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감동 때문인지 꽃은 마음을 시리게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변화를 감지했다. 왠지 그 이유를 몰랐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감동 때문이었다. 내가 감동을 잘 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눈물이 없게된게 오래전이다. 그럼에도 꽃의 아름다움에 빠저 깊숙한 설램같은 감동으로 충만했는데 그마저 사라진듯 싶어서 충격이다. 여기저기 지천으로 온땅을 덮고있다싶이 핀 꽃들이 어느세 지기 시작했다. 벗꽃축제가 다음 주말로 잡혀있던데, 아마도 다음 주말까지 벗꽃은 남아있을것 같지가 않다. 이미 절절을 지나 꽃비가 내리고 있으니 그렇다. 잠시 있다가 지는 꽃들에게 환호하는 인간들은 어쩌면 선하고 착한 무리일지도 모른다. 어제 문고에 갔다가 설문지 하나를 받아들고 참 많이 당황했다. " 동"의 발전을 위해 바라는 것들, 불편상황과 앞으로의 방향 같은 중요한 질문인데, 20년을 넘게 살아온 내동내에 대해서 참으로 관심이 없었다는 고백을 안할수가 없었다. 도대체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것은 뭔가. 협력해서 살기를 원하고 바라면서도 정작 나의 관심은 오르지 "나" 외에는 없었다. 길에 나서면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같은 건물에 살기도하고 바로 이웃으로 살아간다. 그런데도 내가 누구에게 관심을 갖어본적이 있던가. 40년을 넘게 출석하고있는 교회에서도 절친을 갖지못했다. 일터에서 만난 이런저런 친구가 카톡으로 연결되고는 있지만 마음을 터놓고 수다를 떨 정도도 되지않는다. 그러면서 스스로 다가갈 생각은 안하고있다. 나는 늘 내 필요에만 반을하고 있다. 그러니 정당한 우정이나 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운게 당연하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당장에 전화요금에 신경쓰고, 만나면 밥값걱정을 해야하는 현실을 탓하지만 실상은 핑개인것 나도 알고있다. 어제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비타500 하나를 넙쭉 받아먹으면서도 이다음에 나도 사야지 하는 생각은 1도 없었다. 입으로만 고맙씁니다 했다. 내 나이 77세인데, 과연 언제까지 이러고 살것인지 답답하다. 정말 올해까지만 살수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확실하게 믿고있는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어서 일어나라고 방문을 열어보니 이미 죽어있더란다. 60을 갓 지난 사람이라면 아쉽기는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자면 부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정말 내게도 그런복이 있을까. 바라고 기대하면서도 꼭 믿지는 않는 죽은믿음. 그분께서 어떤 답을 준비하고 계신지는 알수없다. 모처럼 번동 성당을 찾았는데, 성모님이 수난을 격고 계셨다. 어쩌면 깔끔하게 정돈된듯 싶기도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누군들 세월의 흐름과 변화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카토릭 사제들은 성모를 팔고 개신교도들은 십자가를 판다. 다음주가 부활주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악하고 쓸모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를 지신것은 잘못하신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벌러지만도 못한 족속들, 사랑은 커녕 불로, 물로 쓸어버려야 마땅한 죄인들인데,,, 지금 이순간에도 앞 다투어 서로 배신하고 팔아대는 인간들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기에 십자가의 은혜가 감사하다. 민망하고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