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미학 24년 여름호 신인상 심사평
문학적 완성도와 공감
이번 신인상 공모에서는 3편 이상의 작품을 제출받았다. 김현주, 임기순, 장원태의 작품은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편이고 작품 수준도 고르다. 저마다 제출한 응모작 세 편 가운데 어느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택하더라도 손색이 없지만, 공감도나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을 하나씩 골라 수상작으로 삼았다. 김현주의 <어쩌다 어른>, 임기순의 <나팔꽃과 해바라기>, 장원태의 <달인>이 이에 해당한다.
수필을 어떻게 써야 완성도를 높일 수 있으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수필은 일상 경험의 문학적 변용이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경험 세계를 문학적 언어형식으로 구현하여 개성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의미를 전달해 내야 한다. 작품의 모든 요소가 서로 유기적인 연대를 이루어 하나의 관계망 속에 담겨야 비로소 완성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완성도가 높을수록 공감의 정도가 커지겠지만, 작품의 완성도와 공감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부족하더라도 어느 한 부분만으로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독특한 경험 세계, 수사적 표현, 문장의 유연성, 잘 짜인 구성, 치밀한 서술, 신선한 주제 등등, 어느 한 부분이 특출하여도 공감을 줄 수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명을 용사(用事)한 김현주의 <어쩌다 어른>은 ‘어쩌다 어른’이라는 말을 발상의 단초로 삼았다. 작가의 주제의식도 이 언어가 지닌 기의와 일치한다. 작가는 ‘어른’의 의미를 사전적 차원을 넘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관한 관념적 사유를 펼치는 것으로 작품을 이어가지 않고 삶의 경험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다. 구체적인 경험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사유는 허황하기 쉬운데, 이 작품은 경험과 사유를 긴밀하고 탄탄하게 연대시키고 있다. 독서를 좋아했던 작가는 속이 깊다는 말을 가끔 들었던 터라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독서가 어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것 없이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다가 보니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다고 하는 삶의 경험 서술은 나이만 어른이 되었지, 진정한 어른으로 살지 못했음을 말해주기 위한 설정이다.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목표 없이 살아가는 것이 보편적인 삶의 방식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미리 알아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울 줄 알아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자기 삶과의 화해이면서 삶의 보편성에 대한 이해다. 주제 도출에 무난히 안착했다. 긴 목표를 미리 세우고 그것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며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의 대다수가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는 삶을 살아간다는 주제가 특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미국 이민 후에 아이를 낳고 둘째를 임신했던 때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읽을 책이 없어서 서러웠고 남편이 사다 준 소설책을 읽느라 입덧도 잊었다고 하여 앞 단락에 이어 독서 취미를 강조했다. 이 단락의 주제를 ‘어쩌다 보니’에 맞추었어야 작품이 보다 완성도를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고, 또 둘째와 셋째까지 낳아 기르며 살았다고.
임기순의 <나팔꽃과 해바라기>는 경험을 서술한 다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귀납적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수필 창작 방법이다. 경험 서사체는 두 자폐아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입학 상담을 하겠다며 데리고 온 어느 자폐아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날 함께했던 또 한 명의 자폐아에 대한 기억을 삽입해 놓은 구성이다. 장애아동 통합보육을 해야 한다는 원칙과 일반 학부모들의 불만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충돌, 그런 갈등을 다시 겪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한 작가의 고뇌를 침착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린이집 담장 아래 해바라기 줄기를 타고 오르며 살아가는 나팔꽃과 그 나팔꽃을 품어주는 해바라기를 보면서 장애를 지닌 어린이와 정상적인 어린이가 함께 커가는 세상을 바란다. 나팔꽃과 해바라기는 작가의 감정 이입의 대상인 객관적 상관물이다.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화자의 감정이나 생각을 직접적으로 언술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객관적 상관물을 활용하는 문학적 기교가 감동적이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솜씨도 탁월하다. 경험 세계의 서사체가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추고 의도한 주제를 발산해 낸다. 주제를 서사체 내에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결미 부분에서 직접적 언술을 통해 주제를 다시 강조하지 않더라도 완결성을 충분히 갖춘 셈이다. 과도한 친절은 오히려 문학적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때로는 절제가 필요하다.
장원태의 <달인>은 단문을 촘촘하게 이어가는 묘사력에서 감동을 자아낸다. 단문은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기여한다. 구두를 닦아 광택을 내는 과정을 신명나게 그려내는 데 효과적이다. 내용에 따른 문체 활용법을 구사하고 있다. 내용과 문체를 하나의 관계망 속에 얽으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구두 광택 내는 법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의 집요함도 놀랍다. 경험 세계 그 자체가 감동적일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다. 본업이 아닌 일인데도 일가견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는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의지력을 드러내는 구실로 작용한다. 자동차 수리의 달인인 초등학교 동창생과 배추 겉모습만 보고 맛을 판단하는 이모님의 탁월한 감각을 슬쩍 끌어와 교훈적인 주제를 만들어 내는 솜씨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자신의 노력에 지혜만 더한다면 누구나 달인이 될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에나 어울릴 듯한 주제를 거뜬히 수필의 주제로 만들었다.
문학작품의 완성도는 전체를 통해서 드러나고 감동은 부분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수필의 특정한 부분이 감동을 줄 수도 있지만, 문학작품으로서 완성도는 전체의 질서에서 가늠된다. 부분들이 전체를 위해 튼튼한 얼개를 갖추어야 문학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유기체적 전체를 이룰 수 있도록 부분들의 관계망을 세심하게 얽어야 한다. 붓을 놓는 순간까지 이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붓 가는 대로’ 쓴 수필이 넘쳐난다. 붓 가는 대로 썼을 뿐인데 저절로 문학적 질서가 완성도를 갖추게 된다면 대단한 경지다. 그러나 방향과 초점을 잃고 방황하는 문장들을 주섬주섬 집결시켜 놓은 글을 문학작품이라 할 수는 없다. 이번 호에 신인상을 수상하는 세 분은 이런 수준을 이미 넘어서는 자질을 갖추었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신인상 수상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