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교토의 히라노신사에 모신 백제신들이 헤이씨(平氏)의 씨신이 되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헤이안 (平安)시대 후기의 최고 무장(武將)인 다이라노 키요모리(平淸盛, 1118~1181년)도 칸무천황과 마찬가지로 백제인 후손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이라노 키요모리야말로 일본 역사상 겐씨(源氏) 가문의 무장 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義朝, 1123~ 1160년)를 무찌르고 왕조(王朝)국가의 군사력을 장악한 명장이다.
12세기 일본 무사국가는 백제인 다이라노 키요모리에 의해 시작됐던 것이다.
이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1192년 왕도(王都)인 헤이안경(平安京, 지금의 교토)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태평양 연안의 가마쿠라(鎌倉) 땅에 무사정권(武士政權)을 세웠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무사정권인 이른바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였다.
쉽게 말해서 그 당시부터 천황가(天皇家)는 실권을 빼앗긴 채 다만 상징적 존재로 머물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당시인 1192년 7월 고토바(後鳥羽, 1183~1198년 재위)천황은 가마쿠라에 막부를 차린 무장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무가(武家)정치를 승인하면서 그를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으로 임명했다.
이른바 ‘쇼군(將軍)’이라고 통칭되는 무단 정치는 이렇게 백제인에 의해서 탄생된 것이다.
정이대장군인 쇼군은 전국 각지에 부하 무장인 ‘다이묘(大名)’를 임명했고, 각 지역 다이묘들은 제 고장을 무력으로 관장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가마쿠라막부의 쇼군 시대는 1336년에 두 번째 무사정권인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를 탄생시킨다.
이것은 무장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 1305~1358년)가 이룩한 것이다.
1338년 그는 초대 ‘쇼군’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무로마치 무사정권은 200여년이 지난 1573년에 막을 내린다.
이후 무장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년)의 군사독재 시대가 이어지고 계속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년)의 군사독재 시대가 전개된다.
그러다가 1603년 지금의 도쿄(東京)에서 에도막부(江戶幕府)가 탄생한다. 이 당시 무장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 1616년)가 정이대장군에 임명됨으로써 다시금 막부 무사정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에도막부 시대는 1867년에 제15대 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 1837~1913년)를 마지막으로 끝장난다.
그리고 마침내 천황 친정체제가 부활해서 1868년부터 이른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상과 같이 무사정권 시대의 발자취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무사정권은 백제인들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그 배후인 천황가 역시 백제인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천황가에서 ‘니이나메사이(新嘗祭)’라는 한국신(韓國神) 제사를 거행하고 있는 이유다.
이에 대해서도 앞으로 상세하게 그 내용을 밝히기로 하겠다.
백제인 혈통 입증하는 일본 고대문서 <5>
사실 한일동족설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역사시대는 8세기 칸무천황 때를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일본의 문화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아스카(飛鳥, 592~645년 또는 710년)문화 시대이다.
이 시기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한번도 알려지지 않은 백제인 여왕이 존재했다.
일본 역사에서는 이 백제인 여왕을 스이코천황(推古天皇, 592~628년 재위)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추고천황’이다.
스이코천황은 백제 왕족의 순수한 혈통을 이은 일본 최초의 정식 여왕이다.
신라의 선덕대왕(631~647년 재위)이 즉위하기 3년 전인 628년에 세상을 떠난 빼어난 여왕이었다.
선덕여왕이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여러 가지 업적을 쌓았다면, 백제인 스이코여왕 역시 당시 왜나라에서 한국불교문화의 든든한 터전을 이루었다.
그녀는 백제불교를 바탕으로 ‘아스카(飛鳥) 문화’를 일으킨 주인공이다.
이 아스카 문화가 한반도에서 왜나라에 심어준 불교문화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기 8세기 초에 왜왕실에서 편찬한 역사책인 ‘일본서기’(712년)에도, 백제 불교가 일본에 건너와서 일본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을 정도다.
특히 스이코여왕은 백제의 관륵(觀勒)스님을 모셔다가 천문지리학을 일으켰는가 하면, 백제의 음악가 미마지(味摩之)를 모셔다가 일본땅에 처음으로 한반도의 아악(雅樂)을 이식했다.
어디 그뿐인가. 고구려의 담징(曇徵)스님을 모셔다가 호류지(法隆寺)의 금당벽화 등 미술 문화를 일으켰으며, 신라 진평왕(眞平王, 579~632년 재위)의 환심을 사, 대신라외교(對新羅外交)를 통해서 신라 불교도 도입했다.
이처럼 스이코여왕은 모국인 한반도 3국(백제·신라·고구려)의 힘으로 아스카(飛鳥)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운, 슬기로운 여걸이었다.
그렇게나 출중한 그녀가 지금까지 한국에는 알려져지 않았던 것이다.
스이코여왕을 빼놓고는 ‘한일동족설’은 물론이고 ‘한일관계사’조차도 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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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이코여왕이 백제 왕족의 피를 이은 여왕이었다는 사실을 한 가지씩 차근차근 밝혀보기로 하자.
먼저 스이코여왕의 남편이었던 비다쓰(敏達, 572~585년 재위)천황이 ‘백제인 왕족’이었다는 사실을 고대 문서를 통해 밝히는 것이 첫 순서가 될 것 같다.
일본 고대 왕실의 족보라고 평가되는 귀중한 고문서가 있다. 815년에 일본 왕실에서 편찬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이 바로 그 책이다.
이것은 왜왕실의 만다친왕(萬多親王, 788~830년) 등이 엮어낸 것인데, 만다친왕은 바로 칸무천황의 제5왕자이기도 하다
백제인의 족보 ‘신찬성씨록’ <6>
아무튼 칸무천황의 왕자인 만다친왕이 편찬한 ‘신찬성씨록’에는 1182씨족의 가계(家系)가 일목 요연하게 기록돼 있다.
이 책에는 815년 7월20일자로 만다친왕의 상표문(上表文)이 맨앞에 씌어 있다.
그 다음에 서문이 나오고, 당시의 왕도였던 교토(京都) 등 게이키(京畿)지방의 신족(神族)·왕족(王族)· 귀족(貴族)들의 역대 계보가 30권으로 엮여 있다.
이른바 신족은 신별(神別)로 표시하고 있다.
이는 일본 개국신화에서 등장하는, 인간이 아닌 신의 후손들의 족보다. 또 왕족은 황별(皇別)로 그 가계를 기록하고 있고, 귀족들은 제번(諸蕃)으로 분류해 놓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씨족들은, 설령 신족(神族)이라고 하더라도 한반도 사람들이 주축임을 알 수 있다.
황별인 왕족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정복왕들의 계보다.
그리고 제번으로 구별된 귀족 계보에는 한반도 사람들이 그 대종을 이루는 가운데 소수의 중국인 계보도 함께 실려 있다.
‘신찬성씨록’의 내용 및 분석은 차후에 상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왜냐하면 이 고대 문헌이야말로, 한일동족설의 입증은 물론이고 왜나라의 지배자가 한반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역력히 고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스이코여왕의 남편이었던 비다쓰천황이 백제인 왕족이었다는 사실도 ‘신찬성씨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황족 항목에서 백제왕족인 대원진인(大原眞人, 오호하라 노마히토)의 계보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다. 원문과 필자의 번역을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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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하라 노마히토(大原眞人)의 출신은 비다쓰(諡敏達, 시 비다쓰)천황의 손자이며, 백제 왕족이니라 (大原眞人, 出自 諡敏達孫 百濟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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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에서 ‘시 비다쓰(諡敏達)’의 시(諡)는 왕의 시호이므로 ‘비다쓰천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원문의 ‘백제왕’이란 백제왕족을 가리키는데, 일본 역사서는 ‘백제왕족’을 ‘백제왕’으로 일관해서 기술해 왔다.
즉 오호하라 노마히토는 비다쓰천황의 친손자이며,
백제왕족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인 학자들도 동의한다.
사에키 아리키요(佐伯有淸)교수는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신찬성씨록’ 연구가인데, 그 역시 “비다쓰천황은 백제인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일본서기’라는 역사책에 비다쓰천황이 제30대 천황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생부인 킨메이 (欽明, 539~571년 재위)천황은 제29대 왕이다.
여기서 몇가지 주목되는 사실을 미리 지적해두자. 그것은 ‘신찬성씨록’에 등장한 일본 천황 중에 백제왕족이라는 혈통 계보가 완전히 드러나 있는 사람은 비다 쓰천황뿐이라는 점을 먼저 들 수 있다.
즉 다른 일본 천황들은 ‘신찬성씨록’에서 백제왕족이거나 또는 신라왕족과의 혈연관계가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