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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이전부터 뉴스도 보지 않고, 구독하는 신문이나 포털로 뉴스를 접하곤 한다. 그래서 정치를 그만두고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의 이 책도 애써 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언젠가 대선이 끝난 후 토요일에 열린 학회에서 발표를 맡았던 나는, 발표가 끝나고 난 후 이어진 뒤풀이에서 통음을 하고 잔뜩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행들과 술을 마시며 누구에겐가 ‘앞으로 5년 동안 당해봐야 자신들이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을 연신 되뇌었던 것 같다. 다행히 지난 정권의 폭주를 막고자 하는 ‘촛불혁명’으로 인해서 조금 당겨지긴 했지만, 그것이 5년이 아닌 10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당시로서는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발간된 지 16년이 지난 시점에 책을 구입해서 비로소 이 책을 읽었다.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하나씩 망가져가는 당시의 국가 시스템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헌법 정신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쓴 글들이다. 이제는 저자의 ‘선견지명’을 확인하는 내용이 되어버렸지만, 아마 당시에 읽었더라면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예견했던 그대로 당시의 야당은 지리멸렬했으며, 다시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사적으로 그 어둠이 더욱 깊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이, 다시 독재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거대한 촛불 행렬이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지 1년이 지난 후의 상황을 기록한 글을 정권이 바뀐 지금 시점에 비로소 읽으면서, 나로서는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책의 내용을 대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대한민국 헌법의 각 조문을 적시하면서, 국민과 정치인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당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당시에는 너무도 당연한 일들이 무시되면서, 국민을 상대로 정권이 폭주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기에, 저자가 이러한 책을 기획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책의 서문(프롤로그)의 제목도 ‘권력의 역주행에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라고 명명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시절을 겪으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자세로 ‘역사의 퇴행’이 반드시 지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저자는 책의 제목인 <후불제 민주주의>의 뜻이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 헌법’이 존재하지만, 권력의 역주행으로 인해 ‘민주공화국에 들어가는 비용을 후불한 위대한 시민 행동’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또 누군가에 의해 ‘문명 역주행’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시민들의 헌법에 대한 ‘충분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위기’는 다시 닥칠 수 있다. 따라서 ‘국가 수준은 국민의 평균 수준을 추월’할 수 없기에, 저자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시민 개개인이 각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을 쓴 저자의 기획 의도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1부, 헌법의 당위’와 ‘2부, 권력의 실재’ 등 모두 2부로 이루어져 있다. 헌법 혹은 권력과 관련된 키워드를 제시하고, 그와 관련된 대한민국 헌법의 조문과 함께 저자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한동안 정치인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과연 우리 사회에서 헌법 정신이 제대로 발현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집중적으로 따지고 있다. 저자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 헌법의 정신과는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러한 사실조차 깊이 있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정치인들의 헌법을 유린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지난 ‘촛불시위’ 현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모두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내용의 <헌법 제1조> 노래가 반복해서 사람들에게 불렸던 이유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임에도 현실 정치에서는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독재를 꿈꾸던 대통령의 탄핵으로 귀결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회귀하였다. 간혹 자신의 이익과 충돌하는 정책이 시행되면, 정치인들을 욕하면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에 협력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떠올렸고,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한 말이 여전히 절실하게 다가온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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