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다가 똥된다는 말 그대로였다. 딸이 사준 비싼 운동화. 신을 일이 별로 없기도 했고, 눈에 띄인다 싶기도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안신었다. 내 신발 중에서 제일 비싼 운동화였다. 나는 그저 만원 이쪽저쪽인 신발이 좋다. 많이 주어봐야 이만원정도면 그만이었다. 언젠가 효도신발이란게 유행을 했는데 아마도 20년도 더 되었지 싶다. 어머니가 가신지도 20년이 되었으니까. 그 효도신발 가격이 17-8만원이었고, 유사품도 7-8만원은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신발들을 많이들 샀다. 아마 너도나도 샀던것 같은데, 나도 어머니께 한컬래 사다드렸다. 내가 산 신발가격은 얼마였을까? 단돈 만원. 그랬다. 어머니는 그 신발 안신고 내게주고 가셨다. 지지궁상으로 산 나의 아픈 기억중 하나다. 딸이사준 운동화를 아끼고 아끼다가 아이들 발 사이즈가 대충 맞겠다 싶어서 아이들에게 주었다. 큰애는 좋아하지 않는게 들어나 보여서 작은아이에게 사정하다 싶이해서 떠 맞겼는데, 그게 몇일이 안되어서 바닥이 들떠 못신게 되었다. 나는 접착제를 사용해서 붙여가지고 신어보려 했는데, 아들이 단연코 안된다며 내다 버렸다. 잘못하면 사고가 날수도 있다는게 아들의 주장이었고 "그 신발 10만원도 넘는데,,, 오천원어치도 안신었는데,,,"를 연발해도 별 도리가 없었다. " 아 아깝다" 작은 아이와 내 입에서는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아들의 행동을 막을수가 없었는것을. 여기서도 가치 기준 얘기가 필요할까 싶긴하다. 그런데 자신의 가치기준을 무시하고 살수는 없지않겠는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나는 가난이 몸에 배었다. 일단 가격이 비싸면 처다보지도 않는다. 내가 감당할수 있는 가격인가가 무었보다도 중요하다. 꼭 필요하다거나 반듯이 있어야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가격이 안 맞으면 안산다. 허접하더라도 가격이 맞아야 사게된다. 저지르고 본다는 개념은 내게 없다. 뒷 감당을 누군가가 해주는게 아니니까. 그렇게 살아왔다. 이게 잘못된것이라 하더라도 어쩌랴. 꽃이 지고있다. 다음주말에 꽃축제가 있다는데 다음주쯤엔 아마도 꽃이 다 지고없을지도 모르겠다. 열흘붉은 꽃이 없다고 한다. 열흘이 아니라 삼사일이면 다 피는것 같다. 벌써 떨어지고 있다. 꽃비에 취할일만 남았는가 싶다. 목련도 지고있고, 라일낙이 얼굴을 내밀고있는 중이다. 아직 3월인데, 빨라도 너무 빠르다. 나는 정말 가려고 준비중인가. 정말 아쉬움이 없는가. 가길 바라면서도 또한 꼭 믿는것도 아닌것 같다. 그럼 가겠다는거야 안가겠다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아직은 등떠미는 사람 없다. 결혼이 늦어지고 나만 남았을때 느꼈던 초조함을 또 격게될까봐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때가되면 그 때에 따라야 한다. 다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걱정일뿐이다. 남들 다 가는 시집을 못가서 격었던 처량함이 또 있을까봐 두렵다. 너무 늦지않게 내 스스로 행동할수있을때 까지만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