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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째 산삼을 찾아 지리산 심산유곡, 길없는 산중을 하루 30~40㎞쯤은 너끈히 내달린다는
심마니가 '지리산에서 여기가 최고'라고 꼽은 곳.
그곳은 의외로 지리의 서쪽 '구룡계곡'이었습니다. 피아골, 뱀사골, 달궁, 중산리, 한신...
지리산이 그 큰 자태로 품고 있는 이름난 계곡들을 다 물리치고, 이름도 낯선 '구룡계곡'을
그는 지리산 계곡의 첫머리에 올린 것입니다.
'아홉 마리 용'을 뜻하는 구룡(九龍)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그 계곡은 바로 전북 남원에
있습니다.
↑ 구룡계곡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구룡폭포. 지리산을 내려온 물줄기가 바위를 둥글게 깎아 만든 4개의 소(沼)에
번갈아 담기며 흘러내린다.
장맛비가 내린 뒤라면 물소리는 더 커지고, 암반을 흘러내리는 물줄기의 근육질도 더 뚜렷해진다.
폭포의 암벽에는 ‘지리산에서 제일 으뜸가는 풍경’이라는 뜻으로 새겨진 ‘방장 제일동천(方丈 第一洞天)’의 글귀가
뚜렷하다.
남원에는 구룡계곡 아홉 개 폭포마다 놀고 있다는 아홉 마리 용 말고도 용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여 '교룡(蛟龍)'입니다. 교룡이란 비늘로 뒤덮인 용을 뜻합니다.
남원의 북쪽에는 교룡의 이름을 가진 산이 있고 그 기슭에는 백제 때 지었다는 같은 이름의
산성이 있습니다.
교룡산성은 성벽이 무너져 쇠락하고 규모도 보잘 것 없지만, 그곳에는 동학혁명의 중심에 섰던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선의 남쪽을 열어젖히겠다며 '열 개(開)'에 '남녘 남(南)'자로 개명했다는 김개남. 전봉준,
손화중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에서 불꽃처럼 타올랐고, 목숨을 던지는 싸움으로 변혁을
완성시키려 했던 인물입니다.
교룡산성은 한 번도 타협을 믿지 않았던 그의 흔적을, 혹은 죽음으로 무너지고 만 그의 꿈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전북 남원. 누구나 춘향전과 광한루부터 떠올립니다.
광한루라면 낡고 오래된 것들, 혹은 스테레오 타입의 지겹고 뻔한 여행지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광한루의 정원이 그려내고 있는 '달(月)의 세상'을 알고 본다면,
붐비는 시간을 피해 이른 아침이나 저물녘의 고즈넉한 시간에 찾아가 본다면, 고전 '춘향전'의
세트장쯤으로 들여다 봤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격조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들여다
볼 수 있을 겁니다.
남원에는 광한루와 더불어 평생을 쓸쓸한 방랑으로 일관했던 매월당 김시습이 기거하며
'만복사저포기'를 지었다는 절집 '만복사'의 옛터도 남아있습니다.
광한루와 만복사. 이 두 곳에서는 풍경이 그것으로만 머물지 않고, 문학적 영감의 연결고리로
작동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달의 정서를 가져다 심은 정원 그리고 허물어진 탑과 석불 몇기만 남아 쓸쓸한 옛 절터,
스러지고 만 불온한 이의 꿈과 용의 전설을 품고 있는 계곡까지….
남원의 여정은 이리도 다채롭습니다.
시원스레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는 쾌적한 바람과 함께 금세 더위가 사라집니다.
특히 전남 남원 지리산 자락의 구룡계곡은 가족과 함께 알뜰하게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이곳에서는 또 다른 지리산의 모습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계곡뿐 아니라 수려한 산세와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절경이기 때문. 정상에 오르면 어느새
구곡경의 시원스런 구룡폭포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남원 8경 중 제1경인 이곳 아래에는 물이 떨어지는 웅덩이 용소가 만들어져 피서객의 눈길을
끌게 만드는 곳은 바로 구룡계곡입니다.
구룡계곡으로 오르는 길은 약 3.1㎞ 정도 이어지는데 삼곡교에서 구룡폭포까지는 1시간정도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려올 때는 구룡폭포에서 육모정 쪽으로 약 40분 정도가 걸리고 계곡 트레킹보다
발 담그기나 물놀이를 즐기려면 육모정 아래 계곡이 안성맞춤입니다.
따라서 가족단위나 아이들 동반한 경우에 더욱 좋습니다.
널찍한 암반이 있고 계곡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물놀이를 즐기기에 제격인 곳입니다.
또한 이곳은 나무다리로 이어진 생태탐방로도 잘 갖춰져 있어 산책 코스로도 매우 인기가
높은 장소입니다.
1. 산행지 : 구룡계곡(전북 남원시 주천면)
2. 산행코스 : 육모정~구시소~챙이소~유선대~지주대~비폭등~구룡폭포
(왕복산행, 예상소요시간 약 4시간)
** 구룡계곡은 암반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등로는 산쪽 흙길이 주를 이룹니다.
계곡엔 시원한 물이 흐르고 전체가 앉기좋은 암반이 주를 이루니
산행은 각자의 체력과 기호에 맞추어 하시고 탁족을 즐기실분은 언제라도 가능한 곳입니다.
※ 기상상태에 따라 산행지가 바뀔수 있음
3. 산행일시 : 2011년 7월 9일 (토요일) 08:00
4. 산행준비물 : 개인 중식 및 기호식, 간식, 여벌옷, 스틱, 선크림, 샌달 등
※ 기상상태에 따라 개인 장비를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리산 구룡계곡 ~ 덕운봉 명품 계곡길에 대간길 둘레길 어우러진 여름철 일급 코스로
구룡계곡 하류 기점 원점회귀형 산행은 챙이소 비폭등 구룡폭포 등 비경 만끽할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 통과 국내 유일 마을도 거치며 옛 사람 자취 밴 지리산둘레길로 하산할 수도 있는곳.
여름철 내내 가장 인기 있는 산행이 계곡산행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산꾼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장마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계곡의 그늘은 쉽게 지치기 마련인 산꾼의 피로를 덜어줍니다.
크고 작은 소와 폭포, 바위틈 으로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소리만 들어도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지리산 자락 서북쪽 끝에 걸쳐 있는 전북 남원시 구룡계곡(九龍溪谷)과 덕운봉(德雲峰·745m)을
이은 코스로, 지리산 계곡이라고 하면 흔히 뱀사골, 피아골, 대원사계곡, 대성골 등을 떠올리지만
구룡계곡은 지리산 주능선의 계곡들과는 또 다른 맛을 주는 곳입니다.
길이는 짧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수많은 소와 폭포가 만들어낸 비경은 여느 계곡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한국자연보존회가 선정한 '한국의 100명수(名水)'에 선정됐을 정도이니 계곡 자체만으로도 격조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구룡계곡이라는 이름은 4월 초파일에 아홉 마리의 용이 내려와 계곡의 폭포에서 놀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 판소리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동편제에 속하는 명창들이 득음을 위해 수련을 쌓은 계곡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구룡계곡 최상류의 구룡폭포. 길이 30m짜리 와폭인 구룡폭포 중간 구릉이 있습니다.
이번 코스는 계곡길은 물론이고 산중 고원의 들판길, 백두대간길, 지리산 둘레길 등 다양한 길을
한꺼번에 밟게 되는 '길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코스여서 더욱 이색적인 곳입니다.
구룡계곡 산행을 할 때는 백두대간에 속하는 여원재(치)에서 시작해 수정봉, 덕운봉을 거쳐
구룡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통상적이지만 구룡계곡 원점회귀 코스를 하게됩니다.
물론 산행시간이 코스가 짧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구룡봉을 거쳐 내송마을까지도 가시는 것도
고려해 보실 수 있는 코스입니다.
전체 산행은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 지리산국립공원 북부관리사무소 앞 육모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육모정(춘향묘·용소)~삼곡교~구시소~챙이소~사랑의다리~비폭등~구룡폭포~구룡사 앞 갈림길
~차도(천룡교)~회덕~노치마을 백두대간 합류점~노치샘~덕운봉 정상~구룡봉~노치산성~지리
산 둘레길 합류 삼거리~구룡치~개미정지~내송마을 앞 도로로 이어지는 총 14㎞ 코스입니다.
걷는 시간만 5시간, 휴식과 식사를 포함하면 6시간30분 정도 잡으면 넉넉합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원점회귀 산행(개념도 참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경치가 너무 좋아 호경리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지는 동네입니다. 육모정은 조선 중기부터 지역 선비들이 모여 의리 예절 도덕을 기치 삼아 학문을 닦고 시대를 논하던 향약인 '원동계(源洞契)'와 관련이 깊습니다. 당초에는 계곡 바닥의 널따란 반석 위에 건립됐는데 지난 1961년 홍수 때 떠내려가자 1997년 계곡 옆 현재 위치에 다시 지은 것으로. 바로 앞 계곡의 용소(龍沼·제2곡)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건너편에 있는 용호정(龍湖亭)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들머리인 구룡계곡 하류 육모정(六茅亭)은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 속하며,
육모정에서 산 쪽으로 보면 춘향묘가 멋스럽게 조성돼 있어 '춘향이의 고장' 남원에 왔음을 실감케
합니다.
육모정에서 60번 지방도의 아스팔트 길을 따라 5분쯤 가면 삼곡교라는 다리가 나오는데 왼쪽 비석
아래로 내려서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10분쯤 가면 구시소라는 작은 소가 나오는데,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아주던 '구유'의 이 지역
사투리인 '구시'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2분 후 만나는 챙이소는 곡식을 빻아서 알갱이와 껍데기를 분리하던 '키'의 이 지역 방언이
'챙이'라는 점 때문에 이름 붙여졌습니다.
넓고 편평한 모양의 바위를 타고 물이 흘러내리는데 소 앞의 작은 바위인 '서암'과 어우러져
구룡계곡의 제4곡을 이류는 곳입니다.
춘향의 묘로 육모정 앞에 자리를 하고 있다. 그 이름이 절묘합니다. '사랑의 다리'. 주변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구름다리에서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그 사랑이 정말로 이뤄질 것만 같은 곳입니다. 소설 속에서 춘향이와 몽룡이가, 아니면 영화 '방자전'에서처럼 춘향이와 방자가 이 다리 주변에서 사랑을 속삭였을까....
구룡교와 영모교를 건너 한 굽이 돌아 10분쯤 가면 제법 높게 걸린 다리가 하나 더 나오는데
다시 계단을 오르내리며 5분만 가면 제5곡인 유선대(遊仙臺)에 다다릅니다.
널따란 바위 위에 금이 많이 그어져 있어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곳이며, 유선대에서 8분쯤 가면 지주대(地柱臺·제6곡) 구름다리입니다.
상류 2개의 계곡이 합쳐지는 곳으로 일단 오른쪽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통과하면 작은 언덕을
넘는데 곧바로 왼쪽 계곡 길로 이어집니다.
구룡계곡 산행 중 만나는 챙이소.
골짜기는 더욱 깊어집니다.
10분 후 높이 10m가량의 폭포가 멋진 비폭등(飛瀑嶝·제7곡)을 지나면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곧이어 칼날 능선이 이어지는데 우측 아래로 구룡계곡 깊은 물길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칼날능선을 지날 즈음 3개의 정육면체 바위가 포개져 있는 신기한 바위를 만나는데, 특별한
이름이 없었으나 요즈음은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장군바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계곡을 지키는 늠름한 장수의 모습을 닮았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면서. 다시 계단을 내려섰다가
5분쯤 가면 마침내 계곡의 최상류에 위치한 구룡폭포가 나옵니다.
꿈틀거리는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양의 높이 30m짜리 와폭인 구룡폭포는 지리산에서도
하동 불일폭포 다음으로 긴 폭포로 이름이 유명한 곳입니다.
긴 계단을 올라서 만나는 상단부 폭포 왼쪽 바위에 누군가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이라고
음각해 놓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산행의 끝입니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폭포 서쪽으로 난 오르막을 3분쯤 오르면 구룡사 앞 삼거리가 나옵니다.
길이 갑자기 넓어지며, 연못을 끼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언제 그렇게 깊은 계곡을 지나
왔느냐는 듯 들판길이 나옵니다.
임도를 따라 10분쯤 찬찬히 걸으면 천룡교 앞 아스팔트 도로에서 뒤 돌아 보면 정면에 보이는
높은 산줄기는 바래봉 세걸산 큰고리봉 정령치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 왼쪽으로
꺾어 아스팔트 길을 따라 회덕마을로 향합니다.
회덕마을 입구 못 미쳐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를 만나면 둘레길 구간에 합류한 셈입니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회덕마을 입구를 지나 좀 더 가면 소나무 10여 그루가 늘어선 곳에 둘레길
이정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왼쪽 10시 방향 소로로 들어서고 곧이어 나오는 이정표에서는 다시 왼쪽으로 90도 꺾어 산 아래
마을쪽으로 들어섭니다.
마을 뒷산이 덕운봉입니다.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마을 입구에 산행 리본이 유난히 많이 매달린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곳이
바로 백두대간 종주길에 합류하는 지점입니다.
왼쪽으로 꺾어 30m가량 가면 또 한 번 갈림길. 왼쪽의 마을 안 정자나무를 향합니다.
오른쪽은 운봉읍 방향으로 가는 지리산 둘레길 구간이지만 이곳에서 둘레길과 잠시 이별하고
백두대간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노치마을의 당산나무.
정자나무 아래에는 특이한 내용의 표지석이 있습니다.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국내 유일의 마을'이라는 내용입니다. 얼핏 의미심장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비석입니다. 바로 이 마을이 그 유명한 노치마을입니다.
대간 능선이 통과하는 길 서쪽은 남원군 주천면에 속하고 오른쪽은 남원군 운봉읍에 속하는,
'한마을 2행정구역'의 특이한 마을이기도 합니다.
정자나무 뒤로 돌아가면 종주꾼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샘터인 '노치샘'이 있는데
물 맛이 참 달다고 느껴집니다.
목을 통과해 마을 뒤로 오르면 수령 500년된 소나무 다섯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당산제전.
매년 칠월 백중에 당산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15분가량은 된비알을 타며 한바탕 땀을 쏟은 후 순한 능선길을 5분만 더 가면 덕운봉 정상입니다.
정상석은 없습니다.
진행 방향으로 30m쯤 가서 만나는 움막에서 구룡폭포 구룡사 방향인 왼쪽 내리막 능선으로 길로
내려섭니다. 즉 백두대간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움막에서 계속 직진하면 수정봉, 여원재로 이어지는 대간 종주길입니다.
왼쪽 내리막을 10분가량 타면 안부가 나오는데 다시 15분쯤 오르막을 치면 739봉. 등산로가
잘 닦여져 있어 걷기 편한 길로 3분 정도 진행하면 728.2봉에 닿는데 지역 주민들은 이 봉우리를
일명 '구룡봉'으로 부릅니다.
5분 후 산성 흔적이 역력한 봉우리를 넘는데 이곳이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노치산성입니다.
사실 덕운봉과 노치마을과 회덕마을, 정령치 만복대 등은 삼한시대와 삼국시대를 거치는 동안
중요한 국경 방어지역이었고 노치마을의 경우 한국전쟁 때 공비 토벌 명목으로 마을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 비운의 마을이기도 합니다.
구룡계곡 제7곡인 비폭등.
노치산성을 지나면 오르막은 거의 없습니다.
10분 후 김녕 김씨묘을 지나 7분쯤 더 가면 T자형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 지점이 다시 지리산
둘레길 1코스(주천~운봉 구간)와 합쳐지는 곳입니다.
이 길은 옛날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는 가장 빠른 길로서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운봉과 달궁
주민들이 남원장을 오갈 때 이용했던 '지리산 옛길'입니다. 길은 소달구지가 지나가도 될 만큼
넓고 부드럽습니다. 작은 돌멩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끔해 차라리 맨발로 걸어도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5분 후 구룡치를 지나고 10분만 더 가면 '14번 이정표' 기둥이 서 있는 솔정자 갈림길.
이곳에서 왼쪽 내리막을 걷게되며, 길은 편안한 둘레길입니다. 주변 솔숲과 어우러져 걷는 맛이
일품입니다. 경사가 완만하고 길 정비가 잘 돼 있어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걷기에도 안성맞춤일
것 같은 곳입니다.
유선대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 한다.
10분 후 임도 앞의 12번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개미정지까지는 20분쯤 걸리는데
이곳을 지나면 마을에 거의 다 내려온 셈입니다.
10분 후 내송(일명 안솔치)마을 입구 큰 도로 이정표에 도착, 산행을 마무리하면 됩니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구간은 길 상태가 다른 구간에 비해 비교적 완벽한 옛길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 이유는 옛날부터 지역 주민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길이었기 때문에
주변 마을 사람들이 매년 백중을 전후해 구역을 나눠 꾸준히 정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떠나기 전에
- 노치마을, 백두대간 종주꾼 잊지 못할 쉼터
백두대간 종주 산꾼들의 생명수 역할을 하는 노치샘.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을로 마음속 깊이 간직한 장소입니다. 북에서 남으로 길을 잡은 종주꾼들이 험산준령을 수없이 넘어 결국 마지막 '방점'인 지리산 문턱에 닿았을 때 만나는 곳으로, 종주길 유일의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마을 뒤 당산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며 들판 건너 보이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바라보고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으며 등산화 끈을 다시 맸던 기억이 생생할 것입니다. 노치마을의 원래 이름은 '갈재'로 만복대에서 큰고리봉 세걸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에 허드러진 갈대가 잘 보였다고 해 붙은 이름입니다. 한자 이름으로 바꾸다 보니 '노치'가 된 것으로, 한국전쟁 기간 마을이 전소됐지만 수령 약 500년에 이른다는 당산나무만은 불에 타지 않은 것으로 전해 옵니다.
덕운봉 아래에 자리 잡은 남원군 주천면 덕치리 노치(蘆峙)마을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산꾼들은
첫댓글 산행대장님 산행안내 올리시느라 수고 하셨읍니다 자세한 안내 감사 드립니다 금호동 성당 교우님들 올리브 산행 많이 많이 오세요 지리산 구룡한번 만나 봅시다 더위가 싸악 가실 겁니다
가시 회장님! 시원한 계곡에서 그동안에 노고를 수박과 함께....
감솨 합니다 함께 먹읍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