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격》 -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철웅)
《삶의 격》 페터 비에리(지은이)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인 비에리 교수의 신작이다. 2014년 독일 최고의 철학부문 에세이상인 ‘트락타투스상’ 수상작인 이 책은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 주목한 역작이다. 인간의 가장 큰 정신적인 자산이지만 삶 속에서 가장 위협받기 쉬운 가치이기도 한 존엄성! 과연 어떻게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저자는 이 주제를 관찰자와 문제 제기자로서 접근하면서 일상생활과 문학 작품, 영화 등에서의 여러 사례를 근거로, 존엄성이란 어떤 절대적인 속성이 아니라 삶의 방식, 즉 ‘삶의 격’이며, 우리가 자립성, 진실성,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기준을 바로 세워 나갈 때 드러난다는 것을 밝힌다.
저자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 등 세 가지 관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그린다. 개인 간의 존엄성이 부딪히거나 개인과 집단의 존엄성이 충돌하면 무엇을 먼저 고려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이 책의 주요 관심사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철학서는 난해하다’는 대중의 선입견을 깨고, 저자가 직접 보고 겪은 일을 소설, 영화, 연극 등과 엮어 존엄성의 개념을 일상의 언어로 쉽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장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을 인용해 ‘독립성으로서 존엄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그가 직접 보고 경험한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라는 소재를 추가해 메시지를 더욱 쉽고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저자는 소설과 ‘난쟁이 던지기 대회’를 통해 자발적 의지(독립성)와 존엄성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의 경우 “존엄성이 개인의 자유의사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다양한 차원에서 존엄성을 이야기 한다. ‘만남으로서의 존엄성’에선 상대방을 깔보는 것뿐만 아니라 인정해야 할 때 인정하지 않는 것도 존엄의 훼손이라 지적한다. 특히 3장 예시에 등장한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부부간의 사적인 은밀함도 존엄의 영역에 속하고, 이들의 은밀함이 깨져 밖으로 흘러갈 때 어떻게 존엄성이 무너지는지 짚어낸다. ‘존엄사(안락사)’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는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이라는 개념을 들어 생사결정권을 오롯이 당사자의 몫으로 돌린다.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저자의 화법이다. 저자는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대신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존엄을 상실하는 순간을 찾아내 이를 담담하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난쟁이 던지기 대회‘에서 타인에 의해 내던져지는 난쟁이는 그 일을 돈을 받는 하나의 직업이라며 떳떳해하지만, 저자는 자본축적이라는 목적달성을 위해 스스로 ’장난감‘이 되는 것은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밖에도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사회, 특히 세월호 참사, 용산 참사 등 자본과 인간 사이에 무게 추를 매단 한국사회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 책 곳곳에 담겨져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질병, 중독, 치매, 장애 또는 노화로 인해 인간의 삶이 소멸단계로 접어들었을 때의 존엄성 문제를 다룬 부분이다. 저자는 사회적, 경제적 능력뿐 아니라 지력과 정신력이 약해지고, 그로 인해 정체성이 해체되어 나라고 불릴 만한 부분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어떻게 존엄성을 지밀 것인지, 타인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그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독자들이 끊임없이 사유함이 삶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중심으로 사유하게 한다.
연인이거나 배우자와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 직장생활 등 공적인 삶과 상처받기 쉬운 자아의 내적인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삶 전체를 되돌아보고 존엄성의 관점으로 새롭게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첫댓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 ,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 등 세 가지 관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그린다"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보다도 나와 나 사이에서 더욱(내 생각엔) 지켜져야 할 '존엄성'에 솔깃해진다.
한아 님 댓글 통해 글의 핵심 파악에 더욱 도움되지요. 자존감 희박한 자신 구출하는데 노력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