을 돌아오시던/어머니 고무신 소리에 자륵자륵/치미어 오르던 새벽의 허기//어머니는 이제 뼈만 남은 한 뼘 생애에/몇 번의 수저질을 저을 수 있을까?/가쁜 숨소리처럼 아침밥물은 넘치고//자귀나무 꽃술을 스쳐온 바람이/누룩냄새 깊은 늙은 어머니의 방/창문 모서리를 톡, 톡,/손톱 끝으로 두드리고”에서 보듯 노모를 지금껏 모셔왔지만, 하루하루가 너무나 절박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 보였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인간적인 자기 인식을 드러낸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인본人本을 시인은 사랑이라 하지 않았다. 시인이 그토록 갈구한 사랑을 찾아가는 데 우리는 동행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사랑은 불꽃과 얼음 틈새를 흐르고 흘러
그렇게 오는 것이다
그렇게
-<나무의 사랑> 부분 『사람의 깊이, 18호』
나무를 보면 식물적 아름다움에 반하기보다 나무가 가진 화폐의 교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게 요즘의 세태다. 인간의 욕망은 자연을 물질화하고 싶은 유혹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자연 속 대상이 희귀하거나 특정한 장소에서만 볼 수 있는 수목이라면 사람들은 유혹의 선을 쉽게 넘어버린다. 자본주의의 속성 자체가 모든 것을 거래의 대상으로 여길뿐더러 화폐 가치로 사고파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존재 의미는 철저히 배제되고 얼마나 더 많은 화폐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되었다. 그러한 속물근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일침을 가하는 시인이 우리 곁에 있다면 그나마 다행히 아닐까. 하찮은 나무와 산등성이에 핀 야생화 한 송이에도 소중한 영혼을 읽어내는 시인 때문에 우린 기쁨을 덤으로 얻게 된다. 인디언들의 대자연관을 들먹일 필요도 굳이 없지만, 나종영 시인의 친 자연주의적 가치관을 통해 일궈내는 시편은 인디언 추장이 절규한 자연관과 상통하고 있음을 본다. 노루귀가 피워낸 꽃 한 송이의 가치와 사계절을 견딘 나무뿌리와 등걸을 보며 변하지 않는 사랑을 전한다.
명치끝을 불현듯이 스치고 가는 사랑이 그런가. 묻지도 않았고 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지만 귓가를 떠나지 않는 사랑이란 말이 미련처럼 머리를 맴돈다. "두팔 벌려 한 아름 나무를 보듬어 보면/그대가 나무를 안고 있는지/나무가 그대를 안고 있는"것인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다. 이 되묻는 물음이 가볍지 않다는 것은 오랜 시간 나무를 지켜보는 시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보내고서야 조심스럽게 침묵의 대화를 꺼내려한다. 여기에서 침묵은 묵언으로 육체와 마음의 소통을 위한 서로에 대한 신뢰이고 배려다. 이런 침묵의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하나처럼 느껴가는 감각의 일체화 행위란 것을 알 수 있다. 사람과 나무의 이종異種 간이 동일체가 될 턱이 없지만, 여기서 시인의 자연관을 느낄 수 있다. 부둥켜안고 있는 동안 시인의 뜨거운 가슴과 나무의 목질부로 소통의 통로를 열었을 것이다. "한동안 그렇게 마주 보고 있으면/밑둥에서부터 불덩이 같은 뜨거운 무엇이 차올라/그대 온몸을 얼어붙게 한"다는 것이다. 드디어 마음의 감정까지 통한 것이다. 나무처럼 살아온 고통의 시간이 다르지 않아 동병상련의 처지임을 알게 된다. "한 사흘 아니 석 삼년 달 뜨거운 결빙의 시간을 붙들"어 안고서야 서로의 막혔던 마음이 이제야 조금씩 열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만의 사람에 대한 소통과 이해의 방법이고 일상임을 알 수 있다. 쉽게 마음 주는 것을 우린 사랑이라 하지 않는다. 사랑은 된 숨 몰아서 내뿜은 마지막 절정의 가쁜 숨결인 것이다. "바람과 별빛과 풀벌레 소리를 이겨냈다면/찬 물소리와 교교한 달빛과 사나운/늑대의 울음소리를 버텨냈다면/그대는 이미 나무가 된 것"처럼 자신의 처지를 구구절절 절대적 대상에게 다가가듯 나무에게 험난한 세상을 고변하고 있다. 시인의 가슴에서 떨칠 수 없는 "사랑은 불꽃과 얼음 틈새를 흐르고 흘러/ 그렇게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이 목메어 기다리던 사랑은 인간적인 그래서 더 자연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화엄사 각황전 앞에 핀 흑매가 꿈꾸는 화엄 세상에 다다를 염원까지는 이를 수 없어도 좋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마다 <흑매黑梅>는 꽃을 피우고 말 것이다. 그토록 기다리는 그 사랑이 몹시 궁금해진다.
그대 안 오시니 봄비 내리고
화엄사 각황전 앞 홍매화 아직 안 피었습니다
그대 온다던 기별에 몇번이나 옷고름을 매다 풀다 하였더니
붉은 가슴 더 붉어졌더이다
붉디붉다 못해 까만 재가 된 듯
서녁 하늘 마음만 가뭇합니다
한 사흘 내리는 봄비 그치면 그대,
고운 지단풀 밟고 오시련지요 그럼 그날
제 눈물 한 보시기
적멸보궁 가는 돌 계단에 고이 모셔두겠습니다
온다던 그대, 안 오시니 각황전 앞 흙매화
아직 안 피었습니다
이 봄비 그치기 전에 제 속 눈썹 밟고 오는
그대 버선발 소리.
-<화엄사 흑매黑梅> 전문 『사람의 깊이, 18호』
나는 어느 해인가 5·18 망월동 묘역에서 빨갛게 젖은 시인의 눈을 보았다. 당시는 민망했지만, 이제는 그 붉디붉은 가슴을 이해할 수 있겠다. 가슴으로 아픈 세상을 놓지 못하고 사는 사람만이 그럴 수 있음을. 그런 마음들이 멈추는 곳은 누구나 부딪치는 일상에서 이뤄진다. 시인은 화엄사 각황전 앞에서 누군가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누구를 저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걸까. "그대 안 오시니 봄비 내리고/화엄사 각황전 앞 홍매화 아직 안피"었다는 말로 애써 찾아온 안타까움을 전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오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대상을 되짚어보면 서로에게 굳은 약속을 하였다는 반증이기에 그렇다. 기다리는 누군가가 와주지 않는다면 흑매는 꽃을 피울 수 없다. "그대 온다던 기별에 몇번이나 옷고름을/매다 풀다 하"여도 온다는 기색은 그 어디에도 없음을 못내 안타까워한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시인의 평소 삶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시인은 항상 후배들에게 시혼詩魂으로 깨어있을 것을 주문했다.
시는 이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반백을 훌쩍 넘어선 시인의 가슴에는 80년 광주의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남아있다. 더 나아가면 6ᆞ·25 전쟁 전 후 지리산에서 빨치산 투쟁으로 죽어간 잊힌 영령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붉디 붉다 못해 까만 재가 된 듯/서녁하늘 마음만 가뭇"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불교에서 서녘은 서방정토로 인간이 귀의하는 사후세계다. 흑매 앞에서 무슨 이유인지 "서녘 하늘"을 떠올린다. 혹시 그분들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하거나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이뤄보겠다며 싸우다 죽어간 산山 사람의 영령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늦었지만, 죽어간 영령에 대한 예를 극진히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흘 내리는 봄비 그치면 그대,/고운 지단풀 밟고 오시련지요 그럼 그날/제 눈물 한 보시기/적멸보궁 가는 돌 계단에 고이 모셔두"겠다며 시인은 뜨거운 가슴으로 후일을 다시 약속한다. 세상의 변화에 가장 나태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못다 한 그런 틈을 메우는 산과 들에 무궁無窮한 <저 작은 것들이> 염원하는 세상과 같은 것이다.
논냉이 씀바귀 애기똥풀
어깨를 살그머니 건들고
날아가는 노랑나비 한 마리
환한 대낮,
저 아주 작은 것들이 내 가슴을
뜨겁게 치고 가네.
-<저 작은 것들이> 부분 『사람의 깊이, 18호』
시를 읽어가며 가슴으로 전해오는 느낌은 하고 많은 꽃 중에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것들에 대한 집착인가였다. 자연은 인간사처럼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 눈에 먼저 띄는 것은 모양이 큰 것이거나 화려한 것들이 우선이다. 그뿐이 아니다. 모든 것이 크거나 작거나로 구분되고 예쁘거나 못생겼거나 향기롭거나 그렇지 못하거나로 구분된다. "저 작은 것들이 내 가슴을 치네/노루귀 산자고 솜양지꽃 이마를 툭/치고 가는 풍경소리"에 그만 시인의 눈과 귀가 일순 멈춰버린 것이다. 노루귀 산자고 솜양지꽃에서 향기가 아닌 풍경소리라니 경이롭다. 시인은 저토록 작은 것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다가서고 있었다니. 생명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서도 도움 한번 받지 못한 채 버려진 생명들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저들을 살린 것은 칠흑 같은 어둠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준 별똥별이었을 테고 목말라죽어갈 때에는 두 눈 똥그랗게 뜨고 밤을 새우던 산토끼나 노루의 지린 오줌 몇 방울이 아니었을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리산 어디쯤에서 위태롭게 핀 "저 작은 것들이 내 가슴을 치"면서 마주할 때 오히려 시인은 "이 세상의 아름다움도/이내 추해질 것 같은 인간의 욕망도/조붓한 숲길에 날리는 흰바람꽃처럼/작고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자기반성을 서슴지 않는다. 많은 것들을 탐하며 살았음을 후회하는 시인을 따라 인간의 탐욕을 함께 탓할 뿐이다. "머리가 텅 비어 서성이는/직립의 족속, 너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자나" 라며 뒤늦게나마 논냉이 씀바귀 애기똥풀이 갖는 소중함을 알아간다. 크거나 작거나가 예쁘거나 밉거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명에는 천하고 귀함이 따로 없음을 시인은 "저 아주 작은 것들이" 던지는 화두를 통해 깨달아간다. ‘작은 것들’에게 겸허한 마음으로 다가설 때 비로소 자연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 저 작은 것들은 바로 우리의 이웃이고 오래전부터 우리의 살붙이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토록 나종영 시인이 갈망한 사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산동애가 속 열아홉 살 처녀가 부른 비통해서 더 슬픈 노래 가락이 가슴을 아프게 하듯, 지리산 만복대 설산이 다 녹아내릴 때까지 남녘은 숨을 죽인다. 오월이 되어서야 노랗게 피기 시작했다는 산수유꽃, 그 꽃을 보러 갔지만 마냥 즐거울 수만 없다.
얼음 계곡 물가에 처박혔던 한 시절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 아홉 처녀가 머리채 끌려가며 불렀던
산동애가 아직도 사무치고
산수유 꽃담길 따라 불어오는
대숲 바람소리에 또 한 세월이 그렇게 갔다
해마다 온 산에 산수유 진달래 피어
어둑새벽 지리산 산허리에 등불을 켜고
맨 처음 산으로 가던 사내들이 살던
구례 산동
노랗게 가슴 부푼 이 환장할 봄.
-<산동> 부분 『사람의 깊이, 18호』
지리산을 에돌아가는 길목에 산동이 있다. 길목이란 요지 중의 요지란 뜻한다. 지리산이 그랬고 지리산 자락에 붙어 ‘산동’이란 이름을 달았던 것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리산에 붙어있는 산동이란 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내색 않는 봄은 해마다 이유를 묻지 않고 그렇게 길목을 찾아들어 화신을 전하고는 스스로 이울어진다. 그래서일까? 길목을 들여다보면 아물지 못한 상처투성이다. 봄기운에 시인은 구례 산동 산수유꽃이 흐드러진 돌담길을 따라 걸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지점에서부터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구례 산동 마을/한 날 한 시 할아버지 아버지 당숙 고모/온 동네 떼제사 지내는 산수유 마을"을 보게 된다. 노랗게 핀 산수유 꽃마저도 한 맺힌 영령을 부르는 조등弔燈을 내걸었다. 산수유꽃 흐드러져 이 좋은 봄날에 "만복대 넘어 지리산 들어간 사람/끝내 오지 않"아 떼제사를 지낸다는 산수유마을에서다. 1948년 여순 사건으로 지리산에 입산한 좌익 계열의 군인에 대한 군경 토벌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아물지 못한 상처를 본 것이다.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거나 부역자란 딱지가 붙은 사람들은 한 동네에 살던 친인척이었으니 말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 꿈꾸던 세상도 오지 않"았고 오히려 사랑하는 오빠를 대신해 "열 아홉 처녀가 머리채 끌려가"며 불렀다던 "산동애가 아직도 사무치"는 그 땅을 걸을 수가 없다. 지금도 봄마다 시인은 산수유꽃 봉오리 앞에서 그 영령들을 위한 눈물을 떨구는지 모른다. 이제는 사람 살만한 세상 정말 이뤘다고 영령께 고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못내 죄스럽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 없다. 매번 찾아오는 봄처럼 화엄 세상은 지리산 중턱을 올라서고 있다. 중턱에서 멀리 아래를 굽어보면 실개천처럼 보이는 섬진강을 에돌아 나가 그 끝 너머에 있다는 와온은 놀빛 물드는 바다와 살을 맞대고 있다.
화양리 가는 길
와온 포구를 지나다가
문득 가난한 시인 그대를 생각했다
하동 송림과 섬진강을 노래하고
빗점골 너덜 골짜기 한 사내의 죽음을
애통해 하던 지리산 시인을 생각한다
와온 노을의 아름다움에 그냥 취해서
돌아돌아 그대의 안부를 물었을 때
돌연 그대의 부음을 들었었다
바다 건너 고흥 팔영산도 무정하고
순천만 똥섬의 쇠기러기도 풀이 죽었다
그때는 먼저 간 그대가 죽도록 미웠지만
이제는 그대 이별의 속뜻을 알 것만 같다
젊은 날 혁명을 꿈꾸었으나
세상과 불화해서 시 몇 편 남기고
끝내 불우하게 살았던 가난한 시인,
그대의 부음을 들었던 그 자리
노을 지는 와온 포구에 와서
산진달래 좋아하던 그대를 생각한다
병든 시인은 떠나고 세상은 모로 가도
와온의 노을은 그대의 삶 마냥
붉고 처연하다.
-<와온 지나는 길에> 전문 『사람의 깊이, 15호』
순천만에서 와온은 바다를 향한 물길을 따라 나갔다가 뭍으로 들어오는 뻘밭 위로 수평선과 지평선을 같이 보여준다. 누구나 그런 바다를 보러 찾아간다는 와온 바다. 바다로 나간 파도가 찾아드는 귀향지 와온을 시인은 찾아갔을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 와온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세세히 받아 적어 먼 훗날의 역사적인 연대기를 기록하고 있다. 슬프나 기쁘거나 사람 사는 것이 다르지 않듯 살풀이굿처럼 독백으로 풀어내는 파도의 넋두리는 뻘처럼 회색빛을 띤다. 그 회색빛을 담지 못한 나종영 시인의 문학적 근원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애틋한 남녀 간 사랑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떠난 사람을 못 잊어 힘들어하고 떠날 사람을 붙잡느라 힘든 사랑을 놓지 않는다. 시인의 와온 행은 수시로 이뤄진다. 세상이 수상할 때도 찾아가고 세상의 변화를 갈망할 때도 찾아간다. 매번 사랑의 사유는 끝이 없어 수시로 호명하여 가슴으로 말을 건다. 그날도 역사의 어둠을 가로질러오다 먼저 고인이 되어버린 정규화 시인의 혼백을 불러 못다 이룬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그렇게 와온 길을 따라가며 속내를 풀어낸 시인도 기어이 와온 바다를 건너는 놀빛은 떨칠 수 없어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 사람을 사랑한 우리 시대의 시인이자 마지막 휴머니스트의 못다 한 사랑을 염원하는 주문은 신들린 듯 끝이 없다. 『사람의 깊이, 15호』에 실린 <와온에 와서> “노을이 저문 와온 마을에/푸른 새벽이 오기를 기도하고/널배를 밀며 지쳐 돌아오는 아낙에게도/자잘한 일상의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하고/다시 식구들이 돌아와 도란도란/저녁 밥상을 맞을 수 있기를 침묵으로 기도하”는 나종영 시인을 떠올린다면 와온의 ‘사랑’을 제대로 배우고 가는 것이다.
첫댓글 좋네좋아. 자네는 역시 말이 많은 사람이여. 이렇게 할 말이 어디에 다 들어있다가 풀어내는가?
ㅎㅎ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새삼스럽네 고마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