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김경미)님의 교우 단상: 터칭(touching) 즐기기! ◈
(*터칭 : 인간 피부의 인류학적 의의 / 애슐리 몬터규 지음 ; 최로미 옮김))
책 ‘터칭’은 ‘인간 피부의 인류학적 의의’라 칭할 만한 게 여러 동물, 인종, 계층을 대상으로 다각적 실험과 조사를 통해 피부와 접촉의 중요함을 설명하고 있다.
밀접한 피부 접촉이 어린이와 어머니, 둘 다에게 필수적인 것이라는 점과 동물이 출산 후 새끼에게 핥기를 하는 것은 아기가 산모의 자궁을 힘겹게 빠져나오는 것과 동일하게 이러한 과정이 신체 각 부위를 깨우는 시작이라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임신과 배임 과정만큼이나 자궁을 통한 출산과 이후 산모와 아기의 첫 접촉, 초유의 과정이 산모와 아기 신체 구성에 주요한 작동을 하고, 인체의 건강에 밀접하게 작용하여 장애, 결핍, 각종 질환이란 불행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음에 커다란 공감이 들었다.
두꺼운 책을 훑은 후 스터디모임에서 나눈 반응들은, 모든 것을 피부 접촉으로 귀결하려 들면 모든 접촉이 성과 연결된다느니, 엄마가 아기에게 제대로 안 하면 인생 자체가 모두 망가지는 것처럼 비쳐 여성혐오까지 느끼게 하고,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하여 인류 행복을 바라는 잔인함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접촉 결핍을 왜곡되고 범죄화 된 문제 행동이나 정신질환과 연결하면 자칫 폭력성에 대한 합리화로 이용될 수 있겠다는 우려도 담고 있다.
스터디 참여자들은 어릴 적 바쁜 엄마 대신 할머니 가슴을 만지며 자라거나 엄마의 젖을 형제간에 차지하려 애썼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살갑게 타인에게 달라붙거나 편하게 타인의 접촉을 받아들이는 것에 자연스럽지 못한 나였기에 ‘접촉’에 대해 은근히 고민하던 기억들을떠올리게 되었다.
접촉 기억은 때론 피해 경험으로 자리하여 트라우마로 남아서 따스한 악수 하나도 만지는 것으로 인식하거나 폭력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접촉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감수성을 가지고 대할 일이라 새겨본다.
어릴 적 생계를 위해 잠시 나를 떠난 엄마와 재가한 엄마의 가정으로 보내져 생활한 경험이 접촉의 중요함을 말하는 부분과 유리되어 있던 순간이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고된 살림 때문에 어린 딸조차 포근히 안을 여유마저 없었을 엄마가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안쓰럽다.
갓난 아이 적 호롱불 아래 엄마에게 안겨 코가 잡힌 채 물약을 먹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 김을 따거나 미역을 딸 때, 엄마의 등에 업혀있던 흐릿한 기억은 아직도 내 몸에 깊이 자리하는 나와 엄마와의 접촉이다.
엄마를 친근히 안는 것은 지금도 잘 못하지만, 생각해보면 노년을 맞은 엄마의 귀지를 파고 눈썹을 정리하고 팔과 어깨를 마시지 하며, 엄마가 내게 주셨던 접촉을 되갚아주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
‘터칭’을 통해 피부의 역할이 정말 많고 다른 감각으로 표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접촉은 곧 관계(라틴어: 함께+만지다)로 만지거나 만나는 행위라는 것, 다양한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우리, 접촉으로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어 가는 것을 함께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