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린bambi70102010-06-29 조회수 13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영화관을 자주 갔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영화를 좋아하셔서 거의 간판이 바뀌면 갈 정도였으니 많은 영화를 따라다니며 본 셈이지요.
그 당시 영화관으론 광화문에 국제, 종로에 아카데미, 청계천에 국도, 충무로에 대한극장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어쩜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제 기억에 있는 건 그 정도입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진 적어도 일주일에 두, 세번은 갔었던 것 같고 학교 입학 후에도
3 학년 때까진 꽤나 쫓아다녔는데 그 후론 극장 방문이 뜸해지고 집에서 주로 시청했었습니다.
워낙 기억력이 나빠 보았던 영화들에 대해서 기억하는 게 거의 없지만 그 중에 몇편은
장면들이 또렷히 남는 것도 있습니다. '벤허'의 말 달리는 장면이나
'닥터 지바고'에서의 멋진 설경 같은 것 말이지요.
방화 중에는'미워도 다시한번'이라는 영화를 보고 많이 슬퍼하고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부'라는 영화도요.
어머니께선 제가 어려 영화를 보아도 별 느낌을 못 받을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저는 어렸지만 벌써 어른들간의 사랑얘기나 세상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일치감치 숙고하게도 되었구요.
일찍부터 그리 영화에 눈을 떴으니 또래 친구들보다 전 좀 더 성숙했던 것 같고 학교에 가서도
많은 시간을 영화 장면을 재현하거나 친구들과 연극 만들어 보기로 보냈는데
그런 저가 영화 쪽으로 직업을 택하지 않았던 게 이상할 정도이지요.
확실히 전 친구들보다 영화배우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았었고 자신만의 인생 말고
또 다른 인생을 경험 할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을 아주 매력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유명한 한국배우론 문희, 남궁원, 신영균, 신성일, 김진규, 남정임, 도금봉, 윤정희, 박노식,
최무룡, 김지미, 허장강 등이 있었는데 저는 특히 우수어린 눈의 소유자인 문희와
이국적인 미남 남궁원을 좋아했었습니다. 또 신성일도 많이 좋아했었구요.
김지미의 카리스마에도 매력을 느꼈습니다.
또한 외국배우로는 제임스 딘, 리즈 테일러, 록 허드슨, 폴 뉴먼, 알리 맥그로우, 스티브 맥퀸,
더스틴 호프만, 라이언 오닐,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마릴린 먼로우 등을 좋아했고
그들의 영화는 그 당시 제게 무엇보다도 달콤하고 생의 기쁨을 주는 원천이 되어버렸습니다.
모성애를 건드리는 제임스 딘의 슬픈 눈동자, 너무도 완벽한 미인인 리즈 테일러와 오드리 헵번의 상큼함,
여자인 제 눈에도 백치미를 느끼게 하는 마릴린 먼로 등
영화속의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당해 보이며 저의어린 감성에 불을 질러 버린 거지요.
그들의 모습에선 꾀꾀 묵지 않은 산뜻함과 언제든지 자신을 드러내고
또 잘못을 즉시 인정해 버리는 쿨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들처럼 그렇게 합리적이고 당당한 인생을 살겠노라고 결심하게 됩니다.
제가 좋아했던 영화 중에'초원의 빛'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와
엄격한 부모의 통제 하에서 갈등을 느끼던 주인공은 결국 사랑을 잃게 되고
정신병원에 가는 처지로까지 되어버리는데 나탈리 웃의 청초한 모습과
핸섬한 웨렌비티의 슬픈 사랑얘기가 가슴에 저리게 다가왔었습니다.
중학생이었을 때로 기억하는데 벌써 그 나이에 저는 여자의 순결이 그리 중요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음에 대해 엄숙히 숙고해 보기도 하였지요.
그러면서 과연 인생에 정답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 질문도 던져 보면서요.
그 당시 제가 좋아했던 티브이 시리즈도 있었는데
바로"The rich man and the poor man'이라는 제목의 드라마였습니다.
특히 거기에 나왔던 주인공 피터 스트라우스 라는 배우의 지적인 면은 제게 오랜동안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자리잡고 미래의 제 남자도 바로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제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었습니다.
지적이고 냉철하면서도 사랑엔 모든 걸 불사하는 남자 중의 남자로써 주인공의 모습은
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사랑에 대한 환상과 꿈을 그리게 만들었지요. 그런 남자를 만날 수 있게 되길
마음 속 깊이 간구하였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청소년 시절은 영화와 함께 흘러가 버리고 제게 책과 더불어
정신적 성숙의 자양분이 되었으며 많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게도 만드는
가슴설레임을 주었다는 걸 기억합니다.
비주얼한 면에서 영화는 책보단 한 수 위로 사실감이 높았고 가시적인 그들의 한 마디,
한 몸짓은 제게 깊이 각인되었지요. 그러면서 저의 사고는 넓어졌고 인생으로의
긴 항해를 준비하는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시간을 내어 옛 영화를 보게 된다면 그때의 느낌과는 사못 다를 것입니다.
지금의 감성으로 받아들일테고 어린 시절의 순수한 눈이 아닌 현실적인 어른의 시각으로 보게 되겠지요.
어쩜 개중에는 여전히 저를 가슴 설레게 하고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 제게 중요했고 영향을 끼쳤던 그 느낌이 그대로 일리는 없을 거라는 점에서
다시 보기가 겁이 남을 고백합니다. 굳이 고이 묻어있는 보물을 꺼내 놓고
허망해 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겁니다.
*** 아래 영화"로미오와 쥴리엣"은 고등학교 때 보게 되었는데 아! 그때 우연히도
제가 맘 속에 조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던 어머니 친구분의 아들(엄친아)과 함께 보게 되어
얼마나 가슴이 콩당콩당했던지 말이죠. 지금은 다 지나간 옛 추억이 되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