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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의 <대한계년사>의 번역본은 9권으로 마무리되는데, 여기에서는 1908년부터 ‘경술국치’로 인해 국권을 상실한 1910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일제의 강압적인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국권을 침탈당하는 과정이 매우 적실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1908년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며, 국권을 침탈당하기 직전인 1910년의 기록도 그리 풍부한 편은 아니라 하겠다. 1908년의 기록들은 대체적으로 대한제국 시기의 행정에 관한 내용들은 관보 등의 자료를 통하여 소개하는 것에 할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제의 주구 노릇을 하던 ‘스티븐슨의 암살 사건’은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주지하듯이 전명운과 장인환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대한제국의 수탈에 앞장섰던 미국인 스티븐슨을 암살하는 거사를 치르게 된다. 국내에서는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해 항일에 대한 저항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양상을 보였던 상황에서, 미국에서 발생한 두 사람의 거사는 당시로서는 매우 주목할만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정교는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전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해 11월에는 청나라의 황제가 사망하는데, 그 소식을 전하면서 신해혁명까지의 중국 역사를 개관하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국권 침탈 직전인 1909년의 기록들 역시 일본의 침탈 과정과 친일세력들의 행각,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움직임 등에 관한 내용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다만 그해 10월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거사와 그 이후 재판 과정 등이 방대한 자료를 활용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당시 국내의 친일세력들은 안중근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고, 오히려 이토 히로부미의 조문과 동상 건립 운동 등 친일적인 행태를 자행하였다. 이를 기화로 그들은 경쟁적으로 친일 대열에 뛰어들었고, 일진회는 이른바 ‘한일합방론’을 주장하는 성명서와 상소문을 올리는데 열을 올렸다고 한다. 이에 대한 민중들의 규탄도 더욱 빗발치듯 쏟아졌는데, 그해 12월에는 이완용을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1910년에 들어서도 일진회를 비롯한 친일세력을 규탄하는 각계의 움직임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이에 맞서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에 맞서 친일세력들의 활동도 더욱 노골화되었고, 이른바 ‘합방’을 서두르려는 일제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의해 마침내 8월 29일 ‘경술국치’의 치욕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정교의 <대한계년사>의 기록은 여기에서 멈춘다. 아마도 국치로 인해 더이상 ‘대한’이라 부를 수 없기에, 역사의 기록을 멈춘 것이라 이해된다. 이 책의 저자인 정교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충분치 않지만, 자신이 겪은 시대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자세는 충분히 본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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