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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정교(鄭喬:1856~1925)는 애국계몽기에 독립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던 인물로, 대한제국 시기에 궁내부 주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제목인 <대한계년사>는 대한제국 시기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는 이 책 이외에도 <대동역사>를 비롯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으며, <독립신문> 등의 신문과 잡지에 다양한 글들을 기고하였다. 즉 대한제국 시기의 지식인이자 역사가로 활동했던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대한계년사> 7권은 1904년부터 1905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주지하듯이 1904년에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 발생했는데, 정교는 러일전쟁의 전개 과정과 이에 대한 대한제국의 대처 상황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끝내 일본의 승리로 귀결된 전쟁 이후 일본에 의해서 자행된 국권 침탈 과정과 을사늑약의 체결을 둘러싼 갈등 상황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즉 러일전쟁의 배경과 러시아와 일본의 선전포고서 등을 비롯한, 당시의 구체적인 전투 상황과 경과를 다양한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소개하고 있다.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대한제국에 대한 간섭과 일본 주도로 정치 기구들이 개편되는 과정에 대한 내용도 시기별로 기록하고 있다. 을사늑약의 체결 직전에는 국권의 회복을 주장하는 다양한 정치 세력들의 움직임과 이에 대한 일본의 탄압 상황들도 전하고 있다. 당시에 을사늑약의 체결 직후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순국한 최익현의 상소와 구금 과정 등도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특히 당시 늑약을 주도했던 이른바 ‘을사오적’과 일본 측의 이토 히로부미 등의 행적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강압적인 늑약 체결 이후에, 이 조약에 대한 강력한 반발과 저항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저항에 비례해서 일본의 탄압 정도도 강하게 표출되었고, 이에 자결로 자신의 뜻을 표명했던 민영환 등의 향적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당시의 역사 기록을 일별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현직 관료에서부터 군인과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인물들이 목숨을 바쳐야만 했다. 정교는 당시 자결로 항거한 이들의 구체적인 상황과 유서를 하나씩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후 이들을 표창하여 내려진 정부의 조처 등도 함께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5년 후에는 끝내 일본의 식민지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을사오적’들의 후예가 오늘날 <반일 민족주의> 운운하면서, 일제 강점기의 일본의 역할로 인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성립될 수 있었다는 망언을 일삼는 작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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