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주말 드라마 ‘SKY캐슬’이 화제다. 유럽의 성채를 닮은 그들만의 공간에 모여 사는 학부모들의 공통된 꿈은 자식을 최고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 한서진의 지상 목표는 딸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시아버지와 남편의 안락하고 품위 있는 삶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서진은 ‘악마와의 거래’도 서슴지 않는다. 자식의 인성이 비뚤어지고, 비행을 저질러도 눈을 감는다.
미안한 얘기지만, 서울대 의대 합격이 안온한 삶을 보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하버드 의대나 존스홉킨스 의대를 나와도 인공지능(AI) 의사와 경쟁하고 협력하는 시대가 됐다. 모든 의학 지식과 정보, 최신 임상 사례와 연구 결과를 섭렵한 AI 의사가 진단·처방·투약·시술에서 인간을 능가할 날이 머지않았다. 자식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한서진은 딸을 의사보다 AI나 바이오 전문가로 키우는 게 낫다.
자신보다 나은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대다수 학부모의 꿈이었다. 그 일념으로 한국의 학부모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녀 교육에 올인했다. 그 결과 가끔 개천에서 용도 나오고,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를 이기기 힘들다. 눈치 빠른 학부모들은 자기 정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눈높이를 낮췄지만, 그마저도 힘든 세상이 됐다. 2016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생활 형편이 부모 세대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는 한국인은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퓨리서치 조사에서 자녀의 삶이 자신의 삶보다 좋아질 거란 응답은 미국 33%, 영국 23%, 프랑스와 일본은 15%에 그쳤다. 대학을 나와도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현실도 다르지 않다. ‘노란 조끼’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프랑스의 청년실업률은 25%에 달한다. 한국(10%)보다 훨씬 높다. 힘겹게 취업해도 임시직이나 파트타임이 대부분이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지난달 출간한 『개척하는 지성』에서 최근 실업이 늘어나는 근본적 이유는 ‘구조화된 노동’이 ‘개인화된 노동’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용이라는 20세기의 구조화된 노동은 급속히 줄어들고,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개인화된 노동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장기 채용 방식인 고용은 사라지고, 다양한 형태의 단기 계약에 의해 유연하게 일자리를 이동하는 방식이 21세기 노동시장의 ‘뉴노멀’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공감과 협업 능력, 인성이 학벌보다 훨씬 중요해진다고 강조한다. 공부만 잘하는 ‘SKY캐슬’ 출신 ‘괴물’이 환영받긴 어렵다는 얘기다.
‘증권계의 미래학자’로 잘 알려진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이 최신 저서 『수축사회』에서 제시한 전망은 더 암울하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전 세계가 팽창사회에서 수축사회로 넘어가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 속에 생산성의 획기적 증대에 따른 공급과잉이 상시화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여기에 사상 최고 수준의 부채와 양극화가 겹치면서 더는 성장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정부가 돈을 풀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로 펌프질을 해도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난망하다는 지적이다.
올 한 해 우리 사회는 소득주도 성장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를 통해 소비를 진작하고, 양극화를 완화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쓰러지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실을 목도했다. 성장세 회복과 일자리 창출이 근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엉뚱한 데 힘을 쓰다 정책은 정책대로 실패하고, 욕은 욕대로 먹은 꼴이다.
정부와 기업, 개인 모두 팽창사회의 미망(迷妄)에서 깨어나 근본적으로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부는 준법, 투명성, 신뢰, 양보와 타협 등 사회적 자본을 확충함으로써 수축 국면에서 불가피한 사회적 갈등을 조절하고 완화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홍 전 사장은 말한다.
행복에 대한 개인의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고 욕망에 반비례한다는 것이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제시한 행복 방정식이다. 분자인 소유를 늘리는 것이 팽창사회의 행복 추구 방식이었다면 수축사회에서는 분모인 욕망을 조절해 행복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다. 변화의 싹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시인의 빛은 그림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삼라만상. 그 모든 속에서 빛을 뽑아내 그것을 시로 노래해 온 시인 김요섭. 그의 커다란 눈은 확대경이 되어 보이지 않는 환상의 세계까지 놓치지 않았다.
아동 문학의 거장! 그것은 시인의 또 다른 이름이었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세상의 빛을 놓치지 않는 그 이유이기도 했다
동화작가라는 시인의 또 다른 명함 때문이었을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시인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 여느 시인들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날 시인은 우울해 있었다.
평소 때와 다름없이 배달돼 온 한 권의 잡지. 그 잡지 표지 얼굴로 바로 며칠 전 부고 통고를 받은 후배시인 박재삼이 웃는 낯으로 등장해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홀로 버리는 것이야 누구나 마찬가지겠으나, ‘시인이기에 살아생전의 삶도 많이 고독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잠시 말문을 닫는 시인.
김요섭 : 시를 쓰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고독이죠. 연애하다 실연하는 것도 고독이지만은 그러나 그런 고독이 아닌 참된 마음속의 고독이 있을 겁니다. 그 고독을 견뎌 내야지요.
시인의 고독은 곧 자산이다. 그리고 그 자산의 가치는 시인의 저서가 대신 말해준다. 그 고독을 자산으로 승화시키며 살아온 시인의 인생. 그 50년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본다. 시인의 손끝에서 그 긴 세월의 고독이 잠깐 사이에 일렬로 늘어섰다.
QUESTION : 그동안 발표한 책은 총 몇 권이나 되십니까?
김요섭 : 한 50권 됩니다. 번역을 합하면 한 100권 정도 되는데 그건 넣지 않고, 내 직접 창작을 한 것만 한 50권.
QUESTION : 쌓아놓은 책의 높이가 거의 선생님 키하고 비슷한데.
김요섭 : 어깨까지는 왔는데, 내 키까지 왔으면 좋았을 텐데.
어깨 높이만큼의 책들. 시인의 인생이 바로 그 속에 있었다. 50여 권의 저서들 속에 담긴 시인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시인이 추구해 온 그 빛은 또 무엇일까?
김요섭의 시는 동화적이다. 그것은 ‘빛의 시인’으로 불리는 그가 아이들도 빛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어둠의 세상을 노래했고 동화적 상상력으로 과학의 우주를 노래해 온 시인이 바로 그다.
아이들이 김요섭 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준 만큼 그도 그 아이들을 위한 글을 꾸준히 써왔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봄비’도 그의 글에 곡을 붙인 것이다.
여러 장르를 동시에 추구해온 것이 시인으로서의 삶에는 그다지 도움이 못 됐을 수도 있다. 그에 대한 재평가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를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소년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붓 가는대로 동심이 가는 대로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이 그의 시에 그대로 담겨난다.
하나님의 시계 1
황금의 태양이
내리 비춘다
사막의 시계가 녹아 버렸다
여름 생선처럼 녹아버린 시계
개미떼들의 습격
사막의 시계를 파먹는다
조용히 살해 된 시간의 뼈다귀
시간의 뼈다귀를
피리로 만들어 부는
사막에서 헤매이는
어린 왕자
너는 하나님의 시계 소리
민희식 문학평론가·한양대 불문과 교수 : 우리가 사회적으로 보면 출세하고 이름나고 그런 것을 갈망하고 서로 경쟁하고 그런 세계가 일반적인데, 유명해진다든가 돈을 번다든가, 그런데 김요섭 선생님의 시는 그런 거보다는 마음의 평화, 마음의 평화를 찾는 건데 불란서 사람들이 왜 김요섭 시를 좋아하느냐면 그 뭔가 마음이 편안해 진다는 거죠. 빛을 통해서.
어떤 투쟁 시가 아니고 그래서 그 시가 섬세한 빛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을 무한히 편안하게 해준다는 평이죠. 그런 면에서 우리가 그분의 시를 평가해야 되는데 그런 평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역시집 『자오선(MERIDENS)』 (1982)
의 편집자인 모리나 박사는 시집 서문에서 김요섭 시에 대해 이런 화려한 평을 하고 있다. “그의 시는 언제나 밝은 빛과 어두운 빛이 대조적으로 나타나 그 두 빛이 다스려지며 조화를 이루어 은빛으로 변하곤 한다.” 시인 김요섭은 그 은빛을 우주로까지 확대시켜 나가는 무궁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준다.
은하에서 죽는 시인
언어의 탑이 높이 솟은
바벨탑에 갇힌 그림자
흙이 그립다
흙을 씹고 싶다
흰 손길을 드니
은하에 목숨이 적셔진다
땅은 사어(死語)의 거류(巨流)
내가 켜놓은 시의 촛불이 꺼진다
별들이 자꼬만 죽는다
흙에다 켜둘 시
언어의 죽음과 함께 절명(絶命)한다
높은 바벨탑에 갇힌 짙은 그림자
별만 씹고 살다
이제 체온이 식어가는
시인의 가슴은 흑장미
검은 별의 이야기와 함께
나는 은하에서 죽는다
흙을 씹고 싶어하는
따뜻한 언어가 은하에서
나와 함께 죽는다
시인은 그동안 추구해 온 온갖 빛을 한데 모은 한 권의 시선집을 발표한다. 시집 서문에서 시인은 그가 최초로 만난 빛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 구름을 고갯마루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옛 이야기 속에서 자주 들은, 호랑이가 지나가던 길손에게서 담뱃불을 빌어 곰방대에 불이 붙고 한가롭게 뿜는 담배 연기로 생각했다. 이제 더 시를 쓴다면 호랑이가 담배를 피워 물던 날의 시를 쓰고 싶다. 또 칠순의 고갯마루에서 글자가 쓰여지기 이전의 흰 종이와 같은 시를 구상한다.
이것이 내가 만난 최초의 빛인지도 모르겠다.”
김요섭 : 어렸을 때 그 글짓기 시간에 선생이 시를 써내라고 종이를 배부했어요. 그때 뭐 누런 종이를 다 나눠줬을 텐데, 그런데 그 종이가 누런 그런 종이가 아니고, 지금 내 기억이 그렇거든. 아주 순백의……, 아름다운 종이로 지금 내 이미지로 남아있단 말이오. 이미지로 일생에 남아 있어요. 그런 것을 내가 어디 서문에 썼을 겁니다. 그리고 내가 시를 쓰고 싶다면 흰 종이에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상태로……
시인은 요즘 거의 앞을 보지 못한다. 당뇨에서 온 망막증이 그의 시력을 앗아간 때문이다. 그래서 책도 누군가 대신 읽어 주어야 한다.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하는 시인에겐 더 없이 가혹한 형벌일 것도 같은데……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읽어주는 책을 듣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가 동화적 심성을 가진 시인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미 눈앞의 세상이 사라져 버린 몇 번의 환상이 그에게 있었다.
김요섭 : 새벽에 일어나니까 눈을 떠보니 잘 보이지 않아요. 캄캄한 게. 밤중에 불을 안 켰더라도 조금은 보이는데 보이지 않더라 말이오. 내 어렸을 때부터도 겪었던 일이거든요. 어렸을 때 여름날 밤 깊이 잠들었다가 집 안은 컴컴한데 부모님들은 다 바깥에 나가고 밖에서 웅얼웅얼 사람들 얘기하는 소리만 들리고, 깨어나니까 사람들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캄캄해요.
그래 어렸을 때부터 문학 같은 걸 생각하게 돼서 그런지 자기가 무슨 주검 속에 갇혀 있는 이런 의식을 어렸을 때부터 잠시 가져본 적이 있습니다.
햅쌀
이슬을 위하여
서리를 위하여
들꽃을 위하여
가을바람은 불어서
가을에 부는 남녘바람은 불어서
햇빛을 깨뜨리고 나와 있는
햅쌀
마을은 금빛의 도리깨질을 했다
세상이 잠시 눈앞에서 사라진 그 이상으로 참으로 암담하던 시절이 있었다. 연거푸 중학교 시험에 낙방한 것이다. 수치심과 좌절감에 두문불출…… 소설, 시, 희곡, 평론, 동화 닥치는대로 글을 써댔다. 그리고 마침내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 그래서 시인 김요섭이 열네 살 때 그렇게 시작될 수 있었다.
해방이 되고 그의 고향에도 공산주의자들이 날뛰었다. 무정부주의 사회 속에서만 예술이 양성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무작정 내려온 이남 땅 대구에선 잠시 펜을 놓고 노동운동을 한 이력도 있다.
김요섭 : 그때…… 그때가 20대였거든요. 20대. 지금 생각하면 시건방진 시대죠. 자기밖에 모를 때니까. 그때 난 유일하게 나만 평화주의자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전쟁은 무시하고, 그것은 표면상의 이유이고, 에, 사실은 그때 병역기피자였거든요. 병역기피자. 전쟁에 가기 싫었겠지요.
시 「체중」의 한 구절에 그가 겪은 한국전쟁과 젊은 시인의 고뇌가 이렇게 시화되어 있었다.
48킬로의 인간이
체중기 위에 올라섰다
군경관의 찡그리는 표정을 피해
바라보는 빈 하늘
자꾸 가벼워지는 육체
끝끝내 무거운 내 정신의 중량을
달 수 있는 체중기 위에
전쟁과 내가 얹혀져 있다
이렇듯 초창기까지만 해도 그의 시에는 동화적이기보다는 즉시적이고 관념적인 시들이 많았다.
그 무렵 발표된 이 시에서도 당시 그의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국어의 주인
돌은 한국의 향기를 뿜고
아침은 한국의 김을 피우고
하늘은 한국의 침묵을 닮고
얼굴은 한국의 시름에 번쩍이고
나무는 한국의 울음을 울고
꽃이름 제대로 달아보지 못한 국어
지금은 열무김치 맛이 들 무렵
네 이빨은 푸르다
가난한 새여
가난한 새여
알파벳처럼 날아라
아무리 한국말로 꽃을 불러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김요섭 : 어머니의 젖이 ‘제1의 젖’이라면 국어야말로 ‘제2의 젖’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젖으로. 뭐 어떤 이론으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문제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우리 안에 우리의 살, 피, 뼈와 같이 형성되어 있는 아주 소중한 생명체라고 생각하지요.
소주론
소주는 서울에서 제일 사나이다운 잘난 사람들의 국어다
진눈깨비 내리는 저녁에는 소주를 파는 집에 가자
두부찌개 명태들이 바다를 밀고가는 물결소리
빈대떡 균일 몇십원짜리 불티들
모두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들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마다 올라가는
도깨비들처럼 올라가는 빌딩 밑
소주집은 강한 침묵이 잎사귀를 피운 수풀
소주는 서울에게 제일 사나이다운 잘난 사람들의 국어다
왕성하고 능동적인 대외 활동도 시인으로서의 삶의 일부라고 그는 생각했다.
1979년 제4차 세계시인대회 사무총장을 끝으로 지금까지 줄곧 작품 활동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시인. 그가 보내준 한 장의 사진 속에 정치가이자 또한 시인이기도 한 그의 아내 모습이 있었다.
<죽순>이라는 시 잡지에서 시인 부부는 처음 만났다. 1949년 7월호에 그 두 시인의 시가 나란히 실렸던 것이다. 결국 시가 부부의 연을 맺게 해 준 셈이었다.
이영희, 아동문학가· 김요섭 부인 : 작가 부부의 경우에 상당히 장점도 있지만 마이너스되는 점도 많다고 생각해요. 서로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에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서로 영향을 받게 돼 있어요. 그게 좋은 점도 있지만은 작가의 경우에는 자기 목소리를 가져야 될, 자기 확고한 작품 세계를 가져야 할 작가의 경우에는 그것이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부부가 작가일 경우에는 확실하게 독립채산제여야 한다 하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서로 간섭을 안 하니까 오히려 우리 경우에는 서로 간섭 안 하고 자기 일을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그런 점이 저한테는 굉장히 도움이 됐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시 「대장간」
나무 한 단 값
쓰디쓴 얘기들은 오너라
한 손에 봄나물 들고
대장간은
고운 불이 살고 있는지
향기로운 불이 살고 있는지
시인의 서재엔 낮에도 불이 켜져 있다. 시력을 잃은 후부터였다. 그리고 그 시인이 아파트 베란다로 자주 나가는 것도 또한 그 이후부터였다. 어릴 적 누런 원고지에서 최초의 빛을 느꼈다면 지금은 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가장 분명한 빛을 느낀다. 그의 시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빛들. 시인에게 그 빛은 무엇이며 어떤 마음으로 그 빛들을 노래했을까?
김요섭 : 내 시 속에서 추구하는 건 그러니까 빛을 추구한다. 빛과의 관계를 자꾸 추적해 간다. 해서 밝은 빛, 이런 것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밝은 빛과 대치되는 어둠, 응?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것, 그것도 내 시 작업의 한 부분입니다.
梅花
흰 눈이 무겁다
瞬間이 터지는 소리
梅花나무 속에서 터지는 소리
흰 눈이 무겁다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이
두 손으로 받은 햇빛처럼
죽음에 취한 대지 안쪽에서
銀빛 불덩어리로 피어난 뿌리
바람이 나뭇가지에 靜止된 채
한 瞬間이 터진다
梅花나무 속의 時間
시인의 시작노트는 스케치북이다. 역시 시력 탓이다. 큰 글씨로 써야 한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아 연필을 사용한다.
희미한 시력을 겨우 가다듬어 지난 1994년 시인은 그의 열세 번째 시집을 발표했다. 애초의 제목이 ‘빈 술통’이었다는 그 시집. 하지만 『63억 광년을 산 이슬』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달고 발표한다.
시집 서문을 보면 시인이 이 특이한 제목을 쓴 이유가 짐작이 갈 법도 하다.
“새에게는 날개가 있다. 인간에게도 날개가 있다. 이 우주에는 빛보다 빠른 존재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과학자들의 말이다. 빛보다 빠른 존재가 있다. 바로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이미지의 세계다. 인간은 빛과 같이 빠른 로켓을 타고 일생 동안 달려도 은하계를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러나 이미지의 세계는 한순간 150광년을 달릴 수 있다.”
시인은 이미지를 인간의 날개라고 말하고 있다.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어 선생께 당신의 시「풀빛」를 읽어 드렸다.
“풀 만큼 … 이 세상에 넉넉한 것은… 우주밭의 별들이다… 한 포기 풀마다 고여 있는 빛… 풀잎마다 눈부신 흔적이 있다… 몇 억 광년 속… 풀잎의 본적지… 시인은 풀밭을 걷는다… 새벽에… 시인은 별밭을 걷는다… 새벽에… 땅에서는 풀 농사를 짓고… 우주 밭에서는 별 농사를 짓고… 여생의 하루하루는… 풀빛… 아버지의 돋보기가 늘 끼어있는… 성경책 속… 천지 창조… 그날 아침에 돋아난 풀… 우주밭의 추수를 향해 … 파이프 오르간을 울리는 풀밭 농사꾼들의……”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 우리 문단에 어떤 장르에 대한 벽은 없습니다. 그분이 동화작가로 출발하셨기 때문에 시인이라기보다도 동화작가로 더 깊이 사람들한테 인상지어졌기 때문에 시인으로서 그분의 작업에 대한 평가가 조금 인색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시를 보면 어떤 우주적 상상력, 우주적 몽상에서 출발한 그 활달하고 거침없는 시세계, 그것은 아마도 더 그분의 시세계에 대해서 본격적인 어떤 연구와 평가작업이 있어야 되리라고 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면서 세계 유명 작가들의 연보를 살펴보고 있다는 시인. 그들이 그의 나이쯤에 어떤 작품들을 남겼을까 그것이 궁금했다고 한다. 기력이 떨어지면서 창작력도 따라서 주춤한 것이 못내 불안했던 것일까!
지난 작품들을 다시 읽고 그것들을 조금씩 개작하는 일. 시인이 요즘 새로 시작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시들을 조심스럽게 모으고 다듬고 정리하는 것 또한 시를 세상에 남겨놓은 시인의 글이며 책임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김요섭 : 표피적으로 나침반의 북쪽은 내 고향이 북쪽이지만, 좀 더 깊은 내 생각은 내 마지막 삶을 자기 목표와 다른 길로 흩어져 나가지 않는가. 오로지 내 방향을 향해서 줄달음치고 있는가. 그 방향을 분명히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생각하죠.
시인과 함께 분당중앙공원엘 갔다. 시인은 말씀이 없으시다. 다리 난간에 손을 잡고 분수대만 바라본다.
김요섭. 그만큼 평생을 일관되게 소년의 마음으로 시를 써온 이가 또 있을까. 그에게서 빛이 더 멀어지기 전에 아동문학가가 아닌, 시인 김요섭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뤄지길 기대하며 그의 시로서 글을 맺는다.
“시여… 기운을 내라… 나의 시여… 무지개로 꼰 밧줄이 되어… 지구를… 그리고 서슴없이… 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라… 흙으로 무너져라… 무로 사라져 버려라… .”
김요섭은?
1927년 4월 6일 함북 나남 태생. 청진 교원대를 졸업하였다.
1957년 마해송(馬海松), 강소천(姜小泉) 등과 함께 한국동화작가협회 결성에 앞장섰고, 1970년에는 계간『아동문학사상』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문학예술 편집장,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 펜클럽 중앙위원, 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 및 부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제1회 소천아동문학상(1965), 5월문예상(1968),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78), 한국시인협회상(1981), 서울시문화상(1986) 등을 수상하였다. 1941년 동화 「고개 너머 선생」이 『매일신보』에 입선한 것을 계기로 문단 활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1947년 자작시 「바닷가」가 추천됨으로써 정식으로 등단하였다.
『체중』(1954), 『달과 기계』(1965), 『국어의 주인』(1970), 『빛과의 관계』(1973), 『얼굴이 없는 얼굴』(1976), 『달을 몰고 달리는 진흙의 거인』(1977), 『은빛의 신』(1980), 『검은 시간이 무덤을 파고』(1983), 『빛의 뿌리』(1989) 등의 시집과 『따뜻한 밤』(1958), 『깊은 밤 별들이 울리는 종』(1959), 『신이 만든 시골』(1978) 등의 동화집, 그리고 『현대시의 우주』(1985) 등의 평론집을 발간했다. 『죽순』,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대부터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에 나선 그는 동양적인 토속성을 정서적 기반으로 하면서도 초현실주의 기법을 변용하여 전통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시풍은 초기시에서 보여주었던 과감한 언어해체와 이미지의 실험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안정된 내성과 관조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변화되는데, 그러면서도 실험성을 포기하거나 쉽게 기교에 흐르지 않는다. 우주적 상상력을 중심에 둔 김요섭의 시 세계는 언어의 실험과 이미지의 해체 과정에서 독자적인 상상세계를 형성하여 그만의 독특한 시학을 형성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요섭 [金耀燮]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17. 12)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