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 주는 전령사들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노릇노릇 눈망울을 터뜨리는 개나리꽃, 침묵의 겨울을 깨고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기 시작하는 실개천의 해빙의 목소리, 코끝으로 흘끗흘끗 맡혀지는 초록색 꽃망울의 아릿한 향기, 꽁꽁 얼었던 대지가 녹으며 피어오르는 흙의 내음··· 또 하나 봄의 전령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초봄의 밤, 밤새도록 산 속에서 고즈녁히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도 우리에게 이미 봄이 와 있음을 알리는 반가운 손님 중 하나일 것입니다. 특히 '恨의 정서'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 한국인에게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많은 시인, 소설가들의 감성을 자극해 왔고,꼭 문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왠지 초봄 저녁에 들리는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우리를 주제 없는 상념에 잠기게도 하고, 또 나이에 관계없이 '태고적 시절'을 향한 막연한 멜랑콜리에 빠지게도 합니다.
가을이 오나 했더니 벌써 밤저녁으로 몸을 잔뜩 움츠리게 하는 싸늘함이 우리의 옷깃을 파고들어 옵니다. 오늘 퇴근길에 '너무 얇게 입고 나왔구나'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추위를 느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지하도 한 귀퉁이에 머리를 숙이고 손 하나를 앞으로 길게 내민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한 소년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그 소년의 모습을 보니, 두 다리와 팔 한 쪽이 없는 '장애자' 걸인이었습니다. 소년의 손앞에 놓여 있는 종이 상자 안에 몇 개 들어있는 10원 짜리, 50원 짜리 동전 몇 개가 더욱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내 주머니를 뒤져 100원 짜리 세 개와, 500원 짜리 동전 한 개를 꺼내어 얼른 그 소년 앞에 놓인 상자에 집어넣었을 때, 갑자기 그 고개 숙여 얼굴도 볼 수 없는 소년의 뒤통수 위에 겹쳐지는 얼굴 하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S 신도시'로 불리는 곳으로, 불과 8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화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던 'S 리'라는 곳은 비교적 늦게까지 우리 고유의 농촌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70년대 초반 그 곳에서 양돈업을 하셨던 관계로 나는 주말이나 방학 때면 언제나 그곳으로 내려가 있곤 했습니다. 70년대, 정부 주도로 '새마을 운동'이라는 농촌 근대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때도, 유독 'S 리' 마을은 볏단으로 지붕을 얹은 초가집들이 여기저기 눈에 띌 만큼, 근대화 작업에 조금은 게으른 동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간혹 그곳을 지나칠 때면 (지금은 아파트 숲으로 변해 버렸지만), 그 당시 그곳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의 편린들이 눈앞에 아련히 떠오르곤 합니다. 가을철, 추수가 끝나고 빈 밭에서 풍겨오던 볏짚 타던 냄새, 하늘이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무리 지어 어디론가 날아가던 참새 떼의 모습, 그리고 집집마다 무쇠 솥에서 피어오르던 구수한 소여물 냄새···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워드 작업이나 하고 인터넷 서핑이나 하며 생활하는 나에게 그와 같은 어린 시절의 '인화지 없는 사진들'은 포근함과 안은함 뿐만 아니라 삶의 활력소를 제공하는 원천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낼 수 있었던 나는 참으로 행운아였다고 생각합니다.
70년대 초 어느 해 겨울, 아버님이 계시던 그 시골에 내려가 지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잠귀가 별로 밝지 않았던 내가 깰 정도로 커다랗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눈이 떠졌습니다. 뭐라고 형언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하고 가느다란 비명 소리같이도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나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아버님을 흔들어 깨우며, "아버지 저게 무슨 소리에요? 귀신 아니에요?"하고 여쭤 봤습니다. 아버님은 눈을 감으신 채, 돌아누우시며 "뻐꾸기 소리란다"라고 대답하시며 다시 주무시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참 무섭게 우는 새도 다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날,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말씀하신 '뻐꾸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약 500미터 떨어져 있는 옥수수 밭 옆에 아주 작은 움막이 하나 있었는데, 볏단과 가마때기로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그런 동물이나 살 법한 거처였습니다. 동네 어른들 말씀으로는 그 해 가을 어느때인가부터 인적이 드문 그곳에 움막이 하나 쳐졌고 그 안에서 '병신 아이' 하나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애는 팔과 다리가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얼굴 근육이 마비되어 말도 못하고, 게다가 저능아로서, 부모에게 버려진 것 같다는 설명도 함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밤만 되면 밤새도록 통증과 추위에 못 이겨 이상한 소리로 운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 바로 '뻐꾸기'였던 것입니다.
그 날 오후, 난 무섭긴 했지만 그 '뻐꾸기'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난 호신용(?)으로 길다란 지게 막대기 하나를 들고 그 움막 쪽으로 향했습니다. 몸을 잔뜩 긴장한 채 살금살금 걸어서 그 움막 가까이에 갔을 때, 그 움막 입구는 시커먼 포대자루가 내려져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내가 감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움막 안에서 나는 '후르륵 후르륵'하는 소리였습니다. 난 큰 용기를 내어 떨리는 목소리로 "뻐꾹아!"하고 그 미지의 인물을 불러 보았습니다. 갑자기 '후르륵'하던 소리가 멈추더군요.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움막 입구의 포대자루가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 빡빡 머리 하나가 포대자루 틈새로 빼꼼이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뻐꾸기'와의 첫 대면이었죠. 얼굴은 찌든 때로 거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고, 입가에는 뭘 먹는 중이었는지 밀가루 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나를 본 '뻐꾸기'는 머리로 움막 입구를 조금 더 쳐들더군요. '뻐꾸기' 앞에는 쭈그러질 때로 쭈그러진 양은 냄비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수제비인지, 퉁퉁 불은 국수인지 같은 것이 들어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나를 보고 '뻐꾸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는데, 화가 난 표정인지, 웃는 표정인지 구분이 안되었습니다. 순간, 눌렀던 공포심이 솟아오르며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있는 힘을 다해 뛰어왔죠. 집안에 들어와서까지도 '뻐꾸기'의 그 무서운 표정(?)이 계속 생각 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더군요. 근데 이상한 것은 그날 저녁 내내 '뻐꾸기'의 그 일그러진 표정이 지워지지가 않는 거였습니다. 오히려 생각하면 할수록 친밀감 같은 것이 느껴지더군요. 이상한 일이었죠.
다음날 점심 무렵, 나는 어머니에게 라면 한 그릇을 끓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뻐꾸기'의 그 양은 냄비 안의 음식이 다 없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어머니는 라면을 끓여 주셨고 나는 그 라면을 밖에 나가 먹는 척 하면서, 지하실에 던져져 있는 못쓰는 그릇 중 하나를 집어 깨끗이 씻은 후, 거기에 라면을 옮겨 담았습니다. 그리고 냄비 뚜껑으로 그 그릇을 덮은 후, '뻐꾸기'의 움막으로 향했습니다. 무서움이 아직도 남아 있었지만, 어제보다는 훨씬 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뻐꾸기'는 그날 움막밖에 나와 있더군요. 새털이 여기저기 새어 나와 있는 군용 담요 같은 것으로 몸을 칭칭 감은 채로 말입니다. '뻐꾸기'는 나를 보자 다시 어제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보더군요. 어제보다는 훨씬 무서움이 덜했습니다. 전 용기 백배하고 그 아이 앞으로 다가가 가져온 라면을 걔 앞에 살그머니 놓고 얼른 뒤로 물러섰죠. 자기 앞에 놓인 라면을 내려다보던 '뻐꾸기'는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마치 개가 음식을 먹듯 입을 그릇에 박고 맹렬한 속도로 먹기 시작하더군요. 난 5-6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고, 5분도 안지나 '뻐꾸기'는 그 그릇을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다 비워버렸습니다. 다음에 또 음식을 가져다주려면 빈 그릇을 가지고 가야 할텐데 팔다리가 하나도 없이 몸통만으로 앉아있는 '뻐꾸기'의 앞으로 다가갈 용기가 도저히 안 생기더군요. 그래서 그릇을 포기한 채 어제처럼 집으로 뛰어가려고 뒤로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을 때 '뻐꾸기'가 저에게 외치는 "그압슴다 (고맙습니다)!"가 소리가 귓전을 울렸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 몰래 찬밥을 몇 번 가져다주었고, 지하실에서 못쓰는 담요를 가져다 '뻐꾸기' 움막 앞에 놓아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마다 전 '뻐꾸기'의 "그압슴다!"하는 소리를 항상 뒤에 두고 달려오곤 했죠. 하지만 밤이 되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끝없는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하루도 빼 놓지 않고 계속 되었습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밤이었습니다. 집밖에서 "찹쌀 떡! 메밀 묵!"하는 소리가 들려 저는 어머니에게 돈을 타서 찹쌀떡을 샀습니다. 전 그 떡을 맛있게 먹으면서 떡 3개를 서랍 속에 숨겨 두었습니다. 내일 '뻐꾸기'에게 가져다 줄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전 어느 새 '뻐꾸기'에게 친구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제게 외치는 "그압슴다!" 소리가 정겨워지기 시작한 거죠. 찹쌀떡을 맛있게 먹을 '뻐꾸기'의 모습을 그리며 그날 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전 일찌감치 찹쌀 떡 3개하고 물 한 그릇을 두 손에 받쳐들고 '뻐꾸기'의 움막으로 향했죠. 그 날 저는 사실 '오늘은 꼭 말 한번 붙여 봐야지!'라고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뻐꾸기'에 대한 무서움이 어느 새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런데 움막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뻐꾸기'의 움막을 헐고 그것을 태우고 있더군요. 그리고 저쪽 나무 아래 가마때기로 덮여있는 조그마한 물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때 한 아주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에그, 불쌍한 것, 부모 잘못 만나서 어린것이 얼마나. . . 쯧쯧!"
그 날밤부터 '뻐꾸기'의 울음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아까 퇴근길에 보았던 그 소년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왠지 올해에는 겨울이 빨리 닥쳐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뻐꾸기'들이 밤새워 울고 있을까요. 가슴이 마냥 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