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와 사과, 용서와 화해(이금규)
-이금규 변호사(2023년 3월 8일)
진도가 고향인 친구의 아버지
10년도 전 이웃에게 빌려준 돈 아직도 못 받아 지금도 속상해하시는
아버지 보기가 짠하여 내게 무슨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
공소시효 그 10년이 다 지나기 전에 변제기 유예한 채무변제각서 한 장 있어 대법원 판례 따라 거짓말로 변제기를 유예받은 것도 사기죄가 된다고 고소했건만 검사는 친구 아버지 돈 떼먹은 그 사람 한 번도 부르지도 않고 왜 돈 안 갚느냐고 추궁 한 번 함이 없이 무혐의 처분했다.
'혐의없음'이라고 쓰고 그 옆에 괄호 열고 '증거불충분'이라고 분명히 씌어있건만 돈 떼먹은 그 이웃은 결백하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 빳빳이 들고, 친구 아버지는 죄인처럼 동네 고샅에서라도 그 사람 마주치기가 무섭다.
그냥 잊고 살고 싶었으나 한 동네서 오다가다 얼굴 보고 나보다 호의호식하는 그 사람 볼 때마다 피 같은 돈 적금 깨서 빌려준 그 돈 아깝고
무엇보다 내가 못나서 당한 것이라는 자괴감에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아
소송도 해보고 돈 받아준다는 업체에 돈 줘 가면서 맡겨도 봤지만 군의원 출마도 하고 좋은 차도 타고 다녀도 재산은 꽁꽁 숨겨놨는지 찾을 길 없어.
한 동네 이웃을 경찰에 고소하기 차마 민망하고 주겠지주겠지 기다린 세월이 10년이 넘어 이제야 고소했건만 무혐의라는 면죄부.
친구 아버지는 이제는 고소한 것조차 바보같은 짓이었다며 자괴감과 후회 속에 어찌해 볼 수 없는 못난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 사람 단 한 번이라도 미안하다 갚아야 하고 갚을 것이지만 아직은 돈이 없다. 아니 그마저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오다가다 마주치면 고개 숙이며 미안한 표정이라도 지었으면 이토록 속상하지는 않았으리라.
괜찮다, 그 돈 없어도 나는 사니 다시 재기하시라. 내 돈은 그때 갚아도 되고 못 갚아도 나는 괜찮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라면 염치라는 게 있고, 염치가 있다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 것이다.
'용서'
용이라는 글자는 품어 안는다 포용한다는 뜻일 테고
서. 같을 여자 밑에 마음심. 너와 같은 마음이란 뜻이려니
너와 같은 마음으로 품고 포용하는 것이 '용서'란 말의 의미가 아닌가.
가해자의 진정 어린 사과가 있어야 피해자도 가해자의 마음과 하나 되어
품고 포용할 수 있는 것.
염치 있는 사람의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가 있으면 그 마음에 동화되어 그 사람을 품어 용서하게 되고, 그래서 피해자의 아픔도 치유되고 가해자의 죄의식도 덜어져서 화해가 이루어지고 다시 그전처럼 다정한 이웃이 되는 것.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친구 아버지의 돈 떼먹고도 사과는 고사하고 무혐의 받았다며 더 뻔뻔해지고, 반대로 오히려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소침해진 친구 아버지를 보며
염치와 사과, 용서와 화해라는 만고의 진리 착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공식 같은 삶과 사람에 대한 자세와 태도가 아쉽고 서럽고 분하다.
일본의 강제징용은 역사적 사실이고 가해자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그 마음 받아들여 포용하고 용서하여 화해가 이루어지고, 그러면 일본과 우리는 다시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틀렸는가?
잘못인가?
독일은 되고 일본은 안 되는 것은 우리 탓인가, 일본 탓인가.
학교폭력 가해자라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옳은가 피해자를 탓하고
변명하고 소송하고 숨기고 시간 끌기가 옳은가.
일본의 태도가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겠는가? 새삼스럽지도 않다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사람이 자기자식의 학교폭력을 대하는 태도는 놀랍고 기막히다.
그러나 내가 정작 두려운 것은 진도가 고향인 내 친구의 아버지의 돈 떼먹은 그 사람의 태도이다.
염치와 사과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 뻔뻔해지고, 우기고 버티고 시간 끄는 사람들의 성정이 그냥 보통사람들의 태도조차 변하게 하는듯하여 나는 그것이 더 두렵다.
나와 내 이웃의 착한 믿음이 깨지고 사과와 용서라는 단순한 순서와 진리조차 지킬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은 아닌지 그것이 두렵다.
종종 뉴스에 나오는 무관용의 원칙이라는 말이 나는 거북하다.
무조건 엄벌하겠다는 무관용이 어떻게 원칙이 될수 있는 것인지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가해자 죄 있는 자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고 사과함이 없다면
그자를 용서하기는 힘들 것이며 상응하는 단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가 있다면 그리하여 피해자로부터 용서받고
또한 그에 합당한 벌을 주고 화해를 존중해야 하리라.
따라서 무관용은 원칙이 될 수 없고 원칙이 되어서도 안 된다.
무관용은 그럴 때 쓰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을 때 용서하지 않는 것.
또한 피해자 아닌 그 누구도 피해자더러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강요하여서는 안 된다. 나약한 피해자에게 그럴 것이 아니라 그럴 힘이 있거든 힘센 가해자를 향해 용기 내어서 사과하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염치를 아는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첫댓글 한숨이 나오네요. 기막혀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