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코멘터리] 폭망 도쿄올림픽..달라진 한국스포츠
[한국 중앙일보] 입력 2021/08/08 05:53
코로나와 폭염..도쿄올림픽 축제분위기 없고 기록도 안좋아
한국선수와 국민, 메달지상주의 탈피..스포츠정책도 바꿔야
1. 도쿄올림픽이 8일 막을 내렸습니다. 큰 사고는 없었지만 코로나에 망했습니다. 전혀 축제답지 못한 기괴한 올림픽이었습니다. NYT는 관중 없이 치러진 올림픽을 ‘진주 없는 조개껍데기’에 비유했습니다. 참가선수들은 격리와 통제가 이어지고, 가족ㆍ친지 동반이 금지되자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함성과 사기는 곧 기록으로 연결됩니다.
2. 코로나는 주최국 일본에 직격타를 날렸습니다.
올림픽 개막일 도쿄의 코로나 신규확진자가 4천225명이었는데..7일 1만5천713명으로 3배 이상 늘었습니다. 정확한 영향은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만..올림픽 기간 코로나가 급증한 건 사실입니다. 엄청난 재정적자도 문제입니다. ‘최고의 축제’로 준비해온 일본은 역대 최대예산을 쏟았습니다. 당초계획보다 3배 많은 32조원으로 추산됩니다. 무관중으로 치러지면서 날아간 티켓 값만 9300억원입니다.
3. 엎친데 덮친 격으로..기록적인 폭염이 선수들을 괴롭혔습니다.
마라톤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도쿄에서 북쪽으로 830Km 올라간 삿뽀로에서 경기를 개최했습니다. 삿뽀로마저 30도를 웃돌고 습도 81%를 기록했습니다. 케냐 킵초게가 2시간8분38초로 우승했습니다만..본인의 기록 2시간1분39초와는 큰 차이가 납니다. 지구온난화로..하계올림픽을 봄이나 가을에 열자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4. 이와 무관하게 한국 선수들은 과거보다 밝고 쿨했습니다.
사이버 불링을 당한 양궁선수 안산의 의연한 행보는 대견합니다. 노메달이지만 스스로 ‘최선을 다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높이뛰기 우상혁이나 수영 황선우 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선수의 스포츠정신엔 갈채를 보냅니다.
5. 이런 선수들을 보는 국민들 인식도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메달보다 선수들의 태도와 자세를 따졌습니다.
배구선수 김연경이 영웅이 되고 야구선수 강백호가 공적이 되는 건..성적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강백호 등 7명의 야구선수가 메달을 따지 못함으로써 병역특례(군복무 면제)를 못받게 됐습니다. 성적과 무관하게..이런 특례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6. 그래서인지 목표(10위) 미달에도 비난이 거의 없습니다. 다른 의미에서 종합성적이 주목됩니다.
금메달6 은메달4 동메달10개로 종합 16위입니다. 이 성적은 1984년 LA 올림픽 당시 성적(금6 은6 동7)과 비슷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88올림픽 이전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88 당시엔 금12 은10 동11개로 무려 4위였습니다. 매우 비정상이었습니다.
7. 군사정권(박정희 전두환)의 역작 88올림픽은 국가체육의 총결집이었습니다. 엘리트스포츠의 정점이었습니다.
올림픽 유치를 결정한 사람은 197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건의한 사람은 경호실장출신 박종규 사격연맹회장. 10ㆍ26으로 흐지부지된 올림픽유치에 국가총동원령을 내린 사람은 전두환 대통령, 실질적인 추진단장은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이었습니다. 국가총동원령으로 성공한 88올림픽의 최대수혜자는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 대통령입니다. 스포츠가 정치였습니다.
8. 이후 강도는 약해졌지만..정부가 주도하는 엘리트스포츠가 이어져 왔습니다.
이제 국가주도 엘리트스포츠를 민간주도 생활체육 중심으로 바꿔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번 올림픽 성적은 88올림픽이후 오랜 비정상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듯합니다. 올림픽성적은 국력순이 아니다..라는 정도는 이미 전국민적 상식이 됐습니다. 정책이 여론을 따라가야할 차례입니다.
〈칼럼니트스〉
2021.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