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나라... 그들의 ‘놀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
공부와 미래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놀 권리가 갈수록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소재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양모 군(13)은 아침 7시 30분경에 일어나 8시 50분까지 학교로 간다. 6학년인 양군이 일반적으로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시간은 14시 30분경. 이후 양군은 집으로 가 간단한 간식을 먹거나 가방만 풀고 곧장 수학학원으로 향한다. 15시 30분부터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공부를 한 뒤, 음악 학원에 가 피아노를 치며 다시 1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18시. 잠시 휴식을 취하다 저녁을 먹고 학원 숙제를 마치면 23시쯤에 자기 전까지 남는 시간은 별로 없다.
중학생은 이보다 더 바쁜 생활을 한다. 서울 용산구 소재의 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 박모 양(16)은 8시까지 등교를 해 15~16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한다. 이후 과외 및 종합학원을 일주일에 다섯 번 다니며 약 19시 30분까지 시간을 보내고,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이후 시간엔 주로 스터디 카페에 가 23시 30분까지 공부하며 하루를 보낸다. 남는 틈새 시간에는 게임을 하는 등의 가벼운 여가를 잠시 즐긴다.
그래도 박양은 “친구들에 비해 널널한 편”이라며 “친구들은 학원 시간을 따로 조정하지 않는 이상 놀지도 못하고 저녁도 학원에서 먹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일 이러한 생활을 반복하니 갑갑해서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이나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들 학교가 끝나도 학원 때문에 여유롭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아 그 압박감으로 인해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노원구에서 중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 강수미(50)씨는 이런 현실에 대해 “옛날처럼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서 안타깝지만, 남들은 다 하는데 내 자식만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당연히 공부를 해야만 하는 현실을 말했다.
통계로 보면 학생들의 바쁜 삶이 더욱 부각된다. 올해 6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3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동(9-17세)은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하지 못하고 있고(희망 42.9% vs 실제 18.6%), 학원‧과외(희망 25.2% vs 실제 54.0%)와 집에서 숙제하기(희망 18.4% vs 실제 35.2%)를 원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에 비해 특히 두드러진 항목은 ‘친구들하고 놀기’와 ‘신체활동 또는 운동하기’였는데, 과거 조사에서는 두 항목의 현실과 희망의 차이가 각각 18.9%, 8.9%였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그 차이가 각각 24.3%, 12.2%로 올라 눈에 띄는 차이를 보였다.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2018년에 비해 차이가 더 커진 것으로, 아동의 놀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 = 보건복지부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 화면캡쳐)
세계와 비교하면 공부에 의해 놀 권리가 뺏기고 있는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교육 상황이 잘 보인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교육지표에 따르면, OECD 평균 공공 의무 교육시간은 초등교육 연간 총 4,830시간, 중등교육은 총 2,748시간으로 나왔다. 하지만 한국은 초등교육이 총 3,930시간, 중등교육은 2,256시간으로 보고됐다.
앞선 보건복지부의 통계와 대조해봤을 때, 분명 교육 시간이 늘어나 여가 시간이 없지만 공교육 시간은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사교육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2024년 아동행복지수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이들 중 57.3%가 선행학습을 위해 주말에도 학원을 다니고 있다. 또 가족이 대화할 때 공부를 주제로만 대화하는 등 ‘공부압박을 받는 아이들’의 아동행복지수는 44.16점으로 그렇지 않은 아이들(45.95점)에 비해 낮았다. 게다가 이러한 아이들은 우울·불안을 더 느끼고 자살 생각도 2%p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매년 우리나라 아이들의 충동적 자살생각, 우울 및 불안은 꾸준히 증가하고 자아존중감은 감소하는 추이로 나타났다.
(출처 =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2024년 아동행복지수 생활시간조사 결과’, 화면캡쳐)
아동·청소년에게 여가와 휴식 시간 대신 미래에 대한 압박으로 공부를 시킨 결과, 나름의 효과가 나오긴 했다. OECD에서 주관한 ‘2022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 따르면 한국은 37개 회원국 중 수학 1~2위, 읽기 1~7위, 과학 2~4위에 올랐다. 힘든 상황에서도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인 우리나라의 학생들이다.
(출처 = 교육부 공식 블로그, 화면캡쳐)
그런데 한국과 같이 이러한 지표에서 늘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는 핀란드 학생들의 생활을 보면 재밌는 점이 있다. 우선 한국과 핀란드는 의무교육 기간이 상당히 흡사하다. 하지만 2017년 OECD의 PISA 결과에 따르면 주당 공부 시간이 40시간 이내라고 응답한 학생의 비율은 핀란드 73.3%, 한국이 27.8%다. 학업 성취도는 비슷하지만 생활 내용이 크게 다르다.
2020년 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가 ‘핀란드 초·중등학교 학생의 방과 후 일과’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 청소년 연구 네트워크’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 미성년자의 89%가 취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일종의 스포츠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들이 갖는 개인 시간에는 이런 취미 생활뿐만이 아니라 휴식이 포함된다. 한국의 학생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보내면서도, 학업 성취도는 높은 것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이라는 것이 있다. 18세 미만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 등을 담은 국제적인 약속으로 1989년 11월 20일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전 세계 196개국이 이 약속을 지키기로 했고, 우리나라는 1991년 11월 20일 비준했다. 협약의 내용 중 제 31조를 보면, ‘아동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연령에 적합한 놀이 및 예술과 문화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있다.
아동의 놀 권리가 명백히 명시되어있는 만큼, 우리는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분명 아이들의 놀 권리는 해가 바뀔수록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사교육 열풍을 비롯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충분한 휴식을 포함한 여가 시간을 줘서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줘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