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시 한 수 ＜선천성 그리움＞을 음미하며

[운산/최의상]

                                     그리움의 시 한 수 <선천성 그리움>을 음미하며

                                                                                                                    최의상

오늘부터 장마철로 접어들 것이라 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사흘 굶은 시어머니 상처럼 잿빛으로 얼룩덜룩하다. 햇빛은 어디로 갔기에 밝음만 있고 빛은 없다. 천지창조시 어둠 뿐이었다. 어둠을 향하여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을 향하여 빛과 어둠으로 나누어라, 하니 낮과 밤이 생겼으니, 이는 첫째 날의 창조였다. 이 때부터 빛과 어둠은 같이 존재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사라지고, 어둠이 있는 곳에는 빛이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은 빛에서 살며 어둠을 그리워 하고 어둠에서 살며 빛을 그리워 했다. 빛과 어둠은 서로가 그리움의 대상일 뿐,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이 그리움이 세상의 뿌리가 되어 세상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그리움을 채우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함민복 시인의 시 <선천성 그리움>를 눈으로 읊어 보았다.  그리움이 선천성이라 한다. 그리워서 품 안으로 안아 보았더니 이게 웬 일인가?. 당신의 심장은 나의 왼 쪽에서 뛰고, 나의 심장은 당신의 왼쪽 기슴에서 심장이 뛰더라는 것이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서로 마추 쳐야 강렬한 폭발음이 발생하는 것이고, 뜨겁게 뛰는 심장과 심장이 맞부딛쳐야 정열의 기쁨이 솟아오를 것인데 끝네 서로 합할 수 없는 그리움만으로 남게 되니 선천성 그리움을 원망하며 그리워해야 하는 슬픈 족속이 되었던 것이다. 즉 선천성 그리움이니 어찌하랴. 실제의 거리는 20cm정도의 거리지만 이 거리는 천리도 되고 만리도 된다. 그리움은 멀리 있다고 더 그리운 것도 아니고 가깝게 있다고 하여 덜 그리운 것도 아니다. 그리움은 거리가 문제 되지 않고 항상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선천성 그리움이라 명명하였다.  새 떼는 날아 오르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번개는 내리치지만 각자의 가슴에서, 심장에서 온 몸을 흔드는 박동 속에서 피는 끓고 식어갈 수 있다. 심장의 위치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그리움으로 사랑해야 한다. 시인의 시를 소리 내어 다시 음미 해 보았다.

선천성 그리움- 시인/ 함민복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 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그런데 시인은 그리움의 출처를 알고싶은 것이다. 그리움의 출처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알 길이 없다. "하늘과 땅 사이를/날아오는 새 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날아 오르고 땅으로 곤두박치는 새떼에게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번쩍거리는 번개와 천둥소리에 묻고도 싶다. 합당한 대답은 들을 것이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 묻고 싶은 심정이다. 포갤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 그것이 바로 선천성 그리움이며 외로움이다. 낮과 밤이 포개질 수 없기에 낮에 살면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밤이 오면 아침 햇살을 그리워 한다. 그리움은 외로움이며 사랑이다. 벤자민 프랭크린은 사랑이라 했고, 나태주 시인은 그리움이라 했다. 외로움의 부재를. 고독, 고립, 쓸슬함은 다 대상을 찾고 있다. 그 대상은 그리움이며 그 그리움을 간직하고 같이 그리워하는 상대가 있기에 그리움은 더욱 강렬하게 일어난다. 그리움은 그리워해본 사람만이 그리움의 향기를 맛 볼 수 있다.

호접란 <팔레놉시스>가 자주빛으로 탐스럽게 많이 피고 있다. 꽃말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한다. 저 꽃도 그리움의 대상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리워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꽃이 피고 있는 것이리라. 멀리 하늘을 바라본다. 여전히 잿빛 하늘이다. 금시라도 비가 올 것 같다. 소나무 손들이 흔들거리고 있다. 적막한 거실에서 하늘 멀리 살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니 그리워진다. 카나리아 울음 소리에 내가 거실에 앉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창 밖에는 비가 오고 있다. 천둥소리와 번쩍이는 번개가 스쳐 지나가고 있다. 참 오랫만에 비가 오고 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가 대지를 적시며 스며들고 있다. 비가 오지 않고 가물어서 강원도 울진쪽에 살림 피해가 많았다. 칠년 가뭄에 비 안 오는 날 없다고 했다. 비는 온다고 자주 기상게스트가 방송하면 몇 방울 소나기로 스쳐 지나갔다. 오늘은 다르다. 비 다운 비가 쏟아지고 있다. 비야 쏟아져라. 번개야 번쩍하여라. 천둥아 울려라. 도랑물이 넘치고, 개울물이 넘치고 강물이 붉게 범람하여라. 그리하여 강물이 뒤짚이고 바닷물이 뒤짚혀야 한다.  다만 인간에게 피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비를 그리워한 사람들에게 그리움 만큼만 쏟아주어라. 사랑도 넘치면 화가 된다. 또 그리워하도록 적당히 비야 오거라. 시원하다. 커피 한 잔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