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저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폴란드 태생으로, 부모가 모두 유대계였지만 유대교 계율을 엄격하게 따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들었고, 소련으로 이주한 이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자원입대를 해서 나치와 맞서기도 했다. 이스라엘에 망명해서 대학교수가 되기도 했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박해와 동유럽 출신자들에 대한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떠나 영국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거세게 밀어닥친 세계화에 대응하여 펼친 그의 이론들은 반세계화 또는 대안 세계화 운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불평등’에 대해 논한 이 책 역시 이러한 그의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부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심화될수록 불평등이 점점 더 고착화되어 가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에서 ‘20/80의 법칙’을 논했는데, 20%의 경제적 상위 계층의 부가 나머지 80% 하위 계층과 비슷하거나 많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바우만은 이제 극단적으로 ‘0.1/99.9’의 사회가 도래했다고 주장하면서, ‘세계의 최고 부자 10명의 재산이 경제 대국인 프랑스의 경제 규모와 맞먹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이미 공고해진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개인들이 그러한 현실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만연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결국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의 일차적 피해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때문에 그러한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책을 통하여 저자는 독자들에게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의 목차만 보더라도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요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장, 우리는 오늘날 정확히 얼마나 불평등한가?
2장,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3장, 새빨간 거짓말, 그보다 더 새빨간 거짓말
4장, 말과 행위 사이의 간극
저자는 1장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자신이 처한 위치를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음을 자각하도록 서술하고 있다. 이미 전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불평등이 급속도로 증대되고 있으며, 우릐 아이들의 장래 역시 부모의 경제적 위치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현실을 토로하고 있다. 실상 이러한 현실은 한국 사회에서도 이미 ‘강남 8학군’이나 드라마 ‘스카이 캐슬’로 상징되는 모습을 통해서 충분히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자들이 더 부유해짐으로써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통설은 의도적인 거짓말과 고의적인 도덕적 맹목의 조합일 뿐’이라는 스튜어트 랜슬리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평등이 답이다>라는 윌킨슨과 피킷의 저서를 통해, 불평등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파괴적인 영향’과 이러한 현실을 올바로 자각하기를 권유하고 있다.
2장에서는 이미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그것을 감수하고 당연시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논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본다면 쉽게 그 원인을 진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경제 개발을 강조하고, 그를 위해 노동자들의 권익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위정자들과 보수라 자칭하는 언론들의 행태를 떠올려 보라. 이른바 재벌들과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함으로써 그들의 소비를 통해 경제를 진작시킨다는 이른바 ‘낙수효과’에 대해서도, 저자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다양한 논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미 견고한 경제적 불평등의 현실이 고착화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그러한 상황에 맞서거나 개혁할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한 세상 이치’로 오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력감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끝내 불평등한 현실을 감수하는 모습으로 체현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제적 처방이 사실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3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경제 성장’이 불평등을 감소시켜줄 수 있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며, 오히려 그것이 경제적 최상위층에게는 부의 증가에 도움이 되지만 ‘수많은 대중들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의 급격한 추락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늘어나는 소비’나 ‘경쟁을 사회적 정의로 가는 열쇠’라는 믿음 또한 그릇된 주장임을 세세한 논거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그것을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때로는 여론조사라는 기법을 통해 그것을 대중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현실을 지지하는 거짓말의 개념과 그 실체들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그동안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한 언론들의 논거에 어느 정도 휘둘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4장에서 결국 우리의 ‘말과 행위 사이의 간극’이 경제적 불평등을 당연시하고 감수하도록 하지 않았는가를 되짚어보고 있다. 그 내용만으로 보자면 4장의 내용은 철학적 담론을 위주로 하고 있어, 경제적 불평등을 논한 앞서의 내용들과 일견 괴리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현실을 자각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현실을 쉽게 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현실이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놓인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가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바우만은 섣불리 희망을 노래하지 않’지만, 우리의 앞에 놓인 상황을 ‘회피하거나 타협하지 말고, 철저하게 사유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 언론과 자본가, 그리고 위정자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는 거짓말의 의미를 파악하여, 그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