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월6일 청이
난 아직 영화 "국제시장"을 못 봤지만
625 사변을 생각하면
친척 아저씨의 부인이셨던 종숙이 아줌마가 생각난다
옛날에는 시골에서 서울에 공부하러 오면 으례히 친척집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특별히 일제말기 해방직후 육이오 사변전까지
우리는 아버지 이종사촌들, 고종사촌
또 할아버지와 같이 독립운동하시던 친구분의 아들인 만화가 김성환씨(그때 경복 고등학생)
여러명과... 같이 살았었다고 한다
아버지 이종사촌들과 고종사촌은 사돈인데
사돈총각과 사돈처녀들은 서로 내외를 해야하는 어려운 사이지만
그때는 형제같이... 친구같이 아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엄마도 국민학교때 부터 친하게 지내던 정현이 아줌마로 인해
시골에서 공부하러와 그집에 사시던 이종사촌 오빠인 우리 아버지를 알게되어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종숙이 아줌마는 숙명여고 친구였던 아버지 이종사촌 동생인 대현이아줌마를 만나러 왔다가
그때 아버지 고종사촌이었던 승규이 아저씨를 만났다고 한다.
그때 종숙이아줌마가 참 예뻣다고 한다
그래서 승규 아저씨와 6살어린 종숙이 아줌마는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사셔 주위사람들이 많이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육이오 전쟁이 터진것이다
그래서 아저씨는 먼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처가집 식구들을 안전한 곳에 피난을 시키고
아저씨는 다시 일 관계로 서울로 돌아오셨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1.4 후퇴때 아저씨도 홀로 자동차를 운전하시고 가족을 피난시킨 곳으로 가시다가
피난민 대열에서 고생하는 한 가족을 도와주면서 피난길에 친해지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집에 그때 경기여고 2학년인 딸이 있었는데
피난길에서 아저씨와 그집딸이 연인관계가 됐다고 한다
그렇게 아저씨한테 부인이 2명이 됐었다
내가 어릴때 주위에서 어른들이 말씀하신것을 줏어 들은것은
아저씨가 처음에는 본처 집에 하루 새여자 집에 하루...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들르셨다 한다
하루아침에 믿던 남편을 빼앗긴 종숙이 아줌마는 많이 분하고 속이 상하셨던것 같다
그래서 첩의 집에 찾아가 요강도 깨뜨리셨다고 하고
아저씨가 본처집에 오시면 어린 아들이
"우리 아버지 첩의 집에 갔다" 이렇게 노래를 불러
아저씨가 "그런말 하면 못쓴다" 하고 질색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종숙이 아줌마가 셋째를 임신을 했는데
어른들은 임신중절을 하면 안되는데... 이런때일 수록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리셨지만 아줌마는 고집을 부리고 임신중절 했다고 한다.
종숙이아줌마는 아저씨와 새부인 한테 분풀이도 해 본것 같은데
그럴수록 아줌마 한테는 불이익이 돌아오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것 같았던것 같다
아저씨는 자유당 시절 고급공무원이셨었고
국회의원에도 당선되셨었고
후에 자기 회사도 창업하셔서 돈을 잘 버셔서 종숙이 아줌마 한테 발은 끊었지만
서울에 큰 한옥도 사주시고 생활비도 넉넉히 대주셨다고 한다.
육이오 사변때 아버지를 잃은 우리엄마는
큰 기와집에서 생활비 넉넉하게 사시는 종숙아줌마를
부러워 하셨지만
아줌마 아들은 친척들한테
"우리집은 아버지집 변소만도 못해요"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아줌마가 불행하게 느끼니 아이들도 불만에 차 있었던것 같다
실제 나는 중학교때인가 (1958년?)아저씨네 집에 가봤었는데
집 들어가는 입구에 아저씨 저택을 지키는 파출소도 있었고
새로 지은 양옥집에 넓은 응접실 바닥은 대리석이였고
부부방에 대리석 욕실이 있었고 넓은 옷장등
참으로 화려하고 으리 으리 하다고 느꼈었다
자유당 시절 축첩공무원을 단속하던 시절
아저씨는 결국 이혼을 하시고 두번째 여자를 정식 부인으로 입적을 하셨다
아저씨는 상도동에 집을사서 부모님을 서울에 모시고
다섯동생들을 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그리고 남동생들과 같이 회사를 창업하시는등 가족들에게 잘 하셨는데
둘째부인은 시집 식구들과 거의 왕래가 없었던것 같다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아저씨 딸이 결혼을 하는데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가고 싶어서
아버지 집에가서 결혼식에 손잡아 달라고 새엄마 한테랑
사정 사정 했다는데... 아저씨가 안오시고
대신 삼촌이 손을 잡아 주었는데... 딸이 결혼식장에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요즈음 내 결혼사진을 보니 승규아저씨가 사진에 계셔서 놀랬다
승규아저씨는 엄마와 우리식구들 한테도 잘 해주시고
나한테는 "왜 약대를 가지 그랬니" 하고 걱정을 해 주셨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특히 외국에 나와 살다보니
신세진 친척들 한데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살았다
아저씨를 뒤늦게 라도 찾아뵙고 싶어
여기저기 연락처를 알아보면서 아저씨랑 숙이아줌마 소식을 들었다
종숙이 아줌마는 이혼후 병에걸려 계속 약을 복용하며 사셨다고 한다
아마 심한 우울증이였던것 같다
그러면서 차차 말도 어눌해 지고 걸음걸이도 비척거리고...
전화를 하면 "응~ 응~ 하고 듣기는 하셨는데 말씀은 별로 못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여고 동창회에 나오시곤 했었다는데...
또 아들이 사업을 한다고
큰 기와집을 날려서 아줌마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했던 딸은 추락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그후 아들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결혼도 하고
숙이 아줌마는 아들과 같이 사셨었다는데
70대였던 15년 전인가
어느날 아침 커피를 마신다고 커피를 침대앞에 놔두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계서서
아들이 "엄마 커피 안드세요?" 하고 보니 이미 돌아가셨더라 한다
대현이아줌마 말에 의하면
종숙이 아줌마 돌아가신 그달까지 매달 승규아저씨한테 생활비를 타러 다녔다고...
그래서 생활의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나는 아저씨가 은퇴후 새 부인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사는
미국 으로 가셨다는 소식만 들었었다
그리고 아저씨는 미국 LA로 가신후에는 새 부인이 시집식구들한테
주소, 전화번호등 일체 안 가르쳐 주고 연락을 끊어서
아저씨 동생들도 연락처를 모른다고 했다
새 부인은 몇년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아저씨가 살아계신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저씨가 93세 이시니 전화를 받으실 수나 있는지 혹은 만나뵈도
나를 아실지 모르겠다
종숙이아줌마와 아이들은
육이오가 없었더라면 참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참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