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건강진단] 환자안전법, 이대로 괜찮나
전담인력 부족·자율보고 의존으로 실효성 ‘의문’
의료기관 자율보고를 통해 수집된 의료사고 유형을 정부가 각급 의료기관에 알림으로써 의료기관이 환자안전사고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환자안전주의경보제가 지난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신규 제도의 근거가 되는 환자안전법이 시행 1년을 넘기고 있지만 전담인력 부족, 자율보고 체계의 허점 등으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자안전법’은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지난 2010년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정종현(9)군이 정맥에 맞아야 할 항암주사를 척수강에 잘못 맞아 사망하자 종현군의 부모가 반복되는 의료 사고 예방을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이다.
환자안전법 제 16조에는 ‘환자안전사고가 새로운 유형이거나 환자안전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 등이 있을 때 복지부령으로 정한 기준에 따라 의료 기관에 환자 안전 주의 경보를 발령해야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5일부터 ‘환자안전사고주의경보제’를 마련해 실시중이다.
이 주의경보의 근간은 의료기관의 자율보고를 통해 수집된 의료사고 데이터이다. 처벌보다는 사고 예방에 방점이 주어진 이 정책에 따라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요양병원 ▲병원 ▲약국 등이 자율보고를 하도록 돼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1,024 건, 33.5%) 및 종합병원(1,433건, 46.8%)과 같이 병상 규모가 크고 환자안전 전담인력이 배치된 의료기관에서 보고가 주로 이뤄졌는데 아직 미비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턱없이 부족한 환자안전전담인력 수
환자안전 전담인력이란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 급 의료기관에서 환자안전 및 의료 질 향상에 대한 업무를 전담하여 수행하는 전문 인력’이다. 200병상 이상의 의료기관과 500병상 미만의 종합병원에서는 1명 이상의 전담인력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7월 31일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환자안전 전담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병원 74곳 중 환자안전 전담인력을 둔 병원은 56.7%에 그쳤다. 환자안전전담인력 유무에 따른 처벌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법 시행이 무색하리만큼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료기관은 환자안전의 책임과 중요성은 인지하지만 전담인력 확보를 위한 정책의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환자안전전담인력 자격 기준이 ▲의사·치과의사·한의사 면허 취득 후 5년 이상 보건의료기관에 근무한 사람 ▲전문의 자격이 있는 사람 ▲간호사 면허 취득 후 5년 이상 보건의료기관에서 근무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 소재 병원이나 중소병원 등은 가뜩이나 의료진이 부족한 시점에서 인력 운용이 더 어렵다는 주장이다.
◇보고 안하면 그만…자율보고의 한계
환자안전법의 자율보고에서도 한계는 드러난다. ‘환자안전사고주의경보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환자가 사망한 경우 혹은 환자가 소송중인 사건은 신고하지 않는 의료기관이 있어 제도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중재원에 접수된 의료사고는 68건, 소비자원에 접수된 건수는 32건이지만 이 중 환자안전법에 의해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보고한 유사사례는 각각 단 한 건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지난달 9일 자유한국당 김승희의원은 “환자안전사고의 처벌보다 예방적 목적을 강조해 자율보고하고 있음에도 환자안전사고 보호의 실효성이 의심 된다”며 “의료사고로 소송 또는 피해구제 절차가 진행되는 경우는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의료 관계자는 환자안전법에 대해 “환자보호라는 법의 원래 취지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병원에 행정적 부담을 더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환자안전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안전사고 예방의 실효성 강화를 위해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나현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