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서 연유한 전원시의 양상 비교/현대시문학 겨울 48호 게재

[박철영]

환경에서 연유한 전원시의 양상

김용택 《섬진강》과 고재종 《방죽가 느릿느릿》중심으로

                                                 <시인, 문학평론가> 박철영

우리가 꿈꾸는 삶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산다면 그만인 삶으로 단정 할 수 있다. 단순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인생사다. 어느 곳에 사느냐부터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그 물음에 때로는 답이 될 수 있다. 공기가 있어 숨을 쉬듯 땅에는 목마름을 적셔줄 물줄기가 필요하다. 실개천을 통해 흘러든 물을 통해 흙은 숨을 쉰다. 숨 쉬는 흙을 다루는 사람이 사는 곳이 농촌이다. 농촌이라도 농경지가 넉넉하여 살만한 평야 지대가 있는가 하면 고달픈 산비탈에 자리 잡은 산촌으로 나눠본다면 어떨까. 환경은 다르지만, 물줄기를 따라 주변으로 들어선 사람 사는 곳의 환경은 거반 비슷할 것이다. 농지가 적어 빈궁할 수밖에 없는 산촌을 가로지르는 물줄기가 강이라면 축복일 수 없다. 반면 내륙 권역에서 흘러들어 영산강으로 인해 찰진 농지로 전형적인 농촌이 형성된 담양과 전라도를 발원지로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리는 섬진강 상류인 임실의 지형이 갖는 환경을 통해 문학에서는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먼저 강은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이 그러거나 말거나 땅을 적시며 제 갈 길을 찾아 흘러간다. 강은 그래서 일정한 거처가 없고,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운명을 가졌다. 강은 낮은 곳으로 흘러 하구에 기름진 농토를 만들어준다. 섬진강과 다르게 서해로 흘러 들어간 대부분 강은 하구에 퇴적토를 쌓아 평야라는 농토를 애 밴 듯 내놓았다. 그러지 못하고 일생을 마쳐야 한다면 천형의 강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척박한 강가에서 고통에 겨운 생계를 이어가는 섬진강 변의 사람들과 흡사 닮았다. 하지만, 비좁은 농경지를 부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삶의 방식이 있다. 강물은 매시간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강가의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아 어느덧 또 다른 계절로 주변을 변화시켜 간다. 하지만 누천년을 흐른 강물도 사람 곁에 머물 수 없어 어디론가 흘러가야 한다. 그때마다 어떻게라도 붙잡고 싶어 매달린 곳이 강바닥 같은 논바닥이다. 흙을 모성의 근원이라 말하지만, 상징적인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없는 것이 강의 속성이다. 어찌 보면 모성이 가져야 할 잉태와 분만 그리고 산고의 해방감으로 강을 비유한다면 강이 갖는 상징성에 대한 해명은 어느정도 가능하다. 녹록지 않은 강가에서 살아본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거친 강은 매번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감수한다. 척박한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과도 같은 삶을 시적 세계로 형상화해낸 시가 김용택의 ‘섬진강’ 연작시다. 그 시기에 농촌을 배경으로 쓴 고재종 시인의 시와 닮은 듯해도 환경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환경에서 기인한 정서와 심리적 차이에서 드러나는 언어구조로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김용택 <섬진강 1> 부분

바람 차운 날 대숲에 들면

어쩐 일일까, 죽창죽창 부딪는 소리

이따끔 스걱스걱 발자국 소리도 들리고

떨리는 떨리는 내 넋 속에도 무언가

자꾸만 쑤욱쑤욱 자라게 하고

칼날 같은 창날 같은 것들의

번뜩임 소리 저 결연한 소리

바람 거센 날 대숲에 들면

청천까지, 청천까지 찌르는 소리

홀로서는 힘들다고 잎새 잎끼리 만나고

흐트러져도 어렵다고 뿌리 뿌리가 엉키고

급기야는 저 소리 한 함성 이뤄

일어서라 일어서라고 부르는 소리

일어서자 일어서자고 외치는 소리.

-고재종 <대숲이 부르는 소리> 부분

잦은 가뭄은 강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궁핍을 안겨준다. 배고픔이 반복되면 순정한 사람들의 마음을 훼절토록 유혹한다. 상실과 격절의 시간은 견뎌내야 하는 고통이어서 강물처럼 사람들의 발치에서 가슴까지 차오른다. 강물은 흘러가면서 묵묵히 강가의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다. 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강뚝 너머로 물길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존재하는 의미는 충분하다. 긴 가뭄 끝에 동이 트듯 찰박찰박 물여울을 몰아 궁핍한 가슴을 적셔주기 때문이다. 산골 사람으로 타고난 김용택 시인이 섬진강 변의 근경을 수채화로 그려내듯 강물처럼 끝없이 ‘섬진강’을 시편으로 보여준다. 강가의 산촌 풍경을 전사해낼 수 있던 것은 강을 삶으로 인식한 시인의 각별한 시의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 보자며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 변으로 우리의 발길을 이끈다.

그러면서, 시인은 전라도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가슴 아픈 차별을 받아온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과거 역사적으로나 현대사에서도 사람마저 외면하는 땅이 전라도였음을 통감하고 있다.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서 험난한 시절을 말 한마디 못하고 붙어 살아간다. 시인은 홀대에도 끄덕 않는 전라도 사람을 섬진강으로 환기한다. 전라도 사람만의 근성을 섬진강이 가진 속성으로 이해하며 지형적 환경이 관습적 언어구조로 정착되고 자연스럽게 시로써 발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혹독하게 말라붙은 강바닥을 방방이 채울 강물은 기약 없지만, 지금껏 그랬듯이 언젠가는 그 강바닥으로 당연하게 흘러들 것을 알고 있다. 긴 기다림은 연민과 애환으로 깊어져 끝없는 심리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연민이 깊어 가슴에 갇힌 말을 쏟아내지 못해 병이 되더니 기어이 한恨이 되었다. 김용택 시인의 시 속에는 그래서 주저리주저리 넋두리하듯 긴 행으로 이어지는 시가 강물처럼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진다. 한恨은 어딘가에 닿아서 소멸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누천년 맺힌 한을 원 없이 쏟아내야 풀어지는 한풀이 이기 때문이다.

잡풀에 맺힌 잡꽃처럼 질긴 생명력은 척박한 땅심에서 더 드센 생명처럼 모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산저산 골짜기를 빠져나와 강으로 흘러들어도 누구 하나 관심 두지 않던 전라도 사람이었다. 살기 위해 떠돌다 물가에 떠내려온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이다. 하도 천해서 식물도감에도 없는 잡꽃 같은 사람이 전라도에서도 섬진강 변 사람이다. 천덕꾸러기처럼 살아 온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 전라도 사람이었다며, 시는 거침없는 한을 풀어낸다. 신들린 듯한 한풀이에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로 공감한다. 김용택 시인의 시를 그런 범주에서 문학적 위의로만 판단해선 안된다. 매듭처럼 얽혀 꼬여져 버린 사람들의 한을 풀어내듯 섬진강 연작시는 막힘이 없다. 신명처럼 쏟아낸 말은 더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삶의 주체가 된다. 그래야 섬진강이 갖는 속성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섬진강물이 어디 몇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라며 아꼈던 속내를 드러낸다. 오랜 세월 맺힌 한을 일거에 풀기에는 부족한 안타까움이 짙다. 발화된 언표가 구체적이지 않은 것과 불특정인으로 특정한 대상마저 모호하게 한정하고 있는 것은 아쉬움이자 거기에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설 선동의 기미는 없다.

그런 반면 고재종 시인은 속말을 어지간해서 보여주지를 않는다. 오히려 신중을 기하면서 은근한 것마저 주저하고 있다. 그 속에는 무서운 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숲에서 ‘죽창죽창 부딪는 소리’, ‘스걱스걱 발자국 소리’, ‘번뜩임 소리’, ‘결연한 소리’가 예사롭지가 않다. 가슴에다 꼭꼭 새긴 자의식이 가능한 것은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넓은 농경지에서 비롯되었다. “급기야는 저 소리 한 함성 이뤄/ 일어서라 일어서라고 부르는 소리/ 일어서자 일어서자고 외치는 소리.”는 오랜 모의를 통해 집단적 의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고재종 시인의 시적 언어 구조에는 “홀로서는 힘들다고 잎새 잎끼리 만나고/ 흐트러져도 어렵다고 뿌리 뿌리”가 단단히 집단적 결속을 이루는 대상까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터전을 고분고분 떠나지 않겠다는 민중 저항 의식이 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적 인식으로 표출된 시인의 자각 의지까지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일상적 언어 수단을 시적 언어로 선택하여 가능한 문학 안 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떨리는 떨리는 내 넋 속에도 무언가/ 자꾸만 쑤욱쑤욱 자라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러한 의식의 각성은 살아온 환경에서 비롯된다. 농촌 사회에 대한 체험이 문학적 영향을 끼쳤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변의 산촌과 영산강이 흘러들어 이룬 고재종 시인의 담양이라는 농촌 환경은 시적 세계에서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렇더라도 왜 김용택의 시가 한때나마 독자들에게 시선을 집중하도록 하였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한풀이의 값싼 막말이 아니라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과 자연 속 모성인 강과 이룬 교감交感에서 형상화해낸 문학적 가치의 본질을 자연으로 환원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섬진강 강물처럼 살고 싶은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을 통해 자연 속 순수 서정을 끝없이 풀어내려 한다.

 서울길 삼등열차

동구 정자나무 잎 바람에 날리는

쓸쓸한 고향 마을

어머니 모습 스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어머니 어머니 부를 아우야

찬서리 내린 겨울 아침

손에 쩍쩍 달라붙는 철근을 일으키며

공사판 모닥불 가에 몸 들리며 앉아 불을 쬐니

팔리지 않고 서 있던 앞산 붉은 감들이

눈에 선하다고

불길 속에 선하다고

고향 마을 떠나올 때

어여 가 어여 가 어머니 손길이랑

눈에 선하다고

 강 건너 콩동이랑

들판 나락가마니랑

누가 다 져날랐는지요 아버님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너는 편지를 쓸 것이다.

-김용택 <섬진강_동구> 부분

사실 굳이 시란 형식을 빌지 않더라도 사람이 살며 흔히 있을 만한 이야기에 안부를 덧붙여 쓴 편지에 가까운 글을 본다. 이끼의 물방울이 섬진강으로 흘러들어 강물이 되듯 시인의 가슴에서 몇 번의 소沼를 휘돌아 나와 심금을 울리는데, 조곤조곤 들려주는 운율을 가미한 형태가 감정의 고조를 이룬다. 강은 수시로 이별을 고하듯 여기서도 애절한 이별 후가 소재화된다. 서울을 향하는 기차는 쉴 틈 없이 북으로 북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느리디느린 “서울길 삼등열차/ 동구 정자나무 잎 바람에 날리는/ 쓸쓸한 고향 마을”이 자꾸만 뒤로 멀어져간다. 속도에 비례해 눈에 밟힌 고향의 풍경은 끝이 없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통속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대화체를 옮겨놓은 듯 “- 차비나 혀라/ - 있어요 어머니”에서 애틋한 모성을 자극하여 공감을 유발하는 데 성공한다. 또한, 시의 사실적 보편성으로 시행 속에서 누구나 긍정으로 공감한다. 섬진강 가의 궁핍한 이미지를 수채화처럼 보여주면서 시각적 공감으로 확장한다. 거기다 단속적으로 보여주는 운율성과 이미지로 시의 가능한 형식을 담아냈다. 강의 속성이 흘러가는 것이라면 누군가는 흘러가듯 떠나가야만, 그곳에 남아 비좁은 산비탈 밭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섬진강 변이다.

강물의 흐름이 빨라질수록 사람들의 생각도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 강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섬진강 상류 지역에 위치한 김용택 시인이 태어난 진뫼 마을이 그런 환경에서 최악이다. 수시로 변화하는 강변의 풍경은 ‘섬진강’ 연작시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협곡처럼 가파른 환경에서 눈에 띄는 것은 누대에 걸쳐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나야 하는 가족사의 아픈 이별 행이 그래서 많았음을 암시한다. 강가에 비루 붙듯 좁은 산 밭에 얹혀사는 사람들에게 가파른 협곡에서 쏟아진 물길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두려움이 된다. 한순간에 무엇이든지 휩쓸고 가버리는 것이 급류다. 그곳 사람들에는 강이라고 불리지만 엄밀하게 구분한다면 강이 되기 전 계곡물이 급속하게 불어난 큰 냇가에 불과하다. 거기다 가파른 앞산이 코앞 인지라 너른 논밭을 만들어주지도 못한다. 그러니 안주할 수 없을뿐더러 새끼 새가 둥지를 떠나듯 언젠가는 떠나야만 하는 것이 숙명이다. 비탈의 물줄기를 하염없이 흘려 떠나보내듯 정든 “고향 마을 떠나올 때/ 어여 가 어여 가 어머니 손길이랑/ 눈에 선하다”며 이별 행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가족을 생각하면 “손에 쩍쩍 달라붙는 철근을 일으키며/공사판 모닥불”에 곁불을 쬐면서도 자신만을 바라볼 가족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배곯은 가족을 남기고 떠나온 철근 쟁이는 어쩔 수 없이“불효자식 올림”이라는 편지글을 써놓고 잠 못 이룬 밤을 뒤척일 것이다. 시 끝 말미에는 잔잔해진 강물처럼 가슴속 격정을 다 풀어 삭인다. 그래서일까. 김용택 시인의 시는 한참 후에도 남은 여운이 강물처럼 가슴으로 흘러든다.

김용택 시인의 강변을 배경으로 쓰인 시의 세계를 일별해보았지만, 변별적인 정서로 드러나지 않는다. 뿌리뽑히듯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곳이 꼭 섬진강 변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농촌 사회가 산업 사회의 붕괴 시점에 더해져 속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농업 위주의 생산성과 안정은 비례하지 않는 시대적인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에 따라 이농과 이주는 비례할 수밖에 없다. 단 미세한 차이라면 김용택의 시에서는 슬픔이 짙은 농촌 사회의 궁핍함이 개별성으로 더해져 비감하여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하다는 데 있다. 이별보다 더한 죽음을 소재로 한 시에서도 비감함이 한풀이하듯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우선 죽음이란 그 자체가 잊을 수 없는 과거에서 수시로 소환된다. 살아남은 사람의 가슴에다 평생 아플 못을 박아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용택의 섬진강 연작시에 그렇지 않은 시편도 있지만, 대다수 아픈 추억을 반복해 환기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강 유역에서 유년기 체험적 관찰로 육화된 기억을 문장으로 소환하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시는 체험에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고재종 시인의 시편에 올라와 있는 강가의 풍경은 김용택의 ‘섬진강’과는 이미지가 사뭇 다르다.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낱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을 것인가.

-고재종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부분

복사꽃이거나 아그배꽃이거나

새 보얀 꽃그늘 강물에 어룽대던가

섬진강 상류 압록물에

달빛은 욜랑욜랑 바람은 살랑살랑

너와 난 마냥 설레었던가

그랬던가, 어느 순간

강물은 마냥 은빛으로 술렁이던가

그것이 물너울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은어 떼 돌아오는

은어 떼 돌아와선 짝짓기하는

그 번뜩이는 번뜩이는 뒤셀렘이었다니!

--중략--

그날 밤 그렇게 그렇게

밤꿩 소리까지 뒤흔드는 한 숨결 속에

그처럼 시리게 시리게

은어 떼는 돌아오긴 돌아온 것인가

-고재종 <은어 떼가 돌아올 때> 부분

강을 바라보는 고재종 시인의 인식은 긍정과 희망이라는 언어로 구조한다.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에서 보듯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라며 강을 통해 희망을 품게 되거나 최소한 아름다운 패랭이꽃이 피고 고추가 멍석에 널리는 목가적 추억을 되살려주는 강으로 상기想起한다. 고단한 과거였지만,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을 떠올리며 한 맺힌 넋두리 같은 췌언贅言과 둔사遁辭를 삼간다. 강가에서 담담히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오히려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해소하고 싶다는 은근한 바람을 갖고 있다. 강을 바라보는 인식의 관점은 영산강의 여유로움에서 충전된 긴장과 변화를 갈망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평야지대인 농촌의 마을 공동체에서 수수된 기억이 자연에 순응하듯 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실제적 체험에서 비롯한 서정에 대한 묘사를 감정의 절제로 이뤄낸다.

고재종 시의 세계는 <은어 떼가 돌아올 때>에서는 떠나가는 주체가 아니라 맞이하고 받아들일 주체로써 강을 바라본다. “복사꽃이거나 아그배꽃이거나/ 새 보얀 꽃 그늘 강물에 어룽대던가/ 섬진강 상류 압록물에/ 달빛은 욜랑욜랑 바람은 살랑살랑/ 너와 난 마냥 설레었던가”라며 강에 대한 내면의 심상을 자의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강물의 번뜩임에서 짝짓기를 하는 은어 떼를 보며 강은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처럼 시리게 시리게/ 은어 떼는 돌아오긴 돌아온 것인가”에서처럼 미래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그곳을 떠나간 은어 떼가 다시 돌아왔듯, 떠나간 사람들의 환향을 희망하는 시적 세계를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김용택 시인의 인식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고재종의 시에서는 농촌의 배경이 된 풍경을 시적 세계로 형상화하면서 내면의 인식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결속을 이룬다. 생명이 충만한 강의 변화를 낭만보다 희망을 주문하는 시어(욜랑욜랑,살랑살랑)로 충동하는 즐거움까지 있다. 그렇다고 김용택 시에서 상기된 과거의 기억들이 감성으로 과용되었지만, 남용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김용택 시인만의 또 다른 시적 성취를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가

  새며늘아가

  내 시집와서 보니

  식구가 열셋이더라

  바가지만한 뚝배기에 밥을

  퍼담아놨다가

  낮밥 먹을 때

  이 그릇 저 그릇 퍼주고 나면

  수수밥티 하나 안 남더라

  부엌바닥에 쭈그려앉아

  뚝배기에 맹물을 부어

  김치 한번 집어먹고

  맹물 한모금 마시고

  김치 한번 집어먹고

  물 한모금 마시다보면

  맹물로도 어느덧 배가 부르더라

  긴긴 여름낮

  얼매나 식은땀이 흐르고

  얼매나 해가 길었었는지

  서산을 골백번도 더 바라보며

  콩밭을 맸단다

  시어머니 손윗동서

  시동생에 시누이들

  여름에는 삼베빨래

  언 강 깨고 무명빨래

  손이 쩍쩍 째지면

  모자란 젖을 짜서

  쩍쩍 갈라진 생살 틈에 흘려넣으면

  얼마나 쓰리고 아렸는지

  -김용택 <밭> 부분

이때쯤 또랑물에 삽을 씻는 노인, 그 한 생애의 백발은 나의 꿈.

그가 문득 서천으로 고개를 든다. 거기 붉새가 북새질을 치니 내

일도 쨍쨍하겠다. 쨍쨍할수록 더욱 치열한 벼들, 이윽고는 또랑

물 소리 크게 들려 더욱 푸르러진다. 이쯤에서 대숲 둘러친 마을

쪽을 안 돌아볼 수 없다. 아직도 몇몇 집에서 오르는 연기, 저

질긴 전통이, 저 오롯한 기도가 거기 밤꽃보다 환하다. 그래도

밤꽃 사태 난 밤꽃 향기. 그 싱그러움에 이르러선 문득 들이 넓어

진다. 그 넓어짐으로 난 아득히 안 보이는 지평선을 듣는다.

-고재종 <들길에서 마을로> 부분

논과 밭은 농촌을 유지해주는 유일한 생산 기반이다. 그곳을 통해 생계는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삶의 설계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용택 시인의 정주定住할 수 없는 <밭>은 살아온 시대의 자서적 서사를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된 삶으로 이뤄낸 “제금 나와 살면서/ 허기진 배 움켜쥐고/ 풋보리 잡아 절구질/ 풋나락 잡아 절구질/ 허리띠를 졸라매고/ 무릎이 벗겨지더락/ 밤을 새워 삼품앗이/ 어치게어치게/ 밭을 장만했느니라”며 새며늘아가에게 주저리주저리 아뢰어 밭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려 한다. 섬진강 변의 밭뙈기를 가리키며 “강 건너 저 밭을 봐라/ 저게 저렇게 하찮게 생겼어도/ 저게 나다/ 저 밭이 내 평생이”었다며 고단한 생애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지만, 신세대인 며느리를 공감시키고 소통하는 데는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저 밭을 이제 누구에게 물려주고/ 손톱을 기르며 늙겠느냐/ 내 곁을 곧 떠나갈/ 새며늘아가.”를 통해 불안감을 표출한다. 그것은 비좁은 농토에 자족하며 살았던 과거 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이고 사회 변화에 쉽게 수긍하지 않는 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은연중 이농할 수밖에 없는 강 유역의 열악한 환경을 김용택 시인의 시에서 암시하고 있다.

그와 반면에 고재종 시인의 <들길에서 마을로>에서는 “이때쯤 또랑물에 삽을 씻는 노인, 그 한 생애의 백발은 나의 꿈.”임을 언명한다. 그것은 김용택 시인의 태생지인 산촌을 흐르는 섬진강 유역보다는 넓은 평야를 기반으로 한 고재종 시인의 농촌 환경을 자연스럽게 해명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농촌의 고단함은 어디를 가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지금껏 김용택의 섬진강 변의 농촌과 고재종 시인의 담양이라는 농촌을 통해 형상화된 문학적 인식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삶의 한 방식일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면서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살기 위해 떠나야 하는 사람들과 붙박이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 차이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유역에서 빈번하게 보여주는 이별은 가슴 아픈 상처로 남게 된다. 그렇게 쌓인 상처를 해소하려면 한을 풀어내듯 장시長詩나 연작시 형태가 타당할 것이다. 물론 장점도 있지만, 자칫 내용의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도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한 시대의 유산일 수 있는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공감하도록 기여한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문학의 차이는 기실 시에서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판소리의 서편제와 동편제의 발현도 이와 유사한 지리 환경에서 비롯되었음을 본다면 이상할 것도 없다. 발현의 차이는 당연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사람의 삶에서만 체험한 결과로 나타나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펴본 김용택 시인과 고재종 시인의 시적 세계에서 드러난 차이를 비교해보았다. 비슷하면서 다른 점을 문학이라는 틀 속에서 구분해 본다면 전자는 개별적 삶의 서사적인 이야기 형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덧붙인다면 오지 문학으로 소외되었던 섬진강 변의 전원적 삶을 문학 속으로 편입하여 복원해낸 성과는 막대하다 할 것이다. 고재종 시에서는 집단적 농경 사회가 공동체 의식으로 변화할 때 시에 미치는 결과를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하여 보여주었다. 문학은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향후 변화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역류하거나 범람했던 역사의 기록(문학)은 동서고금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껏 김용택, 고재종 시인의 시를 통해 환경이 끼치는 문학의 유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물론 무리한 논의일 수 있다고 보지만, 전향적 관점에서 살펴보았음을 밝혀둔다.

-《현대시문학》 2018년 겨울 48호

[이상인]

두 시인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어서 고맙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좋은 평론 쓰기 바라네. 홧팅!!

[박철영]

감사하고
올라온 글을 챙겨 읽으니
좋은 시를 쓰는가보네
이회장님의 남다른 노력이 있으니 결과를 갖는 것을
알겠네

[정숙임]

어쩜 이글 허락없이 읽고가도 괜찮나요? 감사합니다

[박철영]

무슨 말씀을요
제가 감사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