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필가협회 2024년 문학상 심사평
은유와 환유를 통한 형상화
모두 12권의 작품집이 심사 대상에 올랐다. 작가들이 선정해 준 5편의 대표작들을 읽으면서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 군계일학은 없었다. 작품 수준이 상당하면서도 비등한 작가가 여럿이었다는 말이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 갈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한 작가는 둘이었다. 여러 번의 저울질 끝에, 비유를 통한 문학적 형상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황미연의 《꽃은 지면서 춤을 춘다》를 당선 작품집으로 확정하였다. 최종 선택에서는 탈락하였으나 다양한 구성 방식과 주제의 집약적 선명성을 보여준 작가도 머릿속에서 쉬 떠나지 않는다.
황미연은 각기 다른 경험을 버무려 내는 창작법에 능숙하다. 대표작 5편 가운데 <미완성 연가>를 제외한 4편이 모두 이런 구성을 취하고 있다. 웬만히 숙달된 작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구성 방법이다. 등가성을 지닌 여러 소재를 병렬적으로 배열하는 복합구성은 자칫 산만해지기 쉽다. 여러 경험을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기에 통일성을 유지하고 구심점을 살려야 단조로움을 덜어내고 입체적인 맛을 발휘하게 된다. 이러한 구성법은 어쩌면 현대인의 복잡한 의식구조에서 발현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글쓰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소재들을 서로 결합하는 고리로 황미연은 은유와 환유를 모두 활용한다. 수사적 차원의 은유와 환유를 문장 쓰기나 소재들의 결합에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나아가서는 언술 성립 원리 차원의 은유와 환유를 수필 창작 원리로 적용하기도 한다. 로만 야콥슨은 《문학 속의 언어학》에서 은유를 시의 언어에, 환유를 산문 언어에 대응시키고 있지만, 한국수필에서는 은유와 환유가 모두 작동된다. 문학은 일상어에서와같이 세계 인식을 한층 더 명료화하거나 확장하기 위해 은유와 환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은유와 환유는 문학의 표현 방식이면서 사유 방식이다.
인류는 은유적 방식과 환유적 방식으로 언어 표현을 명료화하거나 확장하는 일을 수행해 왔는데(최진아, <은유에 관하여>, 《수필미학 16호》), 이는 익숙한 것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로만 야콥슨은 소쉬르가 말한 연상 관계와 통합 관계의 개념을 선택의 축과 결합의 축이라는 언술 성립 원리로 진전시키면서 언어가 실생활의 말로 구성되는 과정에는 두 개의 기본 원리가 작용한다고 본다. 그리고 선택의 축을 은유(유사성의 원리)에, 결합의 축을 환유(인접성의 원리)에 대응시킨다(김태환, <은유와 환유>, 《문학의 질서》). 선택의 축이란 유사성을 통해 심리적으로 연상되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말하고, 결합의 축이란 선행 요소와 후행 요소 간의 선형적 배열 관계를 의미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꽃은 지면서 춤을 춘다>에 동원된 소재들은 너무 복잡하다고 할 정도로 무척 많다. 그런데 이들은 은유와 환유를 통해 절묘하게 결속되어 있다. 섶섬 올레길의 동백꽃과 ‘모란 동백’을 조가로 불러 주길 원하는 조영남은 동백꽃이라는 동일성과 죽음을 앞둔 존재라는 유사성을 통해 결속된다. 은유 관계를 성립시킨 것이다. 그다음의 장례식장에 늘어선 꽃들은 죽음을 환유하면서 앞의 소재들과는 죽음이라는 유사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죽음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 ‘춤추는 죽음’도 마찬가지다.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프라하 천문시계의 인형을 그다음에 배치하면서 죽음에 대한 사유를 이어간다. 부모님의 죽음과 지인의 죽음은 나와 멀다고 여겨온 죽음이 가까이에 있음을 자각하게 되는 계기로 동원된 소재다. 죽음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해 자문하면서는 뭉크의 ‘절규’나 호들러의 ‘밤’을 호출한다. 죽음의 공포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작품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아 삶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생을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데, 그 자세에 대해서 직설하지 않고 ‘활짝 피어나던 그 절정의 순간을 못 잊어서 떨어지는 꽃도 춤을 춘다’라는 문장 하나로 은유하고 만다. 꽃은 열정적으로 살아온 삶에 연연하면서도 죽음을 흔쾌히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삶이라면 그 하찮은 삶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죽음을 흔쾌히 수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 셈이다. 기발한 통찰이고 상상이다.
<각인>도 은유와 환유를 토대로 삼아 소재들을 결속한 작품이다. 기억 속에 각인 된, 생애에서 가장 간절했던 시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임신 초기의 유산 기미에 의사는 낙태를 권유하지만 거부한다. 지극한 모성과 희망적인 기대감으로 태아를 지켜내고 낳아 길렀다. 그렇게 성장한 딸아이가 탈진 상태로 응급실로 실려 온 것이다. 이런 상황이 작품의 근간이다. 이 사건만을 시간적 순차에 따라 기술하여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할 만한데 그러지 않았다. 두 폭의 응급실 풍경과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그리고 목줄이 감긴 새끼 염소를 구하려는 어미 염소의 애절한 모습을 끌어들인다. 염소 울음소리를 내는 할머니와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환자의 모습을 서술한 첫 번째 응급실 장면, 탈진한 딸을 데리고 응급실에 와 있는 상황, 염소 가족을 묘사한 장면이 상황의 유사성을 통해 은유적 결속을 가능케 한다. 두 번째 응급실 장면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불안한 심리 상태를 표현한다. 이는 뱃속의 태아를 지키려 애썼던 때와 실신 상태로 응급실에 누워있는 딸을 지켜보는 작가의 불안과 초조, 새끼 염소를 지켜보는 어미 염소의 불안과 초조, 그리고 이중섭의 그림 이면에서 드리워져 있을 불안과 초조와 결속된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은유적 연상을 통해 작품을 전개하고 인식을 확장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끼는 불안의식을 행간에 깔고 있다. 불안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모성의 간절함과 위대함을 여러 경험의 은유적 조합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앞의 두 작품이 수사적 차원의 소재 결속을 의도했다면, <늦은 대답>에서는 언술 구조 차원의 소재 결속이 이루어진다. 은유와 환유, 즉 선택의 축과 결합의 축이라는 원리가 적용되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와 작가는 선택의 축에 놓여있다. 음악의 꿈을 키우던 머큐리가 부모로부터 외면당하다가 월드 스타로 성장한 가수로서 부모에게 인정받는 과정과 동성동본 사이의 사랑으로, 부모로부터 외면당하다가 신랑·신부 양옆에 세우는 이름표에 엄마의 성을 쓴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승낙받고 자기 정체성과 존재감을 획득하는 과정은 결합의 축이다. 두 사람이 처한 삶의 과정을 유비(類比) 관계에 놓았다. 은유와 환유가 동시에 작용하는 유비 구성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명료하게 표현하고 세계 인식을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눈부처는 웃으면서 운다>는 더 온전한 유비 구조를 이룬 작품이다. 고무나무와 ‘녀석’에 관한 이야기를 정교하게 유비하기 때문이다. 고무나무 가지를 원줄기에서 자르는 장면과 녀석의 모유 수유를 끊은 장면, 물에 꽂아둔 가지가 뿌리를 내리고 화분에 옮겨심는 장면과 녀석이 직장을 구하고 분가하는 장면, 고무나무가 화분에 정착하여 보란 듯이 연둣빛 잎눈을 내밀고 초록이 짙어지는 장면과 녀석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장면을 교차시키며 서술한다. 고무나무와 녀석이 모태에서 분리되어 커가는 스토리를 유비 구조로 구축한 것이다. 홀로서기를 곁에서 지켜보는 어미의 애달프고 흐뭇한 심정을 ‘웃으면서도 우는 눈부처’로 형상화한다. 은유와 환유를 통한 유비 구성은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해명하거나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방법으로 적용한다. 널리 활용하는 이 구성은 한국수필의 매너리즘으로 지적받기도 하지만, 문학의 오랜 전통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황미연은 폭넓은 경험과 지식뿐 아니라 사유의 깊이를 지닌 작가다. 여러 개의 소재를 하나의 작품에 녹여내어 미적 결정체로 만드는 능력은 여기서 나온다. 그 과정에서 언어를 능숙하게 부릴 줄도 안다. 비유를 통한 형상화로 심미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문장에서 구성 형식에 이르기까지 그 매무새를 일일이 여미고 매만진 작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심사위원
허창옥, 피귀자, 여세주(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