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니 지하철에 신경쓰여도 가만이 드려다보면 어디고 가기가 무난하다. 칸딘스키도 똑같다
가만이 그림보면 뭔가를
찾아낼수있다
김선아가 김용건 병간호하러 집안에 들어오자
눈에 불을 켠 며느리가
사사건건 시비건다
저년 돈 때문에 저런거야
김선아가 칸딘스키같은
그림그리고 싶다며
나는 왜 저들처럼 부자티가 안나냐 절규한다.
우리가 러시아하면, 물론
세계를 누비는 팔자 늘어진 이들 많지만,크레믈린,
후루시초프 푸틴 정도에
닥터지바고 덕에 외투로
휘감긴 얼굴덮인 어름 눈
정도,시베리아벌판 한다
나폴레온이 모스크바 진군한다. 죽어자빠진 병사
손에서 시계 반지 뽑고
외투마져 벗겨 도망친다.
그 시꺼먼 몸, 군상에서
충격받았다.이북에서
넘어오신 할머니랑 몇몇과 아침미사갈 때면
로스께 로스께 하며
이북있을 때 겪은 일을
뜸뜸이 하신다. 전쟁나면
여자들이 도망가 숨기에
급급하다.
성경은 처들어가 죽이는 것엔 암말 않지만 손대는
약탈에는 매우 엄하다.
국전이 벌어진다
1년에 한번 구상 추상 동양화로 갈린다.추상의
개념없을 당시, 우리는
접하지 못헀지만,끌레정도의 그림에 국한대고
게르니카 명화라지만 내
눈엔 그로데스크 뿐이다
도대체 보질 못했으니
추상화를 알길이없다
횡횡하는 말로서 짓고
까분다. 도화지에 잉크병을 확던진거라니, 물감을
쭉 짜고 비빈거라니 아마
어디서 칸딘스키 사진 본 모양이다 ,동양화를 봐도
커다란 모란 ,산과 강일 뿐 협쌉한 기색이 없다
산 천경개가 수려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자란
왕유는 시뿐아니라, 남화
의 대가로 우뚝선다.
그의 그림 몇개 보면 동양화라도 잘그렸네로 푹
빠진다. 그림얘기 할새가
어딧어 공부해야지
미술선생님은 그림은 보는게 아니라 읽는다 했다
자주 그림을 봐야 한다했다. 시청앞 신문회관 가서
국내작가 그림을 자주보고 국전 보는게 전부였다
서광사에서 한국문화대계 중 12권을 가져다 본다. 주로 한국 세월이 네월이하듯 한국여자에 누드랍시고 그린것이 참 유치스럽다. 비하가 아니다
1920대에서 1940대 현대미술 한국화가 그림을 마주해 보라.그 당시 물감 콸리티가 형편없었 겠지만.
롯테빌딩가니 3층에서 뉴욕 생존하고있는 화가의
그림을 전시한다. 자그만 치 5만원내고 구경했다
몇몇 그림은 나의 뇌리에
선명하다. 석촌호수랑 5-
6번가서 주변을 접하며
그 풍광에 젖어보았다
우리집 골목풍경과 뒤로
펼친 팔닥산 모습에 자칭 화가요 진짜화간지 모르나 많이들 와서 이젤걸고
그림그렸다. 천방지축 나야,무관심이다 서호에서
그럴듯 한 화가가 호수를
그린다 곁에가 보면서
저걸 서호호수라고 그려
했다. 서호에 살다싶이
자란 내가 아닌가 풍경대로 그린다면 별거아니다
탁 치고 들어오는 감을
펼쳐야하는걸
우리집 근 40년만에 밟았다. 이민오기 전날 가서
흙을 담아. 에드먼턴에
뿌렸는데.
쇼 윈도우에 8명 여자
프로필이 간략하고 그림그린게 걸렸다.한 켠에는
그들이 서로만나 우애나누는 사진몇장 있다.
그림좋지만 서로시기하고 고집부려 싸우지않고
서로 감싸는 사진에 흐뭇하다. 팔달산 오름목에
천에다 그림인쇄한 거를
땅 위에 걸리고 바람에 휘날린다. 맨 밑에 작가 사진과 프로필있다. 아ㅡ
내가자란 수원이 이렇게
성장했구나, 당시 인구10만이랬는데 지금은 100만 넘으니,장족의 발전 이루고
원천호수 광교호수에는
고층콘도가 즐비해 호반의 도시로 빛난다는데
서호만은 까딱없이 고대로 호수만 있고 상업성은
접근불가이다. 팔달사에도 영동시장 찾아가도
문인 몇몇이 시화전 벌리는게 없으니 아쉽다
디카시에 밀려, 아예 시화전은 행방이 묘연 한가부다. 그렌보우 뮤지엄이
지금 건물 바깥 콩크리트를 떼어내고 재 단장하는데 3천만 달라가 들어간다.작년 내내 잭싱어 콘서트홀도 건물 외벽 재단장
에 매달렸다
외화내빈 말 이나 되나
기라성같은 해외 연주자모시고, 유명화가 그림
반입하여, 황량한 눈 꽃
마을 칼가리언에게 안목높이기에 돈쓴다면 쾌재로다. 콘서트 팜프렛보니
말석 씨니어가 $100넘는다.유자왕이 유연하게
신나게 건반 두두리는것도 아닌, 칼가리 카나다
현지 음악 뿐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