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무릎 (외 1편)
유 진
턱 아래로 드리운 큼직한 워낭
쩌렁쩌렁 울리던 한때는 우쭐해서
사막언덕 모래물결 따라 푹푹 발자국 찍으며
뜨거운 모래바람을 건너왔을 것이다.
꿈을 묻은 물혹, 움푹 팬 두 무덤 사이에
몸보다 무거운 오남매를
오아시스처럼 지고 왔을 것이다
오아시스처럼 지고 왔을 것이다.
생의 첩첩협곡을 지날 때
수천 번을 숙이고 접었을 아버지의 허리
수만 번을 꿇었을 어머니의 무릎
긴 눈썹에 젖은 눈을 가린 채
낮추어 꿇고, 살과 뼈로 이룬 물혹을 깎아 간신히
상수上壽의 바늘귀를 통과했을 것이다.
비울 것 다 비우고 초연한 저승길
화엄을 꿈꾸는 쌍봉낙타, 찌걱대는 관절
허옇게 굳은 무릎옹이가 화엄인 것을
꽃무릇
잎도 없이 쑥쑥 올린 꽃대에
여섯 잎 홍자색 꽃 만발이다
잎은 잎대로 꽃은 꽃대로
만나지 못한다 해도
이파리에게 꽃은 기쁨이어서
초가을 화단이 발갛게 익었다
단단한 뿌리로 살아
저토록 황홀한 절창인 것이다
그리운 것들은 언제나 멀리 있고
푸른 언약 또한 빛이 바래어
죽는 날까지 만날 수 없다 해도 사랑이여
너는 너대로 너답게 살고
나는 나대로 나답게 살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가 되는 것이다
-시인정신 201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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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정신 신작시 초대석
낙타의 무릎 외1편/유 진
김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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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0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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