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망은 이기적이지만, 꿈은 이타적입니다
요셉의 꿈은 언뜻 보면 자신을 왕따 시킨 형들을 굴복시키고, 그들에게 복수하는 꿈 같습니다. 형들에 대한 불만이 잠재의식으로부터 드러난 꿈인 것 같습니다. 만일 요셉의 꿈이 그런 잠재의식의 발로라면 그것은 야망입니다. 너무나 가난했기에, 업신여김을 받았기에 부자가 되어서 떵떵거리고 큰소리치며 살아보겠다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야망입니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고, 무시당한 것이 한이 되어서 뭔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것은 야망입니다. 야망은 이렇게 그 동기와 결과가 개인적이고 이기적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꾼 꿈은 결국 형들을 먹이고 살립니다. 그의 꿈은 자신을 괴롭히던 형들을 책임지고 살리는 꿈입니다. 그런 면에서 요셉의 꿈은 그의 능력만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도 넘어섭니다.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며 아버지에게 편애를 받던 이기적인 요셉으로서는 도저히 품을 수 없는 꿈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꿈은 이렇게 이타적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식상해하는 것은 이기적인 야망을 꿈이라고 치장하는 기성세대의 꿈 이야기입니다. 젊은이들은 꿈을 이야기하는 대기업 회장, 정치 지도자, 그리고 일부 개신교의 대형 교회 목회자들에게서 이기심과 착취와 욕심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말하는 꿈이란 단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욕심과 착취의 수단,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여겨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꿈은 그런 게 아닙니다. 진정한 꿈이란, 요셉처럼 국무총리가 되어서 자신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먹여 살리고, 가족과 형제들을 먹여 살리고, 하느님의 백성과 하느님의 교회를 먹여 살리는 것입니다.
야망이라는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꿈이라는 아이까지 버리는 어리석은 실수를 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정욕과 욕심은 버려야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꿈과 열정과 마음의 갈망까지 버려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야망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모든 열정을 다하여 달려가는데, 꿈을 잊은 창백한 경건으로 세상과 맞설 수 있을까요?
언젠가 신문에서 본 내용입니다. 역사상 세계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을 조사한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약 12만 명을 상대로 한 광범위한 조사에서 그들 대부분은 첫째가 아니라, 동생이나 막내였다고 합니다. 동생들의 성공 확률이 특별히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동생들은 자랄 때 부모로부터 형만큼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남들이 알아주는 존재가 되겠다는 경쟁심과 욕구가 생기는 것입니다. “나는 형보다, 언니보다 잘할 거야!” 하다 보니 훌륭한 사람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쟁심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경쟁심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야망입니다. 소원, 열정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우리 인생을 향한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꿈으로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시고, 소원과 열망을 품게 하셔서 그것을 이루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로봇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소원과 열정을 다해 꿈과 사명을 향해 나아가길 원하십니다. 이 세상은 꿈의 대결이고 열정의 대결입니다.
야망은 욕심을 에너지로 삼지만, 꿈은 믿음을 에너지로 살아 움직입니다. 믿음은 꿈을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낙심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시고, 우리가 발바닥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도록 불굴의 의지를 주십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꿈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하지 않으면 하느님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연금술사>란 책을 읽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스페인에 사는 산티아고라는 젊은 양치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그는 낡고 쓰러져 가는, 버려진 교회 건물에서 양 떼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 교회의 성물보관소에는 무화과나무가 심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두 번이나 연속해서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근처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이집트까지의 길은 사막을 가로질러야 하는 아주 먼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는 그 꿈을 좇아 이집트 피라미드로 여행을 떠납니다.
우여곡절 끝에 산티아고는 드디어 이집트의 피라미드 앞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보물이 묻혀 있다고 확신한 지점에서 땅을 팝니다. 한참 땅을 파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다가와서는 그가 보물을 숨기려는 줄 알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그를 두들겨 팹니다. 그때 산티아고는 그들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기가 두 번 꿈을 꾸었는데, 바로 여기에 보물이 묻혀 있는 꿈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중에 대장같이 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2년 전에 바로 이곳에서 두 번이나 같은 꿈을 꾸었지. 그 꿈에서 나는 어느 스페인의 평원을 찾아갔고, 거기에는 다 쓰러져 가는 교회가 있었고, 그 교회에는 무화과나무가 심겨져 있었지. 그 밑을 파 보니까 보화가 숨겨져 있었어. 그렇지만 젊은이, 그런 꿈을 두 번이나 꾸었다고 사막을 건너는 바보는 없을 거네. 그것을 명심하게.”
그들은 돌아갔고 산티아고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가 꿈꾸었던 그 무화과나무 아래를 파 보니 그곳에 엄청난 보화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느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꿈은 대가를 치르는 자가 얻는다는 것입니다. 왜 꿈은 산티아고에게 바로 자기 아래에 있는 보물을 알려 주지 않고, 그 먼 사막을 건너게 했을까요? 결국 꿈은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된 사람만이 얻을 자격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 아닐가요? 둘째로, 대가를 지불하기 싫어서 꿈을 좇지 않으면 그 꿈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꿈을 꾼 대장이 꿈을 찾아 나서지 않으니까 결국 산티아고가 그 꿈을 접수하려고 먼 이집트까지 간 것은 아닐까요?
첫댓글 결국 꿈은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된 사람만이 얻을 자격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 아닐가요?
참..와 닿아요^^
아멘. 아멘. 아멘.~~
"꿈은 믿음을 에너지로 살아 움직입니다.
믿음은 꿈을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