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가자
이경대
1) “점심에 묵밥 해 먹자“
점심때가 되어갈 즈음 큰 아이에게 하는 말이다. 아버님 산소에 갔다가 주워 온 도토리로 쑨 묵이 아직 남아있다.
2) 입대한 막내가 추석에 성묘를 못 해서 휴가 나왔을 때 아버님 산소를 찾았다. 가을은 벌써 깊어가고 있었다. 여름내 주렁주렁 열렸던 대추는 어느새 농부들의 창고로 들어가고 길손들의 주전부리 감으로 남겨뒀는지 간간이 몇 개가 남아 있었다. 가는 길이 심심해 하나씩 따 먹으면서 산을 올랐다.
3) 중턱쯤 올랐을 때 발걸음을 멈췄다. 오솔길 옆으로 늘어선 나무 밑에 탱글탱글한 도토리가 떨어져 있었다. 남편은 주워가도 버릴 거 산짐승들 먹이나 하게 줍지 말라며 말렸다.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었기에 처음에는 남편의 핀잔에 군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갈수록 더 많이 보였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 보겠다고 남편을 설득했다. 남편도 그만큼 많은 것은 처음 봤다면서 내려올 때 줍자고 했다.
4) 아버님께 자손들의 안녕과 막내의 무사무탈 전역을 부탁드리면서 성묘를 마쳤다. 산소 주위에도 커다란 도토리가 많았다. 본격적으로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들도 동참했다. 내려오는 발걸음이 더뎠다. 도시에서 태어 난 남편은 물론이거니와 시골 출신인 나도 처음 느껴보는 희열이었다. 오후 계획이 빠듯하여 나무 밑에 뿌려놓은 듯한 도토리를 뒤로하고 아쉽게 산을 내려왔다.
5)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부터 머리가 복잡했다. 인터넷을 뒤지며 묵 만드는 방법을 검색했다. 집에 도착해서 바로 도토리를 소금물에 담갔다. 그냥 두면 밤새 벌레가 생긴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누구는 집게로 까라, 누구는 발로 밟아라, 양파 망에 넣어서 두드려라 등등. 하지만 저 많은 양을 다 깐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까운 방앗간에 도토리를 갈아 줄 곳이 있을지 걱정이었다. 전화번호를 찾다가 안 되겠다 싶어 모두 장바구니에 싣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자주 찾던 시장 안 방앗간으로 갔다.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흔쾌히 갈아주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아서 도토리는 가루로 변했다.
6) 어머니는 묵을 잘 만드셨다. 고향에는 메밀이 많이 있어서 가을걷이를 마치면 메밀묵을 쑤곤 하셨다. 마을에 디딜방아가 하나가 있었다. 엿기름을 빻은 데다 빻으면 묵이 삭아서 엉키질 않는다고 하셨다. 혹시라도 엿기름을 빻은 뒤라면 방아확을 닦아내는 것이 큰일이었다. 빻아 온 메밀을 체에 걸러서 커다란 가마솥에 붓고 어머니는 부뚜막에 앉아서 젓고 나는 불을 땠다. 연기 때문에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저으면 서서히 묵이 되어간다. 불을 약하게 줄이고 뜸을 들이면 묵이 완성된다. 동네에 잔치가 있으면 커다란 대야에 묵을 해서 축의금 대신 부조하곤 했다.
7) 이제 자신감이 생겼다. 큰 대야에 가루를 붓고 물을 채웠다. 어릴 때 엄마가 하시던 것을 기억하며 여러 번 걸렀다. 신기하게도 대야 바닥에는 녹말이 제법 많이 가라앉았다. 한 시간 쯤 지나 웃물을 따라 버렸다. 이제 본격적인 묵 쑤기. 큰 곰솥에 가라앉은 도토리 가루를 붓고 물을 섞어서 가스렌지에 얹었다. 눌어붙지 않게 골고루 저으면서 점도를 살폈다. 서서히 방울이 올라오면서 북떡북떡 끓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참기름과 소금 약간을 넣고 뜸 들 때까지 끓여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며 열심히 저었다. 다 된 거 같아서 나무주걱을 세워보니 서서히 넘어졌다. 불을 끄고 사각 통에 평평하게 펴서 담으니 두툼하게 두 통이 나왔다.
8) 이제 굳기만 기다리면 완성이다. 두 시간 정도 지나니까 탱글탱글하고 찰랑찰랑한 묵이 완성되었다. 칼로 반듯하게 자르니까 열두 모가 나왔다. 옆에 있는 아이들한테 맛을 보여줬더니 지금까지 먹어 본 묵 중에서 가장 맛있다고 좋아했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옆집에도 한 모 드리고 시어머니, 동서 댁에도 갖다 드렸다. 칭찬에 인색한 동서도 잘 만들었다면서 고마워했다.
9) 산짐승들 먹이나 하게 두라고, 갖고 와도 버릴 거라고 안 주워왔으면 정말 아쉬울 뻔 했다. 도토리를 까야 하나, 밟아야 하나 방안에서 걱정만 했다면 묵을 만들 수 있었을까? 나갔다가 안 되면 돌아온다고 생각하고 나간 것이 잘 한 일이었다. 살면서 다가오지 않은 일에 걱정하고 소심해질 때가 있다. 막상 다가오면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지나가는 일을 보곤 한다. 남편과 아이들도 내년에는 더 많이 주워서 다시 묵을 만들자고 벼르고 있다. 벌써 내년이 기다려진다. 도토리를 줍고 올해보다 더 수월하게 묵을 쑬 그 날을….
10) 아이들도 묵밥을 좋아한다. 김장김치를 잘게 썰어서 다진 파 참기름을 넣고 무친다. 대접에 밥 한 주걱을 넣고 채 썬 묵을 얹고 김치와 김가루를 올리고 멸치육수를 부으면 맛있는 묵밥이 된다. 엄마는 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묵밥을 자주 해 주셨다. 이제 나도 그 때의 엄마만큼의 나이가 되었다. 엄마의 도움 없이 묵밥을 할 수 있지만 그 때의 어머니는 곁에 계시지 않는다. 그 날의 엄마처럼 따뜻한 묵밥 한 그릇 말아서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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