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훈의논단
GPS의 편리함, 그리고 그 위험
2024-05-28 (화) 민경훈 논설위원
운전자를 위한 발명품 중 GPS보다 편리한 것을 찾기도 힘들다. 주소나 업소 이름만 치면 가는 길을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GPS는 이제 운전자의 필수품이 됐다.
원래 원래 군사 목적으로 1973년 미 국방부가 개발한 GPS는 1993년 24개의 인공위성이 가동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 민간인에게는 일부러 정확도를 떨어뜨려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이 이 제한을 철폐하면서 일반인도 똑같이 정확한 위치 파악이 가능해졌다.
현재 일반 GPS는 16피트, L5 밴드를 이용한 GPS는 1피트, 토지 측량 등 정밀 GPS는 ¾ 인치까지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요즘은 실시간 교통량 정보나 사고 상황, 심지어는 경찰이 과속 단속으로 티켓을 떼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준다.
그러나 이런 편리함에 가려진 GPS의 위험도 있다. 질병 통제국은 운전 중 GPS 조작도 텍스팅과 마찬가지로 부주의 운전으로 간주한다. 55마일로 달리는 차에서 5초만 전방을 응시하지 않아도 축구장 크기의 거리를 지나간다. 미국에서는 매년 전체 교통 사고 사망자의 9%인 3,000여명이 부주의 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사망하는데 이중에는 운전 중 GPS 조작도 포함돼 있다.
GPS에 대한 과도한 신뢰도 사망을 부른다. 2022년 9월 30일 노스 캐롤라이나 히코리에서는 딸 생일 파티에 갔다 집으로 돌아가던 두 딸의 아버지 필 팩슨(47)이 다리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폭풍이 치는 밤 GPS만 믿고 따라갔는데 GPS가 9년 전 다리가 무너져 끊긴채 수리가 되지 않은 길로 그를 인도한 것이다. GPS가 아무리 정확해도 달라진 도로 상황을 누군가 신고해 올리지 않는한 알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일수록 GPS 정보는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팩슨은 극단적인 예지만 잘못된 GPS 정보로 곤경에 처했던 사람은 많다. 2015년 ‘더 위크’지 보도에 따르면 맨해튼에서 뉴저지로 가던 한 운전자는 GPS가 시키는대로 갔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가던 길이 갑자기 리버사이드 공원으로 가는 계단으로 바뀌었는데 GPS가 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2009년 영국 웨스트 요크셔에 사는 로버트 존스는 GPS를 믿고 따라갔다 낭떠러지에 추락할 뻔 했다. GPS가 인도한 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결국 낭떠러지로 안내했고 그의 차는 가는 철망에 걸려 겨우 정지했다. 아래를 보니 100피트 높이의 절벽이었다. 그는 9시간 뒤 구조팀에 의해 가까스로 살아났다.
최근 LA에 사는 한 한인도 GPS를 과신하다 목숨을 잃을뻔 했다. 모처럼 가족과 캠핑을 하기 위해 앤젤레스 포리스트에 있는 한 캠핑장으로 출발한 그는 최근 내린 폭우로 그곳으로 가는 2번 길이 막힌 것을 발견했다. GPS를 치자 한 시간 정도 돌아가는 샛길이 있는 것으로 나와 그 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 동안 평탄한 흙길이었던 샛길은 점차 돌길로 바뀌더니 나중에는 뾰족뾰족한 자갈길로 변했다. 거기다 길은 얼마 전 내린 비로 곳곳이 파이고 심지어 개울로 변한 곳도 있었다. 낭떠러지 꼭대기로 올라가는가 하면 급경사로 계곡 밑까지 내려가는 일이 반복됐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향을 돌려 캠핑을 포기하고 들어온 곳으로 나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타이어가 날카로운 돌에 걸려 찢어진 것이다. 돌길 벼랑에 차를 세우고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GPS도, 911 전화도, 인터넷도 아무 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걸어서 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으나 한 시간을 걸어도, 두시간을 걸어도 주위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후 5시가 넘어가면서 해는 기울고 찬 바람은 불기 시작하는데 인가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일대는 곰과 마운틴 라이언 출몰 지역이었다.
이대로 산을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 때 멀리서 먼지가 이는가 싶더니 트럭 한 대가 느릿느릿 달려왔다. 차를 세우고 도움을 청하니 자기는 패러메딕 출신 목사 토니라며 흔쾌히 응했다. 그는 스페어 타이어를 갈아 끼워주며 이제 또 타이어가 터지면 그 때는 진짜 산속에서 밤을 새야 한다며 사례금도 받지 않고 사라졌다. 이 한인은 극도로 조심스럽게 돌길을 운전해 살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GPS에 ‘이 길은 비포장 도로로 극히 험하니 일반 차량은 갈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만 있었어도 이 고생은 면할 수 있었겠지만 GPS가 그런 경고문을 달아야 할 의무는 없다. GPS가 편리한 것은 분명하나 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뜻밖의 위험을 부를 수 있으며 상황 판단의 최종 책임은 운전자의 몫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