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3년이 지나면 당정관계에 레임덕이 옵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임기 6년차의 저주’라는 연구논문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대통령제 아래서는 레임덕 문제가 책임정치의 장애사유가 되는 것을 회피하기 어려운 일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우리의 경우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임기 3년차의 저주’라고 해야 할 형편입니다.” 2007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한 자 한 자 내 손으로 직접 썼다”며 공개한 개헌 발의를 위한 국회 연설 원고의 한 부분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 나타나는 집권 3년차 ‘증후군’을 노 대통령은 ‘저주’라고 일컬었다. 그만큼 숙명적이고 혹독하다는 얘기다.
집권 3년차는 임기 반환점을 도는, 소위 ‘꺾어지는 해’이다. 권력의 구심력과 원심력이 맞서는 시기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은 예외없이 집권 3년차에 위기와 마주했다. 임기 3년차에 측근 비리나 권력형 게이트, 인사·정책 실패, 여권 분열에 발목이 잡혀 급속히 내리막을 걷는 과정이 돌림노래처럼 반복됐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치적에도, 잇따른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로 직격탄을 맞았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행담도 개발 의혹 등이 터지고 부동산값 폭등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민간인 사찰, ‘영포라인’ 의혹에 휘청대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결정타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비선실세’ 파동에 이어 ‘성완종 리스트’, 당청갈등이 노정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3년차 입문 환경도 녹록지 않다. 청와대 특감반 사태는 확산되고, 세밑에는 기어이 조국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해야 했다. 범여권 정당과의 연대는 파열이 커지고, 무엇보다 경제·민생에서의 실적 부진이 지지율 급락을 초래했다. ‘집권 3년차 징크스’ 예고편이란 진단마저 흘러 나온다.
역대 정권마다 집권 3년차 증후군을 겪었기에, 교훈 삼을 역사는 축적되어 있다. 반면교사를 제대로 삼아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차 징크스를 깨는 전인미답의 길을 갈 건가, 아니면 영락없이 ‘집권 3년차의 저주’에 빠져 내리막길을 걸을 것인가. 정권의 성패는 집권 3년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전영기의 시시각각] 신재민의 진실은 살아있다
언어와 기억의 조작술로 덮지 못해
청와대 비서 국채발행 개입은 위법
전 국민을 24시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이라는 일방향 방송통신 미디어는 자유를 예속이라 부르고 무지를 힘이라고 세뇌시킨다. 주인공은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는 당 중앙의 기억 조작에 저항하다 마침내 ‘내 기억이 잘 못 됐나. 둘 더하기 둘은 넷이 아닐지 몰라’라는 의심 속에 빠진다. 주인공의 사실 인식은 언어와 기억 조작에 의해 자기 의심을 거쳐 정권의 거짓말을 수용하는 단계로 진전된다. 1984년의 전체주의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신재민의 ‘청와대 권력 일탈 폭로’ 이후 당·정·청 집권 기구는 그가 겪은 과거의 사실들이 존재하지 않는 허구임을 증명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는 모양새다. 기획재정부 전 사무관의 폭로 내용은 대중이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면 정권이 고꾸라질 만큼 불온하고 파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재부는 청와대로 불이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4년간 헌신적으로 일했던 막내 사무관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검찰이 이런저런 죄목을 뒤집어씌워 신재민을 침묵의 공간으로 보내주길 바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렇지 않으면 추가 폭로로 여러 사람이 다칠 수 있는 데다 제2, 제3의 신재민마저 등장할 수 있는 까닭이다.
민주당의 어떤 사람은 신재민의 입을 막고 싶었는지 “퇴직 후 헛소문을 퍼뜨리는 양아치” “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떠드는 솜씨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같은 언어폭력을 가했다. 이튿날 그가 정신적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목숨까지 내놓으려 했으니 이게 민주당 사람이 원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이쯤 되면 집권층 가운데 신재민의 입에서 자기 기억을 의심하는 언급이 나오고 청와대의 일탈은 없었다는 반성문이 나오길 기대하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2019년 한국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아니다. 언어와 기억의 조작술이 신재민의 진실을 완전히 덮을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런 시대를 허용할 만큼 한국인의 헌법수호 의지와 민주 역량이 훼손되지 않았다. 우선 신재민이 자유로운 정신 상태에서 제작한 ‘12분 32초’ ‘6분 7초’ 짜리 유튜브 동영상 두 개가 진실의 증거물로 살아 있다. 여기엔 청와대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세수가 충분한데도 나랏빚을 더 내기로 자기들끼리 의사결정을 한 뒤 기재부를 압박해 이를 관철하려 했던 위법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기재부의 반대로 국채 발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최종 결과가 청와대의 위법성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 국회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장이 열리면 신재민의 유튜브를 근거로 관련자들을 대질 심문시켜 객관적 진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헌법과 정부조직법은 모든 국법 행위는 국무위원 즉, 정부 부처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청와대 비서들의 정책 결정과 부처에 대한 지시는 위법이다. 김의겸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31일 ‘청와대가 국채발행에 개입할 권한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한이 있다”고 발언했는데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할 뿐 어떤 법적 권한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을 망각한 얘기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중앙일보] [전영기의 시시각각] 신재민의 진실은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