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자비를 설하는 경전은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절절하게 마음에 남는 경전을 꼽아보면 우선 화엄경을 들 수 있습니다. 다음은 화엄경 보현보살행원품중 수희공덕편에 나오는 법문입니다.
모든 부처님들은 대비심을 바탕으로 삼았다.
중생이 있기에, 대비심을 일으켰다.
대비심이 있기에,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을 내었다.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이 있기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 (중략)
그러므로 깨달음은 중생이 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다.
만약 중생이 없다면, 모든 보살들은 끝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諸佛如來께서 以大悲心으로 而爲體고로 因於衆生하야 而起大悲하며
因於大悲하여 生菩提心하며 因菩提心하여 成等正覺하나니…],
[菩提가 屬於衆生이니 若無衆生이면 一切普薩이 終不能成無上正覺이니라]”
- 화엄경 보현보살행원품 중 ‘공덕을 기뻐하는 품[수희공덕품 隨喜功德品] -
대승경전 화엄경은 깨달음은 자비에서 오며, 자비는 고통받는 중생에 대한 연민에서 온다고 법문합니다. 그러므로 연민과 자비가 따르지 않는 깨달음은 엄격히 말해서 불교적인 깨달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연민과 자비와 깨달음의 관계를 강조하는 화엄경의 법문은 불교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이 시대의 불자에게 오래된, 그러나 늘 새로운 비전을 주고 있습니다.
오는 3월 2일 [법과 등불]모임에서는 초기경전 <자애의 경>을 공부합니다. 자애를 기르는 일과 자애의 실천에 대한 부처님의 법문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그 속에는 어떤 관념적인 사변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사랑과 자비의 당위를 설법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실천하는 사람은 보기 어렵습니다. 사랑과 자비를 외면하는 것은 자신의 자비심을 피하는 관념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나 관념적인 태도를 비난만해서는 그 속에 숨어 있는 속마음을 보기 어렵습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울삼아 조금씩 다가갈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고통이 심할수록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두려움은 인색함을 불러와 자비심이 일어나도 자기를 외면합니다. 자비심을 외면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도 일어납니다. 특히 사랑과 자비를 외치는 사람에게서 위선과 거짓을 발견할 때, 우리는 자기 마음을 등지게 됩니다.
<자애의 경>을 읽으며, 부처님이 말씀하는 사랑(자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자애의 마음을 기르고,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나아가 자애와 해탈의 관계는 무엇인지 사색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자애의 경>은 자비를 막는 우리의 관념과 두려움을 치료하고 자애의 기쁨을 깨닫게 합니다.
첫댓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일이라서 기대가 됩니다.^^
(내가 좀 손해보는 듯 살지)싶지만 이쪽의 정직을 완전 이용당했을때,
'바보 아냐?'하는 자책과 억울함을 숨길 수 없었고... 불법과 현실의 경계-중도?를 생각해보기도...
요즘엔 제가 이권에 대해선 꼬장꼬장 따지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래봤자 원래 허술한 인간이라~ㅋㅋㅋ