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는 몸으로 나타납니까, 뇌로 나타납니까? 자의식이 없는 나는 나입니까, 아닙니까? 함부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치매에 걸려 자신도 가족도 몰라보는 사람은 본래의 그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이게 사람인가 싶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지요? 그렇다고 물건처럼 내다버릴 수도 없습니다. 당연히 그래서도 안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럼에도 마주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봅니다. 앞의 그 사람이 전에 마주했던 사람이 아니니 말입니다. 몸은 맞는데 마음과 정신은 아닙니다. 나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때로는 대놓고 폭력을 가합니다. 어쩌지요?
경험이 나를 만듭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해서는 안 되는 경험도 있습니다. 예컨대 전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겠다고 아이에게 철사 줄 두 개를 주며 콘센트에 집어넣으라고 하면 됩니까? 사람들을 알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과 육체관계를 맺으면 되겠습니까? 내가 나로서 산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유를 누리는 것, 복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기본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를 누리려고 약혼자를 내두고 다른 남자와 해외여행을 떠난다면 용납이 됩니까? 다녀와서 결혼하자고요? 믿고 기다립니까? 그런데 이 여자가 자신의 주체를 모릅니다. 부모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다만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이 있습니다. 의사이며 과학자입니다.
한 여인이 강으로 투신하였습니다. 구조를 하였는데 인사불성입니다. 숨은 멎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생명의 불씨가 남아있습니다. 임신 중인 여인이었습니다. 의사이며 과학자인 ‘갓윈 백스터’가 발견하였습니다. 백스터 의사는 여인의 몸에 태중의 아기의 뇌를 이식합니다. 몸은 성인인데 정신은 아이입니다. 백스터가 키웁니다. 아기 짓을 하며 자랍니다. 사람의 성장과정을 밟는 듯합니다. 몸이 원하는 쾌락을 발견합니다. 몸은 이미 성인이니 성장 호르몬만 시기에 맞게 자라면 아마도 쉽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그만큼 자랐으니 혼자서 감당하기도 벅찹니다. 그래서 백스터 의사는 청년 조수를 한 사람 기용합니다.
하는 짓은 어린아이 같은데 몸은 성인이고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청년 조수가 그만 사랑에 빠집니다. 이을 하면서 그리고 함께 지내면서 둘 사이가 괜찮아집니다. 백스터도 눈치 채고 이해합니다. 이 청년은 이 예쁜 아가씨 ‘벨라’를 좋아하면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벨라는 어디서 왔으며 부모는 누구이며 여기에 어떻게 왔고 백스터가 아비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알고 나니 백스터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먼저 좋아하고 같이 몸 비비며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백스터는 나름의 안타까운 비밀이 있습니다. 내 작품이기는 하지만 내 소유가 될 수는 없다, 일단 맞는 말입니다. 또 다른 인격체를 어떻게 개인의 소유로 만들 수 있답니까?
사실 그런 도덕적 이유보다는 어쩌면 현실적 이유가 더 타당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백스터는 성기능 상실자입니다. 원한다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이 청년은 벨라와 약혼까지 합니다. 그런데 웬 이방인 하나가 등장합니다. 역시 벨라에게 빠진 ‘덩컨 웨더번’이란 사람이 찾아와서는 벨라를 유혹합니다. 호기심 많고 새로운 것을 찾는 이 예쁜 여자를 자기가 데리고 가고 싶은 것이지요. 맘껏 세상을 구경하고 즐기라고 유혹합니다. 벨라는 약혼자에게 다녀오겠다고 하고는 웨더번과 떠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여행합니다. 물론 둘이서 육체의 쾌락을 즐기면서 말이지요. 둘이 모두 서로를 탐닉합니다. 너 좋고 나 좋고 지요. 벨라는 맘껏 자유를 누립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쾌락 중에서 아마도 성적인 쾌락이 가장 강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벨라가 한 번 빠지고 나서는 거의 주체를 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윤리적 의식이 없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죄책감 같은 것이 없습니다. 어쩌면 왜 내가 즐기는 이 일에 방해를 받아야 하고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지 기본적 질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것으로 남자를 즐겁게 해주고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큰 보람(?)까지 가집니다. 그런데 함께 다니던 웨더번 입장에서는 기절할 일입니다. 자기하고만 다니며 자기와만 즐기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지만 벨라는 새로운 것이라면 누구든 무엇이든 상대하려 합니다. 내가 왜 당신에게 매여 있어야하지요? 벨라의 생각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약혼자는 벨라가 어떻게 지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벨라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둘이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런데 식장에 전 남편이 등장해서 결혼을 막습니다. 남편이 있다는 사실에 두 사람 모두 놀랍니다. 알고 보니 벨라의 몸의 남편입니다. 어떻게 하지요? 벨라가 전 남편을 따라갑니다. 그의 부와 권력에 넘어갔는지도 모릅니다. 문제가 또 발생합니다. 이 남편이 벨라를 독점하고 자기 소유처럼 다루려 한다는 것입니다. 여태 그래왔지만 그렇게 매여 살 사람이 아닙니다. 벨라는 자신이 아버지를 뒤따라 의학을 공부하고 스승 과학자에게 잘 배운 약혼자와 협력하여 전 남편에게 확실한 복수를 해줍니다. 영화 ‘가여운 것들’(Poor Things)을 보았습니다. 생각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