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탈탈 털다 (외 1편)
서 하
혼자 사는 윗층 여자,
함께 살던 눈물 안간힘으로 터는지
봄날 오후가 덜컹거린다
둘이 살아도 외로운 나는,
창을 닫고 근처 벚나무 아래 선다
-참 슬퍼 보여, 무슨 일 있어? 봄바람이 묻는다
머뭇거리다 눈을 감는다
-슬픈 자리 있거들랑 뒤집어서 탈탈 털어 버려라
전쟁 때 총 맞고 하늘 간 할배 목소리 들려오는 건,
이승에서 다 털지 못하고 저물었기 때문일까?
하늘 뒤집어 탈탈 털면 무지개 돋아나려나?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고
그 옛날 하늘로 소풍 간 사람들,
깔고 앉았던 돗자리 한바탕 터는지
사진 찍는 사람들 머리와 어깨, 솜사탕 위로,
꽃잎이, 꽃술이, 일제히 흩날리는 저 꽃비,
그늘 수백 평이 몸 빼지 않고 기꺼이 다 받아준다
말복을 광복이라 부를래?
손부채질이 아무 소용없던 말복 날,
친구가 두 다리통 실한 육계와 황기를 사들고 왔다
포식, 보신하였다고 이튿날 전화 했더니
병 든 닭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밤새 뭔 일 있었어?
-어젯밤 집으로 가는 길에 아끼던 진주목걸이를 잃었단다
목걸이를 잃으면 목소리도 힘이 다 빠지는구나
목은 곧 못이다
무거운 외투 넙죽 받아주는 못의 강단이 없다면
우리는 어디서 깃털처럼 가벼워지나?
목 있으면, 아니 못 있으면 목걸이야 사다 걸 수 있지만
못 없으면 목걸이 어디다 걸어둘까?
그 해 말복을 광복이라 부를래?
초복, 중복, 광복, 어때?
우리 그 날, 두 날개 활짝 펼치고
큰 목소리로 꼬끼오! 꼬끼오! 만세 부르자, 친구야!
-시인정신 2014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