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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시선으로 고전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고전문학 작품들 가운데 사회적 소수자들을 다룬 작품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예컨대 이른바 ‘영웅소설’의 주인공으로서의 ‘홍길동’이 아닌, 양반인 홍판서의 천첩 소생의 서얼로서의 그의 신분에 주목하는 식이다. 소수자란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위치한 사회적 관계에서 권력이나 기득권을 지니지 못한 이들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남성중심의 제도와 신분제로 운영되던 조선시대에는 여성은 남성에 대해서 사회적 약자로 존재했었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는 기생이나 거지, 그리고 과부와 내시 등은 당시에 사회적으로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수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천민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신체적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우리의 고전문학 작품 속에서 찾아내, ‘소수자의 시각으로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문학 작품을 새롭게 읽는다면, ‘그간 안 보이던 작품의 의미가 더 풍부하게 포착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10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어렵지 않은 문체로 서술된 각각의 항목들은 모두 저자가 청소년 잡지 등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의 작자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소수자의 처지였을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당대 사회의 소수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형상화했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유배간 곳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기녀와 아전들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을 한시에 담아낸 김려의 작품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동아시아를 휩쓸었던 임진왜란의 와중에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졌다가 다시 만난 사연을 기록한 조위한의 <최척전> 역시, 당대 민중들의 힘겨운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동안 조선시대 열녀의 전형으로 칭송되었던 경상도 선산 지역의 ‘향랑’의 삶을 추적하고, 이를 ‘시골 아낙 열녀 만들기’로 이용했던 당대 지배층들의 의도를 논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산유화가>의 주인공이기도 한 ‘향랑’은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왔으나, 개가를 권유하는 친정과 시집 어른들에 맞서 강물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다. 시부모들까지도 개가를 권유할 정도로 남편의 폭력이 극심했지만, 여성으로서 이를 헤쳐갈 방도가 마땅치 않아 택한 것이 결국 강물에 뛰어드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후대의 유학자들은 ‘향랑’을 열녀로 추켜세우는데, 이러한 현상에는 그녀를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선산 지방 선비들의 위기의식’을 헤쳐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작품을 분석하면서, 당대 지배 계층의 ‘열녀 만들기가 세력을 잃은 영남 지방 선비들의 위기의식과 그 위기를 여성의 희생을 통해 돌파해 보려는 일그러진 권력욕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각 지방에 산재한 열녀문과 효자비 등은 조선시대 지역 유지들의 권력욕을 충족하기 위해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물론 그 주인공들인 ‘효자’나 ‘열녀’의 행위나 의도는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이를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이용하는 권력 집단의 그르지 못한 의도가 숨겨있다는 것만은 주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당연시 받아들였던 고전문학 작품들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고, 이를 통해서 작품을 재인식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실상 이러한 시각은 비단 고전문학 작품들을 해석하는 것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작품의 이해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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