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2살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외할머니 김월례씨는 아주 얌전하시고 젊쟎으신 분이었다는데
정신여학교에서 김필례씨와 함께 공부하셨으며
옛날 부통령 이셨던 함태영씨가 엄마의 이모부라고 하셨다
엄마는 젖을 못먹어
어릴때 말라 비틀어져 다리가 비비 꼬일정도 였었는데
엄마의 할머니인 외증조 할머니가 미음이랑 온갖 몸에 좋은것
정성으로 먹여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한다
엄마 외갓집이 부유해서 호강을 하며 자랐는데
대부분 친구들이 집안형편이 어려워 국민학교만 졸업을 했었는데
엄마는 여학교를 졸업하고 또 경성보육전문 학교에 다녀서
친구들이 부러워 했다고 한다.
엄마는 활달하고 웃으운 소리를 잘해 온 반 친구들을 "와 하하" 웃게 만들곤 해서
엄마를 펭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한다
엄마는 운동을 잘하셔서 스케이트 선수셨고, 또 탁구시합때도 선수로 나가곤 하셨었다 한다
엄마는 여고를 졸업후
경성보육전문학교에서 공부하셔서 유치원선생님 자격증을 얻으셨고
결혼전에 유치원 선생님이 셨었었다
우리 외갓집은 독실한 기독교집안 이었는데
외증조 할머니께서 승동교회 초창기 전도부인이셔서 미국인 선교사와
한국 시골등 곳곳을 찾아다니며 전도를 하셨고 외할아버지께서는 승동교회 장로님 이셨다 한다.
엄마도 어릴때 부터 승동교회에 다니셨고 일제시대때 승동교회 찬양대원으로 봉사하셨다 한다.
성가대원 몇명이 일본 학도병으로 징집되에 나가게 되서, 성가대원들과 목사님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다.
뒤에 일장기가 보이고..,
위의 사진속 남자는 이미 학도병으로 떠난후라.. 사진만..
맨 뒷줄 왼쪽에서 4번째가 엄마이시고
맨 뒷줄 오른쪽에 계신분이 훗날 내 고모님이 되신 분이다.
맨 앞줄 왼쪽에서 7번째가 승동교회 이덕흥 목사님(이분이 후에 엄마결혼식 주례를 해 주셨다)
그리고 맨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남자가 훗날 육군 참모총장이 되신 김계원씨인데
김계원씨는 평생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셨다고 한다.
내가 이 사진을 보고 엄마한테 "와우 엄마~ 김계원씨와 결혼 했으면 좋았을 것을..." 했더니
저때는 그분이 키도작고, 말도 없으시고.. 성가대 여자들 한테 인기가 없으셨었다고..
엄마는 국민학교때 부터 제일 친하던 정현이 아줌마 집에 놀러다니다가
아줌마 이종사촌 오빠인 우리 아버지를 만나 사랑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20살때 동갑인 아버지와 승동교회에서 결혼을 하셨다 한다
외갓집에서 엄마 결혼하실때 혼수를 아주 잘 해 주셨다 한다.
철철히 입을 옷들, 비단이랑.. 옷감들...
첫댓글 저만 맨처음 댓글다는것 같아
다른분들께서 먼저 댓글다시면
저는 그 후에 하려고 기다렸는데,
며칠지났는데 아직 없네요..
예전 어르신들이 기독교가정에서 자라신 분들이
많이 공부하시고. 신문물을 다른분들에 비해 더 익히시는것 같았어요.
제 친정아버지와 제친정어머니는 전주에서 같은 교회 장로님이셨고
전주고 제1회 졸업생이셨던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께서 친구로
서로 아들과 딸을 결혼시키셨어요.기독교인들이 자녀들 교육에도 열심이지요.
청이님께서도 외증조부님께서 기독교인으로 장로님이셨군요.
신앙좋은신 외증조부모님밑에서 청이님이 자라셨군요.
청이님 어머님께서는 2살때 어머니를 여의셨으니,
외조부모님께서 더 정성으로 보살피셨겠어요.
훌륭하신 외증조부모님에게서 훌륭하신 청이님 어머님이 되셨고
그어머님밑에서 그청이님께서도 치매앓으시는 친정 어머님을 모시고 사시는
제가 존경하는 훌륭한 분이시고요.
다른분들 기다리다가 댓글이 늦었어요.
지금은 5월5일 화요일 오후입니다.
청이님 내외분 어머님 두아드님가족들 다평안 하시기를요.
댓글 감사합니다.
요즈음 내가 그냥 전에 썻던글들을 하나씩
그리고 담소실 회원들이 전에 냈던 글들을
다시 여기에 내기에 댓글을 기대하지 않았는데요...
엄마가 이제 얼마안남으신것 같아
엄마가..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