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치 혀의 가벼움 칼이 된 말
철학자 니체는 세 치 혀의 가벼움을 이처럼 경계했건만 요즘 한국 사회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침묵 끝에 묵직한 한마디 내뱉기보다 쉴 새 없이 '말 폭탄'을 쏟아낸다. 잘 모르는 분야도 거침없다.
'갑튀사'…점점 더 독해지는 말
막말에 대한 대중의 내성은 점차 강해져 맹독성 막말이 범람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치인들의 막말을 보자. 최근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저격이 대표적인 예. '가증스럽다'는 형용사가 등장했다. 손 의원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떠드는 솜씨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는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가 다음날 신 전 사무관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글을 삭제했다. 하지만 하루 쉬고 5일에는 신 전 사무관을 '양아치'로 비유한 역사학자 전우용씨의 글을 다시 공유했다. 시민단체는 손 의원을 고발했다.
지난달 1인 유튜브 'TV홍카콜라'로 돌아온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첫 방송부터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 '막말 대가'의 귀환을 알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체코 방문을 거론하며 정상회담을 대가로 문 대통령과 북한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경남지사로 근무하다 다시 여의도로 와보니 각 당에는 사이코패스도 있고 소시오패스도 있었습니다" "(청와대에서) 화성인의 DNA 수준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참 그렇습니다" 등의 말을 쏟아냈다.
지난 연말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내 장애인위원회 행사에서 "정치권에 정신장애인이 많다"고 해 장애인 비하 지적을 받았고, 극우 논객 지만원씨는 지난 5일 집회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해 "나경원 그 XX 여자 아니에요"라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왜 정치인의 혀는 더 독해지는 걸까. 데이터 분석 기관 '인사이트케이' 배종찬 소장은 "유튜브·페이스북 등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가 나오면서 '갑튀사(갑자기 튀어야 산다)' 심리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 소장은 "여러 채널에서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기 때문에 차별화하기 위해선 무조건 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선 '호감 못지않게 비호감도 정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네 편 내 편 고려 없이 '나부터 튀고 보자'는 심리가 커졌다"고 했다. 그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지만, 지지자들은 SNS상에서 더 결집한다. 점잖지만 심심한 '유재석 스타일'보다는 욕은 먹지만 튀는 '김구라 스타일'에 마니아층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논리”라면서 “결국 막말을 뱉은 이들의 확증 편향이 심해져 또 다른 막말을 낳게 된다”고 분석했다.
다변(多辯), 달변(達辯)도 악담만큼이나 문제다. 최근 몇 년간 ‘알쓸신잡’ ‘어쩌다어른’ 등 지식 콘텐츠에 기반한 프로그램이 인기 끌었다. ‘입담 좋은 잡학박사’들의 몸값이 높아졌다. 유시민 작가, 소설가 김영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건축가 유현준 등 출연자들은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라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지식셀럽(‘지식’과 유명인을 뜻하는 ‘셀러브리티’의 합성어)’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여행·역사·미식 등 다양한 테마를 ‘지식’과 결합시킨 TV 강의도 줄을 이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출연자나 연사를 섭외할 때 제일 중요한 요소는 그 사람의 지식 수준보다는 얼마나 맛깔스럽게 ‘썰’을 풀 수 있느냐”라며 “‘말발’이 있어야 사람들이 명강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 강의는 명강의로 포장돼 인터넷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전파된다.
문제는 임금도 아닌데 모든 정사를 아우르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지식 셀럽의 경우다. 정치·사회·과학·예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말한다. 미학자가 정치를 논하고, 정치평론가가 예술을 말한다. 전문가들이 수십년을 공들여 연구한 분야도, 여러 가설이 난무해 아직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주제도, 한마디로 정리하고 명쾌하게 재단한다. 한 방송사 프로듀서는 “팩트 오류가 있을까 봐 10시간을 꼬박 촬영해 1시간 방송을 내보낼 정도로 ‘짠물 편집’을 하고, 교차 검증을 하고 있다”면서도 “모든 걸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기에는 시간적·물리적 제약이 있다”고 토로했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대중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전문 서적과 논문으로 검증된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데, 대중 인지도가 권위 있는 주장의 근거처럼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청률에 사로잡혀 ‘정확한 말’보다 ‘청산유수’를 선호하는 방송의 생리도 이 어처구니없는 혼란의 원인 중 하나다. 황 교수는 “지적(知的) 권위를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개인에게 과도한 권능을 부여하고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미디어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말발 우선주의’의 그림자
최근 들어 ‘지식셀럽’의 인기는 한풀 꺾이는 추세다. 얕은 지식이 제 발목을 잡거나 거침없이 내뱉었던 독설로 역공을 받는 이들이 적잖다.
‘알쓸신잡’ ‘수요미식회’ 등에서 박학다식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던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언급하며 “방송 중 나온 막걸리 블라인드 테스트 장면은 조작됐다”고 비판한 뒤 네티즌과 이른바 ‘막걸리 설전’을 벌였다. 이후에도 그는 페이스북에 ‘백종원 저격’으로 보이는 글을 올렸다. ‘떡볶이가 맛있다는 주장은 이명박 정부가 세뇌시킨 결과’ ‘활어회를 먹는 건 숙성회를 먹는 일본인과 차별화하려는 반일 감정 때문’이라는 그의 이전 발언까지 다시 논란이 됐다. 숱한 지적에도 수긍하지 않는 그를 향해 칼럼니스트 위근우는 “주관적 독선에 대해 인문학이라는 이름의 비법 양념을 뿌려 대중에게 팔아치우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했다. 황교익은 지난해 11월 tvN 수요미식회에서 하차한 뒤 유튜브 채널을 열고 독설을 이어가고 있다.
알맹이보다 자극적 전달에 집중하니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한국사 강의로 전국구 명성을 얻은 설민석 단꿈교육 대표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MSG(식품 첨가물) 설명’으로 인기 끌었지만, 그것 때문에 발목 잡혔다. 3년 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이 ‘룸살롱’인 태화관에서 낮술을 마셨고, 손병희는 마담 주옥경과 사귀었다”고 발언했다가 민족 대표 33인의 후손으로부터 사자명예훼손죄로 고소당했다. 지난해 11월 결국 후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스타 강사 최진기 오마이스쿨 대표 강사는 ‘어쩌다어른’에서 조선 미술사 강의 중 현대화가 이양원의 그림을 장승업의 그림으로 설명했다가 하차하는 일도 있었다.
김미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전문가가 대중 강연으로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과 비전문가가 쉽게 얘기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주목만 받으려고 막 던지는 지식에 현혹되면 안 된다”고 했다.
김헌 서울대 인문대학원 교수는 “설득에선 세 가지가 중요하다. 로고스(이성에 근거한 인식), 에토스(도덕성), 파토스(감정) 세 가지다. 지식셀럽은 이 중에서 파토스에 치중한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정보를 제공하면서 접근하기 때문에 얼핏 보면 그럴싸한데 차분히 보면 오류가 있다. 사람들이 뒤늦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신뢰를 잃는다”고 했다. 김 교수는 “당장은 별 재미가 없더라도 정확한 정보를 꾸준히 주면서 방향성을 제시하는 오피니언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제되는 말
과거의 말은 곧 증발했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한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영원히 박제된다. 증거가 남기 때문에 당연히 치명타다. 손혜원 의원도 신 전 사무관을 ‘저격’해 올린 글이 논란이 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삭제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여러 사람이 공유해 인터넷 공간에선 원문이 그대로 남아 있다.
‘페이스북’ ‘카톡’ 등 SNS와 인스턴트메신저는 말과 글의 경계를 무너뜨린 지 오래다. 다들 말하듯 글을 쓴다. 설화(舌禍)와 필화(筆禍)의 경계도 모호해진다. 손혜원 의원과 황교익 저격 논란은 페이스북 글로 시작됐지만, ‘글 싸움’이 아니라 ‘말싸움’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미현 교수는 “SNS의 기본 구조는 시선을 끌어 ‘좋아요’를 많이 받는 건데 문어체는 재미가 없다”며 “진지한 글보다는 말 같은 글이 훨씬 주목받기 쉬워 구어체, 신조어가 판치는 것”이라고 했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가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논란을 만드는 것도 과거와는 다른 현상이다. 배종찬 소장은 “발언한 사람 은 자신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소수라고 해도 조용히 있어서 잊히는 것보다는 자꾸만 자극적인 정보를 쏟아내 계속 회자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인지도로 먹고사는 그들에겐 욕먹는 것보다 대중에게 잊히는 게 더 무서운 법”이라며 “더 센 말을 거듭해 과거 막말을 인터넷 검색에서 뒤로 밀어내는 것도 그들이 취하는 전략 중 하나”라고 했다.
[박정훈 칼럼] 오만한 권력에 불복종할 권리
조선일보
입력 2019.01.11 03:17
야당 시절 文 대통령이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다
오만한 권력에 국민이 "No"를 외쳐달라 했다… 이 정부가 똑같은 말을 되돌려 받게 됐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사건의 본질은, 공무원이 정권 아닌 국민 편에 설 의무다. 그것은 그가 쓴 글에 잘 표현돼 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었다. 나도 부당한 지시가 떨어지면 거부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바뀐 정권도 결국 똑같았다"고 그는 썼다. 민영화된 기업 인사에 개입하고 입맛 맞는 인물을 관영 신문 사장에 앉혔다. 그는 "국가 채무를 줄이고 싶었다"고도 썼다. 세금이 더 걷혔다면 빚부터 갚아야 마땅했다. 그런데 거꾸로 부채를 늘리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수백억원의 이자 손실을 자초하다니 국정 농단에 다름없었다. 그는 말단 사무관의 위치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의 고발은 국민 이익을 해치는 행정에 대한 불복종이었다. 관료 사회의 침묵 카르텔에 대한 저항이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다. 정권은 국민을 위해 복무할 의무를 진다. 이 지당한 말을 꺼내는 것은 지금 그에 역행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없애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하고, 서민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고 있다. 눈가림 정책에 세금을 마구 낭비하며 미래 세대의 지갑을 착취하고 있다. 약자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와도 귀를 틀어막고 정책 폭주를 치닫는다. 국민을 위해야 할 정부가 국민을 못살게 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자해(自害) 정부를 민주 정부라고 할 수 있나.
국민을 해롭게 하는 정권은 선거로 심판한다. 그런데 선거를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급하면 어떡해야 하나.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정권 임기는 3년 넘게 남았는데 국민의 이익 침해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2년 새 55% 오른 최저임금이 영세 고용주와 저소득 노동자 모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일자리 사정은 외환 위기 때만큼 악화되고 청년들 고용 기회는 사라져 가고 있다. 일방적인 탈원전 드라이브는 에너지 안보 체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 모두가 당장 국민 이익을 해치는 눈앞의 위협이다. 3년 뒤 선거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엔 너무도 급박하다.
국민은 국가 시책과 법제도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따르지 않을 권리가 인정될 때가 있다. 정부 정책이 정당성을 잃고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다. 먹고사는 생존권을 위협하고 국가 미래를 망치는 정부에 대해선 국민이 "노(No)"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시민 불복종이고, 더 나아가면 저항권이다. 불복종하고 저항할 권리는 헌법 이론이 인정하는 자연권이다. 동시에 민주 국민의 의무이기도 하다.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은 "부당한 법에 불복종할 도덕적 의무"를 촉구했다. 옳지 않은 정책과 제도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다. 정부 방침을 어기는 근로계약서 양식을 만들어 현장에 보급하기로 했다. 덜 받고라도 일하고 싶은 근로자의 동의 아래 최저임금법 위반 운동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적발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다 주면 장사가 망한다. 2년 새 55% 인상은 망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소상공인들은 "나를 잡아가라"고 하고 있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처벌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실정법 위반이 미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에게 "악법도 법"이라고 하기엔 상황이 너무도 심각하다. 수많은 영세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폐업 위기에 몰렸다. 저소득층 근로자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생업과 일자리는 이들에게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다. 서민들의 생존권이 정부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다. 약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가 도리어 약자들 밥그릇을 깨트리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저항하는 소상공인들을 누가 비난할 수 있는가.
정부가 일시적으로 정책 판단을 잘못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패임이 드러났는데도 잘못된 정책을 고집한다면 오기이고 독선이다. 아무리 부당하다고 외쳐도 꿈쩍 않는 정부를 국민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실에 귀 막고 폭주하는 정부 앞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불복종하는 것이다. 탈원전이 에너지 백년대계를 망치고 있는데 그냥 보고 있을 건가. 국가 재정을 고갈시키는 세금 낭비 포퓰리즘을 방관할 것인가. 불통과 권력 남용, 적폐 청산을 빙자한 정치 보복을 눈감아줘도 되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회견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토록 아우성치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대통령은 달라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국민에 귀 막은 정권은 불복종으로 맞서야 한다고 했던 게 야당 시절 문 대통령이었다. 국정교과서 사태가 터지자 "권력의 오만과 불통에 대해 국민께서 불복종 운동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이제 자신이 한 말을 똑같이 되돌려 받을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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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정경식(cksck****)
2019.01.1108:27:10신고
범죄권력은 잡아 넣어야 할 죄인일 뿐이다. 사법기관은 반역하지마라.
찬성2반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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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esu****)
모바일에서 작성2019.01.1108:16:27신고
문재인은 한마디로 거짓이다. 기만하고 선동하여 현혹 할 뿐이라 결과는 비참한 것이다. 이 자의 행태가 악질인 것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고발자를 무참하게 짓밟고 또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문재인이 개과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끌어 내리고 처벌하는 수 밖에 없다.
찬성15반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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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철(bo****)
모바일에서 작성2019.01.1108:15:25신고
최순실은 수십억 해쳐 먹었지만 문자인 일당은 수 조원 해처먹음.
찬성14반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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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곤(dandy****)
모바일에서 작성2019.01.1108:02:30신고
지금 일어설 때입니다. 문통처럼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동네 분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지금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돈벌어서 재산세 내고 오른 의료보험료 내야 합니다.
찬성25반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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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세(luck****)
모바일에서 작성2019.01.1107:49:04신고
문가 일당의 권력놀음이....참고 또 참고 또 참았던 임계점을 넘어섰다는....혁명적 특단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격하게 공감하는이가 산을 이률 것이다.
소설을 종이책으로 읽어야 똑똑해져
- 기자
- 김환영 기자
『암흑의 핵심』『노인과 바다』등
꼼꼼히 읽어 ‘읽는 뇌’ 보존해야 표면적 감각 좇는 ‘디지털 뇌’
세상 방향 상실할 가능성
로버트 P. 왁슬러 지음
김민영·노동욱·양지하 옮김
문학사상
‘자랄 때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한다. 하지만 자라면서 책을 읽건 안 읽건, 단지 집에 책이 많기만 해도 학업 성과가 좋다.’ 지난해 10월 호주국립대(ANU)와 미국 리노 네바다대(UNR)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 결과다.
사람들은 어휘력·사고력·집중력 등을 향상하는 책의 힘을 체험으로 알고 있다. 모두 다 아는 사실도 일단 의심하고 검증하는 게 과학이다. 사회학·심리학·뇌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독서 효과를 실증적으로 따지고 있다.
책의 힘을 믿는다면,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논픽션보다는 소설이 공감 능력 제고 등의 측면에서 낫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7년 10월 미국 메릴랜드대 연구진은, 책을 컴퓨터·태블릿·휴대폰 스크린이 아니라 종이로 읽는 독자가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이 더 높다고 발표했다.
『위험한 책읽기』는 ‘깊고 꼼꼼한 읽기(deep and close reading)’ 방법으로 소설을, 또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우리의 ‘읽는 뇌(깊이 읽고 사고하는 뇌)’가 ‘디지털 뇌(스펙터클과 표면적 감각에 의해 점차 우둔해지는 뇌)’로 퇴보할 가능성을 경고한다.
저자는 ‘읽는 뇌’의 보존을 위해 필요한 깊고 꼼꼼하게 읽는 법을 『창세기 1~3장』『프랑켄슈타인』『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암흑의 핵심』『노인과 바다』『호밀밭의 파수꾼』『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파이트 클럽』『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해석을 통해 제시한다.
제목에 나오는 ‘위험한’은 무슨 뜻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과 조우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우리에게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은 무엇인지 상기시켜준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윤리적 요구를 부여한다.”
역설적으로 이 책은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가 아니라 안 읽을 때의 위험을 알린다. 영문판 부제는 ‘문학은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가(The Risk of Reading: How Literature Helps Us to Understand Ourselves and the World)’이다. 소설을 멀리하는 독자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소설 읽기 거부는 방향감각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깊이 읽기’를 통해 스스로를 향한 여정에 더 깊이 천착하면 할수록, 자신이 누구이며 이 복잡한 세상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더 깊이 알 수 있게 된다.”
저자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의 이미지에 친숙한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에게 종이 소설 읽기는 “이미지보다는 단어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사는” 반문화(counter culture)라는 것이다.
주류 문화와 반문화를 가르는 시금석 중 하나는 내러티브(narrative)의 위상이다. 내러티브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은 내러티브를 “정해진 시공간 내에서 인과 관계로 이어지는 허구 또는 실제 사건들의 연속”으로 정의한다. 저자는 내러티브의 의미와 중요성이 흔들리고 있으며 이것이 문학 위기의 핵심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나는 모든 이야기는 대체로 허구이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고 주장하고 싶다”고 말한다. 소설이라는 허구적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완벽한 답을 주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내러티브는 언제나 미완성이고 불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김환영 대기자/중앙 콘텐트랩 whanyung@joogang.co.kr
‘권력 꼭짓점’ 임금 왕, 무시무시한 도끼를 형상화한 글자
‘하늘·땅·사람 관통’ 해석은 오해
왕 위에 모자 씌운 게 황제의 ‘황’
왕과 비슷한 옥은 고결함의 상징
왕궁서 1000리 지역은 왕기 → 경기
과거 제왕, 그리고 땅 위의 권력자 힘은 대단했다.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생명, 즉 억조창생(億兆蒼生)의 살고 죽는 일을 줬다 뺏었다 할 수 있는 생사여탈(生死與奪)의 힘을 지녔으니 말이다. 정말 그랬을까.
한자가 처음 만들어지는 시기의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의 본래 생김새를 간과하거나 적어도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풀이라서 그렇다. 본래 한자 王(왕)의 글자꼴은 위에 보이는 그대로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거기에 갖다 붙여 보려고 해 봐야 그럴 틈이 전혀 없다. 이 글자는 명확하게 사물의 형태를 가리킨다. 그 가리키는 대상에 약간 이견이 있다. 혹자는 권력자가 머리에 쓴 모자라고 하지만, 큰 흐름에서의 풀이는 ‘도끼’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그런 도끼는 斧(부) 또는 鉞(월) 등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병풍 등에 자주 등장했다. 그 원시의 모습이 바로 王(왕)이다. 이 글자의 초기 몇 꼴을 보면 도끼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왕에 비해 권력을 더 쥔 존재는 보통 황제(皇帝)라고 적는다. 앞의 皇(황)도 도끼에 해당하는 王(왕)의 요소를 지녔다. 단지 그 도끼 윗부분이 문제다. 빛으로 보이는 선 몇 가닥이 위를 향해 뻗치고 있다.
도끼에 더해 휘황찬란한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무시무시한 권력을 상징하는 도끼를 지녔고, 머리에는 금속으로 치장했을 번쩍거리는 모자를 얹은 꼴이다. 유일무이한 세상의 권력자를 상징하는 모습으로는 그럴듯하다.
王(왕)이라는 글자와 모습이 비슷해 많은 오해를 부르는 한자는 玉(옥)이다. 동양 최고의 돌이라고 해도 좋다. 여기에 많은 함의를 붙이는 작업은 본격적인 중국 왕조시대에 들어온 뒤의 일이다. 본래의 모습은 왕이 지녔던 권력의 무게 또는 위엄과 관련이 없다.
본래 글자꼴은 여러 개의 옥돌을 실로 꿴 모습이다. 단지 나중에 글자가 간략한 형태로 자리를 잡으면서 王(왕)이라는 글자와 모습이 비슷해졌다. 두 글자 사이의 구분이 당연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른쪽에 점을 남긴 玉(옥)이라는 글자 형태로 발전했다고 본다. 이 옥이라는 돌에 최고의 미덕을 부여했던 저작은 『설문해자(說文解字)』다. 저자 허신(許愼)은 옥을 최고의 덕목을 갖춘 물체로 추켜세웠다.
그는 옥을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덕을 지닌 완성체에 비유했다. 이를 통해 유가사상에서 지향하는 도덕과 행동 규범이 옥돌에 스며들고 말았다. 그래서 제대로 수양을 한 사람이라면 옥을 항상 곁에 두고 아끼고 숭상하면서 옥이 지닌 인(仁)·의(義)·지(智)·용(勇)·결(潔)의 오덕(五德)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옥돌을 상징하는 부수가 들어가는 한자는 그래서 대개 고결하다. 珍(진)처럼 단순한 보석을 넘어선다. 더없이 보배로운 길상(吉祥)의 상징이다. ‘드러나다’ ‘나타나다’의 새김을 나중에 얻은 現(현)이라는 글자는 본래 옥이 드러내는 맑은소리와 영롱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가리켰다.
이 때문에 옥은 몸에 걸치는 장신구는 물론 신분의 상징이자 권위를 대신하는 나라의 도장이라는 ‘옥새’의 璽(새)라는 글자에도 등장한다. 때로는 노리개, 심지어 시신의 구멍을 막는 마개로도 쓰였다.
이 글의 본래 주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지상의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王(왕)이라는 존재는 예전 동양세계에서는 거대한 담론의 중심이었다. 왕이 지닌 권력은 왕권(王權), 그가 행하는 철학은 왕도(王道), 거처하는 공간은 왕궁(王宮), 내리는 명령은 왕명(王命)이다. 주변의 다른 세력을 압도하면 패왕(霸王), 현명함을 갖췄으면 철왕(哲王)이다. 왕궁으로부터 바깥으로 1000리의 지역은 왕기(王畿)라고 해서 경기(京畿)라는 명칭의 유래가 됐다.
이제 그 도끼와 휘황찬란했던 모자로서의 권력은 사라졌다. 왕이 존재한 뒤부터 동양사회는 그 권력을 또한 어떻게 견제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은 한 군데에 몰리게 마련이고, 그를 제어할 ‘견제와 균형’의 맥락은 인류사회의 커다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던 까닭이다. 민주와 공화의 정치가 펼쳐지는 요즘에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