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 파리는 많은 나라에서 온 화가들로 북적였습니다. 러시아와 영국 그리고 미국과 스웨덴, 노르웨이 등지에서 온 젊은 화가들이 그림을 배우고 전시회에 참가했죠. 파리 현지에서 성공을 거둔 이탈리아 화가들이 있는데 그들 중 인상파 기법을 파리에서 배웠지만 가장 전위적인 기법으로 파리에서 성공을 거둔 화가가 있습니다. 페데리코 잔도메네기(Federico Zandomeneghi, 1841-1917)입니다.
수다 The Chat, 54x65cm, oil on canvas
혹시 그 이야기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요? 나도 방금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요... 벽 앞에 선 여인들의 머리가 한 곳으로 모였습니다. 듣고 있는 여인들의 자세를 보니 아주 심각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앉아서 위를 쳐다보는 여인의 눈이 활짝 커진 듯한 느낌도 듭니다. 여인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이제 조만간 온 세상이 다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글쎄 봄이 급하게 오다가 길을 잘못 들었대요. 화사하고 고운 분위기이니까 이야기도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잔도메네기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이름난 조각가였습니다. 당연히 어려서부터 조각에 친숙한 환경에서 성장을 했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조각이 아니라 회화였습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잔도메네기는 베네치아 국립미술원에 입학합니다.
센 강에서의 낚시 Fishing on the Seine, 15x25cm, oil on canvas, 1878
작은 낚시 의자에 앉아 있던 여인이 슬슬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햇빛을 가리던 양산을 슬며시 기울이고는 낚시에 정신없는 남자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이제 그만 가요. 머리만 보이는 남자는 여인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지 강 가운데 배를 띄운 남자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곳에서는 잘 잡힙니까? 강 건너 굴뚝을 보니 바람도 제법 부는 것 같습니다. 계절은 늦가을이니까 오래 있으면 한기도 느끼겠지요. 여인의 불편한 심사가 더 높아지기 전에 남자가 벌떡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낚시터에 따라 나온 여인의 선택에 문제가 있었군요. 그래서 저는 아내를 따라 백화점 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베네치아를 거쳐 밀라노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잔도메네기는 열아홉이 되던 해 이탈리아 독립전쟁을 이끌던 가리발디 장군의 부대에 합류, 전쟁에 참여합니다. 앞서 소개한 주세페 아바티 http://cafe.daum.net/music7694/9L8P/591도 이 전쟁에 참여했었지요. 화가이기 이전에 이탈리아 국민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통일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침대에서 In Bed, 1878
사실주의적인 기법이 돋보이는 잔도메네기의 작품입니다. 해가 꽤 높이 올라왔는지 방안이 환합니다. 그러나 침대 위 여인은 아직 일어날 기척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편안한 자세로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적당히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올려주면 그 움직임에 여인이 눈을 뜨지 않을까요? 푹 자고 난 뒤 느껴지는 개운한 몸과 마음, 늘 갖고 싶은 것 중 하나입니다.
1862년 전쟁이 끝나고 잔도메네기는 피렌체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카페 미켈란젤로에서 마키아이올리 파를 만나게 됩니다. 예술이 나가야 할 방향과 시대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모임이었으니까 늘 열기가 가득했겠지요.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서 안타까운 것은 그런 열기들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다림 Waiting, 65x54cm, oil on canvas
난간을 잡고 밖을 내다보는 여인의 눈에 피곤이 짙게 어렸습니다. 무릎을 잡은 손에도 힘이 없어 보입니다. 밖을 내다보며 기다리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 듯 니다. 오랜 기다림은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희망으로 시작하는 기다림이 더 깊어지면 분노가 되고 그 후에는 절망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하지요. 생각해보면 분노나 절망은 시간 때문이 아니라 믿음이 부족해서 만들어진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꼭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한 분노나 절망이 기다림의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지요.
잔도메네기는 5년간 피렌체에 머물며 풍경 속에 생생한 빛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는데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방법이었습니다. 1866년, 그는 다시 베네치아로 거처를 옮겨 작품 활동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1874년 잠깐 파리를 방문하게 되는데,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겠지요.
앙베르 광장 Place d'Anvers, Paris, 100x134.9cm, oil on canvas, 1880
몽마르트 언덕 근처의 앙베르 광장입니다. 가로수 밑과 담장 옆에 벤치가 있고 사람들은 햇빛을 피해 그곳에 모였습니다. 시간은 오후쯤이겠지요. 남자는 별로 보이지 않고 주로 여인과 아이들입니다. 오스만 남작에 의해 파리가 재정비되면서 파리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곧게 뻗은 길과 공원에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지요. 담장의 그늘을 오색 타일로 깔아 놓은 것처럼 묘사한 부분에서 인상파에 푹 빠져든 잔도메네기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파리에 도착한 잔도메네기는 활력 가득한 예술 도시의 정취에 빠져들고 맙니다. 막 제1회 인상파 전시회를 끝낸 젊은 화가들과 친분을 맺게 되는데 드가와 가장 친했고 로트레크와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드가는 많은 외국 화가들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었던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화풍이 비슷했기 때문에 쉽게 친분을 나눌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파리에서 화가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기회 The Last Chance, 55x46cm, oil on canvas, c.1890
거울을 보는 여인의 표정이 비장합니다. 그림의 제목을 보면 무엇인가 중대 결심을 하는 순간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좀처럼 알 수 없군요. 혹시 마음에 둔 남자와 장래를 약속하기 위한 기회를 앞에 두고 있는 것일까요? 화려하게 장식된 모자와 노란색 외투가 세련된 느낌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여인의 얼굴에 표현된 수포 같은 것입니다. 그림 파일을 키워서 확인해봤지만 일부러 그려 넣은 것인지 그림의 보관 상태 때문인지 구분을 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이시는지요?
그림이 팔리지 않을 때는 패션 잡지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던 잔도메네기에게 드가는 든든함 힘이 되었습니다. 드가는 인상파의 옹호자였던 화상 뒤랑뤼엘에게 그를 소개합니다. 이 모임 이후 잔도메네기는 인상파 기법을 그의 작품에 적용하게 되고 풍부한 빛과 친숙한 구도가 등장하게 됩니다. 파리 관객들의 눈높이를 알게 된 것이죠.
번민 Languor, 55x46cm, oil on canvas, c.1890
번민이라고 제목을 붙여봤지만 여인의 표정은 그것이 아닙니다. 머리를 잡은 손이나 어깨에 손을 올린 모습 그리고 눈을 보니 애써 울음을 참는 듯합니다. 소파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배경의 꿈틀거리는 선이 마치 여인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풀리지 않는 마음,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보고 싶은데 애꿎은 머리만 만지게 됩니다. 좀 지나면 좋아질 겁니다. 살다보니까 그런 것들 아무 것도 아니더군요. 사실 그런 것들이 있어서 삶이 지루하지 않죠. 살면서 마음에 옹이 하나 둘 안 만드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잔도메네기는 드가와 르누아르 그리고 메리 커셋의 작품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공원이나 간단한 소품들로 장식된 실내에 앉아 있는 여인들이나 어린 소녀들의 모습이 그의 작품 주제로 등장했습니다. 1880년 인상파 전시회에 참여한 그의 작품에 대해서 정확한 성격 묘사와 행동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평가들의 호평이 쏟아졌습니다.
자전거 타기 Cycling, 32x40cm, pastel, 1896
먼저 도착해서 풀밭에 앉아 있던 여인들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또 다른 여인이 등장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여인들이 자전거 타는 일이 보편적인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사이클 동호회라도 되는 걸까요? 파스텔이 주는 부드러움이 여인들의 모습을 더욱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인이 타고 있는 자전거 핸들이 꽃으로 장식되어 있군요. 꽃마차 말고 꽃자전거도 있었습니다.
잔도메네기는 총 4번에 걸쳐 인상파 전시회에 참여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파리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출신 화가들로는 조반니 볼디니 http://cafe.daum.net/music7694/9L8P/534와 주세페 데 니티가 있었는데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셋 중에서 그가 가장 앞섰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편지 The Letter, 54.5x46cm, oil on canvas
어디까지 썼을까? 아! 저 말은 잘못 쓴 것인데... 어떻게 하지? 너무 쉽게 내 마음을 드러내버렸네. 여인의 눈매가 가늘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손은 턱을 괴었습니다. 생각이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편지를 읽을 때와 편지를 쓸 때는 자세가 다릅니다. 마음을 담기 위해서는 몸을 숙여야 하지만 그 마음을 읽기 위해서는 몸을 젖히게 됩니다. 최대한 많이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죠. 요즘은 컴퓨터 앞에서 편지를 쓰고 읽다보니 얼굴만 가까이 가게 됩니다. 참 못된 세상이 되었습니다.
1883년 뒤랑뤼엘은 그의 화랑에서 잔도메네기를 위한 개인전을 열어 줍니다. 그에 대한 뒤랑뤼엘의 마음의 표시였고 이후 잔도메네기의 이름은 파리 예술계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또한 그의 작품은 당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전위적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뒤랑뤼엘은 그를 파리 화가들의 맨 앞자리에 올려놓게 됩니다.
책 읽는 소녀 Young Girl Reading, 38.8x46.3cm, oil on canvas
참 기분 좋은 그림입니다. 독서에 빠진 붉은 머리의 소녀가 귀엽습니다. 벽지도 화사한 붉은색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이 자주 다뤘던 주제 중에는 책을 읽는 여인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일상을 주요 주제로 다뤘던 그들을 생각하면 19세기 후반, 여인들의 책 읽는 모습이 보편적이었던 모양입니다. 불과 그보다 한 세기 전 극소수의 여인들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지요. 금년에는 꼭 소설을 줄기차게 읽겠다고 결심했는데 2월이 되어서도 아직 인문학에서 못 벗어났습니다.
1889년 만국박람회에서 수상을 한 잔도메네기는 파스텔화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드가와 친하게 지내던 화가들 중에 파스텔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은데 혹시 드가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890년대에 뒤랑뤼엘은 미국에서 잔도메네기의 작품 전시회를 계획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잔도메네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명성과 경제적인 안정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기다림 Waiting, 45x37cm, pastel
이 여인의 기다림은 별처럼 빛나는 것 같습니다. 빛을 등지고 있지만 아련한 여인의 눈빛은 분명하게 알 수 있거든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눌러보지만 기다렸던 순간이 가까워지면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여인도 저처럼 봄을 기다리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잔도메네기는 일흔여섯의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서른세 살에 베네치아를 떠났으니까 타국에서의 생활이 훨씬 더 길었고 파리에 정착한 후 이탈리아를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설을 맞이해서 고향으로 가는 길 위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을 TV로 보다가 잔도메네기가 떠올랐습니다. 파리의 어떤 것들이 고향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그를 붙잡았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