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를 세탁하면서 (외 1편)
조 은 설
퇴근한 아이가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 한 짝
현관 안쪽에 모로 누워있다
목을 감싸고 쿨럭이던 신발이
목구멍에서 주르르 토해놓은 것은
아이가 한 주간 밟아온 길이다
가지와 가지 사이 햇살 반짝이던 그 길
구겨지고 찢긴 채 나부끼고 있네
길의 허공 속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기우뚱 흔들렸을 아이의 어깨
세제를 푼 함지에
한 아름 길을 구겨 넣는다
물의 혀가 구석구석 핥아주자
뭉친 근육들 봄눈 녹아 풀리는 소리
꿈틀 허리도 펴고 활짝 팔다리도 뻗는다
박박 솔질하고 근심 우려낸 자리
햇살 한 움큼 집어넣는데
문득 흐느끼는 강물소리
어디 먼 섬에 흘러 닿으려나보다
청둥오리
족히 한 자는 내렸으리라. 눈이 갈가마귀를 지우고 지평선을 지우고, 영혼의 날개소리까지 하얗게 지운 저녁나절, 부산한 발소리와 함께 무언가 철퍼덕 마당에 부려놓는 소리 들렸다.
“야들아, 이게 뭐꼬? 오리 아이가.”
할머니 탄성에 빼꼼 문을 열다 숨이 꼴깍 멎는 줄 알았다. 쪽빛 하늘 놓아버린, 가슴이 피로 물든 청둥오리 한 마리가 검푸른 적멸의 강 건너는 중이었다. 금실 은실 수놓은 붓꽃 한 다발 만장처럼 목에 걸고 떠나는 청둥오리, 고운 것은 불멸이라 믿던 여덟 살 계집애는 오리의 혼백 끌어안고 눈밭을 뒹굴었다. 문득 승천을 포기한 청둥오리는 홀연히 내 눈 속으로 날아들고.
사냥꾼이 잃어버린, 먹거리를 낙동강 갈대밭에서 끌고 온 두 오빠에게 칭찬을 견장처럼 달아준 할머니는 서둘러 가마솥에 불을 지폈고 나는 한 숟갈도 먹지 않았다. 그 날부터 푸둥지가 돼 고운 것만 찾아 헤매던 내 생의 일탈이 막을 열기 시작했다.
-시인정신 2014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