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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린이를 대상으로 출간된 책들을 읽다보면, 내용이나 구성이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의 시각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할머니를 업은 할머니>라는 책의 제목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 의미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이 작품을 통해서 ‘과연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하는 의문점이 먼저 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할머니의 노년을 지켜본 손녀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노년에 반려동물과의 함께한 모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것일까? 또는 ‘작가의 말’에 적시되어 있는 단순한 ‘헤어짐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일까?
이러한 논의로 리뷰를 시작하는 것은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든 어떤 아쉬움 때문이었다. 아마도 저자는 독자들에게 <할머니를 업은 할머니>라는 책의 제목이 주는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책의 후반부에 또 다른 할머니는 사실 외할머니와 함께 했던 반려견 ‘메리’라는 것을 밝히고자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성공했을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책의 주제를 모호하게 만들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손녀의 입장에서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고, 할머니의 노년의 삶에 대해서도 그저 평범한 일상만을 적시해 놓았을 뿐이었다.
비록 혼자이지만 반려견과의 생활을 통해서 행복한 노년을 보낸 할머니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것이 아마도 저자가 강조하려 했던 문제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러한 문제들이 모두 담겨있지만, 그중 어느 하나도 두드러지게 표출되지 않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이 13살의 반려견을 ‘할머니’로 인식하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설정일까? 내가 지켜본 바로는 반려견의 나이가 얼마냐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대체로 반려견들을 ‘귀여운’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제목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서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우울증에 빠졌던 할머니가 반려견 ‘메리’와 함께 살면서 삶의 활기를 찾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손녀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아지고, 끝내 13년을 함께 했던 반려견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할머니의 노년 생활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어린 손녀의 감성으로 서술하고 있다. 간호사인 어머니와 함께 할머니의 집을 방문하여, 손녀가 할머니와 함께 많은 추억을 쌓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다만 ‘동갑인 외할머니와 작은 할머니’라는 표현으로 인해 읽는 내내 다소 혼란스러워하기는 했어도, 산책을 즐기던 할머니가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반려견이 함께 했기에 할머니도 적지 않은 위안을 받았을 것이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응급차에 실려 가신 할머니의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손녀가 발견한 포대기는 아마도 반려견을 밝히기 위한 복선이라고 여겨진다. 그것을 통해서 손녀는 자신이 어렸을 때, 엄마에게 업혔던 기억을 상기하게 된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꿈속에서 만난 할머니와 반려견을 통해서, 비로소 ‘작은 할머니’의 정체가 밝혀지게 된다. 나아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 이웃의 ‘푸들 아줌마’가 보내준 살아계실 때의 할머니가 반려견을 업은 사진을 통해서 제목의 의미가 비로소 선명하게 밝혀지게 된다. 이제는 반려동물들을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제목의 궁금증을 유지하기 위한 설정보다, 나로서는 오히려 반려견과 할머니와의 행복한 노년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드러내고자 했던 ‘헤어짐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더 설득력이 있게 표현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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