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별 임한별님의 교우단상: 유럽 여행기(旅行記) ◈
안녕하세요, 들꽃 가족 여러분. 한 달 만에 뵙나요? 여행기 2탄을 기약해놓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이렇게 기회를 또 주신 덕분에! 다시 뵙게 된 여우별입니다.
네, 지난 글에서는 가장 힘들었던 도시 스페인 세비야에 대해서 말했으니, 오늘은 두 번째로 다사다난했던 여행지 이탈리아 로마에 대해서 말해볼까 해요. (편의상 반말로 서술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내 여행 일정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아웃을 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대략 8일 정도를 이탈리아에서 머문 것인데, 그 중 로마가 3박 4일, 피렌체가 1박 2일, 베네치아에서 3박 4일을 보내는 루트였다. 여행을 많이 다녀보신 분들은 여기서 아마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피렌체 일정이 너무 빡빡한 거 아니야?’ 하고. 그래, 우리의 실수는 아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베니스와는 그다지 안 좋은 기억이 없다. 한인 민박 사장님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약 이틀이면 주요 관광지를 다 돌고도 남는다는 작고 아름다운 낭만과 물의 도시, 베니스. 그곳에서 무려 3박 4일의 시간을 보냈으니, 우리가 얼마나 일정 편성을 잘못 했는지 이쯤에서는 다들 감이 오실 것이다.
사실 로마에서는 일정상으로 힘들었다기보다도 정말 말 그대로 일이 많았는데, 출발하기 전 사전 정보로 들은 것 중 언니와 내가 가장 걱정했던 두 도시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로마였다. 투어에서 만난 사람들 중 언니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소매치기 시도를 당했다는 그 험한 바르셀로나를 무사히 벗어난 우리에게 찾아온 제2 난코스가 바로 로마였던 것이다. 게다가, 로마는 좀 나쁜 말로 표현하자면, ‘유럽의 깡패’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소매치기 수법이 다양하다고 들었던 터라,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로마에서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당했다.
chapter 1. 팔찌 강매 사건.
소매치기 이야기에 앞서, 다들 꼭 머리에 새겨두시기를 바란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그 어떤 누가 베푸는 호의도 받지 말자는 것을, 공짜로 받는 호의란 없다. 로마에서의 둘째 날, 예정된 일정을 다 마치고도 시간이 남아 숙소로 그냥 돌아가기 아쉽다는 이유로 언니와 콜로세움 야경을 보러 갔다. 콜로세움이 한 번에 들어오는 포토 스팟을 찾아서 서로를 찍어주는 것도 모자라 셀카 찍기 삼매경에 빠진 언니와 나는 동시에 민망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는데, 지나가던 흑인과 언니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냥 제 갈 길을 가지 않고 우리를 빤히 지켜보는 것부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우리가 너무 순진해서인지, 아니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셀카 찍는 것을 들켰다는 민망함 때문인지, 전혀 그런 의심조차 못한 채, 우리는 그 사람이 건네는 대화에 동참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언제 로마에 왔고, 왜 왔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와 bye bye 인사를 할 수 있었는데, (사실 우리는 그가 하는 질문에 짤막하게 대답하는 것이 다였고, 그 혼자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인사를 하고 돌아선 그가 잠시 후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뭐지? 싶어서 그를 바라보는데, 그가 갑자기 우리에게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아프리카 전통 문양 같은 것이 새겨진 수공예 팔찌였는데, 요약하자면 ‘여기에서 언니와 나를 만난 것이 자신은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이 팔찌를 기념으로 꼭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미 뭔가 이상함을 느낀 지 오래인 우리 둘은 표정이 잔뜩 굳어진 채로 애써 웃으며 거절을 해댔다. 그러자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것인지 그의 입에서는 “이거 공짜야!”라는 말까지 튀어나왔으나,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고개까지 저어가며 거절하는 우리의 손목을 결국 힘으로 잡아챈 그는 언니와 내게 억지로 그 팔찌를 채워주었고, (심지어 되게 세게 묶어놓았다.) 그 뒤에 정말 인사를 하고 사라지는 듯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 멍하니 있다가 사진은 그만 찍고, 자리만 조금 옮겨서 구경하고 집에 가자고 하고 보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흑인이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여기서부터 진짜 온몸에 소름이 돋고(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무서워서 심장이 엄청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돌아온 그는 아까 해맑게 웃던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목소리도 한층 낮아져서는 우리에게 무어라 무어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너무 배가 고프다, 로 시작한 그의 말은 어느 새 돈이 있냐, 돈 좀 달라, 까지 변질되었고, 도중에 그가 억지로 묶어준 팔찌를 풀려고 애쓰자, 그는 그 상황에서도 그럴 필요는 없는데 너 진짜 돈이 없냐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묻더라…. 너무 무섭고 발도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언니와 나는 계속해서 우리 돈이 하나도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그와 거의 5분 정도 대치했을까. 우리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이 진짜라고 느꼈는지, 우리에게 이득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뭔지 그가 결국에 뭐라 뭐라 하면서 돌아서서 자리를 뜨기 시작했는데, 정말 다리의 힘이 쫙 풀릴 것 같았지만, 그 장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어서 언니와 손을 잡고 혹시 그 사람이 다시 쫓아올까봐 죽을힘을 다해 지하철역으로 내달렸고, 지하철역에 도착하자마자 그 꽁꽁 묶인 팔찌를 엄청 욕을 해대며 풀어서 버리고 그날 언니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손을 꼭 잡고 서로를 달래며 왔던 것이 아직도 선하다. 이게 텍스트로 읽으면 당시의 위급함이 별로 와 닿지 않겠지만, 우리보다 덩치도, 키도 훨씬 큰 성인 남성이 표정을 굳히고 그렇게 돈을 요구하는 것이 정말 얼마나 무서웠는지... 물론 다행히 아무것도 털리지 않았고, 우리 둘 다 무사하긴 했지만, 그렇게 충고를 듣고서도 방심했던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남은 시간은 초심으로 돌아가 사방 경계를 늦추지 않기로 다시 다짐했던 로마 이튿날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시작에 불과할 뿐, 이렇게 당하고도 무슨 일이 남아있을까? 하는 우리에게 더 어마어마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chapter 2. 여우별, 소매치기와 맞짱(?)을 벌이다! 에서 이어집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