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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Wine) ***
와인
야생포도는 수백만 년 전부터 존재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포도넝쿨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6천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아마도 수천만 년에 걸쳐 존재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야생포도는 신맛이 강하고 알도 작아서 와인을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와인으로 주조된 최초의 포도는 야생의 포도가 아니었다. 한곳에 정착한 고대인이 한 해 농사로 포도를 재배함으로써 비로소 와인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가장 오래된 와인 용기는 오늘날의 그루지아(Georgia) 지역과 이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란에서는 그것을 ‘메이(mei)’라 부른다. 펜실바니아 대학의 연구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포도재배가 최초로 이루어진 장소는 그루지아였고, 이것이 점차 남쪽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단 한 종의 포도가 전 세계 4,000종이 넘는 모든 포도종의 기원이며, 이 가운데 소수의 품종만이 와인 주조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와인 주조의 역사는 6,500년 전 그리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모두를 귀하게 여겼고, 그래서 아주 소중하게 다루었다. 와인이 어느 정도 일반화된 것은 고대 로마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이때부터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유사한 가운데가 불룩하게 나온 통인 배럴(barrels), 그리고 병이 와인 저장에 이용되었다. 가장 오래된 와인 병은 로마의 식민지였던 오늘날 독일의 스페이어(Speyer) 지방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병에는 올리브유를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는 잘 발효된 포도주스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코르크 마개가 하는 역할을 올리브유가 대신했던 것이다.
와인 주조법이 로마 제국에서 서유럽 전역으로 퍼진 뒤, 와인은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사랑받는 음료가 되었다. 제레즈(Jerez) 항구가 원산지인 셰리(sherry), 라인강 유역의 리슬링(Riesling), 헝가리 지역의 변종인 토카이(Tokay) 등은 지역적 향취를 더하며 자리를 잡은 대표적인 포도종이 되었다.
이런 다양한 변종의 포도들은 1863년 북미지역의 뿌리 해충인 필로제라 바스타트릭스(Phylloxera vastatrix)가 유럽에 유입되면서 위기에 처했다. 수십 년에 걸친 노력으로 정착된 유럽 품종의 포도밭들은 이 해충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겪어야 했다. 이후에 텍사스의 포도 재배업자인 토마스 먼슨은 유럽 종 포도나무를 미국산과 접목시킴으로서 해충의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로 인해 유럽의 많은 포도농장들이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오늘날 와인 양조장은 단순히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주조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근래에 들어서는 와인 양조장이 숙박시설을 갖추고 와인과 잘 어울리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제공하는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결혼식장과 기업들의 컨퍼런스 장소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와인 양조장은 그 부동산 가치 또한 상당히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현대의 농업기술은 와인 양조장이 한 곳에서 오랫동안, 그리고 더 많은 포도를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계속된 포도재배에도 토양을 약화시키지 않는 방법과 ‘버티컬 슛 포지셔닝(VSP)’같이 포도덩굴의 성장을 관리하는 기술 등이 보편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포도덩굴이 사방으로 지저분하게 뻗치지 않고 단정하게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며 성장하게 만드는 방법이나 포도묘목 자체를 건강하게 하여 병충해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 그리고 포도나무가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일정한 수준의 품질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현대의 발달된 농업기술이 이룬 성과물이다.
< 성찬용 와인 >
기독교에서는 성찬식에 빵과 포도주를 사용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만찬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최후의 만찬’이라고도 알려진 이 일은 유대교의 유월절 기간에 이루어졌는데 이때 모두 4잔의 와인을 마신다. 예배 중에 “음식을 드신 후 주께서 잔을 드셨으니.”라고 말하는 것은 유월절에 세 번째 와인 잔을 들었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와인이 식후에 바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성찬식 때 와인을 사용하는가의 여부는 교파마다 차이가 있다. 연합 감리교의 경우 와인을 상징하는 포도주스로 대신하지만, 로마 가톨릭과 성공회에서는 와인을 사용한다.
< 와인 디캔터 >
오늘날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아주 의외로 여겨지겠지만, 과거에는 오래된 와인이 새로운 와인보다 환영받지 못했다. 사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가장 환영받은 와인은 방금 갓 주조된 신선한 와인이었다. 와인이나 올리브 오일을 보관하는 아주 오래된 방법은 와인이나 올리브 오일을 원래의 상태 그대로 보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이상 숙성되지 않게 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와인 디캔터의 역사는 곧 시대별로 미적 가치관이 변화한 역사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양조장에서 시내로 와인을 운반할 때 가장 쉬운 방법으로 진흙 항아리를 사용했다. 진흙 항아리는 파손되거나 잘못 만들어진 경우에 교체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 용기는 점차 유목민인 훈족, 고스족, 혹은 바이킹처럼 이동이 잦은 부족들이 사용하는 부드러운 가죽 부대로 바뀌어갔다. 이는 단지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직접 마시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와인을 마실 때 별도의 비커나 잔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와인 잔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동서양 모두 사회가 보다 안정된 이후의 일이었다.
기원전 1500년 | 암포라(Amphora) | 양쪽에 손잡이가 달리고 병목이 좁은 고대 그리스의 진흙용기이다. 암포라는 ‘두 사람이 운반할 수 있다.’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이 용기는 모든 종류의 식품 저장에 사용되었다. |
기원전 1300년 | 청동 와인용기 (Bronze wine vescel) | 중국에서는 동물 모양의 장식적인 와인 용기를 만들었다. 이 세 개의 다리가 있는 청동 용기는 상(商) 왕조 중기의 것이다. |
기원전 400년 | 와인스킨(Wine skin) | ‘보타백(bota bag)’이라고도 불린다.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이 가죽부대는 염소의 가죽에다 식물의 즙으로 세 번이나 마무리 처리를 해서 내용물이 새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바스크 지역의 와인스킨은 ‘자하토(zahato)’라고 하는데 붉은색 장식 줄이 독특하다. |
서기 100년 | 성배(Chalice) | 최초의 술잔은 최후의 만찬에서 보여주듯이 밑받침보다 보울(bowl)이 더 큰 형태였다. 하지만 이후에는 밑받침이 더 큰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미사 때 사제가 편하게 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에는 성배를 현대의 교회에 맞춰 양쪽 모두를 크게 만들고 있다. |
800년 | 와인저그(Wine jug) | 유럽인들은 과실주를 주조하여 보통은 코르크 마개가 있는 와인저그에 보관하고 운반했다. 와인 단지는 마차로 운반하기 편리도록 밑바닥이 평평하고 입구에 마개가 있는 와인저그의 형태로 점차 변형되었다. |
1400년 | 주수병(Cruet) | 성찬식에서 사용되는 포도주 그릇이 주수병(酒水甁)이다. 사제들은 예수의 두 가지 속성, 즉 인성과 신성이 융합되는 것의 상징으로 물과 와인을 섞을 때 주수병을 사용했다. |
2000년 | 와인박스(Boxes) | 와인스킨과 와인 통을 흉내 내서 박스 안에 와인 용기를 넣는다.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 박스를 사용하는 포장 방식을 경멸한다. 그럼에도 보관이나 운반, 그리고 맛을 보전하는 면에서는 많은 이점이 있다. |
** 와인의 분류(Wine type) **
‘신의 물방울’이라고 하는 와인은 과연 어떤 술일까요? 술은 제조방식에 따라 발효주와 증류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발효주는 효모에 의해 발효된 상태의 액체로 마시는 술로, 원료에 따라 과실주와 곡주로 구분합니다. 포도를 발효시킨 대표적인 과실주가 와인이며, 곡주에는 맥주, 막걸리, 청주 등이 있습니다.
증류주를 쉽게 설명하자면, 와인을 증류한 술이 꼬냑(cognac)과 같은 브랜디(brandy)이고, 맥주를 증류한 술이 위스키(whiskey)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발효주 : 와인, 맥주, 막걸리, 청주, 약주 등
• 증류주 : 브랜디, 위스키, 보드카, 진, 럼, 테킬라, 증류식 소주 등
“와인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의 숫자만큼이나 많다” “와인의 종류는 지구상에 있는 와인 병의 수와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70개국 이상이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생산량은 연간 300억 병이 넘습니다. 전 세계 인구를 70억 명 정도로 잡으면 한 사람당 연간 4병 이상을 마실 수 있는 양입니다.
와인은 이처럼 종류도 많지만 그 맛의 스펙트럼도 아주 다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와인은 생산되는 나라, 지역, 토양, 기후, 포도품종, 포도수확연도(vintage), 수확시기, 생산회사, 양조방법, 품질등급 등의 기본적인 변수를 포함해서 유통과정, 보관기간, 보관상태 등에 따라 얼마든지 맛과 품질의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수많은 와인의 종류와 그 차이를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와인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분류와 구분은 할 줄 아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야 와인을 고르는 기쁨, 마시는 행복이 훨씬 더 커질 테니까요.
자, 그럼 먼저 색깔, 당분 함량, 식사시 용도, 무게감(body), 양조방법 등에 따라 와인을 어떻게 분류하는지 살펴볼까요?
1. 색깔에 따른 와인의 분류
와인은 빛깔에 따라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으로 구분합니다. 기본적으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은 재료가 되는 포도품종 자체가 다릅니다.
레드 와인을 만드는 적포도 품종으로는 Cabernet Sauvignon(까베르네 쏘비뇽), Merlot(메를로), Shiraz(쉬라즈), Pinot Noir(삐노 누아), Malbec(말벡), Grenache(그르나슈), Sangiovese(산지오베제), Nebbiolo(네삐올로), Tempranillo(템프라뇨) 등이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청포도 품종으로는 Chardonnay(샤르도네), Sauvignon Blanc(쏘비뇽 블랑), Riesling(리슬링), Sémillon(쎄미용), Pinot Grigio(삐노 그리지오), Moscato(모스까또), Gewüztraminer(게뷔르츠트라미너) 등이 있습니다.
1) 레드 와인
레드 와인을 양조할 때는 적포도의 껍질(skin), 과육(pulp), 씨(seed)를 같이 파쇄해서 발효시킵니다. 따라서 껍질의 붉은 색소뿐 아니라 씨와 껍질에 많이 들어 있는 타닌(tannin)1) 성분까지 함께 추출되는데, 이로 인해 레드 와인의 붉은 색깔과 진하고 떫은맛이 생기게 됩니다. 레드 와인을 머금었을 때 입안을 살짝 조여 주는 듯한 떫고 묵직한 느낌을 만들어 주는 타닌 성분은 레드 와인의 골격과 베이스(base)를 이룹니다. 와인 속의 타닌은 산화를 막아주는 역할도 하므로 타닌 성분이 많은 레드 와인은 장기숙성이 가능합니다. 1차 발효 과정만을 거치는 화이트 와인과는 달리, 레드 와인은 1차 발효(당분 → 알코올) 이후 2차 발효(사과산 → 젖산)를 거쳐 숙성에 들어갑니다.
2) 화이트 와인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은 완전히 익은 적포도를 수확해 껍질, 과육, 씨를 한꺼번에 파쇄해서(crushing) 발효와 침용 과정을 거치지만, 화이트 와인은 살짝 덜 익은 청포도를 수확하여 씨와 껍질을 미리 제거하거나 씨가 깨지지 않을 정도의 공기 압착(pressing)을 통해 얻어진 과즙(must)을 저온 발효시켜 양조하므로 상대적으로 타닌이 적고 상큼한 황금빛 와인이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화이트 와인의 베이스는 산(acid, 신맛)입니다. 산도는 와인을 상쾌하고 생기 넘치게 만들어줍니다.
드물긴 하지만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과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는 레드 와인용 적포도의 껍질을 미리 제거하고 과육만을 압착해서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도 합니다. 샴페인 제조에도 이런 방식으로 레드 품종(삐노 누아, 삐노 뫼니에)이 사용됩니다.
3) 로제 와인
로제 와인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중간색인 연한 주황빛이 나는 와인을 말합니다. 적포도로 레드 와인처럼 발효시키다가 붉은색이 우러나오는 적당한 시점에서 껍질을 빼내는 방식과 발효 직전의 화이트 와인을 파쇄된 레드 와인 포도즙(must)에 잠시 머물게 해 붉은색을 얻는 방식 등이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색깔은 레드와 화이트의 중간이고, 맛은 화이트 와인에 좀 더 가까운, 말 그대로 ‘색다른’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다 만들어진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섞어서 로제 와인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이를 법으로도 금지하고 있습니다만, 로제 샴페인을 만드는 샹빠뉴 지방에서는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존기간이 짧아 오래 숙성하지 않고 마시게 되는 로제 와인은 이런 중간적인 성격 때문에 품질 면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지만, 로맨틱한 빛깔과 특별한 향은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에서는 볼 수 없는 로제 와인만의 매력입니다. 로제 와인에서는 진하진 않지만 딸기, 체리, 라스베리, 아이리스꽃 향 등이 은은히 풍겨 기분을 좋게 합니다.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레드 와인
와인은 최고의 음료다. 물보다 순수하고, 우유보다 안전하고, 청량음료보다 산뜻하고, 독주보다 순하고, 맥주보다 생기 넘칠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어떤 음료보다 예리한 시각, 후각, 미각에 큰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마실 와인도 없고, 화제로 삼을 만한 와인도 없이 식사를 할 때보다 더 지루한 순간은 없다.
- 앙드레 시몽/ 작가 겸 Wine & Food Society의 창시자
2. 당분 함량에 따른 와인의 분류
1) 드라이 와인
포도의 당분(포도당)이 알코올로 완전히 발효되어 단맛이 거의 남지 않은 와인을 말하는데, 레드 와인의 대부분이 드라이한 맛을 냅니다. 고급 레드 와인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레드 와인은 빛깔이 짙을수록, 화이트 와인은 빛깔이 엷을수록 드라이한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와인을 자주 마시고 즐기게 될수록 스위트 와인보다는 점점 드라이 와인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리터당 당분 함량30g 이하31~50g51~150g
레이블 표기 | 영어 | Dry | Medium-Dry | Sweet |
프랑스어 | Sec(쎅) | Moelleux(무알뢰) | Liqueur(리큐어) |
2) 스위트 와인
발효과정에서 당분을 완전히 발효시키지 않아 포도당의 단맛이 남아 있는 달콤한 와인을 말합니다. 보통의 경우 늦수확(late harvest)을 통해 포도알 자체의 당도를 높이는 방법을 쓰지만, 지역에 따라선 포도를 따서 말리면서 당도를 농축시킵니다. 중저가 스위트 와인은 양조과정에서 가당(加糖)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위트 와인은 주로 식후 디저트 음식과 함께 마시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디저트 와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3) 미디엄 드라이 와인
기본적으로 드라이하지만 살짝 스위트한 느낌이 있는 와인을 말합니다. 또 반대로 스위트하지만 그리 많이 달지는 않은 와인을 가리켜서 ‘세미 스위트(Semi Sweet) 와인’라고 표현합니다.
3. 식사 시 용도에 따른 와인의 분류
1) 식전용 와인(Appetizer Wine)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 전채요리와 함께 가볍게 한두 잔 마시는 와인입니다. 프랑스어를 섞어서 ‘Apéritif Wine(아뻬리띠프 와인)’이라고도 부릅니다. 위액 분비 촉진을 위해 산도는 적당히 있으면서 당도와 알코올 도수는 낮은 와인들이 좋습니다. 드라이한 맛의 샴페인(스파클링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드라이한 Sherry(쉐리), Vermouth(베르뭇, 가향 와인) 등이 있습니다. 미국의 일반 레스토랑에서는 〈White Zinfandel(화이트 진펀델)〉 로제 와인이 식전주로 많이 애용됩니다.
쉐리(아몬띠야도)
개인적으로는 애피타이저와 함께 먹는 와인으로, 상큼한 신맛이 돋보이는 프랑스 알자스의 Riesling(리슬링) 품종 화이트 와인을 좋아합니다.
탄산도 식욕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샴페인이나 샴페인을 베이스로 하는 끼르 로얄(Kir Royal), 미모사(Mimosa) 등의 와인 칵테일도 식전주로 제격입니다.
2) 식사와 함께 하는 와인(Table Wine)
메인 디쉬에 곁들이는 와인을 말합니다. 와인은 식욕을 증진시키고, 식사 분위기를 좋게 하는 역할 외에도 음식 맛을 잘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며, 또 여러 가지 음식을 먹을 때 입안을 헹궈주는 역할도 합니다.
테이블 와인으로는 ‘드라이’한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이 주로 사용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Table Wine’은, 와인의 등급이나 카테고리 구분에서 평범한 품질의 와인을 뜻하는 ‘Table Wine’과는 다른, ‘식사할 때 같이 마시는 와인’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식후 디저트용 와인(Dessert Wine)
디저트와 함께 즐기는 소화 촉진용 와인입니다. 식사 후에 알코올 도수가 조금 높고 달달한 와인을 마심으로써 입안을 개운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프랑스의 Sauternes(쏘떼른), 독일의 Eiswein(아이스바인=아이스와인), 헝가리의 Tokaji(토카이) 같은 스위트 와인과 포르투갈의 Port(포트), 스페인의 스위트한 Sherry(쉐리) 같은 알코올 강화 와인(fortified wine) 등이 디저트 와인으로 많이 애용됩니다.
또 디저트 와인으로 와인 증류주인 꼬냑(Cognac)이나 아르마냑(Armagnac) 같은 브랜디류를 마시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식 브랜디인 그라빠(Grappa)도 많이 마십니다.
< 베네치아의 명주, Grappa >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 찌꺼기(껍질, 씨)를 증류해서 만드는 Grappa(그라빠)는 이탈리아식 브랜디(brandy)로 알코올 도수가 25~60도에까지 이르며, 보통 40도 전후이다. 들꽃 향이 나며 일반급에서 고급까지 다양하게 생산된다. 이탈리아에서는 디저트 와인을 마시거나 진한 커피와 함께 즐기기도 한다.
호주 블루 밸리사의 쎄미용 품종 아이스와인 〈마운틴 크릭〉
전통적인 모양의 500cc병에 담겨있는, 헝가리 로얄 토카이사의 토카이 와인 〈아수 에쎈시아〉
Furmint 50% : Harslevelu 45% : Muscat 5%. 28만 원선. 세계 3대 스위트 와인 : 프랑스 쏘떼른 와인, 헝가리 토카이(아쑤 에쎈시아), 독일트로켄베렌아우슬레제(TBA)
4. 바디에 따른 와인의 분류
바디(Body)란 입안에서 느껴지는 와인 맛의 질감과 무게감을 말합니다. 무게감에 따라 라이트바디 와인, 미디엄바디 와인, 풀바디 와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라이트바디 와인
가장 가벼운 느낌의 와인. 가볍고 신선한 느낌의 와인으로, 약간 차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으며 담백한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라이트바디 레드 와인으로는 Gamay(가메) 품종으로 만든 〈Beaujolais Nouveau(보졸레 누보)〉 와인, 이탈리아의 〈Dolcetto d’Alba(돌체또 달바)〉, 〈Bardolino(바르돌리노)〉 와인 등이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Light-bodied’라는 표현보다는 ‘Crispy(상큼) & Fresh(신선)’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데, 프랑스 화이트 와인 중에는 부르고뉴 샤블리 지역에서 Chardonnay(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들어지는 일반급 〈Chablis(샤블리)〉 와인과 루아르 지방에서 해산물을 곁들여 마시는 Muscadet(뮈스까데) 품종 와인이 대표적입니다. 또 이탈리아에서 Garganega(가르가네가) 품종으로 만들어지는 〈Soave(쏘아베)〉 와인과 Pinot Grigio(삐노 그리지오) 품종 와인 그리고 포르투갈의 〈Vinho Verde(비뉴 베르드)〉 와인 등이 있습니다.
2) 미디엄바디 와인
Full-body와 Light-body의 중간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와인. 레드 와인 중 일반적인 중저가 와인들은 보통 미디엄바디 정도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데, Pinot Noir(삐노 누아)나 Grenache(그르나슈) 품종 와인, Merlot(메를로)를 주품종으로 만드는 블렌딩 와인, Sangiovese(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만든 이탈리아의 〈Chanti(끼안띠)〉 와인, 스페인 Tempranillo(템프라뇨) 품종 와인 등이 대체로 그러합니다.
화이트 와인으로는 Riesling(리슬링) 품종 와인, 프랑스 보르도와 뉴질랜드의 Sauvignon Blanc(쏘비뇽 블랑) 품종 와인, 남아공의 Chenin Blanc(슈냉 블랑) 품종 와인, 호주의 Sémillon(쎄미용) 품종 와인 등이 해당될 수 있습니다.
3) 풀바디 와인
농도, 밀도, 질감 등이 가장 묵직하고 무게감 있게 느껴지는 와인. 진하고 묵직한 느낌의 와인으로, 진한 소스 요리나 육류, 오래 숙성된 치즈와 잘 어울립니다. 일반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거나 타닌 성분이 많을 경우 묵직하고 힘있게 느껴집니다.
레드 와인 중에는 보르도 메독 지역의 고급 와인이 대표적이며, Cabernet Sauvignon(까베르네 쏘비뇽), Shiraz(쉬라즈), Malbec(말벡), Zinfandel(진펀델) 품종 와인 그리고 이탈리아 삐에몬떼 지방의 〈Barolo(바롤로)〉 와인, 또스까나 지방의 〈Brunello di Montalcino(브루넬로 디 몬딸치노)〉 와인 등이 그러합니다.
화이트 와인으로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가 아닌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한 고급 Chardonnay(샤르도네) 품종 와인, 프랑스 론 지방이나 호주의 Viognier(비오니에) 품종 와인, 스페인 리오하에서 오크통 숙성을 한 전통적인 화이트 와인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르도 지방의 〈Sauternes(쏘떼른)〉 와인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고 단맛이 강한 화이트 와인도 풀바디(full-body)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와인의 바디(body)를 구분하는 밀도감과 무게감에 대해 좀 더 알기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보리차를 라이트바디라고 한다면, 오렌지주스는 미디엄바디, 우유는 풀바디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에서 각 바디에 해당하는 와인들을 예로 들었지만,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지역, 양조방법, 블렌딩 여부 등에 따라 다양한 바디의 와인이 만들어질 수 있으므로 위의 예가 절대적인 구분은 아닙니다.
5. 숙성기간에 따른 와인의 분류
1) Young Wine
생산된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숙성기간이 짧은 와인을 말합니다. 이렇듯 오래 숙성시킬 수 있는 고급 와인의 덜 숙성된 상태를 영(Young)1) 와인이라고도 하지만, 처음부터 짧은 숙성을 거쳐 출하해 바로 마시는 와인으로 만들어진 중저가 와인을 뜻하기도 합니다.
2) Aged Wine
발효 후 지하저장고에서 오래 숙성시킨 품질 좋은 와인을 말합니다. 출하 후에도 장기간 병입 숙성이 가능합니다.
6. 양조방법에 따른 와인의 분류
1) 알코올 강화 와인(Fortified Wine, 주정 강화 와인)
일반 와인에다 알코올이나 오드비(l’eau de vie, 브랜디의 원액) 등을 첨가하여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대략 18~22도로 우리의 소주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남부의 VDN(Vin Doux Naturel, 뱅 두 나뛰렐), 스페인의 〈Sherry(쉐리)〉, 포르투갈의 〈Port(포트)〉와 〈Madeira(마데이라)〉,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Marsala(마르쌀라)1) 〉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알코올 강화 와인은 장거리 운송과정에서 와인이 변질되는 것을 막고자 와인에 도수가 높은 브랜디를 가미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낮은 와인을 ‘Light Wine’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프랑스 동 브리알사의 〈뱅 두 나뛰렐〉 와인
Macabeu 80% : Grenache Blanc 15% : Muscat 5%. 12만 원선
2) 발포성 와인(Sparkling Wine)
발효가 끝난 와인을 병입(bottling)한 후 당분과 효모를 별도로 첨가해 병 안에서 인위적인 2차 발효를 일으켜 기포(탄산가스)가 와인에 용해되도록 만든 와인으로, 이런 방식을 전통적인 샴페인 제조방식이라고 합니다. 저가의 스파클링 와인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대형 탱크 속에서 2차 발효를 시키거나, 일반 와인에 탄산가스를 주입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합니다.
법적으로는 프랑스 샹빠뉴(Champagne) 지방에서 생산하는 것만을 ‘샴페인(Champagne, 샹빠뉴)’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다른 지방에서 샴페인 방식으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2) 들은 ‘Crémant(크레망)’이라고 불립니다. 루아르, 부르고뉴, 알자스, 쥐라, 보르도 등 7개 산지(AOP)에서 생산되는데, Crémant de Loire(크레망 드 루아르), Crémant de Bourgogne(크레망 드 부르고뉴), Crémant d’Alsace(크레망 달자스) 등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 외에 프랑스의 또 다른 지역에서는 2차 발효를 병이 아닌 큰 발효통에서 속성으로 진행시켜 압력을 가해 병에 담는 샤르마(Charmat) 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어 ‘Vin Mousseux(뱅 무쐬)’라고 총칭합니다. 샴페인(6기압)에 비해 기압이 낮고(3기압)3) 기포가 크고 값도 쌉니다.
또 이러한 발포성 와인들을 이탈리아에서는 Spumante(스뿌만떼), 스페인에서는 Cava(까바), 독일에서는 Sekt(젝트), 영어권에서는 Sparkling Wine(Bubble Wine)이라고 합 니다.
샴페인은 단맛이 적은 것부터 Extra Brut(엑스트라 브륏) → Brut(브륏) → Extra Sec(엑스트라 쎅) → Sec(쎅) → Demi Sec(드미 쎅) → Doux(두우)라고 구분하는데 레이블에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Brut(브륏)’인데, 고급 스파클링 와인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샴페인 외에 다른 스파클링 와인들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당도 구분을 합니다.
표기 | Extra Brut 엑스트라 브륏 | Brut 브륏 | Extra Sec4) 엑스트라 쎅 | Sec 쎅 | Demi Sec 드미 쎅 | Doux 두우 |
리터당 당분 함량 | 0~6g | 7~15g | 12~20g | 17~35g | 33~50g | 50g 이상 |
핑크빛의 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젊은 연인들의 행사에,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은 은혼식, 금혼식 등 중년층 행사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탄산가스의 유무를 기준으로 분류할 때 스파클링 와인이 아닌, 즉 발포성이 없는 모든 와인을 총칭해서 ‘스틸 와인(Still Wine)’이라고 합니다. Still은 ‘조용한’, ‘고요한’이란 뜻이 있으므로, 마개를 오픈해도 아무 반응이 없는 와인이라는 의미겠지요.
스페인의 보데가스 꽁까뱅사에서 생산하는 까바 와인인 〈까스띠요 데 몽블랑〉
까바의 주요 품종으로 많이 사용되는 자렐로, 빠레야다, 비우라가 블렌딩되었다. 28,000원선
3) 가향 와인(Flavored Wine)
대표적인 가향(加香) 와인으로 Vermouth(베르뭇/버뭇)이 있습니다. Vermouth은 화이트 와인에 브랜디나 당분을 섞고, 향쑥·용담·키니네·창포뿌리 등의 향료와 약초를 넣어 향미를 낸 리큐어(Liqueur)의 일종입니다. 향쑥의 독일명인 베르무트(Vermut)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원래는 식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한 애피타이저 와인이었으나, 지금은 칵테일 재료로 더 널리 사용됩니다.
< 리큐어(Liqueur) >
증류하여 만든 주정(酒精)에 과실, 과즙, 약초, 천연향료, 설탕, 꿀, 시럽 등 감미료를 첨가해 만든 혼성주. 따라서 소주에 포도와 설탕을 넣어 담근 한국 가정식 포도주는 우리말로 ‘포도주’임에는 틀림없지만, ‘와인’이라 할 순 없고 ‘리큐어’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잘 알려진 리큐어로는 오렌지껍질이 주재료인 큐라소(Curacao), 석류가 주재료인 그레나딘 시럽(Grenadine Syrup), 블랙커런트가 주재료인 크렘 드 까시스(Crème de Cassis), 커피 리큐어인 깔루아(Kahlua) 등이 있다.
리큐어(리큐르)를 모든 술(알코올 음료) 혹은 곡물을 증류한 독한 술을 뜻하는 ‘리쿼(liquor)’와 헷갈리지 마시기 바란다.
7. 와인 에티켓(Wine etiquette)
이것이 와인'
와인은 서양 술입니다. 술자리 에티켓이나 문화도 우리의 정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와인과 관련된 에티켓을 ‘정확히 알고 나서, 편하게 덜 지키는 것’과 ‘몰라서 못 지키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더구나 조금만 신경 써서 배우고 나면 그리 어렵지도 않은 것을 굳이 외면할 이유는 없습니다. 실제로 와인 관련 매너에 미숙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비즈니스에 불편을 겪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 와인 즐겁게 마시기 **
와인은 4가지에 취한다고 합니다. 빛깔에 취하고, 향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는 것이지요.
분위기에 취하는 것은 여러분 각자의 상상력에 맡기고, 여기서는 앞의 3가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빛깔에 취하기
와인을 서빙 받으면, 먼저 와인 잔의 잔대(stem)를 잡고 빛깔을 살핍니다. 흰 벽이나 테이블보를 배경으로 하면 좋습니다. 잔을 45도 정도 기울여서 와인과 잔의 경계 부분 빛깔(hue, 휴)을 살펴보십시오. 경계 부분의 빛깔은 포도품종, 숙성기간, 와인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므로 그것을 확인해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습니다.
와인의 빛깔을 확인하고 감상하는 것도 와인이 주는 큰 즐거움이다.
예를 들어, Cabernet Sauvignon(까베르네 쏘비뇽)이나 Shiraz(쉬라즈) 품종 레드 와인은 꽤 진한 빛깔을 띠며, Pinot Noir(삐노 누아)나 Merlot(메를로) 품종 와인은 상대적으로 연한 빛깔입니다.
화이트 와인도 Chardonnay(샤르도네) 품종 와인은 비교적 노란빛이 강한 데 비해, Sauvignon Blanc(쏘비뇽 블랑) 품종 와인은 빛깔이 더 투명하고 연둣빛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빛깔로만 그 와인의 품종을 짐작하고 구분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같은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라도 양조방법, 오크숙성 여부, 숙성기간 등에 따라 빛깔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드 와인은 병입 초기에는 짙은 자주색을 띠다가 병입 숙성이 진행되면서 점차 루비색 → 붉은 벽돌색 → 엷은 적갈색으로 변해갑니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에는 병입 초기의 투명한 레몬 빛깔에서 숙성이 진행될수록 연둣빛이 나는 엷은 노란색 → 볏짚색 → 황금색 → 호박색 → 갈색으로 변해갑니다. 즉, 레드 와인은 오래될수록 빛깔이 연해지고, 화이트 와인은 반대로 진해지는 것이죠.
하지만 그전에 와인 빛깔이 전체적으로 탁하면 보관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오래 숙성된 고급 와인이 아니면서 갈색에 가까운 빛깔을 띠고 있다면 변질되고 있는 와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레드 와인의 색깔 변화 →
화이트 와인의 색깔 변화 →
또 간혹 와인에서 침전물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타닌과 유산균의 침전물이거나 주석산(Tartaric acid)과 칼륨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가라앉은 주석산염인데, 고급 와인일수록 이런 침전물이 많습니다. 또 요즘은 고급 와인을 만들 때 고유의 풍미 유지를 위해 필터링(여과)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오래되지 않은 와인에서도 침전물을 볼 수 있는데 인체에는 무해합니다.
화이트 와인도 코르크 밑 부분과 병 바닥에 투명한 주석산염 결정체가 생기곤 하는데 보통 저온 보관 등 온도변화 때문에 생깁니다.
와인 병의 밑바닥은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펀트: punt) 침전물이 바깥쪽으로 모여 와인을 따를 때 잘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와인 병 대부분은 어깨 부분에 각이 져 있는데 이 또한 와인을 따를 때 침전물이 그 부분에서 한 번 걸러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디캔팅을 통해 거르면 됩니다.
< Punt >
펀트가 깊을수록 고급 와인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런 원칙이나 규정은 없다. 대신 대체로 그런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고급 와인일수록 눕혀서 보관해야 하므로 펀트가 침전물을 모이게 하기 만들었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펀트는 유리병을 입으로 불어서 만들던 시절 어쩔 수 없이 생겼던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진동, 충격 등 병의 내구성을 좋게 해주는 역할이 가장 크다 하겠다. 지금 같은 와인 병 모양이 처음 만들어졌던 시절, 와인 병의 밑부분이 오목하게 파여 있으면 평평하지 않은 울퉁불퉁한 바닥에도 잘 세워졌을 테니 이래저래 효용성이 있었으리라. 또한 와인을 따를 때 병을 잡는 손에 의해 와인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 펀트에 엄지손가락을 넣어 잡기도 한다. 하지만 고급 와인을 그리 따르다가 병을 놓치면 낭패이니 우리는 그런 짓 안 하는 게 상책이다.
* 와인 빛깔에 대한 영어표현 *
• 밀도나 빛깔의 여리고 진함에 따라
- pale : 빛깔이 엷은
- medium : 보통 정도의 빛깔을 띠는
- dark : 빛깔이 다소 진한 (=deep)
- opaque : 밀도가 높아 불투명할 정도의 진한 빛깔을 띠는
• 투명도에 따라
- brilliant : 빛날 정도로 맑고 투명한 (=very transparency, crystal clear)
- clear : 투명한
- hazy : 맑지 않은, 흐릿한 (=dim)
- dull : 뿌연
- cloudy : 탁한
2) 향에 취하기
와인의 빛깔을 감상했으면 이제 향에 취해 보시죠. 와인은 코로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렌지주스를 마실 때 손으로 코를 막은 채 마시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코는 향뿐만 아니라 맛을 느끼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처음 와인을 잔에 받으면 일단 향(aroma, 아로마)을 맡고, 그다음 잔을 천천히 여러 번 돌린 후(swirling, 스월링) 다시 향(bouquet, 부케)을 맡습니다. 차이가 느껴질 것입니다. 이때 잔에 코를 넣다시피 해서 향을 맡는 것은 절대로 흉이 아닙니다. 오히려 와인을 따를 때 한 잔 가득 따르지 않는 이유가 코가 들어갈 자리를 비워두기 위해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니까요.
와인 향을 맡는다는 것은, 포도품종 자체가 가지고 있던 자연적인 과일 향인 ‘아로마’와 발효 및 숙성 과정에서 화학적 변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2차적인 향인 ‘부케’를 즐기는 것입니다. 잔에 따른 후 처음 맡아지는 과일, 꽃, 허브 향 등이 아로마고, 여러 번 스월링을 한 후에 우러나는 바닐라, 초콜릿, 시가, 가죽 등의 오크 풍미와 복합적인 향을 부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당연히 오랜 숙성을 거친 고급 와인일수록 부케가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와인 잔에 코를 들이밀 때면 터널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라고 말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향을 맡은 후 마시는 와인의 맛은 확실히 다르다. 신선한 화이트 와인일수록 ‘아로마’가 잘 느껴지고, 오크 숙성한 레드 와인일수록 복합적이고 화려한 ‘부케’를 더 느낄 수 있다.
에어레이터
와인이 든 잔을 돌리는 것을 ‘스월링(swirling)’이라 하는데, 와인을 공기와 더 접하게 하여(aeration) 탄산가스나 알코올 등 나쁜 향을 날려 보내고, 향과 맛이 제대로 우러나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잔을 든 채 손을 돌려 스월링을 할 수도 있고, 잔을 테이블에 놓은 채 잔대를 잡거나 검지와 중지로 잔받침을 누르면서 돌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스월링을 하는 과정에서 잔 안쪽 벽에 와인이 골고루 닿고 나면 마치 눈물처럼 와인이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와인의 ‘눈물(tears)’ 또는 ‘다리(legs)’라고 표현합니다. 적정 기간 오래 잘 숙성된 풀바디 고급 와인일수록 그리고 알코올 함량이 높고 스위트한 와인일수록 점성이 높아 눈물의 방울이 부드럽고 촘촘하게 내려옵니다. 이런 와인의 눈물은 숙성기간이나 품질보다 와인의 종류와 알코올 함량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와인의 눈물(Tears of Wine / Wine Legs)
와인의 눈물(Tears of Wine / Wine Legs)
3) 맛에 취하기
이제 마지막으로 와인을 적당히 한 모금 머금고 몇 초간 입안에서 서서히 굴리면서 맛을 봅니다. 직전에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았더라도, 와인을 첫 모금 마셨을 때 느껴지는 맛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첫 모금은 입안을 헹구듯 마시고, 두 모금째에 느껴지는 맛을 더 신중하게 음미해 봅니다.
와인을 머금은 채로 혀와 입 안 전체를 적시고 입술을 오므려 공기를 살짝 흡입하면서 맛을 보면 좋습니다. 또 와인을 씹듯이 마시면서 그 끝맛과 잔향(after taste)을 느껴봅니다. 피니시(finish)2) 의 여운이 오래 지속될수록 좋은 와인입니다.
와인을 혀끝에서 안쪽까지 굴리듯 음미해 보자. 와인을 처음 입 안에 머금는 순간 느껴지는 맛의 첫인상을 ‘어택(attack)’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화이트 와인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과일, 꽃, 허브의 신선하고 상큼한 느낌과 여기에 타닌의 무게감과 농밀도가 더해지는 레드 와인의 복합적인 향미와 질감을 느긋하게 음미해 보는 것도 와인이 주는 큰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 아로마 키트(aroma kit) >
와인의 향과 맛을 표현할 때, ‘맛있다’ ‘시다’ ‘달다’ ‘묵직하다’ 외에 블랙커런트, 블랙베리, 송로버섯, 리치, 바닐라, 나무딸기, 사향, 후추, 민트, 흙냄새 등 다양한 표현들을 사용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이런 향들에 대해 정확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와인의 다양한 향들을 알고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로마 키트(aroma kit)이다. 레드 와인용과 화이트 와인용으로 구분되며, 해당하는 향이 어떤 것인지, 어떤 이름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은지 익히고 연습하는 용도로 쓰인다.
와인애호가라면 정말 욕심나는 필수품이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게 흠이다.
아로마 키트(aroma kit)
** 와인과 건강 **
와인을 ‘늙은이의 우유’라고도 부르는 프랑스에는 ‘좋은 와인 한 잔은 의사의 수입을 줄게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와인은 약알칼리성 음료로 소화 흡수가 잘되며 이뇨작용, 소화촉진, 항산화작용, 진정작용 등의 효과가 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한가로이 마시는 와인 한두 잔은 피로회복에도 그만인데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반신욕이나 버블베쓰를 하면서 마시는 시원한 화이트 와인 한 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까?
와인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것은 와인에 함유되어 있는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들 때문입니다. 식물성 화학물질인 폴리페놀 성분들은 그 종류가 4,000가지가 넘는데, 레드 와인에는 200여 종류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는 와인의 맛이 제각기 다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타닌, 안토시아닌, 레스베라트롤 등이 와인의 효능을 거론할 때 주로 많이 얘기되는 폴리페놀 성분들입니다. 천연 방부제이기도 한 타닌은 와인의 산화방지 등에 효능이 있으며, 안토시아닌은 포도의 붉은 빛깔을 결정하는 인자로 방사선 노출에 의한 면역장애와 혈액생성장애에도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항염 작용을 하는 레스베라트롤은 폐, 기관지, 심장 질환과 암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스베라트롤의 효능이 충분히 발휘되기에는 와인 한두 잔에 함유된 양이 너무 적다는 의견도 있지만, 와인은 어쩌다 원샷하는 일회용 약이 아니기 때문에 음식처럼 즐기면서 꾸준히 마셔야 효과가 있을 거라는 건 당연한 얘기겠지요.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성분은 타닌의 한 구성요소인 ‘프로시아니딘(Procyanidines)’입니다. 프로시아니딘은 건강의 척도인 혈관을 보호하고 확장해줌으로써 심장질환 등 각종 질병을 예방합니다. 타닌의 떫은맛을 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프로시아니딘은 양조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영 와인에 오히려 많이 들어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줄어듭니다. 또 어린나무보다는 오래된 나무의 포도 혹은 사전 가지치기 등으로 수확량을 줄여 농축된 포도로 만든 와인에 더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폴리페놀 성분들은 포도의 껍질과 씨에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양조과정에서 껍질과 씨를 미리 제거하는 화이트 와인보다 침용 과정을 거치는 레드 와인에 10배 이상 많습니다.
레드 와인 품종인 Cabernet Sauvignon(까베르네 쏘비뇽)에 타닌 등의 폴리페놀 성분들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타닌의 프로시아니딘 성분만 놓고 보면 Tannat(따나) 품종이 지존입니다.
그 외에 Malbec(말벡), Nebbiolo(네삐올로), Aglianico(알뤼아니꼬)를 비롯하여 Grenache(그르나슈), Tempranillo(템프라뇨), Sangiovese(산지오베제) 품종 등으로 만든 와인 중 다량의 프로시아니딘 성분을 가진 제품들이 많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레드 와인 한 잔은 긴장을 감소시키고 숙면1) 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레스베라트롤 함유량이 많은 Pinot Noir(삐노 누아) 품종 와인이 가장 좋은 효과를 보입니다.
프로시아니딘을 비롯한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들은, 지방층을 몸에 쌓이게 하고 혈관에 침전물을 형성하는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저밀도 지단백질)을 감소시키고, 동맥에서 지방층을 없애주는 ‘착한’ 콜레스테롤인 HDL(고밀도 지단백질)을 증가시키는데, 이것은 혈액순환을 원활케 하여 심장병은 물론 동맥경화 등 혈관 관련 질병 예방에 큰 효과가 있습니다.
와인은 뇌혈관 건강에도 좋아 뇌신경세포의 노화와 손상에 따른 알츠하이머 등의 치매 증상이나 뇌졸중 예방에도 도움을 줍니다.
또 채식과 함께 레드 와인 적당량을 꾸준히 마시면 위암, 결장암, 십이지장궤양, 간경변 및 당뇨의 발생 확률을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또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감기 예방, 노화 방지, 피부미용, 변비 치료에도 좋습니다.
폴리페놀은 멜라닌 형성을 억제하여 여성들의 기미, 주근깨 방지에 효과가 있으며 과식을 억제하고 여성들의 다이어트와 우울증 치료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철분 흡수율도 증가시켜 폐경기 여성의 건강에도 이롭다고 하니, 와인은 남녀 모두의 건강 음료인 셈입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보르도 와인을 마시면 우울함이 사라진다고 했다죠.
와인은 무지방에 콜레스테롤도 0%이다. 하지만 칼로리만 놓고 봤을 때 와인은 저칼로리 다이어트 음료는 아니다. 효모(이스트)가 포도알의 당분을 먹고 만들어낸 것이 알코올이므로,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칼로리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알코올 도수 13~14도가량의 드라이한 레드 와인의 경우 750mL 한 병당 열량은 550kcal 정도이고, 10~11도가량의 화이트 와인은 500kcal 정도인데, 이것을 1리터로 환산해서 다른 주류나 음료와 비교해보면 위스키는 2,500kcal, 소주는 1,700kcal, 청하·매실주 1,300~1,400kcal, 레드 와인은 730kcal, 맥주·막걸리는 500kcal, 생맥주 370kcal, 우유는 630kcal, 오렌지주스는 500kcal가량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알코올에서 나오는 칼로리는 탄수화물이나 지방의 칼로리와는 달리 체내에 저장되지 않고 빨리 소비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당뇨 증세가 있는 분들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당뇨 식이요법에 맞춰 드라이한 와인 소량을 규칙적으로 곁들이면 전반적인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많은 양의 와인은 혈압 증가 등의 부작용과 혈당 조절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또 와인의 산화 방지를 위해 소량 첨가된 아황산염(무수아황산) 때문에 천식이 있는 분들이 알러지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황화합물에 의해 유발되는 천식이 아니라면 적당한 양의 와인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호주에서의 연구결과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천식 환자들은 주의가 필요하기에 와인을 드실 때 아황산염 함유량이 적은 유기농 와인을 소량 드시기 바랍니다.
한때 40세 이하 여성의 경우, 와인을 많이 마시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와인 때문이 아니라 습관성 과음을 하는 여성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식생활과 생활습관에 따른 것으로, 오히려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고 식사 시 하루 한두 잔의 와인을 마시는 여성들의 유방암 발병 확률은 더 낮은 것으로 밝혀져 누명을 벗었습니다.
또 와인은 희귀병인 다발성경화증의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미국인보다 고지방 섭취가 많은 프랑스인들은 레드 와인을 자주 마심으로써 심장병 발생률이 더 낮다. 프랑스인의 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은 55리터 이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프랑스인들은 와인 안주로 음식을 먹기보다는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와인을 마시므로 우리나라처럼 와인바가 따로 없다. 음식을 파는 모든 곳에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와인을 몇 번 마셨다고 해서 바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들이 건강에 좋다고 하니 어쩌다 생각날 때 한 번씩 레드 와인을 병째 비우는 것으로 심장병이 예방되고 혈관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와인은 약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 적당량(1~3잔)을 식사와 함께 즐겁게 마시고 올바른 식생활과 운동, 금연 등이 병행될 때 그 효과가 배가될 것입니다.
심장병 예방에는 화이트 와인보다 레드 와인이 효과가 좀 더 크다고 하지만, 분자 크기가 작아 혈액에 쉽게 흡수되는 화이트 와인은 폐와 관절 기능 개선에 더 효과가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에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에 대한 항균작용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패류와 화이트 와인의 궁합이 잘 맞나 봅니다.
또 화이트 와인은 여성들에게 좋은 미네랄과 면역력을 강화해주는 글루타치온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생성을 돕고 적정량 유지되도록 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와인과 건강에 대해서 말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입니다.
프랑스의 심장학자 세르주 르노 박사는 1991년 11월 미국 CBS-TV의 시사 프로그램(60 Minutes)에서 레드 와인과 관련한 중요한 발표를 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한 끼 식사 평균 1,100kcal인 고지방식을 즐기는데도 불구하고 심장병 사망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었는데요, 당시 미국인들의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심장질환이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큰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미국인들보다 더 고지방 식사를 하면서 운동량은 오히려 더 적은 프랑스인들의 심장병 사망률이 미국인들의 1/3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과 그 이유가 바로 레드 와인의 규칙적인 섭취에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이후 1992년부터 1996년 사이에 미국 내 레드 와인 판매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르노 박사는 40~60세 남성 36,000명을 대상으로 18년간 추적연구 끝에 비음주자나 그 이상 마신 과음자들에 비해 하루 2~3잔 정도 와인을 마신 사람들의 사망률이 무려 30%나 낮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와인의 폴리페놀 성분이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는데, 2006년 프랑스 루이 파스퇴르대의 한국 옥민호 박사팀은 레드 와인에 포함된 폴리페놀 성분이 동맥의 혈관이 막히는 동맥경화 증상을 원천적으로 막는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밝혀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IMF 직전 무렵 KBS-TV의 ‘생로병사’ 프로그램을 통해 프렌치 패러독스가 소개되면서 와인 붐이 일었는데, 그 후 경기침체와 막걸리 열풍에 밀려 다소 주춤하다가 다시 꾸준히 와인 소비량이 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건강에 그리 좋다는 와인을 하루에 몇 잔 정도 마시는 것이 좋을까요?
미국에서는 일일 권장량으로 성인 남자의 경우 와인 1~2잔(100~150mL), 여자는 1잔 정도를 말하지만, 영국의 경우는 남자 3잔, 여자 2.5잔까지를 권하고 있습니다. 또 일반적으로는 점심식사 때는 4명에 와인 1병, 저녁식사 때는 2명에 와인 1병이 적절한 양이라고 기준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프렌치 패러독스의 주인공인 프랑스인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와인을 3잔가량 마신다고 합니다.
프랑스 북부 사람들의 심장병 사망률과 평균수명은 유럽 전체 평균과 사실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유독 지중해 연안의 프랑스 남부 사람들은 매우 건강한 프렌치 패러독스의 표본이 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레드 와인 섭취만으로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온화한 기후에서 여유로운 생활태도를 가지고 식사 때마다 꾸준히 신선한 과일, 야채와 함께 적당량(소량)의 와인을 즐길 때 더 건강해진다는 방증이라 하겠다. 따라서 ‘프렌치 패러독스’라기 보다는 ‘지중해 패러독스’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인의 식생활습관을 고려할 때 점심식사 때 매번 와인을 곁들이긴 힘들고, 저녁에도 항상 와인을 마시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쩌다 마실 때 마치 보충이라도 하듯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은 오히려 몸에 해롭습니다. 한국인의 알코올 분해효소나 체력조건을 감안하면 알코올 섭취는 서구인들의 2/3 정도가 적당합니다. 따라서 일단 매일 저녁식사 때 부부가 와인 한 잔씩 즐기는 정도부터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와인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정신건강에도 이롭습니다. 그래서 베토벤, 슈베르트, 보들레르 같은 많은 예술가들이 와인을 사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책에서 와인 애호가들은 항상 와인의 종류와 특징을 생각하느라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고, 매일 와인을 즐기다 보니 우울할 사이가 없어서 자살할 가능성도 낮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저 역시 공감하는 바입니다.
한편, 폭탄주를 즐기시는 분이 어떤 모임에서 여러 종류의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들을 이것저것 같이 마셨는데, 이 경우 일종의 와인 폭탄주가 아니냐며 몸에 해롭지 않은지 제게 물어보신 적이 있습니다.
와인은 그 종류가 다르더라도 원료(basic material)와 양조방법이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과음만 하지 않으면 별문제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마지막에 와인을 증류해 만든 꼬냑(Brandy)을 디저트 와인으로 마신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와인을 위스키나 소주와 같이 마시거나, 연이어 마시면 뱃속에서 폭탄주 되는 것 맞습니다. 와인 마시고 머리 아프다는 분들 중에는 2차로 다른 술을 더 마셔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코르크 마개(a cork stopper) **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와인 병 마개로 코르크를 처음 사용한 것은 17세기 말 프랑스의 동 뻬리뇽(Dom Pérignon) 수도사였다고 합니다. 그는 스페인의 성지 순례 수도승들이 호리병 마개로 코르크를 사용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코르크는 참나뭇과의 코르크나무에서 얻습니다. 코르크참나무는 줄기가 가로 방향으로 커져 비대해지는 2차 생장을 하는 특징이 있는데, 바깥쪽의 코르크질(suberin)이라는 보호 조직이 바로 코르크 마개를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이 나무는 지중해 연안의 포르투갈(40%), 스페인(23%), 알제리(20%), 이탈리아, 모로코, 튀니지, 프랑스 등지가 주요 산지입니다.
수명이 150~200년인 코르크나무는 심은 지 30년이 지나면 껍질을 벗겨 코르크 마개를 만들 수 있는데, 9년에 한 번씩 총 15회 이상 가능합니다. 세 번째부터가 양질의 코르크로 인정받습니다.
코르크 마개는 와인이 새지 않도록 막아주면서 마치 숨을 쉬듯 미세한 공기 접촉을 통해 향과 맛을 발전시켜 주는 효과를 냅니다. 단순한 마개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 자연산 코르크의 효용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코르크 마개에 있는 TCA라는 성분이 와인과 접하면서 변질되어 습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일명 ‘코르크화’가 와인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한 통계에 따르면 와인을 오픈했을 때 5% 이상이 코르크화 상태라고 합니다. 20병 중 1병꼴인 셈이죠.
인조 합성 코르크나 스크루 캡의 사용이 늘고 있지만, 전통적인 와이너리의 고급 와인들은 대부분 천연 코르크 사용을 고수하고 있다. 코르크 완제품의 수명은 30년 전후. 현재 천연 코르크의 사용비율은 70% 수준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합성 코르크(Synthetic Cork, 인조 코르크)와 알루미늄 스크루 캡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스크루 캡은 현재 뉴질랜드, 호주, 미국 등지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으며, 저렴한 와인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도 젊은 층을 겨냥한 대중적 와인에는 합성 코르크나 스크루 캡이 일부 도입되고 있지만, 전통 있는 고급 와인들은 그 효용성과 관계없이 천연 코르크 사용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와인이 가지는 풍미 중에는 천연 코르크 마개도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 스크루 캡(Screw Cap) >
천연 코르크의 경우, 와인이 미세하나마 숨을 쉬면서 병입 후 숙성에 도움을 주지만, 스크루 캡(Screw Cap)은 공기가 완전히 차단되기 때문에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장기숙성 와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호주의 와인메이커 앨런 하트는 “천연 코르크 마개를 통해 유입되는 미세한 양의 산소가 와인의 숙성을 돕는 것은 맞지만,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호주 Henschke사의 〈Hill of Grace〉는 Penfolds사의 〈Grange〉와 함께 호주 최고의 Shiraz(쉬라즈) 와인으로 꼽히는 수퍼 프리미엄급 와인인데, 이와인의 2005년 빈티지를 모두 스크루 캡으로 만들어 와인 애호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나파 밸리에서는 천연 코르크와 합성 코르크를 다시 합성해 만들어낸 ‘메타코르크(metacork)’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거 아십니까? 모든 와인의 코르크 마개 길이가 동일하지 않다는 거. 재미있는 사실은 품질이 좋은 고급 와인일수록 코르크 마개의 길이가 더 길다고 보시면 됩니다. 코르크의 수명과 와인의 보관 가능 기간 등을 고려한 것이지요.
장기보관이 가능한 고급 와인은 코르크의 길이가 5cm 전후이고, 일반 와인은 그 이하이다.
합성 폴리에틸렌 코르크와 스크루 캡
부르고뉴의 소규모 도멘에서 전통수작업방식으로 코르킹 작업을 하고 있다.
** 와인의 보관 **
와인은 기본적으로 열과 빛을 싫어합니다. 습도에도 아주 민감해 보관 장소가 건조하면 산화되기 쉽기 때문에, 70% 전후의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장기보관 시, 병을 눕혀 보관하는 것보다도 습도가 적당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또 와인은 냄새나 진동도 싫어하기 때문에 적정 온도를 맞추더라도 일반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보관 환경이 좋지 않을 경우 와인은 제맛을 잃고 변질되기도 합니다. 지하실이 있는 집이라면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안쪽이 와인을 보관하기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아파트는 와인 보관 장소를 찾기가 참 마땅치 않습니다. 짧은 기간이라면 직사광선도 피하고 그리 건조하지도 않은 다용도실이 아쉬운 대로 괜찮은 장소이긴 합니다만, 이 역시 계절별로 온도 차이가 크므로 사계절 계속 보관할 수 있는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결국 가정에서도 고급 와인을 장기간 보관하려면 가정용 와인 셀러(wine cellar, 와인냉장고)를 구입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문제는 그 정답의 가격이 좀 부담스럽다는 것이죠. 국산 유명 와인 셀러의 경우, 41병입짜리가 100만 원대, 65병입짜리가 140만 원대입니다. 수입 제품은 이보다 훨씬 더 비싸지만 꽤 저렴한 중국산도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25%를 넘으면 미생물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위스키 등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들은 보관 온도나 기간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와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와인의 보관 온도로는 10~16도 정도가 적당합니다.
특히 고급 와인을 보관할 때는 적정 온도를 맞춰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정 온도를 변함없이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보관 온도가 자주 변하면, 와인이 피로해져서 구조감이 깨지고 제맛을 잃습니다. 김치를 아무데서나 대충 보관하면 쉬어빠져 못 먹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와인 보관에 있어 온도 변화는 올라가는 것보다 갑자기 내려가는 것이 더 안 좋습니다. 산화의 우려가 더 크기 때문이죠.
고급 와인을 선물 받아서 마루 장식장에 위스키와 함께 세워놓고 한동안 잊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이 경우 그 고급 와인은 어떻게 될까요?
마루의 장식장 안은 아무래도 기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햇빛이나 조명에 많이 노출되기도 하겠지요. 또한 오래 세워 놔두면 코르크가 말라 산화의 우려도 있습니다. 당연히 고급 와인 본래의 풍미를 잃어간다고 봐야 합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모임에서 식사를 하다가 어느 한 사람이 “참, 내 차 트렁크에 선물 받은 좋은 와인이 몇 병 있는데, 가서 가져올게”하는 경우 말입니다. 그 와인의 상태는 어떨까요? 빛은 차단되어 있었겠지만, 트렁크 안의 열기와 끊임없는 흔들림(진동) 속에서 온전히 보전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부디 고급 와인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급 레드 와인은 냉장고에서 냉장 보관하면 타닌 성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조감(structure)이 깨지므로 제맛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중저가 레드 와인도 짧은 기간을 보관한다 하더라도 가급적 서늘한 곳에 보관하다가 마시기 조금 전에 냉장고에 아주 잠시만 넣었다가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레드 와인은 20분, 화이트 와인은 1시간 정도면 됩니다.
여러 종류의 와인에 두루 적합한 와인 셀러 온도는 섭씨 13도(화씨 55도)
그래서 ‘55 degree’라는 이름의 와인바도 간혹 볼 수 있다.
와인의 종류별로 적정 온도를 맞춰 마셔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기본적으로 화이트 와인은 좀 차게, 레드 와인은 상온이 좋다. 당도가 높은 스위트 와인은 적당기간 냉장고에 보관해도 무방하며, 오픈한 상태로 몇 시간 이상 놔두어도 산화로 인한 맛의 변화를 덜 걱정해도 된다.
어떤 레드 와인이라도 냉장고에 오래 보관하면 구조와 밸런스가 깨져 맛이 밋밋해집니다. 아무리 저렴한 와인이라 할지라도 화이트 와인을 상온(常溫)에 놔두었다가 그냥 마시면 너무 시큼하고, 레드 와인을 냉장고에 계속 넣어두었다가 바로 꺼내서 마시면 맛이 니 맛도 내 맛도 아니게 됩니다.
이쯤 되면 슬슬 짜증이 나려 합니다. 아니, 와인 좀 배워서 마셔보려고 했더니 보관하는 것조차 뭐 그리 까다롭고 복잡하단 말인가.
하지만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값비싼 고급 와인을 장기간 보관하였다가 마시는 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원칙만 알고 지켜도 큰 하자는 없으니까요.
일단 집에서 편안하게 마실 와인은 1~3만 원대 와인을 고르시고, 또 오래 보관할 생각 말고 구입 후 늦어도 1~2주 이내에 마시는 것을 원칙으로 하십시오.
그리고 마시다 남은 와인의 보관을 위해 할인마트나 와인샵 등에서 펌프식으로 공기를 빼서 막는 진공마개(vacuum saver, 베큐엄 세이버)만큼은 꼭 구입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진공마개(vaccum saver, 베큐엄 세이버)
와인이 남았을 때 코르크 마개로 다시 막는 것보다 진공마개로 막는 것이 좋은 이유는병속의 공기를 빼주는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와인랙
권장사항은 아니지만, 중저가 와인이라면 18~20도 정도의 상온이나 서늘한 온도가 유지되는 그늘진 곳에서 한두 달 이상 보관해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습니다. 와인 셀러가 가격 면에서 부담스럽다면, 몇만 원 정도를 투자해서 와인을 여러 개 눕혀서 보관할 수 있는 ‘와인 랙(wine rack)’을 구입해 빛을 차단시켜 사용해도 아쉬운 대로 괜찮겠습니다. 와인은 태양광선이나 형광등 빛에 오래 노출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습니다. 자외선은 레드 와인의 타닌 성분을 산화시키는 주범이거든요.
와인은 항상 눕혀서 보관하여 코르크가 와인에 충분히 젖어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코르크는 젖으면 팽창하는데, 그래야 코르크가 말라 공기가 스며들어 와인이 산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단기간의 보관이나 손으로 돌려서 따는 스크루 캡이나 합성 코르크 마개를 사용한 와인이라면 굳이 눕혀서 보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와인을 즐기시는 분들 중 해외에서 어떤 와인을 마셔본 후, 한국에서 다시 같은 와인을 마셨더니 맛이 다르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와인을 항공편으로 직수입하지 않고 선박으로 수입할 경우 적절한 보관 조치를 취해 놓지 않았다면 배가 적도 근처를 지나올 때 열기로 인해 와인 품질에 손상을 입기도 합니다. 또 한국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야적장에 무방비로 쌓여있는 과정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수입업체가 이런 부분에 얼마나 신경을 쓰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고급 와인샵 등에서 ‘비행기로 직수입한 프랑스 와인 할인 판매’ 같은 문구를 간혹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차별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렇듯 와인은 어떻게 보관하느냐가 아주 중요한1) 문제입니다. 와인은 마치 숨 쉬고 있는 생명체처럼 환경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와인을 사러 와인샵에 들어갔다가 내부 공기가 탁하거나 밝은 형광등 밑에 일렬로 세워놓은 와인 병의 마개에 뽀얗게 먼지까지 쌓여 있다면 바로 돌아서 나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라면 뜨뜻미지근한 실내에서 위스키 등과 함께 와인을 세워놓고 파는 주류가게에서는 절대로 와인을 사지 않겠습니다. 그 샵에 있는 와인들의 상태는 안 봐도 대충 짐작이 가기 때문입니다.
** 치즈와 와인 **
같은 발효식품인 와인과 치즈는 초등학교 동창 같은 친구입니다. 치즈에는 우유의 영양분이 1/10로 농축되어 있으며, 치즈에 들어 있는 필수 아미노산이 간장의 활동을 도와 알코올 분해 촉진 효과까지 있으니 탁월한 궁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치즈를 제외한 모든 치즈와 와인은 종류와 상관없이 두루두루 잘 어울립니다.
대신 치즈와 와인을 매칭하는 기본적인 원칙은 있습니다. 오래 숙성되고 단단한 하드 치즈일수록 바디와 구조감이 좋은 와인과 잘 어울리고, 짧게 숙성된 부드러운 치즈일수록 가벼운 느낌의 와인이 좋습니다.
대신 치즈의 색깔이 희고 신선한 치즈에 과일 향이 풍부한 와인을 곁들이는 것도 양쪽의 맛을 잘 살려주는 좋은 매칭이 될 수 있습니다. 가볍고 크리미한 치즈에는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이 좋지만, 부드러운 질감이 기름기가 많은 치즈에는 역시 오일리한 질감의 와인이 좋습니다.
그리고 새콤한 느낌의 와인에는 역시 산도가 좀 있는 화이트 와인이, 짭짤한 치즈에는 달콤한 와인이 대체로 잘 어울립니다.
부르고뉴의 미쉐린가이드 쓰리스타 레스토랑의 치즈 메뉴들
1) 모짜렐라 치즈(Mozzarella) / 크림 치즈(Cream)
샐러드나 피자용 치즈로 많이 쓰이는 이탈리아의 모짜렐라 치즈는 신선한 우유 맛이 살아 있는 순하고 부드러운 프레시 치즈로, 고무줄처럼 늘어지고 쫄깃한 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스파클링 와인과 화이트 와인에 두루 잘 매칭되는데, 특히 가볍고 상큼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과 가장 잘 어울립니다. 치즈의 맛 자체가 가볍고 부드럽기 때문에 강한 향을 가진 와인과는 잘 맞지 않습니다.
크림 치즈도 모짜렐라 치즈와 와인 매칭이 비슷합니다.
모짜렐라 치즈
2) 브리 치즈(Brie) / 까망베르 치즈(Camembert)
나폴레옹 3세가 무척이나 즐겼다는 까망베르 치즈는 브리 치즈와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프트(연성) 치즈입니다. 까망베르는 3주, 브리 치즈는 6주 정도 숙성을 시키는데, 둘 다 흰 곰팡이 피막으로 덮여 있고 속은 크림처럼 부드럽고 버섯스프 향이 나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까망베르는 레드 와인과 더 어울리고, 브리 치즈는 화이트 와인과 더 어울린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런 구분 자체가 맞지 않다고 봅니다.
흰 곰팡이 치즈들은 모두 Pinot Noir(삐노 누아) 품종 레드 와인과 찰떡궁합이지만, Merlot(메를로)나 Gremache(그르나슈)가 주품종인 미디엄바디 레드 와인들과도 두루 잘 어울립니다. Chardonnay(샤르도네) 품종 등으로 만든 상큼한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도 좋습니다. 저는 〈보졸레 누보〉 와인에 까망베르 치즈를 곁들이는 것을 참 즐깁니다.
브리 치즈
3) 염소 치즈(Goat)
적당히 상큼한 산도가 있는 화이트 와인들이 치즈 자체의 새콤함에 잘 어울립니다. 오크통이 아닌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숙성시킨 Chardonnay(샤르도네) 품종 와인이나 원래 염소젖 치즈로도 유명한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Sauvignon Blanc(쏘비뇽 블랑) 품종 와인, 부르고뉴 지방의 Aligoté(알리고떼) 품종 화이트 와인 등을 추천할 만합니다. 산양젖 치즈도 있는데, 이 치즈는 레드 와인과 함께 먹으면 비린내가 느껴지므로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고트(염소) 치즈
4) 고다 치즈(Gauda) / 에담 치즈(Edam)
네덜란드의 대표 치즈인 고다 치즈와 에담 치즈는 모두 경질에 가까운 중질 치즈인데, 빨간색 왁스코팅에 쌓여있는 에담 치즈가 좀 더 단단한 편입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풍미의 고다 치즈와 호두향과 짠맛이 살짝 더 느껴지는 에담 치즈는 둘 다 대부분의 와인들과 다 잘 어울립니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오래 숙성시키지 않은 Pinot Noir(삐노 누아)나 Merlot(메를로) 품종 레드 와인과 잘 매칭되며,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Sancerre(쌍세르)〉〈Pouilly-Fumé(뿌이 퓌메)〉 와인처럼 숙성기간이 길고 산도가 강한 Sauvignon Blanc 품종 화이트 와인과도 잘 맞습니다.
고다 치즈
5) 체다 치즈(Cheddar)
얇게 썰어서 샌드위치나 나초요리 등을 만들 때 많이 사용되는, 영국의 체다 마을이 원산지인 연질 치즈입니다. 체다 치즈는 〈Châteauneuf-du-Pape(샤또뇌프 뒤 빠프)〉 와인이나 Merlot(메를로) 품종 와인 같은 미디엄바디 레드 와인과 친한 편입니다. 또 숙성기간이 길거나 오크 풍미가 있는 화이트 와인과 같이 먹어도 좋습니다.
체다 치즈
6) 에멘탈 치즈(Emmenthal)
스위스 알프스 지방의 Emmenthal(에멘탈/에멍딸) 치즈는 만화영화 ‘톰과 제리’에서 자주 보던 구멍(Cheese Eye)이 뽕뽕 뚫린 치즈로 부드럽고 단맛이 나며 향이 강합니다. 론 지방 레드 와인처럼 과일 향이 풍부한 부드러운 레드 와인이나 Chardonnay(샤르도네) 품종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립니다.
‘스위스의 한 조각’이라고 표현될 만큼 스위스를 대표하는 치즈인 에멘탈 치즈
7) 그뤼예르 치즈(Gruyere)
그뤼예르 치즈는 에멘탈 치즈와 함께 스위스의 대표적인 치즈로 치즈 퐁듀 요리에 많이 사용됩니다. 질감이 단단한 편이고 에멘탈 치즈보다 더 짙은 노란색을 띠는데, 진한 크림과 견과류 맛이 납니다. 에멘탈 치즈처럼 과일 향이 풍부한 레드 와인과도 잘 어울리지만 Gewürztraminer(게뷔르츠트라미너) 품종 와인처럼 향이 뛰어난 화이트 와인과도 잘 맞습니다.
모듬치즈
① 뮌스터(Munster) 치즈, 프랑스 알자스, ② 마일드 프로볼로네(Provolone) 치즈, 이탈리아, ③ 까망베르 치즈, 프랑스, ④ 갈릭 & 허브 크림치즈, 미국, ⑤ 과일 크림치즈, 호주, ⑥ 몬터레이 잭 치즈, 미국, ⑦ 에멘탈 치즈, 스위스, ⑧ 스모키 치즈, 미국, ⑨
8) 블루 치즈
< 파마산 치즈(Parmasan) >
꽁떼, 에멘탈 치즈와 함께 대표적인 하드 치즈로 꿀을 살짝 발라 먹으면 더욱 맛있는 파마산 치즈는 미디엄바디 이상의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립니다.
< 블루 치즈류 >
로크포르(Roquefort), 고르곤졸라(Gorgonzola), 스틸턴(Stilton) 등 오랜 숙성을 거쳐 푸른곰팡이의 ‘꼬리~’한 짠맛이 강해진 블루 치즈 종류들은 기본적으로는 풀바디 레드 와인과 잘 매칭되지만 프랑스의 〈Sauternes(쏘떼른)〉 와인이나 독일의 〈TBA(트로켄베렌아우슬레제)〉 와인 같은 디저트용 스위트 화이트 와인과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블루 치즈의 짠맛이 디저트 와인의 단맛을 더욱 맛있게 살려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스와인과도 좋은 파트너가 됩니다.
< 블루 치즈류 >
로크포르는 피레네 산맥에서 나는 블루 치즈의 일종으로 프랑스의 〈Sauternes(쏘떼른)〉 와인과 어울리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블루 치즈인 고르곤졸라는 〈Vin Santo(빈 싼또)〉 같은 이탈리아 스위트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린다. 스틸턴 치즈는 포트 와인과 스위트한 쉐리 와인을 마실 때 곁들이면 좋다.
짭조름한 고르곤졸라 치즈가 들어간 피자에 꿀을 살짝 뿌려서 스위트한 와인과 함께 먹으면 맛이 끝내준다.
9) 간단한 와인 안주
치즈가 없다면, 너무 달거나 짜지 않은 과자류 혹은 신맛이 강하지 않은 과일도 아쉬운 대로 괜찮습니다. 하지만 맥주 안주로 먹는 오징어, 멸치, 김, 땅콩, 호두 등은 와인 안주로는 적당치 않습니다.
간단한 치즈와 와인 매치 한 가지를 소개하면, 담백한 크래커(참크래커)에 얇게 썬 고다 치즈를 깔고 그 위에 역시 얇게 썬 상큼한 파란 사과를 얹어서 뉴질랜드 Sauvignon Blanc(쏘비뇽 블랑) 와인과 함께 먹는 것입니다. 일종의 까나페(Canape) 안주인데, 이렇게 작게 자른 식빵이나 바게뜨, 플레인 크래커에 버터를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치즈, 과일, 달걀, 햄, 육류 등을 얹는 서양의 전채요리를 까나페(Canape)라고 합니다.
까나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