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 번째 똥
박석구(무등수필)
1970년 베트남 투이호아 지역에 파견된 백마부대 강국진 상병은 전남 영암의 산골에 살고 있는 45세인 어머니 최춘례 여사와 막 초경이 끝난 15세인 누이동생 강순자에게 시레이션 박스 몇 개와 봉지 커피를 소포로 보냈다.
두 여인은 봉지 커피를 뜯고 커피의 흑갈색 가루와 냄새를 맡아보고 분명히 보약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여, 부엌으로 가 가마솥에 커피를 넣고 물을 부어 주걱으로 천천히 저어가며 3시간 동안 정성껏 달였다. 강순례 여사가 달인 커피를 약지로 살짝 찍어 맛을 보니 몸서리칠 만큼 썼다.
“좋은 약일수록 쓴 벱이여.”
두 여인은 그 진한 커피를 국자로 사기그릇에 한 사발씩 똑같이 나누어 코를 틀어막고 기어이 다 비웠다. 설사는 하지 않았지만 두 여인은 사흘간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밤에는 눈만 멀뚱멀뚱 뜨고는 하현달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좋은 약은 잠도 안 오는가 봬.”
순자가 새벽에 된장국을 끓이려 휑한 눈을 비비며 배를 움켜쥐고 마루를 기어가며 한 말이었다.
내 초등학교 동창인 이 여인이 그 사건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현재는 엄청난 커피 마니아가 되었다. 이듬해 서울로 간 순이가 되었던 그녀는 몇 년이 지나 수저와 젓가락, 냄비 하나로 신혼살림을 차렸고 남편은 이제 잘나가는 중소기업 사장이 되어 거의 중국에 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광주 왔는데 얼굴 좀 보여주시게.”
국가정보원에서 전직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기록을 발췌하여 국회의원들에게 돌렸다는 뉴스를 본 순간, 그것이 할 짓이든 아니든 이번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절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1980년 가을, 5.18 이후 먹먹한 가슴을 안고서 우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농촌봉사 동아리에 같이 활동하던, 동갑이고 졸업반인 여학생, 영미와 나는 거의 하루 걸러서 학교 부근 술집을 전전하였다. 마주앉아 소주를 마시면 각 세 병씩은 말 한마디 없이도 눈빛으로 시국을 이야기하며 마셔댔던 사이였다.
새벽 무렵, 내가 잠깐 잠이 든 사이, 누가 내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바람에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침대시트를 말아 몸을 가리고 성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어떻게 한 거야?”
나는 그제야 그러한 그녀의 행동과 표정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검지로 창문 쪽을 가리켰다. 창문이 열려있는 그곳에는 그녀의 팬티와 청바지가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너, 쌌어.”
사실은 그랬다. 그녀와 나는 전두환 소장이라는 인물이 TV에 나왔을 때, 결국 군부의 손아귀에 다시 정국이 넘어갈 거라는 느낌을 귓속말로 주고받으면서 앙가슴을 두드리며 술잔을 기울였는데, 속 터짐이 과했는지 그녀가 갑자기 탁자 밑으로 쓰러졌다. 재빨리 일으켜 세워 보았으나 이미 그녀의 눈은 흰 자위로 뒤덮여 있었고, 뺨을 토닥거리며 말을 걸었으나 입주위에 게거품만 일어날 뿐 의식도 가물거리는지 ‘개새끼’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암담함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지독한 똥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꽉 낀 청바지에 물기가 내비치도록 그녀는 똥을 바지에 무지하게 쌌던 것이었다.
그날 밤 내내, 나는 여관의 목욕탕에서 그녀의 옷을 전부 벗긴 다음, 세면대에 단 하나밖에 놓여있지 않은 알뜨랑 비누로 그녀의 몸을 샅샅이 씻겨 수건으로 잘 닦은 후, 침대에 안아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팬티와 청바지의 똥을 털어내고 비누가 다 닳아질 때까지 빨아 창문 위 홈에 옷걸이를 걸어 말렸던 것이다. 그리고 목욕탕을 대충 청소하고 나니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그녀의 알몸은 엉덩이와 허벅지까지 완벽하게 도포된 똥과 그 냄새 때문에 내가 청년기의 한가운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느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 후 그녀가 나를 불렀다. 몇 잔의 술이 오고 갔을 때, 그녀가 물었다.
“너, 내 몸 다 만졌지.”
“응.”
“느낌이 어땠어?”
“알면서…….”
“…….”
“…….”
“고마워. 하지만 왜 내가 서운한 감정이 있지?”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 개량 한복집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술 한 잔 하자.”
새벽 4시 경이었을 것이다. 원래 술을 마시면 물을 많이 마시고 자는 습관이 있던 터라, 새벽에는 늘 화장실에 가곤 했지만 오늘은 뱃속이 묵직한 걸 보아서 똥까지 마려운 모양이다. 그런데 막상 힘을 힘껏 주어도 도무지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유전적으로 변비와는 거리가 먼 체질이라 하루에도 세 번씩 누는 것이 보통이고 약간 묽은 똥이 기본이어서 당황스럽고 불쾌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하여 겨우 밀어낸 결과는 마 모양의 단단한 똥이 20센티미터 정도 길게 변기 바닥에 물에 잠겨 널브러져 있었다. 항문 주위의 심한 통증과 함께.
아마 저녁 6시경 무렵이었을 것이다. 순자가 푸짐하고 고급스러운 물방울무늬의 원피스를 여미며 커피가게 탁자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한 것은. 그녀는 커피를 마시면서 그동안의 안부를 대충 묻고는 다짜고짜 술을 하자고 졸랐다. 나와 영미가 만나기로 한 술집에 도착했을 때, 순자가 갑자기 눈물을 훔쳤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일 거야. 나 위암 판정 받았다.”
“얼마나 진행됐는데.”
“거의 말기.”
순자는 소주를 들이키면서도 ‘이제 살맛을 알 것 같은데’를 연발했는데 ‘다시는 안 오겠지?’ 하며 한숨을 밀어내고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나 가고 난 다음에 보았으면 해. 그리운 친구들이나 계속 만나고 집으로 갈 거야.”
길가 저쪽에서 연갈색 개량 한복을 입은 영미가 걸어오고 순자가 떠났다. 둘은 술집 문을 사이에 두고 잠깐 마주치더니 문을 연 순자가 먼저 나가고 영미는 순자가 문을 연 사이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30분쯤 지나서였을까? 다시 잠을 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더니 배가 아파오고 아랫도리에서 무언가가 금방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앉자마자 정말 요란하게 설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물총을 쏜 것처럼. 그것도 한참동안. 무슨 사연들을 게워내는 의식처럼. 나는 지난밤의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무심코 영미를 호명했다. 아, 영미.
영미가 자리에 내 맞은편 자리에 앉을 때, 나는 순자가 주고 간 봉투를 열어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현금이 5만원권으로 10장 들어 있었다. 그리고 조그만 쪽지가 나왔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가 죽으면 이걸 부의금으로 내주었으면 좋겠다. 부탁한다.’ 그랬구나. 그래서 나를 만나자고 한 거였구나. 누군가 와 주지 않은 자신의 장례를 걱정했구나. 그래서 아는 이들을 하나하나 만나러 내려왔구나. 내 내면의 어디선가 가능한 한 그녀가 할 수밖에 없던 행동이 이해로 다가왔다. 그래, 알았어.
“술값 걱정하는 거야? 오늘은 내가 낼 거야.”
영미가 내 손을 지그시 누르면서 웃었다.
우리는 소주를 마시면서 다시 대학생활로 돌아간 이들처럼 현재의 나랏일에 대해 아마 두 시간 이상을 걱정하고 토론했던 같다. 전두환, 노태우, 국정원, 촛불집회, 검찰청, 공중파 방송, 수필가인 현 대통령.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이야기들이 어떤 형식으로 결말이 났는지는 아슴푸레할 뿐이다.
“나, 이혼했어.”
“…….”
“나에게 이런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있어도 내가 이해하면 되지 하며 여태껏 살아왔는데 막상 닥쳐보니 내가 속이 좁아지더라.”
“남편이 바람피웠어?”
“응, 그것도 나와 비슷한 여자랑. 젊은 여자라면 이해하겠는데 그 여자랑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니 못 참겠더라.”
그때 그녀의 눈물을 잠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입을 다물고 술만 마셨던 것 같다.
인생은 늘 그렇다. 자신의 자아에 상처를 입으면 그 길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결국 속수무책인 어느 생활이 닥쳐올 때, 자신을 질책하는 과정이 오고 속한 삶의 비린내와 마주치다 포기하거나 다른 결정을 하게 되는 것. 이해한다. 정말 이해한다.
“이혼하니까 왜 맨 처음 네 생각이 나지?”
헤어질 때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내게 한 말이었을 거다. 그녀와 헤어져 나는 또 어느 작은 술집에서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그래 나도 너의 하얀 허벅지 안쪽에 숨어있는 너무나 작고 앙증맞은 귀여운 까만 점 하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게 마지막 마신 술의 의미였다.
내 세 번째 똥도 여전히 설사였다.
첫댓글 단편소설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